[칼럼] '한류'의 문명적 비전

○ 아시아 문명의 전시장(展示場)으로서의 "K팝과 드라마"
○ 문화가 국경을 넘어야 비로소 "문명"이 된다
○ 일본의 쇠퇴와 중국의 회복, 그리고 아세안의 존재감

정호재 |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 저자
2021년 5월 작성

1장. BTS도 일종의 명품일까?

해외에서 사업하는 한국인들은 당연하게도 모국(母國)인 ‘한국’이 가진 유무형의 영향력, 특히 전반적인 국가 이미지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같은 한국인들이 가진 아쉬움 가운데 우리나라에 “고급/명품”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명품이미지는 대개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전통적인 선진국들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발주자가 명품이미지를 가진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베트남에 거주한 한 한국인 사업가와 우리의 뷰티 산업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필자가 "한국은 명품 산업이 당분간 어렵지 않을까요?"라고 회의감을 표하자, 그는 단박에 간단한 논리로 나를 무장 해제시켰다. "방탄소년단(BTS)은 단기간에 세계적 명품이 되었잖아요. 그러니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죠" 아하! 그렇구나! 케이팝 아이돌을 일종의 명품으로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온 것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나 LG화학의 전기배터리는 품질과 무관하게 ‘명품’ 소비재와 비교하긴 애매하지만, 문화상품인 케이팝은 ‘소비재’로 바꿔서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1. 동양인 글로벌 스타는 가능한가?

케이팝이 아시아의 인기를 넘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도 이미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한국인 남자가수가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글로벌 스타라는 존재는 당연히 영어권이나 백인들의 전유물이라는 강고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한때 그 잘나갔던 일본과 십억이 넘는 인구의 중국조차도 인종과 언어 체격 탓인지 세계적인 남성 스타를 배출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아마도 동양 무술의 이점을 얻는 ‘이소룡’ 정도가 거의 유일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서구 문명과 인종, 그리고 선진국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케이팝은 세계적인 주목을 넘어서 BTS라는 세계적 명품을 탄생시키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누구라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세계적인 히트상품을 만드는 것만큼, 평범한 사람을 "글로벌 스타"로 만드는 일 또한 힘들고, 아니 훨씬 더 난이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잘생기고 춤을 잘 추고 유능한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타’라는 존재는 팬이 자신의 모든 인격을 걸고 사랑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은 무척이나 평등해 보이고, 사랑이란 감정은 우발적으로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계급적 문화적 배경도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스타의 탄생에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사랑을 포괄하는 그 이상의 사회문화적인 맥락도 존재하는 셈인데, 그 배경의 종합을 필자는 "문명적 힘"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한국은 물론 수많은 아시아의 기획자들이 "동양인 남성 스타"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이유와도 일치한다. 지난 500년간의 문명의 우위가 서양세계에 집중된 탓인 것이다.

혐오의 감정 그 정반대 편에 문명에 대한 열망과 콤플렉스도 동시에 작동하는 법이다. 한국의 팝 역사를 거론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1970년대의 리처드 클리프 내한공연, 1980년대 레이프 개럿, 1990년대 뉴키드온더블록이 가장 대표적인 서양인 스타에 대한 갈증과 열망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압도적이고 우월한 서양의, 서구 문명의 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표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은 단순히 대중문화에 그치지 않고, 학술, 의학, 과학 등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프랑스 향수를 하나 쓰는 것이 단순히 향기가 좋아서 쓰는게 아니라, 서양의 역사와 문명의 아우라를 동시에 누리는 것과 같은 논리다.

물론 문명의 힘이라는 것을 ‘역사적 헤리티지’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아시아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 보았는데, 대부분의 고급식당과 호텔에는 어디라도 프랑스 음식과 이탈리아 식당이 최상위 레벨을 형성하고 있었고, (건축과 제도의 측면은 영국과 독일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주 가끔 일식과 중식도 존재감을 비추기도 하지만, 대중적인 명품의 대열에 합류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무려 1600~185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세력이 여전히 식문화와 패션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뷰티산업을 예로 든다고 할 때, 어떻게 후발주자 가운데 가장 늦은 한국이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까? 당연히 헤리티지가 부족한 한국의 관점에서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리라.

2. 스타는 기술의 산물인가?

정보통신과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ICT) 기술은 가장 대표적으로 세상을 "평평하게" 만든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한국이 이같은 세계화와 정보화 시대에 영토와 인구에 밀리지 않고 선진국의 말석에라도 합류한 배경엔, 이같이 조금은 평평해진 세계의 덕을 보았다는 시선도 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늦지 않았기 때문에, 문명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패스트 팔로우 국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서양 문화의 전파도 빨라졌다.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에는 직접 미국에 여행을 다녀와 본 사람만이 미국 음악을 베낄 자격이 주어졌다면, 2000년대에는 인터넷을 이용해 반드시 미국에 가지 않더라도 좋은 건 손쉽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었다. 2005년 무렵에 한국 지방 도시의 비보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1등을 연달아 한 적이 있는데, 그들이 밝힌 비결이 바로 "인터넷"이기도 했다. 물론 2010년 이후엔 단순히 인터넷에 그치지 않고 낮아진 국경과 항공산업의 덕으로 직접 서구권을 오가며 문명교류의 속도와 융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BTS가 명품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정치경제, 즉 문명이 빠르게 서구와 대등한 수준으로 향상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서구는 열등한 동양을 보고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지난 100년간 정말 치열하게 서구의 좋은 점을 보고 배우지 않았던가? 기술이 평등해 졌고, 그 기술을 뒷받침하는 사회와 문화의 수준이 빠르게 상승한 대목을 잊어선 안 된다. 개인과 프로듀서의 힘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의 회복도, 그 배경에 깔려 있었다고 봐야 하고, 반대로 BTS가 동아시아 문명 회복의 상징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3. 드라마와 음악…." 문명의 전시장"

사실, 이 글은 한국의 코스메틱 패션 식문화 등의 문화 산업이 명품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있냐, 라는 질문에서 비롯됐다. 한국산 "글로벌 명품"이 불가능하다고 본 배경엔, 사실은 기술의 문제보다 더 뿌리가 깊은, 시간의 축적이나 인종의 문제와 같은 장벽 때문이라고 본 것이고,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와 같은 케이팝은 그러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반례가 되기에 충분한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최근 필자가 자주 하는 생각은, "대중음악과 드라마는 현대문명의 전시장" 같다는 생각이다. 인류의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서 마법 같은 기술이 나온다 한들, 결국 그 문명을 소화해서 무대에 선보이는 것은 무대 위의 가수나 연기자들이 가장 최전선에 서 있다는 얘기다. 19세기에나 문명을 관람하기 위해 엑스포 같은 대형 전시회가 열렸지만, 이제는 넷플릭스에서 케이드라마와 유튜브로 케이팝을 듣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 문명 전시장의 가장 좋은 부스에 BTS가 들어선 셈이고, 당연히 BTS는 한국문화와 동아시아 문명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조만간 한국산 명품이 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방법에 대해선 알 수가 없지만, 당연히 BTS란 명품이 탄생했는데, 소비재 브랜드 따위가 그 뒤를 따르지 못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는 아직도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이 만든 화려한 서구 문명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피에르빅토르 갈랑 작. 막심의 술집. (출처: 위키)

2장. 문명과 아시아…“국경을 넘어야 문명이다”

한류에 관한 관심과 아시아에 대한 담론이 높아지고 활발해진 시기다. 이제까지 특히 한류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다양한 방법론이 제시되었다. 민족적이고 국수주의적인 해석에서부터 세계체제론적이며 경제적인 해석까지 지난 20년간 한류의 고도화에 따른 여러 접근법이 한류 담론의 폭과 깊이를 더해왔다. 그런데 아시아를 공부하는 필자 관점에서 아쉬운 대목은, 한류가 가진 “지역을 만드는 힘” 즉, “아시아 문명”에 대한 고찰과 담론이 부족했다는 대목이다. 한류는 문명론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쉽게 이해가 되고, 현실에서 다양한 적용과 실천의 상상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문명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에 접근했을 때의 문명은,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 사회적 발전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양문명, 동양문명이라는 구분도 바로 이런 ‘진보’의 차이와 결과에 따른 것이다. 문명론의 핵심 배후에는 이처럼 지리적/지역적 개념이 반드시 들어가고, 특히 문명은 어느 일개 국가가 독점적인 권리를 행사하기 힘든, 지역 간의 상호작용과 경쟁이 반드시 포함되는 초국가적인 개념이다.

1. 문명은 지역을 만드는 힘

국경을 뛰어넘는 힘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긍정적인 함의만 가진 것도 아니다. 전쟁이라는 국가 간의 힘의 충돌 역시 문명적인 개념이며, 해외로 수출되는 상품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국경을 뛰어넘는 난민과 밀수 역시도 문명적인 세계의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무엇보다 문명의 가장 대표 주자는 “기술(technology)”과 “문화(culture)”라고 할 수 있다. 너무도 간단하게 국경을 뛰어넘어 주변 지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강력한 동질감을 부여해, 자연스럽게 “지역(region)”이라는 새로운 시장과 공동체를 창출한다. 바로 문명의 힘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문명론의 전개로 볼 때, 필자가 주장하는 문명의 정의는 “국경을 뛰어넘는 지역을 만드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현재 한류의 위치는 “아시아 만들기”의 핵심 철학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20세기 아시아 역사는 비극으로 점철됐다. 아시아의 거의 모든 지역이 자신들의 “특수한” 역사와 배경 탓으로 고난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서구 선진국들이 갖가지 로컬에 특화된 방법들이 제시하였지만, 뚜렷한 정답은 아직 도출된 적은 없다.

동시에 전쟁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명의 전파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아시아의 20세기는 배움의 시대였고, 21세기는 아시아 문명의 ‘회복의 시대’를 넘어 ‘전복의 시대’가 될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 아시아의 MZ 세대가 자리 잡고 있다.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선배들과 같이 서양에 대해 콤플렉스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충분히 성장했고, 서양의 좋은 점과 동양의 좋은 점을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2. 전복(顚覆)의 시대…아시아 MZ 세대

한류 콘텐츠가 아시아 MZ 세대의 놀이문화이자 컨텐츠가 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동양의 아이들이 서양의 대중문화에 종속되지 않고, 한국의 콘텐츠를 가지고 따라하고, 자국의 문화로 새롭게 해석하고, 때론 이를 활용하게 전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한류의 유행은, 아시아에 새로운 에너지와 비전을 심어주고 있다. 바로 아시아 젊은이들에게 소통이 가능한 “동시대적인 보편성”을 확인시켜주고 확대재생산 한다는 데에 있다. 한류를 통해 아시아 젊은이들은, 아시아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한류가 가진 지역을 만드는 힘이 될 것이고,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이제는 비극적 역사, 혹은 과거 위대한 역사라는 특수성을 뛰어넘어 “보편성”을 갖추는 주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케이팝과 케이드라마가 바로 아시아 문명의 전시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주된 생각이다. 화려한 색감의 케이팝 뮤직비디오와 보편적인 인간승리의 휴머니티를 가진 한국 드라마가 온라인 네트워크를 타고 아시아 지역의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 역시도 서구가 아시아를 따라잡기 힘든 새로운 문명의 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3장. 촌스러운 아시아, 색깔과 빛의 제국주의

사회학 이론에 속하기도 하고 환경이론에 속하기도 한, "풍경(landscape) 이론"이 있는데 자못 흥미롭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쉬운 얘기니 그럴싸한지 들어보시라. 그러니까, 한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주변의 '풍광'을 살펴보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는 얘기다. 좀 더 과격하게 얘기하면, 특정 개인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거나 관찰하지 않더라도, 먼저 그 주변의 풍광을 읽는 것만으로 해당 개인의 성향과 특성을 유추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당신 주위의 풍경을 내게 보여달라, 그러면 내가 당신을 설명해 보겠다."

이게 무슨 이론이야? 하고 황당해할 수도 있겠다. "근묵자흑, 근주자적(近朱者赤 近墨者黑) 논리 아닌가?" 혹은 점집에서 무당이 대기실에 들어온 사람의 옷차림과 어투만으로 그 사람의 배경을 짐작해 내는 수준과 다르지 않네? 서울의 거리 사진 몇 장을 가만히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이 이론을 간명하게 알 수 있다. 가게의 간판을 보면 이 사회가 한글이란 문자를 쓰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옷차림을 보면 계절과 사람들의 경제력을 가늠할 수 있고, 건 물물 디자인과 차량의 분위기만 살펴도 해당 지역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읽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거기에 사는 사람의 보편적 특성도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1. 풍경 이론으로 살핀 ‘색’의 역사

풍경 이론은, 의론이라고 하기도 좀 애매한 게, 사실 해외관광객들이 대개 이런 방식으로 해당 사회를 유추하는 게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지혜나 비결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우리가 유럽에 갈 때나 태국 방콕에 갈 때, 거리를 바라보고 느끼는 감각의 차이가 바로 이런 추론 과정의 연속인 것이다. 특히 가장 많이 언급되는 대목이 "건축 사조"와 "제국주의"에 대한 내용이다. 동남아에 가보면 "제국시대 건물"이 유달리 많다. 영화극장 앞 포스터, 여성의 화장술도 풍경에 속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 제국주의 건물이나, 서구의 패션이나 영화포스터가 일종의 문화적 국경이며 심리적 경계라는 얘기도 된다. 방콕에서 나고 자랐지만 영국의 건축물과 함께 자라고 소설 <제인에어>를 읽으며 EPL 축구를 즐기는 경우라면, 영국적 마인드가 자연스레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경이라는 게 DMZ와 독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에나 "문화의 경계"와 "융합 혹은 갈등"의 현장에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풍경이론에서도 잘 언급하지 않는 대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색감/색조"에 대한 얘기다. 풍경의 색조를 놓고 논하는 게 무척이나 까다롭기 때문일 수 있고, 사진으로는 해외 먼 나라 색감을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색에 대한 판단은 직접 현장을 가서 하는 게 최선일 수밖에 없다. 그 도시와 거리가 품은 색은 분명히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2. 원색의 촌스러움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에 만난 남자 담임선생님을 무척이나 강렬하게 기억하는데, 그는 무척이나 야심만만하고 패기가 넘치는 사내였더랬다. 하루는 급우들과 빨간색과 노란색을 활용해서 학급 미화 활동을 벌인 적이 있는데, 당시 선생님이 우리의 작품을 보시곤 "아이고 얘들아, 저 샛노란 색은 뭐니? 저 색은 너무 촌스럽지 않니?"라고 하신 것이다. 당시는 "촌스럽다"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대충 나쁘다는 뜻인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왜 노란색이 촌스럽다고 지적하시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이후 나이를 먹고서야, "촌스럽다"라는 표현이 문명인이 시골 사람을 압박하는 일종의 "권력적인"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여튼 그 이후에 나는 노란색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때 선생님의 지적이 각인된 거다.

도시의 색감에서 "촌스러움"을 느낀 경험이 몇 번이 있는데, 다름 아닌 2000년대 초중반 중국의 여러 도시를 오 다닐 때였다. 중국은 대륙적 기후 때문에 도시 전체가 뿌연 연기에 가득 차 있었고, 특유의 낡음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그런 황토색 배경의 도로나 역사성 넘치는 건물의 모습엔 별 불만이 없었다. 중국의 간체자 폰트도 나름 사회주의 특성이 느껴져 좋았더랬다. 그런데, 너무도 눈에 거슬린 대목은, 중국의 현대 산업이 공장에서 무한정 찍어내는 최신 공산품을 치장한 각양각색의, 그것도 원색이면서 번쩍번쩍은, 유치한 색의 난무함이었다.

"아, 현대 중국의 산업디자인은 조색부터 너무 촌스러워~"

당시 이런 불만이 입 밖으로 자연스럽게 방언처럼 터져 나왔다. 학생들은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다녔는데, 거기에 쓰인 보라색, 빨간색, 파란색의 선명한 색상도 맘에 들지 않았고, 중국의 스포츠 선수들이 즐겨 입는 번쩍이는 운동복도 오랜 중국 문명의 멋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2000년대 중반 후반의 얘기다. 중국인이 사랑하는 화려한 원색의 조합도, 자주 보다 보니 묘하게 밉상이지만 정이 들긴 하더라. 상하이의 "동방밍주(東方明珠)"의 화려한 색 조명이 대표적이고, 광저우의 "주쟝신청(珠江新城)"의 미친듯한 천국 같은 조명 색깔도 마찬가지다.

3. “아시아는 색(色)에 약하다”?

국내외 뷰티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한국의 뷰티산업의 최대 약점은 바로 "조색調色" "메이크업makeup" 분야라고 단언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화장품이 스킨케어엔 강하지만, 메이크업 분야는 서구의 전통적 명품에 감히 견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고, 바로 색을 다루는 실력 차가 실제 산업의 경쟁력으로 드러난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앞서 말한, 풍경 이론과 중국과 한국이 색의 사용에 미숙한 대목, 뭔가 묘하게 서구의 디자인과 한국의 디자인이 조응하지 못하는 여러 상황이 줄지어 떠오른 것이다.

이는 우리가 모두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만 뚜렷하게 극복 방안을 찾기 힘든 숙제다. 왜 아시아는 서양보다 발색(發色), 조색(調色), 채색(彩色)이 약한가? 대략 세 가지의 원인과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현대적 색의 발명과 그 활용이 서양에서 시작되었고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16세기 이후 지속해온 서양의 회화혁명이 가장 대표적이다. 렘브란트에서 시작해 고흐와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서양문명의 핵심에는 빛(light)에 대한 분석과 이를 캔버스 위에 표현하는 기술적, 철학적, 인식론적 방법론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진화하며 문명의 핵을 이룬 것이다. 나아가 그 성취가 제조업과 도시의 풍광, 또한 개인의 심미안에 녹아들었다. 둘째는, 아시아가 색의 제조와 표현에 그만큼 서툴렀기 때문이고, 서구의 오랜 식민지배의 결과 문명의 표준을 서양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현재도 자연스럽게 서구 중심의 ‘미술사’와 그 ‘색감’을 색조의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셋째는, 앞선 이유와 경제성으로 연결되는 “오랜 가난함”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아시아에서는 “색”을 사치로 인식할 만큼 색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고급스럽게 발색하는 기술과 문화에 대해서 투자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오랜 경제적 빈곤함이 주는 도시의 가난한 풍광도 한 요인이 된다. 그 때문에 아시아에서 색을 사용할 때는 주로 “축제”와 “결혼” 등의 경사에만 집중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색의 발달이 덜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4. BTS의 DNA 뮤직비디오 ‘충격’

한국의 자동차 색깔이 바뀌기 시작한 것도 10년 안짝이다. 자동차 써본 우리는 다 알지만, 한국의 4계절을 버티기 위해선 회색 차가 제격이다. 흙탕물 비에도 별 티가 안 난다. 가장 싸고 경제적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생계와 분명한 목적을(출퇴근) 위해 차를 타고 다녔던 것이지 레저를 위하거나 소장을 위해 차를 타고 다닌 지가 불과 10년 안짝이라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자동차의 색깔이 흰색-회색-검은색으로 통일이 된 채 수십 년을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영원히 색조기술에서 유럽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얘기인가? 아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미 시대의 풍경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사람들이 TV와 게임 유튜브 넷플릭스에 쓰는 시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사교장의 무도회장이 아니라 온라인 게임에서 정기 모임 하는 시간도 늘어난 것이다. 아시아에서 LCD 모니터를 생산해 내고, 온라인 게임과, K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풍경이 온라인으로 급속도로 바뀌는 것이다.

필자가 K-pop의 발전 대목에서 가장 충격을 느낀 대목 가운데 하나는 BTS의 "DNA" 뮤직비디오를 보았을 때다. 그 폭발적인 원색의 향연과 우주의 신비로움이 유튜브 화면에 그토록 멋지게 어울리는 작품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필자에게 DNA라는 작품은 멋진 안무 이외에도 가장 근사하고 한국적으로 온라인 색감을 사용한 "비디오 혁명"에 가까운 작품이었다는 얘기다. 유럽 애들은 절대로 유튜브 비디오를 이렇게 만들 수가 없다. 비디오 색조기술은 이미 한국도 세계 문명권에 오른 셈이다

5. 한국도 문명의 위치에 도전 중

“21세기 아시아는 서구의 문명, 혹은 서구의 조색 감각과 색채기술을 뛰어넘을 가능성을 갖고 있을까?”

전통적인 관점에서라면, 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과제다. 이미 서구는 동양보다 색의 능력치에서 3~4세기를 앞서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의 축적 격차를 1세기 만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이제는 “색조기술”은 비단 애매한 오프라인 경험과 기술에 머물지 않고, “컴퓨팅 파워” “디스플레이 기술” “5G 네트워크 속도”로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보이는 색감과 디자인 능력이 이제는 아시아가 서구에 뒤처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더 중요한 점은, 이제 아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한국과 한류를 벤치마킹한 여러 문명적 시도들이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가장 먼저 앞서갔으며, 이제는 인도와 동남아가 이러한 컴퓨팅 문명의 속도와 기술을 바삐 따라잡고 있다. 아시아의 색조기술이 이런 모방과 경쟁의 과정을 거쳐 빠르게 서구를 따라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딴은 그렇다. 아시아의 온라인 색조기술이 빠르게 세계 수준으로 올라왔다. 최근 한국에서 출시되는 온라인 게임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중국은 여전히 한국과 미국의 게임의 분위기를 베끼는 모양새긴 하다). 먼가 게임의 규칙이 바뀌니, 아시아의 문명도 빠르게 유럽의 문명을 젖히긴 할 것이다. 이 가운데, 한류의 역할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류는 현재 아시아 지역을 만들어가는 핵심적인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일조의 “본보기”로서 여러 지역의 문명 회복에 중대한 영감을 주고 있다. 한류와 아시아 MZ 세대의 연결고리를 확대하고 그 동질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기회가 창출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4장. 종합 결론: 일본의 쇠퇴, 한국의 부흥, 중국의 회복

1978년도에 출간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이란 책을 애정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오리엔트란 서양에서 '동양(東洋)'을 의미하는 말로 이 광활한 지역에 대한 서양의 지식 혹은 편견이 어떤 방식으로 생성되고 전개되었는지를 촘촘히 풀어낸 책이다. 출간 이후 반세기 넘게 아시아에 대한 하나의 대표적 지적 성취로 활용됐다. 즉, 서양이 현대문명의 '주체'이며 동양은 일종의 '신비롭지만 열등한 객체'였다는 배경이 깔려 있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문명에 대한 동양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아시아라는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아주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경제적인 역동성이 이미 서양에 근접했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될 듯 싶다. 2020년 세계 경제 규모만 따지고 볼 때 이미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아시아 국가인, 중국(2위), 일본(3위), 인도(6위), 한국(10위) 등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남아 10개국 연합인 아세안(8~9위)을 끼워 넣을 수 있다면 그 비중은 더욱 높아질 수도 있겠다. 과거 서구식민지 시절의 가난함과 무지함의 편견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한류의 역할

5월 초에 종영한 송중기 주연의 tvN의 인기드라마 <빈센조>는 2021년 상반기 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콘텐츠가 되었다. 과거와 크게 달라진 환경이란 '넷플릭스'와 ‘유튜브’라는 글로벌 플랫폼 덕분에 어느 지역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는지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된 것이다. 악을 응징하는 마피아 변호사를 전면에 내세운 이 한류드라마는 일본에서부터 시작해서, 홍콩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거쳐 태국과 인도네시아까지 싹쓸이한 것이다. 이제는 아시아 지역에서 한류드라마의 인기를 언급하는 일이 조금은 쑥스러운 일이 되었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래스> <싸이코지만 괜찮아> 등이 연달아 아시아 시장을 석권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시아 지역에서 미디어 콘텐츠의 재미와 완성도 측면에서 한국의 수준에 이른 나라를 찾기란 쉽지 않다. 사실 웬만한 국가체계를 갖춘 대부분 나라는 자국의 문화에 기반을 둔 방송산업을 갖고 있고, 기왕이면 외국 콘텐츠에 미디어 시장을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치열한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최근 한류드라마, 영화, 케이팝의 선전은 아시아 수준을 뛰어넘은 글로벌 현상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한류의 경제적 역할보다, 지역을 창출하는 힘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된 측면이 없지 않다. 최근 많은 학자가 한류 콘텐츠가 "아시아 지역 형성의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과거 독립 이후에는 주로 미국과 유럽의 방송콘텐츠가 아시아 지역을 장악해 전통문화와의 충돌을 불러일으켰다면, 이제는 한국이라는 꽤 적절한 ‘역할 모델’이 생겼다는 찬사다. 한류는 지금도 사회문화적으로 극히 보수적인 이란, 미얀마, 인도네시아, 북한 등의 지역에서 파격적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이유로는 전통을 크게 희생하지 않고도 현대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한국이라는 정치체제가 자국에 크게 위협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과 같은 나라들의 대중문화는 장기적으로는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한국이 1997년까지 일본의 대중문화를 금지한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일본의 쇠락, 중국의 회복

필자 역시도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한류의 성장이 아시아인의 각성과 유럽에 비견되는 "현대 아시아"의 탄생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찬사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과 경쟁자 역시 없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2016년 이후 한류를 적극적으로 통제한다는 '한한령(韓限令)'을 앞세우고 있는데, 여기에는 단지 문화적 이유뿐만 아니라 여러 정치·경제적인 배경도 작동한다. 한류에 내재한 서구 지향적인 문화의 위험성도 우려도 있지만, 중화 문명이 이제까지 지켜온 아시아에서 유지해온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안방 시장부터 한류 콘텐츠에 내어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중국은 "아시아 = 중국 문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국의 거대한 영토와 경제 규모, 나아가 오랜 역사에 자부심이 큰 나라다. 심지어 나라 밖 화교의 경제적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중국이 현재 진행 중인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핵심은 유라시아 및 아프리카의 모든 길이 중국으로 통하게 만들겠다는 비전에서 비롯됐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아시아 지역에서도 큰 변수가 없다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중국의 문화콘텐츠는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한류와 뚜렷한 경쟁 체제를 갖춘 것이 사실이다. 어디에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적지 않고, 그들이 선호하는 중국적 콘텐츠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쇠락도 주목할만하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GDP는 중국과 인도 등 여타 아시아 전체의 GDP와 엇비슷할 정도로 일본의 경제력은 아시아를 압도한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이를 활용해 1990년대까지 일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제이 팝이 아시아 전역에서 '첨단 유행'으로 활발하게 소비된 것이다. 하지만 한류의 붐과 동시에 찾아온 '일본의 쇠락'은 21세기 아시아의 커다란 징후 적인 특징으로 꼽히기에 충분하다. 이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본이 "아시아"를 그리 중히 다루지 않았다는 과거가 발목을 잡았다고 본다. 이미 1세기 전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국가 비전을 내세우고, 아시아의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기보다는, 서양문명을 따라 하는 것에 관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아세안의 한류 따라잡기

아시아의 중요성이 날로 커짐에 따라 새롭게 주목할 지역이 바로 동남아시아(일명 ASEAN)다. 동남아 지역은 오랜 식민지배와 압도적인 자연환경 덕분에 지하자원은 많지만, 경제발전이 쉽지 않은 지역으로 꼽혀왔다. 정치발전 역시 더뎠는데, 군부독재와 왕정체제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막아왔다. 최근 벌어진 미얀마 쿠데타가 대표적이고, 태국과 캄보디아의 정치체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또한, 정치부패와 경제 양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동남아 역시도 '아시아의 시대'라는 커다란 문명의 순환적 흐름의 동참하는 형국이다.

아시아 지역의 가장 큰 특수성이란, 지역마다 대체할 수 없는 역사와 문화가 뿌리 깊다는 얘기다. 수백 년 넘게 서양세력이 동남아 지역을 지배하고 착취했음에도 끝내 자신들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다른 개방성도 주목해야 할 특징이다. 수천 년간 아시아 여러 지역의 문명―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무슬림, 기독교― 등이 차례차례 도착해서 차곡차곡 문화적인 전통과 역량을 쌓아왔다. 이는 동남아 지역의 문화적 역량의 크기를 설명하는 것으로, 한류가 왜 동남아 지역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지에 대한 한가지 설명도 된다. 외국의 좋은 문화에 대해, 여느 국가들처럼 크게 편견이 없이 개방성이 크다는 얘기가 된다.

아세안 각 지역의 문화적 전통을 활용한 콘텐츠도 당연히 한류와 더불어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최근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 콘텐츠에 감화받고 모방한 측면도 없지 않다. 문화의 교류에 있어서 "모방"이라는 측면에 대해 특별하게 나쁘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원래 대중문화는 국적을 부여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서로서로 모방하면서, 발전시켜나가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모방은 아시아적인 동질성을 강화하기도 한다. 지역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다.

최근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이 가장 대표적이고, 전통적인 동남아시아의 맹주국가인 태국과 인도네시아 역시, 자국의 문화콘텐츠의 발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국가로 손꼽힌다. 이들 3개 국가는, 자국의 음악과 영화 드라마에 대해서 크게 관세 장벽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특유의 저임금과 발 빠른 문화적 감식력과 왕성한 소비력을 지닌 MZ세대를 발판으로 빠르게 자국의 문화경쟁력을 키우는 국가로 꼽힌다.

아시아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미래를 말할 때 꼭 빼놓지 말아야 할 지역이 바로 남아시아의 맹주 인도다. 인도의 문화와 문명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기서 새삼스럽게 재론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인도는, 한국에서는 크게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한반도를 조금만 벗어나면 쉽사리 그 영향력을 쉽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영화의 본거지로 불리는 발리우드가 바로 인도의 특산품이나 다름없다. 아시아의 핵심 참여자이지만, 워낙 독특한 문화로 쉽게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인도 역시도 최근 동아시아에 대한 높은 관심과 특유의 영어문화 덕분에 빠르게 아시아 정체성의 주요 핵심으로 부각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이 주는 이미지는 앞서 설명한 대로 미스터리하고 정확하게 분석이 힘든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가 된다. 이렇게 모호한 태도는 아시아가 현대 경제체제와 동떨어진 무지몽매한 존재라는 얘긴데, 지금도 그런 환상을 갖고 계신 분들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아시아 시대란, 아시아의 생산력과 경제력이 유럽과 대등해지고 나아가 유럽을 뛰어넘어 미국과 함께 세계를 이끄는 역할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데 필요한 점은 아시아 지역 간의 더욱 적극적인 소통일 것이다. 유럽이 지금의 유럽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천년에 걸친 치열한 전쟁과 경쟁이 밑바탕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시아는 사실 뚜렷한 교류가 있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한 교류의 빈곤함을 최근 1세기 사이에 저렴해진 항공권과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인터넷 미디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값싸고 압도적인 품질을 지닌 한류 콘텐츠가 아시아 부흥의 새로운 징후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현재 아시아는 차근차근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한류 성공의 밑바탕이 되었고, 아시아는 현재 한류의 많은 부분을 닮고 싶어 하고 있다. 인종적인 특수성에 기반을 둔 중화권 문화와 경제력을 활용한 일본의 문화상품보다는, 보다 아시적인 보편성에 기반을 둔, 한국 콘텐츠가 아시아의 형성과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현실이 되어버린 셈이다. (끝)

참고문헌

Bhutto, F. (2019). New kings of the world: Dispatches from bollywood, dizi, and K-pop. Columbia Global Re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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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tington, S. P. (1997).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 Penguin.

Lee, S., & Nornes, M. (2015). Hallyu 2.0: The korean wave in the age of social media.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Said, E. W. (1978). orientalism. Routledge & K. Paul.

Toynbee, A. J., & Tomlin, E. W. F. (1978). Arnold toynbee, a selection from his works.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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