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양곤 2일차 : 엇갈린 시각

글 | 정 호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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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데타 이후 2년, 총선은 무산되고 치열한 교전만
● 미얀마 시민 "역사의 후퇴가 안타까워...누구라도 군부에 반대"
● 한국 교민 "군부와 민주화 세력 모두의 잘못...사업은 지속돼야"


환율의 급격한 변동(절하)가 가장 눈에 띈다.

2017년 이후 2020년까지 미얀마 짯(Kyat)의 환율은 달러당 1200원~1500원 사이였다. 그러니까 1짯 = 1원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던 것이다. 10만짯이면 10만원 느낌으로 환전을 했기 때문에 그 관점에서 물가를 계산하곤 했다. 그런데 코로나와 쿠데타를 거치면서 공식 환율이 2100짯까지 올라갔고, 시장에서의 환율은 2900짯까지 치솟았다. 즉 짯이 50% 평가 절하되었으니, 이제 1짯은 0.5원이 된 것이다.

문제는 경제가 내전(civil war)과 외국의 제재(sanction) 탓에 지지부진하자 환율은 악화되고, 물가는 오르는 불리한 환경이 지속된다는 거다. 택시비가 대표적인데 2017년 이전엔 대개 시내에서 7천짯을 넘을 일이 없던 택시 요금은 이젠 간단하게 1만짯을 넘어 공항까지는 2만짯에 이르게 되었다. 짯의 가치는 추락하고 기름값을 포함한 물가는 치솟으니, 국민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월급은 그대로이거나 월급을 줄 회사 자체가 아예 사라진 것이다.

양곤 시민의 관점

양곤은 오랜 기간 미얀마의 수도였으며 경제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서서히 정치권력이 내륙의 '넷피도'로 이동했고 현재는 군부가 완벽하게 정치 수도를 차지한 상황. 지난 2021년 쿠데타 직후 양곤에서 매일 100만이 넘는 시민이 거리에 집결했어도 권력이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은 이유가 된다. 당시 냇피도에서 의회 개원을 준비하던 NLD 소속 국회의원들은 대개 구속되었거나 이후 망명 혹은 타협을 택하게 된다.

최근 양곤 시민들이 느끼는 정치적 경제적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양곤이 이른바 '경제' 부문의 중심지로2011년 개혁 개방 정책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었던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그 이전엔 전화기 구경도 흔치 않던 양곤엔 불과 5~7년 만에 거의 모든 시민의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졌으며, 동시에 지지부진하던 사회인프라가 개선되며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 늘며 자연스레 일자리가 증가했으며 땅값이 크게 오르며 주민들의 소득과 여러 사회경제적 혜택이 대폭 늘어났다.

개방의 효과를 직접 체험한 양곤의 시민 입장에선 다시금 2011년 이전으로 회귀하는 2021년의 쿠데타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2007년 승려들의 시위로 촉발된 '샤프론 혁명' 당시의 미얀마 경제가 사상 최저점이었다. 그러한 시위가 계기가 되어 군부는 반쯤 개혁을 택했던 것이다. 이후 아웅산 수찌가 이끌던 NLD 정부에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선거때마다 매번 압도적인 수치로 NLD를 지원했기 때문에 "군부가 아니어야 한다"라는 정서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양곤에 오자마자 처음으로 만난 이들은 "무역 사업"을 하는 한 50대 초반의 한 가장이었다. 그는 아시아에서 비교적 좋은 환경을 갖춘 미얀마가 오랜 침체를 거쳐 도약하는 시점에 다시금 "역사의 후퇴"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신문 안 봐요"

"잘 아시겠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미얀마 사람 가운데 군부를 지지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어요. 군부가 운영한다며 그 좋아하던 '미얀마 맥주'도 안마십니다. 당연한거에요. 이러한 억압 체제를 어릴적 겪어봤지만 절대로 다시 겪고 싶은 삶이 아니에요. 제 아버지도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시고, 저 역시도 해외노동자 경험까지 해봤지만 이렇게 비정상적인 체제가 어떻게 존속이 가능합니까. 애들에게 보기도 민망하고, 정말 답답하네요."

현재 미얀마의 언론 환경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우선 TV와 신문은 정부가 운영하는 국영미디어만이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TV를 켜도 정부의 목소리만 대변이 되고 있으며, 신문 자체는 일부 발행은 되지만 그 어떤 시민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한때 전국민이 애용했다는 페이스북은 막힌 상황이기에, 과연 양곤 시민들은 어떻게 정보를 접하고 있는 지 궁금해졌다.

"유튜브를 통한 뉴스가 거의 유일한 활로 입니다. RFA (라디오 프리 아시아), BBC, DBV (민주버마보이스) 등의 버마어 유튜브 뉴스를 봅니다. 이른바 망명 언론(exile media)인 거지요. 미얀마 언론 가운데는 낏띳 미디어(Khit Thit)가 인기가 높습니다. 여기서 신문방송 대신 유튜브 뉴스 본 지 오래되었어요. 그나마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잖아요. 국영TV 뉴스는 거진 다 쓰레기라고 보면 됩니다."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바리케이트. 이제는 총든 군인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미얀마 양곤의 시내 모습. 낡은 외관이 이 곳의 경제 사정을 잘 드러낸다

"관치 경제, 어려운 난관"

그는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오랜 기간의 미얀마 경제 침체 탓에 "사업이 어렵다"라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시장 환율은 3첫 짯에 육박하지만 정부는 무역 업체엔 지정된 고정 환율로 무조건 환전해야 한다고 강제해 놓았기 때문에, 미얀마 원자재를 해외에 파는 무역업 입장에서 여간 고통스럽다. 즉, 3000짯으로 물건을 사서 해외에 팔면 정부가 그 대금을 2000짯으로 환전해준다는 얘기다.  

"지난 10년간 자유화 흐름을 경험한 세대로서, 아이를 둘 이나 키우는 아비 입장에서 자식 세대에게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이런 나라를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딱히 방법이 없네요. 선거요? 과연 선거가 치러지기나 하겠습니까? 이미 기존 정당 다 없애 놓고 군부 정당으로 집권할 요량인데, 시민들이 그것을 가만히 놔둘까요? 저는 당분간 선거가 있을 것 같지 않고, 선거가 치러진대도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날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평범한 중산층 사업가인 그는 지난해인 202년 인세인 insein 감옥에 수개월 간 수감된 적이 있었다고 했다. 혐의는 너무도 어이 없게도 반反정부 시위를 극렬하게 한 젊은이 두 명을 채용한 탓이다. 억울하게 수감되자 온간 인맥을 넣어 청탁을 한 끝에 심한 매질을 당하는 일은 가까스로 면했다고 했다. 힘겨운 현대사의 한 시대를 그렇게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군부도 시위대도 잘못"

양곤 시민의 80%이상이 군부에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군부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목소리를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양곤에 오래 거주한 교민들 가운데 몇몇이 군부의 입장에서 현재의 모순된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 ***이후 소개되는 코멘트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의 캐릭터로 요약 정리한 것이니, 불필요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양곤의 교민 사회는 지나치게 좁기 때문에, 동시에 현 시국의 미얀마에서 자신의 정치색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할 일로 손꼽힌다).

필자가 양곤에 방문하기 1주일 전 사가잉에서는 전투기 공중 폭격으로 170여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이 있었다. 워낙 심각했던 참사였기 때문에 전세계 거의 모든 언론과 국제단체들이 미얀마의 군부 정권을 비난하고,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당연히 양곤에 사는 미얀마 시민들이나 한국 교민들도 이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함께 분노하고, 왜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는 지에 대한 설명이 뒤따랐다.

사가잉 지역은 옛 수도인 '만달레이' 에서 이라와디 물길을 건너 서북쪽을 향하는 지역이다. 서북부 지역의 관문이 되는 역사 도시로 예전부터 소수민족과 기독교도가 많아 군부와 강한 반대 색깔을 띠었던 '정치적 소수파'의 지역이기도 하다. 2021년 쿠데타가 발생하자 군부에 가장 격렬히 저항했던 곳이 바로 사가잉을 중심으로 한 서북부 지역이다. PDF로 불리는 시민방위군이 활약하는 근거지이다. 때문에 군부는 이 지역을 "테러 단체가 활동하는 영역"으로 규정하고 각종 화력을 집중시켜왔다.  

군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입장에선 PDF나 시위대의 극렬한 활약에 대해서 불편한 시선일 수 밖에 없었다. 나라의 정상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얀마의 전력(電力) 사정이 엉망 진창이잖아요. 왜그럴것 같으세요? 아웅산 수지 때는 전기 생산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좋았던 게 아니에요. 우선 짯의 가치가 떨어지고, 가스나 기름값은 올랐죠? 당연히 전력 생산량이 힘들 수 밖에요.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반군과 시위대가 '송전탑'을 타겟으로 공격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국가를 상대로 사보타지를 한다는 건데요,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치고박고 싸우는 데 나라가 안정이 될 수 있을까요?"

한국 교민들의 상당수는 미얀마에서 봉제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생계 수단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적잖이 크다. 100여개가 넘는 한국 업체들은 특히 지난해 코로나 회복기간에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이 역시 짯(kyat)의 가치 하락과 국제적 경제환경과 관계가 깊다. 봉제업의 주된 지출은 바로 '인건비', 결제는 '달러'로 하게 된다. 미얀마 노동자에게 줘야할 인건비는 그대로 인데, 달러의 가치는 2배 가까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앉아서 상당한 환 차익을 거둔 것이다. 게다가 군부가 "노조"를 탄압해 임금 인상 요인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 한국 봉제업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해외로 도망친 노조 관계자들이 미얀마 봉제 산업에 일감을 주지 말라는 운동을 펼쳤거든요. 자연스레 유럽의 대형 의류 브랜드들이 미얀마 일감을 줄이고 나섰습니다. 동시에 미얀마 내부에서도 운영 중인 업체를 상대로 한 보복성 '테러'나 '파업'도 독려했고요. 당연히 수익성이 나빠졌습니다. 일감도 줄고요. 게다가 정부는 "환차익"을 방지하려고 고정환율제도까지 도입했어요. 정말 힘든 상황입니다."

"민주주의는 기반을 갖춘 뒤에"

미얀마의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웅산 수찌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그는 40대 중반까지 미얀마 바깥인 영국에서 주로 살았다가, 1988년 민주화 시위 때 귀국해 이후 20년 간의 가택연금을 견딘 끝에 2016년 사실상 '국가 수반'의 지위에 올랐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미얀마의 정치 및 경제 개혁을 이끌던 인물인 것이다.

아웅산 수찌와 군부의 오랜 갈등은 '영화'로 제작이 수차례 될 정도로 유명하다. 아웅산 수찌는 비폭력 비타협 노선을 견지해 '미얀마의 간디'라는 별칭까지 얻었는데,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집권한 2016년 이후에도 일절 군부와 타협없이 민주주의 외길을 걷다가 결국 2021년 쿠데타로 실각하고 말았다.

군부에 옹호하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랜 집궈 경험과 엘리트를 보유한 군부와 협력을 통해서, 미얀마를 단계적으로 개혁해야 하는데, 아웅산 수찌는 군부를 노골적으로 배제한 탓에 쿠데타를 사실상 불러들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적어도 대통령직을 군부에게 양보하고, 민아웅 흘라잉과 협력적 관계를 맺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생각해 보세요. 2022년 미얀마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1700달러 정도 입니다. 한국이 2000달러를 돌파한 k게 1982년이에요. 달러 가치 차이도 엄청납니다. 과연 한국도 하기 힘든 완전 의회 민주주의가 미얀마에 가능하겠습니까? 현실을 고려하자는 얘깁니다. 전국민의 80%가 가난한 사람인데, 엘리트인 군부를 빼고 정치한다는 게 군부의 입장에서 자존심이 상했을 겁니다. 왜 적당한 타협이 불가능했는 지 저는 지금도 이해가 안갑니다."

"아주 오랜 기간 갈등 전망"

미얀마 헌법에 따르면 계엄령(비상사태)는 선포 1년간만 유효한다. 그러나 이미 한차례 연장을 해서 2년이 지난 상황. 올해 8월 안에는 선거가 치러져야 했지만 이미 올해 선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마 내년에도 어려울 가능성이 높고, 그것으 내후년, 그 이후에도 쉽게 치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내전에 준하는 군부정권과 시민반군, 그리고 소수민족 사이의 갈등이 지속될 경우 "평화롭고 공정한" 선거가 진행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은 전혀 낯설지 않다. 이미 미얀마는 1990년 NLD의 압승으로 끝난 선거가 무효화된 이후 2010년까지 최대 야당인 NLD가 참여하는 전국 단위의 선거가 치러진 적이 없다. 20년 간의 군부의 일방적인 정치 체제가 이어졌던 것이다. 그 사이에 2008년 헌법이 만들어 졌지만, NLD는 선거참여를 거부했고, 군부 역시 서둘러 NLD를 선거판에 끌어들이지 않았다. 결국 아웅산 수찌는 2012년도 보궐선거를 통해서 정치권에 공식 데뷔하게 된다.

"아웅산 수찌와 NLD가 군부와 끝끝내 타협하지 못한다면, 군부는 다른 선택지가 없을 겁니다. 즉, 그냥 선거를 치르지 않는 것으로 계속 기다릴 겁니다. 국제사회의 압력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반군을 소탕하면서 때를 기다릴 겁니다. 군부는 압도적인 단일 대오를 갖고 있고, 내부적인 배신자가 나올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국가를 군부가 거의 소유하다 싶이 하는데요."

이 같은 대화가 지속되었다. 즉, 어느 한 쪽이 완전히 굴복하지 않는다면, 미얀마의 정치 상황은 쉽게 안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는 가운데 미얀마 시민들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외국인의 경우, 상당수는 미얀마를 떠났고, 남은 이들은 어떻게 되는 군부와 협력하면서 사업기회를 모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즉, 혼란 속에서도 누군가는 사업을 지속시켜나가야 되고, 그것에 동의하지 않느다면, 적당히 떠나라는 얘기기도 했다.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기도 했다.

과연, 누구 말이 옳은 것인지는, 독자 여러분이 깊은 고민을 통해서 답을 내놓아야 할 듯 싶다. 아시아 각 국가들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딜레마를, 미얀마의 정치 상황이 잘 드러내 주는 듯 싶다. (계속)

미얀마 군대의 사열 장면이 TV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기도 했다
미얀마의 전통적 사찰의 입구 모습. 미얀마는 여전히 현대성 보다는 폐쇄적 전통이 강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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