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3.03.06
"정치와 대중문화는 맥락이 같다"라는 게 필자의 오랜 아시아 접근 방법론이다.
케이팝과 케이드라마 등 한국의 대중문화가 높은 경쟁력을 갖는 현상 역시, 한국의 정치시스템의 높은 민주성(?)과 회복력을 가진 것과 무관치 않다는 식의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주로 여타 아시아 국가에 대한 접근이나 이해도 "정치"와 "미디어" 연구를 양립, 병행하는 방법을 택해 와서 나름 효과적이었는데, 그러한 미디어 방법론이 무용지물인 사회가 바로 "비엣남"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비엣남 미디어 체제도 잘 모르겠고, 나아가 권력의 작동방식, 세대교체 방법이나 권력 서열을 매기는 방식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독재는 아닌 데 묘한 폐쇄성이 유별나다.
1. 공산당 시스템
"중국이나 북한과 엇비슷하지 않을까?"
2000년대 초반에 한국 기자들은 중국의 정치체제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여야 했다. 한국적 관점에서 쉬이 이해 가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덩샤오핑이 차차기 후진타오를 찜하고, 상하이방 장쩌민은 시진핑을 어렵사리 스카웃하는 식의 "대를 건너 뛰는 10년 집권" 체제는 아리송하면서도 중국 특유의 집단지도 방식이었다. 정치국 상무위원 체제 역시 외국인 눈으로 이해가 어려운 권력 작동 방식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정치국을 중심으로 분업적 독점체제로구나. 국가주석이 "대외정치"를, 총리가 "내치와 경제"를, 당 총서기와 군사위가 "인민군대"를 지휘하는 시스템도 파악이 어려웠지만, 당이 국가 위에 군림하는 특유의 정치체제는, 뭐 어찌저찌 이해가 가능했다. 여야가 아닌 당내 실력과 서열에 의해 교체가 되는 안정적 "시스템"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근래 시진핑 집권 이후, 시나브로 1인 집권체제로 변해가는 모습도 우리는 받아들 수 있었다. "북한"이라는 독재체제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일은 일찌감치 당-정-군을 장악해 권력을 1인 체제로 집결시켰기에, 검찰이나 의회로부터 탄핵을 당하거나 군대의 쿠데타 위협을 받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 생소한 시스템
비엣남이 채택한 정치 시스템을 보통은 "집단 지도체제(collective leadership) 이라고 부르나 보다. 필자는 정치학 전공이 아니다보니, 틀린 부분이 있으면 바로바로 지적 부탁드린다. 이러한 집단 지도체제를 다른 표현으로 레닌주의에서 유래한 "민주 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 라고 부르기도 하나보다. "모두가 함께 결정하는" "하나를 위한 다수, 그 반대도 마찬가지.." 뭐 그런 공산주의 구호 말이다.과거 중국공산당도 그러했듯, 집단체제는 권력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게 핵심이다.
비엣남의 경우, 1>공산당 총서기 2>국가 주석 3> 총리 4> 의회의장 순으로 권력이 나뉘에 행사가 되는 데, 당연히 군사권력은 "당 총서기"가 갖는 게 당연하고, 당 안에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정치, 사법, 경찰, 언론, 감찰, 예산 등의 핵심권력의 소위원회가 나뉘어져 있을 것이다.
비엣남 정치가 이해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데, 권력 분배의 규칙성이 언론에 공개가 안되기 때문인 듯 싶다. 당, 정, 군 사이에 뭔가 핵심적 "정파주의"가 있을 듯 싶은데, 예를들어 중국으로 치면, 태자당/상하이방/공청단, 같은 주요 파벌 말이다, 조선시대에도 사색당파가 있었데, 비엣남은 그게 뚜렷히 포착이 안되는 게 숙제로 보인다.
3. "정치는 파벌"
가장 쉽게 정치판 파벌을 이해할 수 있는 구도는 당연히 출신 "지역"이다. 당연히 북쪽의 월맹이 월남을 병합했기 때문에 하노이 출신이 사이공을 압도할테고, 동시에 경제개방이 빨랐던 사이공 출신에 대한 배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으로 소외된 중부 지역에 대한 균형 인사도 고려될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혁신파 vs. 보수파"의 대결구도일 것이다. 공산권 어느 국가나 개혁의 속도를 놓고 속도조절론자와, 급진적 개혁파가 대립각을 세웠던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여기에 친러파와 친중파, 그리고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고려하면 다양한 파벌과 색깔이 도출될 수 있다.
불과 1달 전까지 비엣남의 정치 구도는 "쫑 총서기(1944생) vs. 푹 주석(1954생)"의 보수 vs. 혁신 구도로 이해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푹 주석(Nguyen Xuan Phuc)은 오랜 총리를 거쳐 주석에 취임했기 때문에 앞으로 상당기간 권력을 쥘 것으로 전망이 되었고, 쫑 총서기(Nguyen Phu Trong)는 전례없는 당의 최고 자리를 3연임으로 끌고 왔고, 나이도 가장 많은 70대 후반이기 때문에 지는 해로 평가 받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4. 세대교체불과 두어달 전 한국을 방문한 푹 주석이 최근 실각한 것이다. 부패 문제라는 데 정확한 내용은 알 기 어렵다. 구체적 혐의가 공개가 안되니 궁금증만 일 뿐. 사법과 언론의 "조리돌림"은 없이 명예롭게 퇴진의 길을 열어 둔 걸까. 푹 주석의 갑작스러운 실각은 "쫑 서기장"이 확고한 서열 1위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사건인지, 집단지도 체제에 의한 결정인지, 여전히 모호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전격적인 세대교체다. 1970년생 국가주석이 탄생한 것인데, 새로운 트엉 주석(Vo Van Thuong)은 사이공에서 출생한 그야말로 신세대 공산당원으로, 전격적으로 주석에 발탁되기까지 정확한 이력이 공개가 안되었을 정도의 깜짝 인선이었다. 물론 정치위원회에 포함된 나름 순위권 인사였지만, 고작 언론을 담당한 사이공 출신의 관방官房장관이, 푹 주석을 대신해 순식간에 17년을 앞당기는 세대교체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건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1당 체제 내에서 "세대교체"는 파벌간 합의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후진타오를 지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후진타오 같은 새로운 얼굴은 합의로 추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강력한 후원자를 필요로 한다. 천거의 방식인 것이다. 당연히 문제도 뒤따른다. 덩샤오핑이란 거대한 그림자가 없다면 쉽게 고꾸라 질 수 있다.
52세의 "트엉"이 주석으로 치고 나가면, 사실상 그가 세대교체의 선봉장이 되기 때문에 경쟁 파벌이 선뜻 동의해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때문에 이번 인선의 배경엔 "쫑 총서기"의 강력한 의중이 반영되었다는 게 전체적인 관전평이다. 차세대 서열 1위가 정해졌으니 조만간 각 파벌에서 2위와 3위 등을 천거해, 급속한 세대교체가 단행될 전망이다.
5. 전쟁의 여파?
비엣남의 "집단지도체제"는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존재다. 이러한 체제 성립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호찌민의 희생"과 "제국주의"의 여파다. 널리 알려졌듯이 베트남 공산당은 프랑스 식민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여러번 본부를 옮겨야 했으며, 1940년대 이후에는 일본, 프랑스, 미국과 다양한 전쟁을 치르며 국가만들기에 나서야 했다.
자연스레 당,정,청을 1인 집중구조로 만들기 보다는 철저하게 네트워크 조직으로 만들어, 누군가 죽거나 사라져도 시스템적으로 대체가 되는 "집단 지도체제"를 만들어야 했고, 그 와중에 공산당 우위의, 즉 당성黨性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되었다고. 호찌민이 권력욕을 부리지 않고, 전쟁 와중에 사망한 것도 집단체제 성립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번 푹 주석의 실각은 여러 숙제를 안긴다. 쫑 총서기는 과연 보수파에 친중파인가? 그는 왜 후계자로 50대 초반 사이공 출신을 택했을까? 도대체 어떤 매력이 무명의 트엉을 이 자리로 이끌었나? 마지막으로 트엉에 대항할 북부 하노이 출신의 차세대는 누가 될 것인가? 그리고 그 인선도 하노이 출신 쫑 총서기가 관여할 것인가, 아님 반대로 남부의, 혹은 혁신파에서 추천을 하게 될까. 모든 게 베일에 가려 있어 더 궁금한 비엣남 정치가 아닐 수 없다.
ps.
- 2011년 쫑 총서기의 등장도 당시에는 설왕설래가 많았다고. 쫑은 "보수파"인 건 맞지만 "친중파"라고 묘사하는 건 쉽지 않을 듯. 비엣남의 최고 권력자가 "친중"이라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려움
- 2021년 "백신 수입" 관련된 스캔달이 크긴 컸던 듯. 권력 내부에서 1백만 가까운 사망자를 낸 코로나 이후 "물백신" 관련해 책임론이 인 것은 확실해 보임. 푹 주석이 책임을 지고, 세대교체의 밑거름으로.
- 결국, 핵심은 "세대교체"로 보임. 비엣남 정치권이 일단 엄청난 일을 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