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늙은 군부당” vs. 젊은 재벌 2세당”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2.02.16


탁신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오른쪽)이 2023년 선거에서 총리직에 도전한다

태국은 아시아를 뛰어넘어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휴양지이자 관광지이다. 코로나 유행 직전인 2019년 외국인 관광객이 4천만 명을 훌쩍 넘겼을 정도. 그 때문에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진 지난 3년은 태국 경제의 암흑기나 다름이 아니었다. 전염병 유행이 확연히 줄어든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금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올해 태국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3천만 명 선 회복을 기대하는 눈치다. 최근 태국 방콕에 가보면 중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공항에서부터 활기찬 기운이 가득하다.

관광산업과 경제 활동만 재개된 것이 아니다. 올해는 모두가 기다려 온 초대형 정치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5월 초에 치러질 총선이다. 2014년 군부의 쿠데타 이후 2019년 이후 두 번째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쿠데타 이후 9년 가까이 장기 집권 중인 군인 쁘라윳 찬오차 총리(69)가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코로나 방역 실적은 물론이고 경제성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기대 이하였기 때문. 게다가 민주주의 원칙까지 크게 해치며 예상보다 길게 권좌를 지켰다는 평가다.

군부, 10년 차 집권 이유

쿠데타 이전 정치 경험이 없었던 쁘라윳 총리는 이미 2019 총선에서 자연스레 교체가 전망되었다. 예상대로 선거결과 친(親)군부 팔랑쁘라차랏당은 과반은커녕 친(親) 탁신(Thaksin Shinawatra)계 프어타이당(Phak Phuea Thai, For Thais Party)에 최다의석을 넘겨주며 2당으로 밀려난 것. 오히려 젊은 세대가 이끄는 군소 야당이 선거 분위기를 이끈 결과였다. 그러나 아주 복잡한 갈등과 정쟁을 거치며 논란 끝에 친군부 세력이 다시금 정권을 장악한다. 예상외의 결과 배경엔 전국민적 사랑을 받은 푸미폰 국왕이 2016년 서거한 뒤 3년만인 2019년 의회 선거 직후 왕세자인 마하 와찌랄롱꼰(일명 라마 10세)의 대관식 탓이라는 게 중론이다

입헌군주 국가인 태국의 왕실과 군부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끈끈하고 긴밀하게 이어졌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후 22차례의 군사쿠데타(성공 13차례, 실패 9차례)를 겪은 것도 그러한 관계의 증거다. 왕실을 호위하는 군대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당과 정치인을 주기적으로 몰아내며 기득권 귀족 세력의 이익을 옹호해 온 것이다.

2019년 예기치 못한 군부의 집권연장에 소식에 시민들이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군부가 과도하게 정치에 개입한 결과 자연스레 태국의 빈부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그 결과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노였다. 그럼에도 군부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고 권력에 집착한 배경으론 “새로운 국왕이 새로이 취임해 권력구조가 재편되는 시점만큼은 절대 총리실을 빼앗길 수 없다”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최근 태국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표현이 “태국 군부의 핵심 3인방”, 즉 “3P”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프라윳 총리, 프라위트 웡수원 부총리(78), 아누퐁 파오친다 내무부 장관(75)인데, 이들은 모두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은퇴한 4성 장군 출신으로 2014년 쿠데타를 주도했고, 이제는 입헌군주정의 주요 대소사에 깊숙이 관여한 보수파의 핵심권력자가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번 선거의 쟁점은 “소명을 다한 3P는 은퇴”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다란 줄기를 이룬다.

2017 군부 헌법

태국과 이웃한 미얀마도 군부가 주도한 신헌법(2007년)으로 오랜 시간 골치를 앓았는데, 태국 군부 역시도 오랜 집권 경험을 활용해 2017년 헌법을 바꿔 장기 집권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쉽게 말해,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의회의 권한과 시민의 자유를 축소한 것이다. 논란 끝에 통과된 새 헌법은 지금까지도 뜨거운 논쟁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를들어, 새 헌법은 군부에 상원의원 임명권과 헌법재판소 및 사법부 고위직 임명권을 부여하는 등 사실상의 캐스팅보트 권한을 부여했다. 또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언론을 통제할 수 있고 비상상황시 시민권을 제한하는 구시대적인 통제 조항을 강화한 것이다. 이로 인해 최근 벌어진 벌어진 청년 학생들의 시위에는 “상원 폐지”는 물론 “2017년 헌법 교체”까지 요구하고 나선다.

또 코로나 대유행으로 시민들의 집밖 외출이 제한된 지난 3년간 태국 내에서도 커다란 정치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충격적 사건은 2021년 헌법재판소에 의한 미래전진당(Future Forward Party)에 대한 해산 판결이었다. 2019년 총선에서 창당 2년 만에 80석을 획득한 40대 당수 타나톤 쯩룽르앙낏(Thanathorn Juangroongruangkit, 1978년생)은 순식간에 총리 후보로 떠올랐다. 군부가 왕실을 호위하고 농민과 빈자들이 탁신 전 총리에 쏠려 있는 동안, 상류층 자제들이 이끄는 자유주의 세력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타나톤은 태국의 손꼽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집안 출신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한 엘리트다. 그에게 자극받은 젊은 기업가와 혁신가들이 대거 정치 참여를 선언하며 세대교체를 주도한 것이다.

재벌 2세 가문의 귀환

그런데 군부는 코로나로 인해 집회와 시위가 금지된 시점에 이 정당을 선거법과 왕실모독으로 기소해 정당 해산 판결을 이끌어 냈다. 이에 방콕의 중산층과 대학생들은 분노해 코로나 시국에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에게 거센 항의를 벌이기도 했다. 이제는 해산된 미래전진당의 후신인 전진당(Move Forward Party)이 조직돼 이번에는 하바드대 출신의 피타 림짜른랏(Pita Limjaroenrat, 1981년생)이 이번 선거 승리와 함께 총리직에 도전한다.

태국의 정치적 불안정에 기여하는 주요 요인은 정파 간의 지속적인 극단의 갈등이다. 이 나라는 정치적 양극화의 오랜 역사가 있으며, 분열은 종종 계급, 부, 지역적 이익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 갈등의 핵심에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74) 가문이 자리한다. 2001년 이후 2014년 쿠데타 직전까지 태국의 거의 모든 승리에서 압승한 탁신과 친 탁신 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탁신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36)을 프어타이당의 총리 후보로 내세운다.

탁신 집안은 재벌 이상의 재력을 가지고 있기에 재벌 2세에 속한다. 프러타이당은 제1당을 노릴 정도로 기반이 탄탄하기에 탁신의 막내딸은이 실제로 총리직에 오를지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나 여당에게 유리한 선거 제도와 사법부의 친군부화가 노골적으로 이뤄진만큼, 젊고 부유하지만 개혁성향의 재벌 2세 정치인들이 실제로 정권을 탈환해 올지는 미지수다. (끝)

전진당의 젊은 당수 피타 림짜른랏(왼쪽)

PS.

  1. 2022년 방콕 시장 선거는 프에타이당 출신 무소속 찻찻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
  2. 두바이에서 사실상 장기 망명 중이던 탁신 칫나왓 전 총리는 이번에 태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3. 군부는 개정된 헌법과 선거법을 활용해 장기집권을 기획하고 있지만, 하원 선거에서 과반을 확보할지 여부는 미지수. 이번 5월 선거의 가장 커다란 관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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