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년 8월
● 중저가 패키지 관광으로 인기인 대만, 작지만 볼 거리가 충분한 이유
● 한국과 공유하는 문화와 가치가 가장 많은 국가, 일종의 이란성 쌍둥이일까?
● 대만에서 느낀 한류, 그리고 중국과 일본 한국 사이에 낀 대만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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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말8초 아이 방학을 맞아 잠시 "대만"에 왔다. 어디나 예약이 만석이라 간신히 자리를 구한 짧은 패키지 여행이다. 패키지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장점도 적지 않다. 복잡한 고민 없이 머리를 비우고 일정만 따르면 그만이다. 일종의 "공동구매" 같은거라,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도 가족과 함께라면 공산품같은 여행상품은, 값싸고 합리적 선택이 된다. 예전엔 "상품 강매"가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매너를 챙길 정도는 되었다.
10년 전쯤 아버님을 모시고, 캄보디아에 가보니, 보석가게만 2-3번이나 데려가기에 놀랬던 경험이 있다. 루비, 라텍스 침구, 한약 약재까지? 더 큰 문제는 가이드가 손님을 심리적으로 장악(가스라이팅)해 상품을 사게 만드는 경우인데, 요즘은 그런 악습은 많이 사라진 듯 싶다. 가이드의 전문성이 늘고, 여행자의 경험치도 늘어, 서로 "윈-윈" 관계인 상품이 늘었다.
1.화교 가이드
"저는 여러분이 왜 대만에 오셨는지 압니다. 일본은 이미 여러번 가봤고, 동남아는 너무 멀고 덥고, 중국은 비자가 복잡하고...제주도 보단 멀고 안 가본 나라를 찾아보니 나온 결론이 "타이완" 인거죠?"다들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그러한 이유로 대만에 온거다. 비엣남도 가봤고, 일본도 여러 차례, 어찌저찌 안가본 나라를 찾아 여름 패키지로 택한 장소다.
그러다보니 딱히 많이 아는 정보는 없고, "꽃보다 할배", "대왕카스테라" "공차" 정도만 아는 정보. 요즘엔 그래도 관련 뉴스가 늘어, TSMC, 양안관계, 민진당, 차이잉원 총리까진 상식이 되었다. 패키지 여행의 "꽃"이라면, 단연 "가이드"이다. 여행자들은 적은 돈을 내고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이유는, "가이드"의 존재감 덕분이다. 정보와 안전 그리고 여행의 재미까지 모조리 가이드 손에 달렸다. 가이드는 콘서트장의 롹스타이자, 여러 심부름을 도맡는 "서비스맨"의 이중적 성격을 갖는데, 여튼, 패키지의 성패는 유능한 가이드를 만나는 게 절대적이다.
2. 1992년 서울 명동
우리가 만난 가이드가 은근히, 아니 대놓고 걸물이다. 입담도 대단하고, 잘 생겼고, 심지어 40대 중반이라는데 총각이다. 스스로를 "대한 대만인"이라고 소개한다. 화교 출신이란다. 어머니는 한국분, 아버지는 대구 출신 화교. 다만 아주 어릴적 서울로 이사와 연희동 화교학교를 중국식당 아들로 다녔다고. 한국과 대만 양쪽 모두에서 군대를 가지 않아 지금도 "이중 정체성"이라고 설명한다.
대만인이라 그런지 대만 설명이 상당히 정확해보인다. 내가 아는 정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과 대만과의 역사적 관계, 과거 국민당의 역사, 장개석, 원주민/내성인/객가인/외성인에 대한 역사적 설명, 심지어 포르투칼이 지어준 이름 "포르모사"에 대한 얘기까지 물흐르듯 유창하다. 아, 영화 "비정성시", 1947년의 2.28사태, 대만어에 대한 설명까지.
"1992년 대만 단교 때, 저는 화교학교 초등생이었는데, 명동 대사관 대만국기가 하강할때 선생님이 울라고 하더라고요. 멋도 모르고 펑펑 울었습니다. 슬프긴 했어요. 초등생이 뭘 알았겠냐만, 그때 뉴스 보면 꼬마인 저도 간간히 등장합니다. 껄껄껄~~" 그러니까, 그는 역사적 현장을 관통해, 현재는 연간 각기 200만이 넘는 양국 관광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맡는 성인이 된 것이다.
3. 대만의 "韓流"
그의 설명은 대만과 한국의 관계도 포함되었는데, "한류"라는 단어의 어원도 조금 독특했다. 그는, 이 단어가 대만이 원류라고 주장하는데, 1992년 가수 김완선이 대만진출하고 1995년 2집까지 내던 무렵 "한류"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고, 1998년 가수 클론이 대히트를 기록하며 정착했다고 봤다. "한류"라는 개념을 중화권에 정착시킨 게 "대만" 사회라는 거다.한류가 대만과 중국 대도시에서 발화한 이유가 있다. 특히 대만의 경우 한국과 공유하는 정치경제사회 구조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목은 대만에 한 번이라도 방문한 사람은 금방 캐치할 수 있다. 마치, 부산이나 군산, 청주의 낡은 구도심을 걷는 것같다. 한자 간판만빼면 한국과 구분하기 힘들다. 자연환경은 제주를 닮았고, 현대사와 경제발전 과정 역시 남한과 흡사하다.한국의 대중문화와 대만의 베이스가 크게 다를 수 없기에,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이 자연스럽게 대만서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만에서 성공했기에, 중화권에서 대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된다. 대만의 특히 개방적인 문화도 한몫했다. 섬나라의 고립된 외교환경은 "친구"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데, 일본 바깥 한국에서 그 가능성을 처음 발견한 것이다.
4. 관광 대국?
2010년 무렵에 두어번 대만에 왔었는데, 101타워 방문 이외에 뚜렷한 기억이 없다. 아, 파나소닉 신형 카메라를 전자상가에서 샀던 기억. 장개석을 기리는 중정 기념관 정도만 기억이 난다. 타이베이 바깥을 가본 적이 없다. 이번 패키지 여행도 그런 이유로 택했다. 사실, 대만 관광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다. 작은 섬, 낡은 거리, 한국과 닮은 환경에 이국적 풍광을 기대할 순 없는 법.3일차 정도 되어보니, 대만 관광업계의 고민이 느껴졌다. 실제로 외국인에게 보여줄만한 화려하거나 수려한 자연환경이 적었다.
그럼에도 어디나 관광객들로 가득가득하다. 낡고 비좁은 관광지인데, 아기자기한 컨텐츠들을 채워넣은 것이다. 바람이 만든 돌의 풍화작용, 작은 온천, 낡은 철도마을을 활용한 "천등" 행사, 폐광된 산촌마을을 개조한 "센과 치히로" 마을 "지우펀" 등. 빈약한 역사를 "관광업계"의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개척한 느낌을 받았다. 남쪽으로 "화련" 협곡과 남쪽 "타이중", "타이난","가오슝"도 인기가 좋다는데, 이번엔 태풍으로 인해 북쪽 관광으로 마무리했다. 대만이 아무리 작다지만, 아기자기 구석구석 느낄거와 볼 게 적지 않다. 도심 거리 풍광은 1980년대 내 고향의 도심풍광을 닮았다.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야시장의 풍광은 진정으로 30년 전 고향의 시내 중심 상가를 걷는 느낌이다.
5. 대만의 힘
올해가 민국력 112년이라던가? 국민당의 역사다. 민진당 계열은 대만의 역사 기원을 "정성공"으로 본다던가. 대만의 역사와 경제력이 우리의 기대보다 미비할 진 몰라도, 세계사에 대만이 끼치는 영향력은 적지 않다. 정치인보다는 전세계 반도체와 IT업계를 뒤흔드는 "리사수"나 그래픽카드의 전설이 된 "엔비디아 젠슨 황" 까지. 특히 최근 압도적 실적을 내는 TSMC 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필자는 "차이잉원"이란 정치인도 엳사적 인물로 좋아한다.
가이드는 대만을 "세상에서 가장 쿨한 사회"라고 설명한다. 복지에 신경쓰는 정부와 가장 평등한 남녀 관계. 세대 갈등도 적고, 국민소득도 높고 말이다. 다만 미칠듯이 치솟은 집값과 국제 외교가에서 소외된 고립감, 거대한 중국의 존재감 등 어두운 측면도 없진 않다. 그럼에도 대만의 역사와 존재감은 앞으로도 잔잔하게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ps.
1. 대만의 "한자" 표기는 한국서 천자문을 배운 세대에게 가장 친숙하고, 심지어 알아 먹기도 쉬움.
2. 어릴적 살짝 접했던 화교 친구들은 대만을 오가며 사업가로 살고 있는 듯. 대만 "여행 가이드"들의 수입이 상당해 꽤나 인기 직종이라고. 연예인 기질을 활용해 이후 사업가로 변신해 큰 돈을 버는 여행가이드도 많다고, 자부심을 담아 자신의 업계를 소개하기도. 패키지 여행의 단점은 밥 맛이 없다는 점. 군대 식당에서 밥 먹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