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병 ‘이중가격’에 도전하는 베트남의 ‘야심’]
정호재 | 2022년 7월 26일
지난 7월, 필자는 약 2년 반만에 베트남의 경제수도 호찌민시를 다시 찾았다. 지난 5월초 태국이 동남아서 가장 먼저 외국인 입국시 격리를 없애는 등 방역 기준을 대폭 완화하자 베트남도 1-2차 백신접종 및 음성확인서만으로 무격리 체류를 허용한 덕분이다. 방역정책은 물론 산업과 스포츠에 있어 양국은 마치 한국과 일본처럼 팽팽한 경쟁 관계를 이루는 점이 흥미롭다.
호찌민의 관문 떤션넛(Tan Son Nhat) 공항은 방콕의 화려하고 공항에 비해 일견 삭막하고 심심해 보였다. 최근 투자가 몰린 북쪽 하노이에 비해 남쪽 호찌민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사업이 눈에 띄게 정체된 모양새다. 군복과 흡사한 제복을 입은 출입국 공무원의 깐깐한 서류심사를 거치고서야 그제서야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임을 실감하게 된다. 간과하기 쉽지만 베트남은 보통선거와 자유언론이 없다. 하지만 “돈”에 대한 열정은 전세계에 그 어디보다 뜨겁다.
2020년 1월 코로나 직전, 호찌민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욱일승천(旭日昇天), ‘날아오르는 용’의 기세였다. 도로구석구석엔 일터에 나가는 스쿠터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고, 거리나 상가엔 전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박항서가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열광의 목소리가 높아지는만큼 도심 빌딩들이 새로 솟아났고, 소문을 듣고 몰려든 해외투자자들로 부동산가격도 위로만 솟구쳤다. 한국인들도 이 흐름에 편승해 2019년엔 호찌만에만 15만 이상, 최대 20만 교민이 산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깊고 어두운 터널에서 막 빠져나온 최근 호찌민 풍경은, 적어도 거리의 오토바이의 숫자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모양새였다. 서울의 명동과도 같은 호찌민 1군 거리조차 폐업한 가게의 흔적이 즐비했다. 한인 교민수 또한 5만 이하로 크게 줄었다.
"코로나 기간에 생산과 상업활동이 멈춰 상당수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대거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래요. 그래서 지금은 재가동을 시작한 공장들이 일손이 완전히 복귀하지 않아 생산에 차질을 빚거나 임금인상을 놓고 갈등을 겪는 곳이 많습니다."(12년 호찌민 거주, 유영국 나이스그룹 베트남 법인장)
빠른 코로나 회복
동남아국가들의 코로나 방역은 우리와 달리 국가주도의 강력한 ‘이동제한’을 기본으로 실시됐다. 공공의료 시스템에 여유가 없었기에 도시의 기능 자체를 멈춘 것이다. 코로나 초기 어렵사리 출발한 한국의 민항기가 베트남 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돌아가 양국 감정이 악화된 적도 있을 정도. 특히 지난해 봄부터 인도서 폭발한 델타변이가 전파되자 아파트단지 및 마을 단위로 펜스를 치는 초강력 이동 금지 조치를 연말까지 유지했다.
하지만 백신의 절대적인 부족 탓에 피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긴 어려웠다. 베트남을 포함한 아세안 국가들은 지난 2년간, 대개 2만에서 5만 정도가 사망했다는 통계치를 발표한 바 있다. 물론 이 수치를 고지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는 실정이다. 애당초 검증이 불가하니 그 10배인지 20배인지 설왕설래만 오갈 뿐이다.
하지만 그 회복세 만큼은 베트남은 전세계 어느 사회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소비와 산업생산 회복을 근거로 베트남의 GDP성장률을 올해 6%, 내년 7.2%로 전망했다. 환율과 물가도 안정돼 인플레율은 3.9%로 예상됐다. 지갑이 채워지고 이동의 자유가 확보되자 호찌민 도심과 광장엔 화려한 조명이 다시금 불을 내뿜고, 한껏 치장하고 케이팝 춤을 추는 젊은이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벗는 사람도 대거 늘어났다. 7월이 되자 지방에서 대도시를 찾는 국내 관광이 본격화되며 호찌민의 밤은 더욱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높은 가성비와 효능감
"아저씨 반미 샌드위치 하나요,“
“계란 넣을까요? 2만 5천동(우리 돈 1200원)”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먹는 반미와 쌀국수는 이제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글로벌 음식문화로 올라선 지 오래다. 이번 방문에서 매순간 놀랐던 점은, 전세계가 고물가로 난리라지만, 베트남 만큼은 모든게 싸고, 맛있고, 품질도 좋았다. 버스나 지하철 등 공공교통은 아직 부족했지만 오토바이를 활용한 ‘그랩Grab 교통’은 빠르고 경제적이었다.
물론 그 배경엔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과 막강한 농업 생산력이 자리한다. 1억 인구의 베트남은 2010년 이후 급성장을 지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커서 국내 총생산과 1인당 gdp는 태국의 절반 이하 수준(약 3천 달러)인 그친다. 대졸초임도 월 300~400달러 정도로 한국의 물가와 인건비에 비교하면 1/4 수준이다.
관건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가격’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진지한 태도에 있다. 기왕이면 외국인을 따돌리지 않고 ‘현지인 중심의 가격’으로 수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점이 베트남을 더욱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까 동남아를 포함한 제3세계를 돌아다녀보면, 특히 외국인에게 현지 물가가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점을 자주 느낀다. 외국인용 특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가격을 높이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특히 관광지에선 이같은 ‘바가지’를 피해갈 재간은 없다. 정보와 시간이 부족하고 언어소통의 한계 탓이다. 예를들어 현지인과 말이 통하면 2달러지만, 말이 안통하면 10달러를 받는 식이다. 외국인 기업이나 투자자에게 부가되는 각종 급행료와 뇌물 요구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바가지’에 속한다.
‘이중가격’ 한계 극복
이를 경제학 개념을 빌리면 "이중가격(double pricing)" 현상으로 볼 수 있고, 특히 동남아를 이중가격 사회라고 정의내리기도 한다. 미얀마나 캄보디아 같은 저개발 국가일수록 심하고, 여러 민족이 섞여 살수록 이같은 현상이 더 진하게 일어난다. 학자들은 18세기 이후 지속된 서양 제국주의 탓으로 해석한다..
과거엔 이곳을 침략한 서구인들은 현지인들과 완전히 다른 조건의 생활을 유지했고, 독립이후엔 과거 아픔에 대한 보복 개념으로 외국인에겐 높은 비용을 물렸다는 것이다. 나아가 제국주의가 제3국의 노동력을 마구잡이로 데려다 써 원치 않게 다민족국가로 발전하는 탓에 다중가격 현상이 벌어지기도. 동남아 여러 곳에서 중국인 인도인 서구인들이 현지의 여러 민족들과 국경 안에 섞여 사는 모습이 보이는 이유다. 한국처럼 단일민족이 아닌 여러 민족과 경제권이 뒤섞인 "복수(plural,複數) 사회"라고 부른다.
동남아 현지서 발생하는 분쟁과 혼란은 대개 원칙 없는 ‘이중가격’ 탓인 경우가 많다. 베트남 여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감동받는 이유는 이같은 바가지 사례가 적은 덕분이기도 하다.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의 두이 리Duy Ly 연구원은 “베트남은 국부國父 호찌민을 중심으로 여러 외세를 물리치고 통일된 자주 정부를 세웠기 때문에 이같은 저력을 바탕으로 단일가격 체제를 지향해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베트남에도 외국기업을 상대로 한 부패와 비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 규모와 정도는 여타 아세안 국가에 비하면 적고, 또 낮은 물가를 감안하면 오히려 준準조세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있다. 발전가능성과 개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