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65년 냉전의 서막 '액트 오브 킬링'

작성일 | 2023년 6월

● 영화 <액트 오브 킬링> ... 1965년 인니 정치의 비극에 대한 보고서
● 비동맹 '수카르노'에서 친미 '수하르토'로의 체제변화
● 베트남 통킹만 사건 1964년, 인니 역 쿠데타 1965년...아시아 냉전의 시작  


0.

1960년대는 필자를 포함한 현대인들이 선뜻 상상하기 힘든 시기다. 당연히 역사 속의 한 시기라고 생각은 하지만, 뭔가 구체적으로 느끼기엔 불가능한 멀고 먼 시점이다. 세계사에서는 "냉전이 본격화된 시기"라고 묘사한다.한국에서는 1961년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1964년에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드디어 미-일-한 공동안보체제가 본격화 된다. 그러고보니, 1965년 무렵은 2023년 윤석열 정부의 한일 신협정으로 인한 안보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 있다. 냉전과, 오늘날 부는 신냉전 바람 때문일 듯 싶다.

동남아에선 특히 엄청나게 바빴는데, 1964년 북비엣남에선 '통킹만' 사건이 불거지며 미국이 본격적으로 비엣남 전쟁에 개입한다. 1965년 필리핀에선 마르코스 체제가 들어서고, 인니에서도 1965년 쿠데타와 우파 역 쿠데타로 수하르토 체제가 꿈틀대는데, 그 과정에서 적게는 1백만, 많게는 3백만으로 추산되는 '대량 학살'이 벌어진다. 현대 인니 형성에 가장 영향이 컸던, 9월 30일 사건과, 1965 대량학살 사건이다.

1. 냉전과 CIA

1960년대에서 가장 미친듯한 활동력을 보인 '기관'은 단연코 미국의 CIA다. 1960년대 초 미국의 케네디 시대는 가장 풍요롭고 미국이 전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주도하는 화려한 시대였다. 그럼에도 급부상하는 쏘련에 대한 우려와 함께 미-쏘 냉전구도가 펼쳐지는 시대이기도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1962년이고, 케네디 암살이 1963년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계경영에 자신감이 붙은 미국 군부(?)와 CIA는 당시 정말 무리한 공작 정치를 전세계 제3세계 전역을 상대로 펼치는데, 이 대목은 '브루스 커밍스'를 비롯한 다수의 학자들과 언론인들이, 자료를 캐고, 조사하고, 지난 수십년에 걸쳐 비판하고, 반성하기도 해서 널리 공인된 대목이기도 하다. 즉, 공산주의를 막고, 미국 체제의 우월성 유지를 위해, 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정치 전반에 CIA가 적극 개입한 거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964~1965년 무렵에 이뤄졌다. 케네디가 사라진 미국은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기점으로 북베트남 정벌에 나서는데, 이를 위해선 주변의 친비엣남 세력을 척결할 필요가 있었다. 이웃한 태국-캄보디아-라오스도 중요하긴 했지만, 바다 건너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특히 인니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수카르노야 말로 눈엣 가시였다. 심지어 수카르노는 인니공산당을 연립내각에 끌어들이고, 중국 마오쩌둥과 노골적인 연대를 가속화하고 있었다.

2. 역 쿠데타

CIA가 남미와 동남아 제3세계 군부와 접촉해 "비동맹 노선"을 때려잡은 얘기는 역사적으로 공인된 사실에 가깝다. 다만, 뚜렷하게 그 사실을 널리 공표할만한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현재도 미국 체제라는 점 때문에 그다지 언급이 안될 뿐이다. 수카르노가 노골적으로 중공에 가까워지자 CIA는 수하르토 소장과 손을 잡는데, 그게 1965년 9월 30일 사건이다.

이 사건은 좌익 군인들이 우익 군장성 6명을 납치해 살해하고 무장반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수하르토를 중심으로 한 중부자바 군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역 쿠데타를 일으켜, 일거에 좌익 군인들을 숙청하고 권력을 손에 쥔 것이다. 그리고 10월부터 곧장 대대적인 "공산당 숙청"에 돌입하는데, 그 과정이 무지막지한 것이었다.

당시 인니 공산당은, 화교들과 지식인 여성들이 주로 참여한 원내 제 3~4 정당이었는데, 군부와 극우 무슬림 조직은 갑작스레 무장을 하고, 화교와 공산당원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과 숙청'에 나선 것이다. 1948년 제주에서 벌어진 4.3 사건과 흡사한 대목이 많다. 1965년부터 1967년까지 인도네시아 전역은, 공산당과 중국계 화교를 처단하기 위한 전국적인 학살극이 전국적으로 펼쳐진 것이다.

3. 영국과 미국의 도발

1965 대학살은, 1998년까지 인니에선 일종의 "금기" 가운데 하나였다. 수하르토 권력의 실질적 자양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9월 30일 사건"만 널리 알려졌다. 이 날은, 인니의 좌익이 쿠데타를 도발해 무고한 고위 군장성 6명을 살해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난 40년 가까이 '9월 30일'에는 인니 방송에선 공산당의 끔찍함을 홍보하고, 역 쿠데타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방송을 계속했다.

아시아 학계에서는 "9월 30일 사건"에 미국 CIA가 개입했는 지 여부가 오랜 쟁점이었다.  1970년대 이래 다양한 학설과 해석이 개입했지만, 당연히 뚜렷한 정설은 없는 형편이다. 딱 하나 확실한 건, 영국과 미국이 1965년 당시의 수카르노 제거에 "뜻"을 모았다는 거 정도. 그런데 실제로 수카르노가 쿠데타로 제거가 된거다.

주변 사정도 그런 상황을  뒷받침하는데, 1960년대초 영국이 주도한 말라야 연방에 수카르노가 "절대 반대"를 외치고, 1964년 북비엣남 전면전에 들어선 미국이, 후방에 적을 두고 싶지 않았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통킹만 사건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생떼를 부렸다는 게 간신히 밝혀졌다. 1965년 좌익의 어설픈 시도가 특히 의심을 샀다. 그러고보면 싱가폴이 독립한 해도 1965년이다. 이때만 해도 MI6가 활발하던 때였다

4. 액트 오브 킬링

2012년 전세계 다큐멘터리 상을 휩쓴 "액트 오브 킬링"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작품이다.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인니가, 따지고 보면 열도 전체가 거대한 "제주도" 였던 것이다. 당시 현지 무슬림들은, "세속주의"와 "여권女權 신장"으로 무장한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즉 중국인의 발언권 강화에 심각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화교들은 교육열도 쎄고, 돈도 많이 번다. 그런데 알라를 믿지 않고, 이상한 다신교, 혹은 당시엔 무신론을 믿는 공산당을 추종했던 것이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화교들이 단체로 마오쩌둥의 공산당으로 쏠린 탓이다.

결국, 인니의 헌법정신 "유일신을 믿는다"라는 계명을 어긴 중국인들에 대해 극우 무슬림 조직은 복수를 시작하는데, 1965~1966년 단 2년 사이에 죽은 중국인만 40만명 정도로 보기도 한다. 특히 여성들이 많이 강간당하고 살해됐다. 전체 피해는 100만 이상 300만 사이. 종교와 군부가 결합이 되어 사람을 선동할 경우, 얼마나 그 피해가 심각한 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후, 화교들은 인니 사회에서 정치 발언을 삼가고, 조용히 살아가게 된다.

5. 1965년 체제

그러고 보면, 1965년은 무언가 무척이나 바쁘고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특히 아시아에선 냉전이 아닌 뜨거운 전쟁의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의 월남 파병 부대가 현지에 도착한 것도 1964년 무렵이었다. 비엣남 전쟁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체가 정권이 교체되며, 공산당과 사회주의에 대한 처절한 "숙청"이 진행됐고, 동시에 공산권에서도 1966년 중국 문화대혁명을 시작으로 거센 저항에 돌입한다.

인니의 현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인 "9.30 사건"을 이해하게 되면, 어째서 인니가 지금도 무슬림 조직의 힘이 쎈건지, 군부가 여전히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는지, 한때는 비동맹 회의의 중심인 나라가, 어설픈 개방경제 체제를 운영 중인지, 등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시아 냉전의 서막에 대한 사후적인 보고서 <액트 오브 킬링>
영화 <액트 오브 킬링> 한 장면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무차별적인 학살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수카르노의 지원으로 급성장했으나, 1965년 역 쿠데타로 몰락했다

PS.

0. 1960년대는 그야말로 "도미노 이론"의 시대. 케네디라는 낭만주의(?) 정치인이 왜 사라진 지 이해가 되기도. 미국은 1960년대 CIA 과잉 활동에 공개 반성을 하진 않았지만, 1990년대 이후 노선 변화를 한 것은 확실해 보임.

1.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하자, 극우 무슬림 조직히 화교를 공격한 것도 1965년 사건의 연장선. 화교들이 부자여서가 아니라, 수하르토-무슬림 정권이 붕괴한 것에 대한 화풀이에 가까움.

2.  1980년대 어째서 그리도 "종속 이론" "반미 정서"가 들불처럼 일었는지 1965 대학살 사건을 보면 이해가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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