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예상치 못한 불닭볶음면 흥행과 까다로운 아세안 시장

글 | 정 호 재

2023.12.01


국물 없는 볶음면은 동남아시아에서 일상적인 음식이다 

동남아시아를 오가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현지의 시시콜콜한 소식도 한국으로 빠르게 전파되는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아시아 식음료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이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하 불닭)’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 우선 이 제품은 국내에선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비인기 제품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을 벗어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 서부의 황량한 사막에서부터 태국 방콕의 최고급 백화점을 지나 인도네시아 외딴섬의 평범한 마트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표 상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세안 전문가들은 ‘K-food’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불닭’을 1순위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핵 매운맛으로 단단히 무장한 불닭의 인기는 그 누구도 예상하기도 쉽지 않았고, 심지어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것도 원인을 분석하기도 쉽지 않았다. 특히 아세안 시장은 여러 종교와 민족이 10개 국가에 복합적으로 펼쳐진 탓에 통일성 있는 마케팅이나 지속적 홍보 활동을 벌이기 어려웠고, 자연스레 한국 식품산업의 미개척지로 남았다. 결정적으론 한국에 비해 국민소득이 낮고 유통비용은 높아 수출업체의 수익성이 낮아 장기간 외면 받은 것이다.

그런데 불닭은 현지 라면보다 2~3배 비싼 가격임에도, 심지어 적극적인 홍보활동 없이도 국가를 불문하고 현지 소비자들이 먼저 제품을 찾을 정도로 시장에 파고드는데 성공했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퍼진 한국산 식품을 ‘불닭’이라고 단언해도 좋은 실정이다. 혹자는 이 같은 현상을 “제2차 케이팝 현상”이라거나 “유튜브 챌린지 효과”라고 설명하지만, 한국 식품산업의 글로벌화를 위해 불닭 현상은 조금 더 진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국물 없이 오래 가는…

‘불닭’의 범아시아적 인기는 우선 ‘유통기간이 긴 유탕류(라면) 제품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동남아 지역은 전체적으로 전력 사정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대도시에선 각종 냉동식품이 인기리에 팔리지만 조금만 도심 바깥으로 벗어나면 잦은 단전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때문에 뜨거운 더위 속에서도 6개월 넘게도 안정적으로 유통이 가능한 기름에 튀긴 제품은 수출하기에 적당한 상품이었다.

무더위와 연관된 식문화도 관계가 있다. 뜨거운 돼지육수 기반의 베트남 쌀국수가 유명하긴 하지만, 아세안 전체로 보면 국물 국수는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한다. 에어컨 없이 살아야 하는 서민들에겐 뜨거운 국물은 번거롭기만하다. 그래서 인지 볶음면을 선호하고 시원한 청량음료를 곁들이는 식습관이 지배적이다. 동북아에서 유행하는 국물 베이스의 라면과 달리 ‘불닭’은 여러 음식과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비빔면이라는 장점이 성공의 밑바탕이 되었다.

‘매운 맛’이라는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맛에도 주목해야 한다. 동남아 지역은 후추, 정향, 육두구 등 갖은 향신료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더위에 지친 이들은 각종 재료를 천연 향신료의 진한 향과 맛으로 버무려 먹는 전통을 가졌다. 여기에 더해 중국에서 전파된 매운 사천요리와 인도에서 기원한 칼칼한 커리 문화도 유행한 지 오래다. 한 마디로 담백하고 시원한 한국식 조리법보다는, 강하고 자극적인 매운 맛에 대한 준비가 이미 끝난 상태였다는 것이다. 일반적 매운 라면에 비해 2~3배 더 매운 불닭은, 한국적이지 않은 파격으로 한국보다 동남아에서 더 환영을 받은 것이다.

할랄인증과 ‘닭’ …결국은 “재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의 절반은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다. 이 지역의 특징은 엄격하게 종교적 검수를 거친 육류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를 제도화 한 것이 바로 ‘할랄(halal) 인증’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이슬람 문화가 엄격히 금한 돼지고기와 민물고기 등의 사용을 걸러내고, 소고기와 닭고기 등의 일반 육류의 윤리와 청결의 기준을 향상을 위해 준비된 제도다. 최근에 한국 식품과 관련해 볶을 때 돼지기름(라드유)을 쓴 제품이 종종 발견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현지에선 외국 제품을 구입할 때 할랄인증 마크에 안심하지 못하고 꼼꼼하게 뒷면 원재료 표기까지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서규원 KL국립대 교수는 “불닭은 이슬람 문화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현지화한 모범사례”라고 칭찬했다.

동시에 불닭이 남쪽 지방 사람들에게 친숙한 ‘닭’을 간판에 내세운 점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물론 이 제품에 실제로 닭이 포함되었는지 여부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불닭(hot-chicken)’은 누구라도 수월하게 맛을 상상할 수 있고, 인종적 종교적 거부감이 없는 보편적인 식재료인 덕분에 그 어디에서도 배척받지 않았다. 심지어 비싸더라도 ‘한국산 제품’이라는 프리미엄을 안고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지역전문가인 방정환 대표는 “불닭이 앞세운 매운 맛과 치킨 요리 이미지가 현지 MZ세대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아시아 MZ 세대를 중심으로 폭넓게 침투한 케이팝의 인기와 공짜 컨텐츠인 유튜브의 영향력 때문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 되었다. 누가 더 매운 맛을 견딜 수 있는지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것이 한동안 유튜브 인기 컨텐츠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시아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으로 공짜 유튜브 컨텐츠를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은 향후 한국 수출업체들이 보다 더 “유튜브 마케팅”에 집중해야 함을 시사한다.

베트남 전문가인 유영국 작가는 “이제는 식음료 산업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때”라고 분석한다. 삼양식품이 ‘전통의 맛’ 대신 ‘즐거운 맛’으로 대박 상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젊은이들이 놀이하듯 라면을 즐기고, 다른 라면과 섞어 먹는 유행을 제시한 점은 음식문화의 혁신적 발전이라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불닭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MZ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듯. 케이팝이 한국을 넘어 아시아 팝 문화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든 장기적으로 불닭의 세계적 성공은 아시아 식품산업의 발전에 큰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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