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류학자, 발리에서 호텔사업하다②

O 외지인 사업가, 현지인에게 왕따 당하다
O 창의성이나 혁신 보다는 "불안요소" 제거가 관건
O 교과서 보다는 현장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기울여야

글 | 김 예 겸, 문화인류학자 부산외국어대학 교수


사실 이러한 ‘문화적인 텃세’는 발리에서 사업하는 “Y” 사장님이 이미 귀띔을 해줘서 짐작하고 있었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불편한 현실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이전까지는 발리사무소 구축단계였기 때문에 ‘문화적 텃세’는 시간이 지나가면 없어지리라 기대하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그러나 “A”씨가 매니저를 담당하면서 실제적인 비즈니스 네트워크 구축단계에서는 종전의 ‘문화적 텃세’가 ‘문화적 왕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A”씨가 사임하면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발리사무소 현지인 매니저는 발리 토착민 출신으로 호텔업 분야 경험이 있는 “P”를 채용했다. 그리고 운전기사를 포함해서 나머지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모두 발리 토착민 출신으로 교체되었다.

발리사무소 현지인 매니저와 직원들을 발리 토착민 출신으로 교체한 이후 이전과 비교하여 확연히 달라진 점은 사업을 진척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현지 인적 네트워크가 눈에 띄게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이 당시 사업을 진행해 가면서 사소한 일에서부터 공적인 일까지 다양한 일들이 발생했는데, 이때마다 발리 토착민 출신 직원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발리를 보호하자"

그러나 발리 토착민 출신 위주의 직원 채용에도 부정적인 요소는 존재했다. 다시 말해서, 발리 토착민 출신의 직원들이 외부적으로는 비즈니스 인적 네트워크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드러난 현상은 발리 토착민 출신의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서도 일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알고 있는 다른 발리 토착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염두에 두는 경향이었다.

발리에는 ‘아젝 발리Ajek Bali; 발리를 강화보호하자’라는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토착민들 사이에 존재 한다. 2002년과 2005년 자바Java 출신의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 자행된 발리 폭탄테러 사건 이후 발리 토착민들 사이에서 “외지인, 특히 이슬람교도들로부터 발리를 보호하자”는 자각운동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자각운동은 문화예술적 측면에서는 “발리 토착민들 스스로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발리토착 문화를 보전해야 한다”는 문화적 의식으로 발전하였고, 일상생활 측면에서는 발리 토착민들 스스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면서 외지인들을 문화적으로 타자화시키는 경향을 야기했다.

이같은 ‘아젝 발리’의 문화적 논리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필자는 엄연한 외지인 이였고, 필자가 운영하는 회사도 외지인 회사였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의 이익보다는 다른 발리 토착민들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일들이 많았는데, 이 내용들은 다른 연재 글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만약에 독자들 중에서 누군가 발리에서 직원을 채용하려 한다면, ‘다양한 잣대를 들이대서 뛰어난 직원을 선발하는’ 인사채용방식보다는 ‘회사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직원을 사전에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인사채용방식을 추천하고 싶다. 또한, 발리 토착민 매니저 및 직원 위주로 채용하되, 직원들과의 관계를 ‘유교적인 대의명분’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고 발리 현지인 관점에서 접근하기를 조언해주고 싶다. 쉽게 말하자면, 쿨cool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발리의 전통 마을 풍경 (위키피디아)

사무실을 두 번 구하다

순탄해 보이던 발리 현지법인 설립은 현지사무실을 구하는 데서부터 복잡하게 뒤엉키기 시작하였다. 발리 현지에서 정식으로 법인설립 허가를 받으려면 반드시 현지 사무공간이 있어야 했다. 발리 호텔업과 관련하여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고, 안정적인 행정업무 인프라가 보장된 공간을 원했기 때문에 발리 현지의 첫 사무실은 발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I” 호텔의 사무공간을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전에 “I” 호텔 총지배인general manager인 S씨를 발리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이미 안면이 있었고, 이 호텔의 꼬미사리스 우따마komisaris utama; 우리나라의 ‘이사장’에 해당인 ‘N’씨와도 한국회사 사업상 이미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 가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하면서 몇 달 만에 현지사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했다. 우선, 상대적으로 비싼 임대료는 물론이고 관리비, 통신료 등 기본 현지사무실 운영비가 예상보다 초과해서 발생하기 시작했고, 한국 사무소와 업무를 연동하기 위해서 속도가 빠른 인터넷 환경이 필요했는데 사실상 독립적인 랜LAN설비 설치가 불가능 했다.

그러나 이러한 매몰비용이나 행정적인 문제보다 더 불편했던 상황은 매일 지속되는 “I” 호텔 측의 사소한 간섭과 이로 인해 직원들이 겪어야 했던 스트레스였다. 호텔 총지배인이나 이사장에게 직접적으로 불평하기에는 너무 미묘하고 애매모호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는데, 이는 비토착민 출신이 대부분인 발리사무소 지원들에 대한 발리토착민 출신 호텔직원들의 일종의 ‘문화적인 텃세’이었던 듯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사무공간을 찾기로 했다. 결국 현지인 직원들의 노고 끝에 사무실을 마련했는데, 사무실 입주허가가 난 2층짜리 발리 전통가옥빌라였다. 1층은 사무전용공간으로 사용하고, 2층은 한국에서 출장 올 때 사용할 계획이었다. 이제는 지난 번 사무실처럼 우리 현지인 직원들이 불편해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새로 얻은 사무실이 사무실 전용공간이기 보다는 사무실 입주허가가 난 주거공간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1층에 사무실 환경을 조성을 해놓았어도 업무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불평이 현지인 직원들로부터 들려왔다. 현지에 출장을 다녀온 한국회사 책임자 직원의 의견도 마찬가지였고, 직접 현지 사무소를 방문했을 때의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도 그러했다. 결국 새로 이전한지 1년이 채 못돼서 사무실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아예 부동산을 구입해 볼까?“

세 번째 사무실은 외부 간섭도 최소화하면서도 차분한 업무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전용사무공간을 물색했다. 지난번 사무실은 현지인 직원들이 주축이 돼서 구했는데, 이번에는 부동산 투자를 겸해서 아예 루꼬ruko; 상가주택를 하나 구입하기로 하고 필자와 한국회사 책임자 직원이 직접 발 벗고 나섰다. 발리에서는 사무실 공간으로 3층짜리 루꼬가 보편화되어 있는데, 루꼬는 루마rumah; 주택와 또꼬toko; 상가의 합성어이며, 독립적으로 하나의 건물을 형성하기 보다는 하나의 루꼬가 또 다른 루꼬와 중간벽면을 공유하는semi-deꠓtached 소형건물이다. 일반적으로 1~2층은 상가 또는 사무공간으로, 3층은 주거공간으로 활용한다. 이번에 마련한 사무실은 대로변에 위치한 신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3층짜리 루꼬였는데 결국 이 루꼬가 발리사업에서의 마지막 사무실이었다.

사실 이 신축된 루꼬를 구입하려하자 주면의 만류가 적지 않았다. 초기투자비용도 더 들어가는 셈이고, 세금 및 시설관리 등 이것저것 신경 쓸 일들이 많으니 아예 세를 얻는 편이 낫다는 논리였다. 또한 구입을 하더라도 새 건물은 입주과정에서 신경 쓸 일이 많으니 연식이 있는 건물을 사라는 조언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당시 인도네시아 및 발리 부동산 현황을 이미 조사하고 검토한 상황이었기에 신축 루꼬의 부동산 투자가치 상승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다. 결과론적으로 건물 자체의 시세가치만 논한다면, 발리 현지사무실로 구입한 루꼬의 가격은 예상했던 데로 상승해서 2년 뒤 건물을 처분할 때 적지 않은 차익이 발생했다. 그러나 각종 세금 및 시설관리비 등의 기본적인 건물유지비를 고려한다면 그 차익은 별 의미가 없었다.

또한 건물 입주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몇 가지 일들을 겪게 되는데, 이로 인해서 적지 않은 추가비용을 감수해야만 했다. 발리뿐 만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전역에서는 건축주가 전기 및 전화사용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를 책임지고 완비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는 세금신고 체계가 한국보다 느슨해서 신축건물 매매가격의 10%에 해당하는 뻬뻬엔PPN; Pajak Pertambahan Nilai; 부가세를 누가 부담하는지를 협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건물 및 토지를 거래할 때 계약서의 이러한 부분들을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비싼 수업료를 내고 이 교훈을 얻은 셈이다.

첫 번째, 전기와 전화사용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는 신축건물이니 당연히 건축주가 완비해 놓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상수도 시설만 준비되어 있고 건물로 들어오는 송전시설 및 전화시설은 완비되어 있지 않아 결국 자체적으로 추가 비용을 들여 마련해야만 했다. 두 번째, 부가세 부분은 건축주가 의도적으로 부가세 책임소재를 은폐하고 있다가 2년 뒤 우리가 건물을 매매할 당시 우리에게 부가세 납부의무를 전가했던 사례인데, 발리 국세청 및 변호사 사무소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발리현지에서 외국인으로서 혈연단신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공무용 자동차를 구입하다

이 연재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혹시나 발리에서 사업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지 않을까 해서 발리사무소 준비단계에서 있었던 공무용 자동차구입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첨언하고자 한다.

발리는 대중교통 인프라가 취약했기 때문에, 발리 매니저 및 직원들이 외근용으로 사용할 운전수가 딸린 공무용 자동차가 필요했다. 이전에는 일본 ‘T’사의 소형 밴van을 장기임대하여 사용하다가, 세 번째 사무실로 이전해서는 높은 중고차 시세를 감안해서 아예 일본 ‘H’사의 중형 밴을 구입했다. 공무용 차량을 구입하면서 현지 직원들에게 자동차 회사, 차종 및 옵션 선택 등을 일임했었는데, 이를 통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째는 중고차 가격과 관련된 일이다. 필자는 현지 직원들에게 자동차 회사, 차종 및 옵션 선택 등을 일임하기는 했으나 내심 한국자동차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리 현지직원들의 선택은 필자의 기대와는 달랐다. 결국 구입한 자동차는 일본 ‘H’사의 중형 밴이었다. 물론 발리 현지직원들 자신들이 더 많이 타고 다닐 차량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더 선호하는 일본 ‘H’사 자동차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보다 큰 이유는 중고차 시세였다. 일반적으로 일제 중고차는 인기가 좋아 시세가 좋았다. 어떤 경우에는 1년을 사용한 중고차가 새 차와 가격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여하튼 발리에서 자동차를 구입하려면, 먼저 현지 중고차 시장에서의 중고차 시세를 확인하고 차량을 구입하기 바란다.

둘째, 필자는 발리가 햇빛이 강하고 자외선 지수도 높아 일명 ‘썬팅window tinting’을 진하게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발리 현지직원들의 반응이 의아해 했다. 이유는 이랬다. 발리에서는 좋은 차를 탈수록 썬팅을 엷게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러한 좋은 차에 타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안이 보이지 않는 짙은 썬팅은 무용지물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런 문화를 ‘겡시gengsi: 품위’ 문화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진한 썬팅을 고집하자 직원들이 상당히 아쉬워했다. 만약에 독자들도 발리에서 자동차를 구입하면서 겡시 문화를 맛보고 싶다면 말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자동차를 타기 전 자외선 차단제를 듬뿍 바르기를 권한다.

셋째는 발리에서 야드냐yadnya라고 불리는 ‘고사告祀 의례’와 관련이 있다. 공무용 자동차를 구입하고 나서 필자가 발리 사무소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발리사무소 현지 매니저가 새로 구입한 자동차에 대해서 설명도 해주고 자동차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결국 현지 매니저는 점심을 먹으면서 차량을 구입하고 나서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서 발리 힌두교식 고사 의례를 했고, 사무소 건물 1층 안쪽 구석에 조그마한 ‘빨링기palinggih’라는 신전을 만들어 놨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사전 승낙을 받지 않아 죄송하다는 말은 없었고 그저 발리 문화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모양새였다. 물론 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었다. 이를 통해 발리 직원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신념이 존중됨을 다시금 확인했고, 이를 통해서 신뢰가 더욱 두터워지는 계기가 됐다. 이는 마치 비즈니스라는 경제적 현상이 발리사람들의 관념 속에서 통과의례를 거치는 듯한 문화적 경험이었다. 만약에 독자들 중에 발리에서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면, 이러한 문화적 통과의례는 현지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문화를 배운다는 입장에서 낮은 자세로 임할 것을 권한다.

한국과 이질적인 타국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위키피디아)

사오정이 발리서 성공할 수 있을까?

이번 글에서 발리사업 초기 현지사무소를 준비하면서 좌충우돌 경험했던 이야기를 해보았다. 지금 뒤돌아보면 발리사업 초기 필자의 모습은 마치 ‘사오정처럼 귀를 틀어막고 있다가 곤욕을 치렀던 헛똑똑이’가 아니었나 싶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 대형사고 1건이 발생하기 전에 같은 요인으로 유사한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경미한 사고 이전에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사소한 증상들이 300건이나 있었다는 통계 법칙을 필자는 절대적으로 신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발리 사업초기를 반추해보면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듯하다.

필자가 ‘창발적인’ 송충이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그렇고, 현지인 직원 중심으로 발리 현지사무소를 운영하려 했을 때도 그렇고, 발리 현지의 문화적 텃세도 그렇고, 신축된 루꼬를 구입할 때도 그렇고, 필자는 필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필자가 듣기 싫은 이야기는 반복적으로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던 것 같다.

영국에서 동남아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도 받았고, 대학교에서 인도네시아에 관한 강의도 하고 논문도 써봤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발리를 포함해서 인도네시아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 현지에서 사업을 통해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이미 오랫동안 내공이 쌓인 고수들의 조언조차도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고 필자의 생각대로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던 것이다. 당시에 필자는 무지해서 용감했던 것이 아니라 무지한 걸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는 만큼 보이지 않았다"

인류학에서는 “각각의 사회문화는 고유한 역사와 상황에 따라서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특정한 기준에 의해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문화상대주의적 명제와 함께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크다”는 총체론적인 명제를 강조한다.

필자는 발리사업 초기에 인류학자로서 발리에서 사업을 하면서 문화상대주의적인 명제는 항상 문화적으로 실천하려고 했고, 또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인류학자로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연상하면서 뿌듯해하기도 하고 우쭐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동안 강단에서 그리고 논문에서 필자 스스로 그렇게 강조해왔던 ‘총체적 큰 그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문화적으로 사업을 접근한다는 이유만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의 조각들을 짜 맞추어서 전체의 그림을 이해하려고만 했지, 타인의 조언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인류학자로서 사업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감안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알아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발리 비즈니스 문화이다”.

그래서 발리에서 성공하려면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현지에서 돌아가는 현장이야기를 마음으로라도 무릎 꿇고 ‘겸손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사오정이 발리에서 성공하면 필자의 손에 장을 지지리라. 향후 더 기회가 된다면, 발리사업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또 다른 경험담을 좀 다른 각도에서 풀어놓고자 한다. 아마도 현장에서 경험한 발리 비즈니스 문화, 발리 비즈니스 인맥 문화 그리고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발리 비즈니스의 현지화에 관한 경험담이 되지 않을까 싶다.

PS.

  1. 삼빠이 줌빠 Sampai jumpa;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2. 인류학자, 발리에서 호텔사업하다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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