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슈 막부 최후의 총리, 국장國葬

통산 3188일을 재임 재임한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 아베 신조의 장례식이, 2022년 9월 27일 일본 도쿄에서 국가장 형식으로 치러졌다. 지난 7월 8일 나라시에서 유세 도중 총격으로 사망한 지 11주 만이다. 국가 규모의 행사로 치러진만큼 전세계에서 다수의 국빈들이 참여했다지만, G7 정상은 단 하나도 참석하지 않아 "조문외교"를 명분으로 내세운 기시다 내각에게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되기도 했다. 일본은 왜, 아베 총리의 장례식을 국장 형식으로 치러야 했을까?

글 | 정 호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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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배우기 힘든 여러 이유 가운데 "어려운 인명"도 한국인에게 매번 빠지지 않는다. 한국인 이름은 3음절인데, 일본인은 보통 7~9음절까지 긴 이름이 흔한 게 문제다. 길고 복잡한 이름은 까다롭다. 더구나 왜색 짙은 이름은 외우기가 더 힘들수 밖에 없다. 그래서  트와이스 멤버 "사나"의 본명은 "미나토자키 사나", 인데 한국인은 간단히 "사나" 라고 부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한국인에게 친숙한 이유는 특유의 간명한 이름 탓일 수 있다. "아베"라는 짧은 발음엔 고전적인 한자 원음의 느낌이 살아 있다. 외우기 쉬우니 자연스레 친근하고 다음에 봤을 때 더 반갑다. 어릴적 접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다케시다 노보루" 등 총리들은 지금도 정확히 기억해 쓰기 어렵다. 일제 시대 한국인들은 꽤나 일본 인명 암기 문제로 고생했을듯. 아베는 간명한 이름 말고도 일본 정치의 깊은 함의를 담은 인물로 유명하다.

1. 일본국장

일본국의 국장國葬을 사실 처음 보았다. 1989년 쇼와 덴노의 장례식은 어렴풋이 기억난다(덴노의 장례식은 국장에는 포함 안 될듯). 당시 kbs mbc등 모든 국가 매체들이 호들갑스럽게 현장을 중계했다. 누구라도 쉽게 중차대한 인물이 죽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1989년 기준으로 한반도 인구의 1/3 가까이가 그의 통치를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그런지, 쇼와의 일생을 다룬 다큐도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비가오는 장례식 날, 163개국 수반들이 도쿄에 모여 "역사적" 인물, "일본 제국"의 가장 상징적 덴노의 마지막을 기렸더랬다.1989년은, 대략 짐작하겠지만, 일본국의 경제력이 사상 최고점을 찍었을 때다. 일본국 하나의 경제력이 인구가 2배가 큰 미국의 70%에 육박했고, 아시아 전체를 다 합친 것과 엇비슷한 시점이었다. 인도와 중국과 중동을 다 포함한 아시아 전체 말이다. 그러한 절정의 시점에, 덴노가 죽었으니, 전세계 모든 정상들이 이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태평양 전쟁 패전의 책임을 지닌 인물이라고 해도, 거진 un 총회급 행사가 된 것이다. 163개국 정상이 모여들었다.

그러고보면, 메이지 덴노 이후 일본 제국은 비로소 1989년에야 해체가 서서히 시작된 것일 수 있다. 1945년 전쟁엔 패했지만, 다시금 전열을 재정비해 미국을 우산 삼아 "경제 대국", 즉 "군대 없는 일본제국" 재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쇼와 덴노가 살아서 1989년까지 수명을 이었으니, 형식적으로 보더라도 해외 식민지를 잃고 군대는 자위대로 격하되었지만, 제국은 몰락하지 않고 뚜렷이 명맥을 이어간 것이다.

2. 조슈, 사쯔마 연립막부

일본 역사에서 "메이지 유신" 대목을 읽거나 공부할 때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조슈번(야마구치)과 사쯔마번(가고시마)과의 협력과 대결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대목을 한창 호기심 왕성한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에 배우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이 쏟아져 나오는 데, 특히 조슈번에서 1830~1840년대에 태어난 인물들이 사실상 일본과 아시아의 향후 200년 책임지게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일전에 규슈 "사가현"과 "나가사키"에 갔을 때, 도시 곳곳에 사쯔마번(가고시마)의 영웅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1828~1877)사진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살짝 놀란 적이 있다. 사쯔마번은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핵심 중추 세력이고, 이후 해군의 중심 세력이 되었지만, 육군의 주역인 조슈번에게 정치권력을 시나브로 빼앗기고 가고시마와 큐슈는 전후엔 후미진 변방이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규슈 사람들에겐 "사이고 다카모리"는 너무나도 아쉬운 실패한 영웅이었던 것이다. 물론 메이지 유신 초중기 사쯔마번 해군 출신들은 조슈번과 나눠가며 총리직을 수행했다. 마치 신라시대 박씨, 석씨,  김씨가 나눠가며 왕권을 수행한 것과 엇비슷했다. 그러나 역시 1순위가 조슈번이었기 때문인지, 1920년대 사쯔마번은 차츰 권력에서 배제되고, 종전 이후 해군이 박살난 다음 사실상 권력을 잃고 만다.

3. 조슈번의 아베

2005년, 52세 젊은 총리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무런 정치 내공을 인정 받지 못한 관방장관 출신의 정치인이, 갑작스레 총리를 한다기에 놀랐는데, 알고보니 외할아버지가 만주국 관료로 유명한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작은 외할아버지가 최장수 총리로 유명한 사토 에이사쿠였다. 그러니까, 아베는 "조슈번" 이 내놓은 마지막, 최선의 인재이자 총리감이었던 셈이다.

그가 등장한 2005년은 일본국의 추락이 사실상 확정이 된 시점이었고, 중국의 부상 역시 뚜렷하게 가시화된 시점이었고, 자민당 중심의 1당 체제에 대한 피로감도 상당히 누적되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평화헌법"의 폐기와 군대 보유. 그는 발빠르게 움직였지만 정치력의 한계가 뚜렷했다. 결국 일본국 정계는 사회당의 몰락과 민주당의 부상으로 개편이 되었고, 여기서도 한계를 맛본 보수 정치권은, 다시금 조슈번 최후의 카드인 아베를 2012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소환한다.

아베의 비전을 요약하면, 그의 취임사에서 천명했던 "위대하고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일본의 복원"으로 요약된다. 뚜렷하게 "조슈번"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메이지 유신 주역으로서의 조슈번 세력, 현대 일본 육군을 주도한 세력의 적장자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한때나마 대동아공영권을 이룬 대일본제국의 복원에 의무감을 가진, 조슈 막부의 사실상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자임했던 것이다. 일종의 시대 착오기도 했다.

4. 유신의 그늘

일본은 상당히 큰 나라다. 정치인이 나올 구석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메이지 직전인 에도 막부의 250년 통치를 감안하면, 도쿄나 교토의 세력이 강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일 수 있다. 그러나 1885년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 이후 150년 가까이 조슈번 출신 총리가 지배한 시기가 거의 절반에 이른다. 2차대전 직전의 군인 통치기, 즉 "대본영"이 이끌던 시기도 사실상 조슈번 체제의 연장선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전후 정치인 가운데 "아베 신조"는 자신의 출신 배경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그러한 정체성의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시아 1위의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군사 분야에서의 책임 있는 일본의 역할, 즉 '정상국가론'을 끊임없이 설파하고 국민들에게 개헌 설득에 나섰다. 북으로는 소련을 포섭하고 남으로는 아세안과 태평양 도서 연안까지 다시금 한껏 세력을 뻗쳤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 안전자산으로서의 엔화가 아닌 지금 당장 널리 활용되는 "약한 엔화"를 선호한 것이다. 이는 수출에도 득이 될 것이고, 해외의 자산을 매입, 투자하기도 유리했다. 지금 돈 가치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아베는 자신의 역량을 한껏 아시아, 좁게는 아세안에 쏟아 부었다. 나가아 중국과 한국에 대한 견제도 강화했다. 독도에 대한 갈등이 심화되고, 야스쿠니 신사 문제가 심화된 것 역시 아베 시절이었다. 2019년 한국과의 반도체 소재 전쟁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5. 조슈 막부의 종언?

기시다 현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계가 어째서 집요하게 "국장"을 주장했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조슈번 체제" 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덴노에 버금가는 일본의 대표 정치 세력이 다름 아닌 '아베 신조'로 대표되는 조슈번 세력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그는 유사 왕족이었기 때문이다. 그 막부의 상징이 서거했으니, 그 누구도 차마 국장에 반대하지를 못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번 국장은 "조슈번 막부" 체제의 종언을 고하는 듯한 인상도 준다. 해외 정상들의 조문이 뚜렷히 줄고 미디어의 관심도 예전만 못하다. 국민들의 반발 역시 거셌다. 조슈-사쯔마가 주도한 유신 체제가 사실상 2022년도에 끝나 버린 것일까? 외부의 시선으론, 일본은 절대로 1940년대의 군국주의 전성기나 1980년대 쇼와 경제 전성기로 되돌아 갈 수 없다. 조슈번 인재들이 제국의 영화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겠지만, 그 영광은 이제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PS.

1.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모토, 가쓰라 다로,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이 조슈번 총리들.

2. 조슈번과 일본 육군이 조선을 정복하고 통치했기 때문에, 조슈 출신들은, 조선과 만주국에 대한 지배 의식이 강고했음.

3. 아베 이후 조슈는 마땅한 후임 정치인을 배출하고, 아베와 비스무레한 적극적 대동아공영권 회복 정치를 펼칠 수 있을까? 중국의 부상 탓에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 즉,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제국은 아베를 끝으로 소멸할 것이라고..예상.

4. 정치가는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는 지도 중요한 듯. 삿초동맹이 200년간 아시아 정치를 뒤흔들 줄 누가 예상했을까. 조슈 막부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그러하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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