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시아 저격정치의 희생양 '아혹'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3년 6월

● '무슬림 사회'에서 불우했던 인니 화인(華人)들의 삶
●  블리뚱 시장 '아혹'의 도전...무슬림 사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딛혀
● 재선 노리던 조코위는 침묵, 메가와티는 강력 지지...미래 위한 '투자'


0.

2012년 봄, 메가와티에 의해 수도 자카르타 시장 후보로 선택된 조코위는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러닝메이트 선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워낙 중요한 자리란 특수성도 있지만, 불과 2년 뒤인 2014년 대선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선정된 인물이 자카르타에서 배로 5시간 넘게 떨어진 '블리뚱Belitung' 섬 시장을 거쳐 당시 국회의원이던 "아혹(Ahok, 1966년생)"이란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조코위 집권기 최고의 스캔들로 손꼽히는 "아혹 신성모독 사건(Blasphemy)"의 발단이 된다.

당시 46세인 아혹은 작은 섬의 시장을 거치며, 특유의 개혁성, 반부패 투쟁, 신속한 의사결정과 대중성으로,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었다. 젊고 개혁적인 두 시장을 묶어 "자카르타" 개혁의 초석으로 삼겠다게 메가와티의 플랜. 하지만, 아혹의 인종과 결혼의 배경이 발목을 붙들게 된다. 아혹 사건은, 21세기 "혐오"와 "저격" 정치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아시아 정치에 광범위하게 전염된다.

1. 하프-인니인

앞서 인니 공산당과 화인들의 불우한 역사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는 동남아 전역에서 벌어진 보편적 현상이기도 했다. 우선, 중국인은 동남아시아 해안가 전역에 퍼져 살았다. 무역이 발달한 도시엔 여지없이 중국인이 이미 13세기 이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자카르타, 메단, 빨렘방, 수라바야 모두 마찬가지. 그리고 정치적 위기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중국인을 족쳤다. 블리뚱이라는 섬의 위치를 살펴 보면, 중국인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수마트라와 보르네오섬 그 중간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석 광산이 활발한 지역이기도 했다.

아혹의 경우는 아버지가 중국인(객가인), 어머니는 자바인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엔 보편적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중국인은 세대를 거듭하며 동남아인과 결혼하며 현지화 되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가족 전체가 자카르타로 이주한 아혹은, 이후 고향을 오가며 사업을 펼치며 정치인 꿈을 꾸기 시작한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인종갈등도 차츰 엷어졌고, 특히 젊고 유능한 행정가의 손길이 인니 지방도시엔 특히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혹은 어머니가 자바인이었기 때문에 중국계란 색안경에서 자유로웠다.

2. 교회 오빠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이면서 동시에 다종교 국가다. 서쪽으로 갈수록 무슬림이 강세지만, 동쪽으로 가면 토착 종교가 강해지는 식이다. 이런 와중에 주로 해안가 무역로에 위치한 중국인들은 카톨릭과 전통종교(도교)가 강한 것도 특징이다.아혹은 개신교 교회를 다닌 세련된 "교회 오빠" 였다. 자카르타서 교회를 다니면서 아리따운 처자와 사귀게 되는 데 "베로니카 탄(1977년생)" 이라는 중국계 여성이었다. 수마트라 섬 메단 출신인 그녀도 고등학교 시절 자카르타로 유학을 왔던 것이다.

당시 청년 사업가이던 아혹은 이 처자가 너무 맘에 들었던지, 그녀가 대학에 갓 입학한 1997년, 마치 도둑놈 처럼 결혼식을 올리고 만다. 그의 나의 31살, 신부는 19살 때였다. 야심만만한 청년사업가와 19살 아리따운 처자의 결합은 배경이 "인니"라는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는 된다. 이후, 세 자녀를 낳은 이 부부는 2005년 정치입문 이후 찰떡같은 "콤비" 플레이를 이루며, 선거판의 스타로 떠오른다. 내조와 외조가 잘 맞아 떨어진 사례다. 교회오빠가 남편으로 변한 케이스니 얼마나 호흡이 잘 맞았을 지 안봐도 비디오일 듯 싶다.

3. 투쟁

수하트로는 강력하게 '화교'의 동화정책을 펼친다. 중국식 이름을 쓸 수 없었고, 중국인의 경제 및 정치활동을 크게 제한시켰다. 당연히 그의 집권기에 중국계 정치인이 등장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1998년 그가 퇴임하자마자, 전국적으로 화교에 대한 테러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인들이 돈을 다 가져가 경제위기가 왔다" 라는 흑색 선전이 먹혔기 때문이다.인종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아혹은 "개혁성" 하나로 이 모든 문제를 돌파하려고 시도했다. 뇌물을 거부하고, 실질적인 행정력을 통해 블리뚱을 개혁해 나간 것이다.

애당초 그린다당(Grinda Party) 출신인 그가 당과 갈등을 빚고 탈당하자, 곧바로 메가와티의 투쟁민주당(PDI-P)이 그에게 영입 제안을 해온다. 자카르타 부시장 선거에 나가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선거에 나간 아혹은, 이후 조코위와 "무쌍"을 찍어버린다. 자카르타의 행정 복마전은 널리 알려졌다. 뇌물 없이는 아무것도 진행이 안되고, 도시의 인프라는 낡고 부서지기 직전, 심지어 무슬림 국가인데도 사창굴이 아무데서나 횡행하는 기괴한 도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조코위-아콕 콤비는 이 모든 개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아혹의 "출신 인종"은 극우파의 타겟이 되어버린다.

4. 이혼

아혹이 자카르타 부시장으로 데뷔하던 2012년에도 협박과 경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는 부시장 때였다. 주인공은 "조코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 조코위가 대통령으로 떠나고 그가 시장(주지사) 자리를 물려받자 상황은 돌변한다. 극우무슬림에게 적당한 '타겟'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혹은 조코위의 러닝메이트이자, 수도 자카르타 시장이다. 피부색도 미묘하게 다르고 종교도 다르다. 심지어 그는 과거 무슬림 정치가 해온 방식과 정반대의 모더니스트다.

더 큰 문제는 다름 아닌 아내였다. 2005년 아혹이 정치를 하며 그의 곁에는 늘상 "중국계"인 아내가 함께했던 것이다. 2016년 주지사 선거에서 아혹은 승리하지만, 그가 선거 과정에서 했던 발언 하나가 미묘하게 편집되어 "유튜브"에 업로드 된다. 꾸란의 한 대목을 인용해 (무슬림) 유권자를 비난하는 내용처럼 읽혔다. 곧장 극우파는 총궐기했다. "신성모독"죄로 기소가 되고 2017년 그는 2년 유죄판결을 받으며 정치에서 강제은퇴당한다. 당시 자카르타 시내를 뒤덮은 극우파 시위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2018년 옥중에서 아내와 이혼하게 된다. 분노한 대중의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카드였다.

5. 굳건한 메가와티

2019년 조코위는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때문에 조코위는 차마 공식적으로 자신의 파트너인 아혹을 감싸주지 못했다. 조코위는 철저하게 중립적인 위치를 지켰다. 이 과정에서 유독 돋보였던 인물이 바로 투쟁민주당의 당수 메가와티다. 메가와티는 아버지 수카르노의 노선을 이어받은 건지, 철저하게 중국계 인재를 중용과 타협, 즉, 인종간 혐오 감정에 의해 정치를 해선 안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메가와티의 뚝심은 말레시이시아의 정치인 "안와르 이브라힘"과 오버랩된다. 전통 사회가 바뀌고 혁신하기 위해서는, 중국계를 포용해야 한다는 거다.  아혹 사태는 2019년 조코위의 당선으로 다시금 잦아 들었다. 물론 개혁정치인 아혹은 다시 정치판에 복귀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조코위가 조금이나마 인니 사회를 바꾼 것에 만족할 지도 모른다.

PS.

1. "아혹" 사건은, 군부와 극우 무슬림 조직이 조코위를 공격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카드 였음. 야당 출신 정치인이 명심해야 할 상황, 누군가는 감옥에 보내어진다, 그러니 감옥갈 각오로 정치하시라

.2. 말레이시아는 2022년, 안와르 이브라힘을 총리로 당선시키며 간신히 인종차별 정책에서 벗어나는 분위기. 인니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할 듯

3. 아혹과 아내 베로니카 탄은 현재도 공식 이혼 중. 그런데 아혹은 2020년에 깜짝 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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