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젊은 주석 '보반 뜨엉'의 실각과 비엣남 내부의 권력 투쟁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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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정치인의 갑작스러운 실각失脚은 아주 중요한 뉴스다. 그런데 그가 젊은 인물이라면 더 중요한 뉴스가 된다.
지난해 이맘 때 혜성처럼 등장, 비엣남의 본격적 세대교체라는 "보 반 뜨엉(53)" 주석이 이번주 사임했다. 공산당 시스템에서 주석은, 우리 말로 '대통령'이다. 대외적으로 비엣남을 대표하는 차세대 정치인의 갑작스러운 몰락에 전세계가 "충격"을 받긴 했는데, 정확한 내용을 알 지 못해, 보도 내용에 당혹감과 애매함이 풍겨나온다. 해석과 전망이 당분간 불가능한 듯 보인다. 1차적으로 비엣남은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보도 통제" "관영 언론" 중심으로 작동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표면적 실각 원인은 "부패 corruption"이다. 현재 비엣남도 대대적인 부패 척결 운동을 벌이고 있고, 그런 과정에서 전임 주석 쑤언 푹이 실각했다. 쑤언 푹은 오랜 총리 이력 때문에 "부패"라고 할만한 이력이 적지 않은 사람이었다. 특히 코로나 3년 기간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권력에 정점에 선 그가 이리 쉽게 축출될 지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다. 그건 여기서 워낙 일상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1. 젊은 주석
보반 뜨엉은 남부 호치민을 정치 고향으로 하는 철두철미하고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다. 워낙 이념적으로 잘 준비된 엘리트 공산당원이기 때문에, 정치국 상무위원 끄트머리의 그가 갑작스럽게 최고의 자리 "주석"에 발탁된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변화로 받아들여졌다. 즉, 세대교체와 부패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상이 투철한 인물로의 교체를 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의 정점에 선 차세대 정치인이 "부패 혐의"로 실각한 것이다. 혐의 내용은 15년 전, 그가 꽝응 아이 성, 당서기로 근무하던 시기에 부동산 회사 Phuc son 그룹으로부터 30억 정도의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집안의 묘지 정리에 도움을 받았다는 것. 당의 조사기관이 Phuc son 그룹의 비리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아주 우연히 국가주석의 오래전 비리가 드러났다. 결국 이 혐의로 대통령이 날아간 것이다.
널리 알려졌듯, 현재 비엣남 권력의 정점엔 "응우옌 푸 쫑" 당서기장이 굳건히 서 있다. 조만간 80살이 되는 노령의 최고 권력자. 1년 전, 그는 자신의 후계자로 보반 뜨엉을 지명했다. 이념성과 세대교체, 남부 호찌민 배려 등을 두루 고려한 인선이었다. 그런데 1년만에 후계자가 나가 떨어졌으니, 혹시 쫑 서기장의 권력에 균열이 생긴 게 아닌가, 라는 의혹이 나오는 상황이 됐다.
2.충분히 빨갛지 않다?
비엣남 공산당 내 역학 관계는 현재 비엣남을 바라보는 최고의, 최대의 이슈 가운데 하나다.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며, 세계 최대의 생산력을 지닌 중국 남부, 광저우 지방과 거의 유일하게 맞짱을 뜰 수 있는 산업지대가 비엣남(북부 하노이와 남부 호찌민)으로 평가 받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입장에선 하노이를 자기 편으로 끌어 당기는 게 최우선 과제인데, 하필 하노이는 중국 공산당과 사상적 맥락이 같다는 게 고민거리다.
비엣남 공산당이 "개혁과 개방"을 캐치프레이드로 내걸고, 30년 넘게 경제성장을 최우선 화두로 실천한 것은, 일견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을 연상시킨다. 여기까진 중국도 세계경제와 원만한 관계를 이어왔는 데, 차세대 시진핑의 등장은 그 모든 낙관적 기대를 허물었다. 결국, 세계가 우려하는 건, 혹시나 비엣남에도 "제2의 시진핑"이 등장할 것인가, 의 문제다.쫑 서기장은 강력한 맑스-레닌(ml)주의자로, 서방세계가 우려하던 이념중심주의자로 손꼽혔다. 그렇기 때문에 차세대 "보반 뜨엉"을 어느 정도 우려스럽게 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당초 우려와 달리 온건한 모습을 비쳤다. 남부 특유의 "카톨릭 문화"에도 익숙해 교황청과 관계를 개선하고, 미국-호주 등 반중국 세력과도 포괄적 전략관계를 맺었을 정도. 그러니까, 이번 사태의 핵심엔, "보반 뜨엉"이 충분히 빨간 인물인가, 아닌가의 노선투쟁 가능성이 엿보인다.
3. 권력 쟁투
개인 공산당원 보 반 뜨엉과 국가 주석으로서의 존재는 당연히 다른 성향을 내비칠 수 있다. 아무리 주석이라고 해도 자신의 정치 대부 "쫑 서기장"의 지침과, 당정치국 상무위원 집단의 압박을 절묘하게 녹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파열음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다. 15년 전 가족의 누군가가 받은 돈 문제로 "주석"이 사임하는 사태는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
이번 사태의 핵심 배후엔 두 사람이 거론된다. 또 람(To Lam, 67) 공안부장관과 쯔엉 티 마이(Truong Thi Mai, 66) 당중앙 조직부장이다. 이 둘은 보반뜨엉 임명 당시 경쟁 후보이자 차세대 공산당 지도자로 불린다. 또 람은, 우리나라로 치면 검찰총장이자 경찰청장으로 비견될만한 인물이다. 마이는 여성으로 저명한 공산당 지도자다. 하지만 색깔이 옅어서 선배 지도자들이 선호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또 람이 된다면 아주 강성 지도자가 등장하는 셈이고, 마이가 등장한다면, 기존의 권력관계를 해치치 않는 선에서 무난한 여성 주석의 등장이라는 효과를 가진다고 한다. 즉, 보 반 뜨엉의 실각의 진짜 의미의 결정은 그의 후임이 누구로 결정되느냐에 달린 것이다. 부패와의 전쟁을 강화하고 하노이 공산당의 색채를 강화한다면, 또 람이 될 것이다. 당내 경쟁이 극심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4. 비엣남의 미래
당초 보반뜨엉에게 완전한 권력 이양이 아닌, 테스트용, 과도기 권력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계획된 퇴임이었다는 것. 물론 결과론일 것이다. 그가 분명히 "실수"를 했기 때문에, 쫑 서기장의 실망, 혹은 쫑 반대파의 격렬한 반발로 무너졌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문제는 정확한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단시간 내에 현 정치투쟁의 내부 사정이 쉬이 밝혀지거나, 혹은 그 결과로 현재 진행중인 경제개혁과 개발의 방향에 훼손을 놓는 일은 벌어지지 않늘 것이다. 아직은 비엣남이 미중 갈등의 중간 지대에서 얻는 이득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보반뜨엉은 고작 1년 만의 단기 권력으로 끝났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이같은 정치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확실한 결론이 아닐까 싶다. 비엣남의 고위 정치인들이 현재, 치열한 노선 갈등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ps.
1. 보 반 뜨엉의 인상이 선해 보이고 젊어서, 많은 이들이 그가 막연하게 잘 하기를 기대했었음.
2. 언론 보도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함. 내부에서 나오는 뒷얘기라는 게, 비엣남에는 일절 없음. 그것을 글로 쓰는 것도 해외에 사는 이민자 정치 그룹임. 대부분 왜곡된 정보임.
3. 쫑 서기장과 쑤언 푹 전 주석의 건강이 상당히 나쁘다는 게 결정적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