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3년 6월
● 여전히 국가의 그림자 짙은 '아시아 미디어' 사업
● 템포가 자존심 키우고, 콤파스가 시장 키운 인니 저널리즘
● 수카르노와 수하르토의 상이한 미디어 대처법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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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언론의 발전 역사는 엇비슷하다. 19세기말~20세기초 "신문산업"이 이식돼 제국주의 정부의 철저한 감독 아래 자국 언어 미디어의 생존을 위한 '적당한 자율성'을 익혔다는 것이다. 독립 이후엔 잠시나마 일정 수준의 "언론자유"를 확보하기도 하는데, 이는 미국의 영향을 받은 탓도 있고, 식민지 언론인들이 당시엔 대체 불가능한 지식인으로 독립운동과 더불어 국가 건설에 앞장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엔 "좌 vs.우 대립"이란 격량에 휩쓸리는데, 1960년대 중반에 이르면, 확실한 한 쪽을 선택하게끔 강요받게 된다. 냉전시기엔 아시아 독재자들이 다수 탄생하고, 그에 따른 언론검열도 사상최고치로 치솟는다. 1970년대가 그 절정기였다. 국가주의에 복무하는 보수 언론이 다수가 되었고, 반독재 투쟁에 선 언론인들은 투옥과 해직, 언론사는 폐간을 반복하게 된다.
1. 자유 반, 억압 반
앞선 배경 때문에 아시아 언론 자유도는 그리 좋았던 적이 없다. 1950년대 잠깐,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서야 사정이 크게 나아진 것이다. 국가가 언론과 사법권을 독점한 나라의 사정이 크게 나빴다는 건 상식이다. 중국, 북한, 버마, 싱가폴 정도가 그러한 범주에 속했다. 언론의 황금기는 잠깐씩 바톤을 이었다. 1950년대엔 버마 언론이 특히 선진적이었고, 1960년대엔 필리핀, 1970년대엔 일본, 1980년대엔 홍콩이 단연코 경쟁적인 언론 환경과 더불어 국제적 영자 신문이 가장 많이 프린트 되는 나라였다. 1990년대 이후엔 한국과 대만 사정이 특히 좋아졌다. 2000년대 이후엔 어딘지 잘 모르겠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에선 전형적인, 평균 수준의 언론자유와 자율성을 가진 나라로 분류된다. 수하르토 30년 독재시대(1967~1998) 마저도 국가가 언론을 모조리 통제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크다는 건 이러한 장점이 있다. 인니는 독재자가 콘트롤하기엔 너무 컸고, 인종과 언어도 너무 많은 다원사회였다는 얘기다. 언론 검열은 심했지만, 덕분에 일정 정도의 자율성은 지켜냈다. 필리핀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2. <템포>와 <꼼빠스>
인도네시아의 대표 미디어에는 주간지 <Tempo>와 일간지 <Kompas>가 첫 번째로 손꼽힌다. 역사성과 저널리즘의 퀄리티에서 아시아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매체다. 특히 주간지 <템포>는 2000년대 이전까진 인니를 깊게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 매체였다. 섬 나라에선 주간지 포지션이 상당히 크다. 전국 배달을 위해선 주간지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템포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1971년 수하르토 정권 초기, 고나완 모하매드(Goenawan Mohamad, 82)라는 전설적인 언론인에 의해 독립 매체로 창간된다. 이후 현재까지 진득한 탐사보도, 특히 군부의 부패를 정면으로 다루며, 독재체제 공격의 최전선에 서왔다.
군인 수하르토는 인니를 우경화로 방향을 돌린 인물이다. 언론에도 시장경제 룰을 적용하다보니 <템포> 같은 위대한 매체도 나올 수 있었다. 1994년, 가족의 비리 보도에 성질이 폭발한 수하르토는 <템포>를 무기한 정간시켜 버린다. 1982년과 1984년에도 이미 두 차례나 정간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럼에도 <템포>를 아예 없애버릴 수는 없었는데, 이는 템포가 쌓아올린 명성과 역사가 수하르토 그 이상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꼼빠스>는 1965년에 시작된 중도보수계열 신문인데, 현재 인니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미디어로 성장했다. 템포만큼은 아니더라도 인니의 저널리즘을 대표한다.
3. 수하르토 vs. 수카르노
요즘엔 이 두 명의 전설적 인니 정치인을 알기가 쉽지 않다. 필자만 해도 1998년 퇴임한 수하르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최근까지 생존한 수하르토(1967~1998)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이승만" 행태에 보다 가까워 보인다. 오래전 인물인 수카르노(1945~1967)는 오히려 "김일성" "박정희" 행태에 가깝다고 느꼈다. 필자도 놀란 대목이다. 역사적 행태 말고, 언론에 대한 정책으로 살펴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독립운동가 수카르노를 민주지도자로 아는 사람도 많은데, 의외로 엄청나게 권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인니 헌법정신인 "빤짜실라"를 활용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즉 "Guided Democracy (교도 민주주의)"를 창시한 인물인데, 그는 국민들도 자신의 철학을 따라 "반제국주의와 반자본주의", 비동맹주의 역사 건설에 동참해 주길 바랬다. 초대 대통령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애국심으로 언론에 대해 강력한 '검열'과 '통제정책'을 실시해, 실제로 몇몇 주요 언론을 없애버릴 정도로 강력히 억압했다.
반면 수하르토는 그의 "독재" 이미지와는 반대로, 언론에 대해선 상당히 느슨한 통제정책을 펼친 게 특징이다. 당연히 검열을 통한 통제 방식도 병행했는데, 수카르노처럼 "반-제국" "반-자본" 이념에 매몰된 게 아닌, 언론사주를 통한 간접 통제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배분해, 언론사가 "자가 검열"에 익숙하게 길들인 것이다. 함께 부패하자는 얘기. 친군부 언론사 숫자는 급증하고, 정부의 떡고물은 풍족하기에 가능한 정책이기도. 물론 그 와중에 <템포>는 폐간에 가까운 탄압을 받았다.
4. 좌익과 우익
수카르노는 그러니까, 좌익 정치인의 대표적 사례가 되고, 수하르토는 우익 정치인의 대표적 사례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수카르노는 처음부터 좌익은 아니었지만, 쿠테타로 실각하게 되는 1965년 무렵에는 공산당과 연립정권에 가까운 관계를 맺고, 부쩍 쏘련과 중공과 친해지던 시점이었다. 미국을 후견인 삼은 수하르토는 군부를 배경으로 쿠데타에 성공하게 되는 데, 처음에는 외국 자본에 나라를 개방하고, 투자를 이끌어 오는 등 마치 개혁개방 정책을 펴는 듯 보였지만, 결국엔 자신의 친인척과 군부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부패한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아마도 아시아에서 가장 부패한 정권에 "인니 수하르토"와 "미얀마 네윈" 정부가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수카르노는 1967년 수하르토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하고 3년 뒤 1970년에 자택에서 비교적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20년 집권 수카르노와 30년 집권 수하르토는 언론을 다루는 아주 상이한 두 가지 방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기록이 될 듯 싶다.
PS.
1. 현재는 <꼼빠스>미디어 그룹의 영향력이 압도적. <템포>는 과거 탐사보도의 전통은 잇고 있지만, 예전의 날카로운 보도와 권위는 크게 줄었음.
2. 인니는 활발한 미디어 활동에도 언론자유도는 현재 상당히 낮은 편임. 180여개 국가 중 120위 정도 그 이유는 주로 군부 시절에 언론사업권을 획득한 일부 재벌과 군벌 등이 미디어사 소유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 제2의 <템포>는 나오지 못했음.
3. 인니와 가장 비슷한 언론 환경은 필리핀 인 듯. 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