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스쿠터 공화국 비엣남, 배경과 해석

O 압도적인 "바이크 보급율"과 "낮은 공공교통 분담률"의 조화
O 사회주의 특수환경과 자전거-모터바이크로의 순차적인 진화
O 이륜차 중심 사회에 대한 해석이 곧 비엣남에 대한 관점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2년 7월


0.

비엣남은 "모터바이크(이륜차) 공화국"으로 불러야 한다. 특히 사이공과 하노이의 바이크 밀집도와 그 의존도는 압도적이며, 독보적이다. 이륜차가 제법 많다는 자카르타 혹은 타이페이와도 감히 비교를 불허한다. 이들은 그래도 4륜차가 도로에 50% 이상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이공은 이륜차가 차지하는 도로 (면적)비중이 70% 이상이다. 운행 댓수로 따지면 95%가 넘을 지도 모르겠다.

비엣남의 하노이와 사이공은, 이륜차에 지배된, 이륜차에 의해 움직이는, 이륜차를 위한 도시로 진화한 세계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때문에 "비엣남엔 어째서 "이륜차"가 많을까?"란 질문은 누구라도 반드시 던져야하고, 수없이 많은 해답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이곳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배경도 된다.

1. 발전론(경제론)

2000년대 이전까지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에선, 도시에 자전거가 지배적이었다. 싸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전거를 넘어서는 도구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소비재 발달이 뒤쳐진 공산권 시민에게 자전거는 오랜기간 "신이 내린 축복"이었다. 그런데 북한과 미얀마는 심지어 자전거 보급도 충분하지 못했다. 지금도 이륜차가 거의 없다.

그래서 비엣남의 스쿠터 열풍은 자연스레 자전거에서 진화한 형태라는 설명이다. 이후 기술이 발달했고, 1986년 도이머우 이후 경제가 성장했으니, 이제는 자전거를 버리고 오토바이로 갈아탄 것이다. 사륜차에 비해 여러모로 싸고 경제적인 게 스쿠터라는 건, 오랜 진리다.

2. 세대 특화론

한국에도 당연히 스쿠터 찬양론자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이것이 상당히 민첩한 운동신경을 요하는 은근히 "젊은이 지향" 탈 것이라는 문제다. 노년층이 스쿠터 운전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헬멧을 쓰고 뙤약볕 아래 장시간 운전하려면 은근히 높은 집중력과 꼿꼿한 허리, 즉 체력을 요한다. 넘어질 경우 그 충격도 크다.

다른 나라와 달리 비엣남은 유달리 젊은 국가다. 그게 30년 넘게 이뤄진 참혹했던 전쟁 탓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특히 25세에서 55세 비율이 전체 인구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가장 젊은 인구구조를 가진다. 자연스레 이들 젊은이들이 싸고 편한 교통수단인 스쿠터를 주요 도구로 택할 수 있었고, 그 흐름이 전세대를 아울렀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가 쉬이 따라하기 힘들다는 설명도 된다.

사이공 시내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인 바이크 행렬. 바이크 문화는 비엣남 체제 그 자체에 가깝다

3. 급한 성질론

아세안에서 가장 성질이 급하고 바지런한 나라는 어디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99% 비엣남을 향하곤 한다. 공장에서 뛰어다니는 제3세계 국민은 여기가 유일하다는 거다. 스쿠터 문화는 이런 개개인의 사회문화적 배경과도 연결이 된다는 설명이다. 스쿠터는 특정 지역과 지역을 거의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거의 유일한 교통기계다. 가장 작고 민첩하기 때문이다.

비엣남 전쟁에서 초거대 수송기를 몰고온 미군을 자전거와 죽창을 든 비엣남 사람이 이긴 것도 이런 원리다. 바이크는 땅에 가장 가깝고 그만큼 민첩하고 세밀하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성급한 배달문화를 떠올리면 쉽다. 바이크는 운전자의 손가락 미세 감각에 의존해 cm단위로 제어가 가능하다. 아무래도 몸집이 작고, 젓가락을 사용하고, 성질급한 동아시아 사람들이 스쿠터에 적합하다는 얘기다.

4. 기후론 / 지형론

덥고 습한 날씨도 스쿠터 보편화에 영향이 크다. 한국은 겨울에 추워서 타지 못하지만 동남아는 오토바이를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다. 우기에는 비옷을 입고 타면 그만이다. 사이공이 어느정도 평지가 많다는 점도 일찌감치 자전거를 확산 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당연히 도로 중심으로 교통이 깔렸고, 그런 20km 이내 포장도로 안에선 바이크가 최적이다. 여타 교통 인프라, 예를 들어 철도나 고속도로 발달이 동남아서 특히 더뎠던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것은 제국주의나 오랜 전쟁하고도 연관이 깊다.

5. 전쟁론

1940년대 이후 본격화된 아시아 태평양 전쟁은 유독 비엣남에선 1980년까지, 무려 40년 넘게 지속되었다. 산업시설과 도시와 도시를 잇는 인프라가 제대로 만들어질 충분한 시간이 부족했다는 얘기도 된다. 전쟁으로 도로가 끊기고 산업이 황폐화되고 물자가 부족한 환경에서 "자동차"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물건이었을 것이다. 물론 자동차는 필요했지만, 지배적인 교통수단이 되기 힘들었다. 자연스레 도시 안에서 "인력 기반의 자전거"가 최적의 교통 수단이 되었다는 얘기다. 사회주의가 사회운영의 기본적인 우너인이 된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6. 공진화론 coevolution

이런 원인과 요인을 하나하나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설명도 있다. 어차피 자전거와 비엣남은 일종의 "체제system" 처럼 함께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비엣남의 정치경제 체제가 "자전거"와 "모터바이크"와 따로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도시의 발전이 곧 바이크의 확장으로 서로서로 영향을 나누었다는 얘기다.

하노이는 몰라도 지금 사이공에 버스 시스템은 굉장히 취약하다. 없는 건 아니지만, 이용객이 그리 많지 않다. 지하철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다고 여타 공공 교통수단이 시민들이 발이 되어주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불만을 누그러 뜨린 배경엔, 사이공에만 900만대의 스쿠터가 도심 구석구석을 누비며, 수백만 노동자들의 발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바이크에 기반해 하노이와 사이공의 규모는 계속 외곽으로 확장되었고, 동시에 부족한 자본과 행정시스템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작은 노동자 기반의 산업은 큰 불편없이 쭉쭉 성장할 수 있었다. 정부는 시간을 번 것일 수도 있고, 도시 역시 바이크에 빚진 바가 커 보인다.

7. "바이크 사회주의"

이같은 배경 때문에, 21세기 비엣남을 설명하는 데 있어 "스쿠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조금 과장해서 보면, 비엣남의 공산주의는 사실은 이제는 사회주의에 가깝고, 그 사회주의는 바이크의 개인소유를 인정한, 바이크 기반의 사회주의라는 얘기다. 그리고 어디론가 다시 진화 중이다.동남아산 바이크는 아직은 싸고 효율적이다. 이것을 비엣남 체제는 노동자 개인에게 적어도 1개는 갖질 수 있는 정책을 펼침으로서, 사실상 "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활짝 열었다.

바이크라는 물건은 생산수단이기도 하면서, 사실상 가장 개인적인 물건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고, 이것으로 공공도로를 자유롭게 점유하면서, 사실상 "이륜차 사회주의"를 완성시켰다. 당연히,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서서히 자동차 보급이 늘어나고 있고, 바이크 소비자 안에서도 "이태리제 베스파" 등의 고급제품 소비가 늘며, 계급 분화의 신호가 감지된다는 지적이다.

결국엔 비엣남도 조만간 자동차 우위의 사회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엣남은 아시아 최고의 사회주의 국가로, 그 평등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적어도 바이크 우위가 지속되는 한, 비엣남은 여전히 "공산주의"라 불러도 좋겠다.


PS.

1. 도로에 헬멧을 안쓰거나 번호판이 없는 이륜차를 목격하기 어려움. 어떻게든 5천만대의 이륜차가 꼼꼼하게 관리가 되고 있다는 증거.

2. 코로나 이전에 비해 이륜차 통행량이 확연하게 줄었음.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 같기도. 당연히 중고 바이크 물건이 많아 헐값에 내놓는 경우도 많았다고. 불경기 징조 = 중고 바이크 가격

3. 바이크로 인해 쇼핑몰이 커지기 힘듬. 소비자들이 각자 차가 있고, 주차가 상대적으로 쉬우니, 도시 전체로 퍼지는 경향이 있음. 반면 태국은 교통 체증 때문에 아예 쇼핑몰로만 몰림.

4. 단점도 있음. 보행도로가 완전히 막혔음. 걸을 수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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