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말레이시아의 두 정객, 마하티르와 안와르①

O 2022년 11월 19일, 말레이시아는 총선이 예고됐다. 지난해 여름 총리에 취임한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62) 총리는 10월 5일 국회를 해산하며 국민들의 지지결집에 나섰다. 그러니까 말레이시아가 연방 의회를 해산한 이유는 2018년 선거 이후 만 4년만에 새롭게 정부를 구성하기 위함이고, 현 집권세력인 암노UMNO가 의회 다수당이 아닌 기형적인 정치구조 때문이다.

O 기억을 돌이켜보면 2018년 총선에선 야당연합인 PH, 파카탄 하라판Pakatan Harapan이 승리를 거뒀고, 그 결과 마하티르가 이끄는 세력이 정권을 인수했다. 그러나 선거 승리의 당연한 결과인 안와르 이브라힘으로 정권이 이양되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와 맞물리며 정권이 구 여당인 암노UMNO에게 넘어가는 기괴한 정치 행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선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레이시아 정치의 두 거목인, 마하티르와 안와르의 관계부터 이해해야 한다.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0년 4월


말레이시아의 2020 정치위기 들여다보기.


말레이시아 정계의 '태풍의 핵' 마하티르가 2020년 2월 26일 퇴진했다. 이 때만해도 안와르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문제가 초점이었다.

하지만 94세 노정객 마하티르는 욕심을 거두지 않았다. 퇴진은 안와르 이양을 거부하고 다시 집권을 위한 '꼼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여기서 드라마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국왕은  29일 마하티르도 아니고 안와르도 아닌 무히딘 야신(72)을 신임 총리을 임명했다.

마하티르 재신임을 위한 '신의 한수'인 사임 카드가 거센 역풍에 직면했고, 되레 그를 권력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촉매제가 되었다. 마하티르도 큰 충격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정국에 대해 관전자들마저 딱 부러지게 전망하기 어렵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정상적인 야신의 임명절차를 미뤄지고 있다.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어떤 역사 대하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말레이시아의 2020 정치위기 들여다보기'를 시리즈로 준비해보았다.

  1. 외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말레이 정치

만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적인 위협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쯤 동남아시아의 이목은 마땅히 말레이시아의 복잡한 정국과 마하티르의 퇴진에 초점이 모아졌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사태이고 말레이시아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큰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복잡다단한 정국을 외국인 입장에서 이해하기란 결코 간단치 않다.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군의 성격은 물론이고 10개가 넘는 정당이름이 생소한 것이 첫째 이유라면, 정치 이면에 깔린 역사와 문화가 한국과 비교가 힘들 정도로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의 영역은 자신이 서 있는 정파적 입장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일본 자민당의 아베 총리가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지만, 일본 유권자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10년째 꾸준히 그를 총리로 선택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앞으로 이어질 설명도 일종의 편견으로 가득찬 해석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 글은 주로 싱가포르의 언론을 참고했음도 알려드린다. 싱가포르가 자국의 정치해설은 잘못하는 편이지만, 한때나마 말레이시아 연방 소속이었고 인접국인 탓이 이 주제에 대해서는 가장 발빠르고 객관적인 보도로 유명하다.

어찌보면 이웃 국가의 정치행태를 꼬집는 것으로 본인들의 정치욕구를 푼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도 한창 물밑 작업이 진행중이고 언제든 새로운 연립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이 크기에 복잡한 얘기는 빼고 큰 줄기를 중심으로 설명해보기로 하자.

  1. 94세 노정객의 제2차 퇴장

2월 26일 마하티르는 공중파 TV연설을 통해 자신의 퇴임소식을 발표했다. 당시 퇴임의 변은 구체적인 정치상황을 묘사하기보다는 자신의 진심을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성격이 짙었다.

"내가 퇴임하는 이유는 권력과 지위가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총리의 권력이란 목표를 이루는 수단이었고, 그 목표는 국가의 번영이었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어느 정파가 집권하는 지에만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는 사임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의 전격적인 퇴진 의사는 24일 오전에 이미 이뤄졌다. 그 즉시 말레이시아의 국왕을 만나서 정국을 논의하고, 혼란한 정국을 이끌 과도(interim) 총리로 임명이 된다. 그리고 그 퇴진발표가 있기 하루 전인 23일 오전, 쿠알라룸푸르의 쉐라톤 호텔에서는 구여당인 암노(UMNO) 출신의 정치인 여야의원 수명이 비밀리에 모여 새로운 연립여당의 창설을 위한 모의가 착착 진행 중이었다. 2018년 총선결과를 뒤집는 말레이계의 반란에, 노정객 마하티르가 ‘사표’라는 최강의 수로 대응한 셈이었다.

2018년 5월 총선에서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부패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선택한 '희망연대'가 70년 장기집권이 무너뜨린 것이다. 사진=마하티르 트위터‌ ‌

아마도 마하티르는 국왕의 상징적인 힘을 이용해 왕실은 물론 국민의 재심임을 받을 요량이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해석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국왕은 여느 입헌군주국가처럼 총리를 임명하는 최종적인 헌법기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말레이 국왕은 5년에 한번씩 교체가 되기에 정치적 존재감이 적고, 영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상황에선 현실정치에 개입할 여지가 적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펼쳐진다.

마하티르를 임시총리로 임명한 지 불과 5일 뒤인 29일, 국왕은 마하티르와 같은 당 소속인 무히딘 야신(72)을 신임총리로 선택하는 깜짝 발표를 하게 된 것. 마하티르도 이 결정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마하티르가 당초 구상했던 임시총리의 위치에서 코로나 방역작업과 차기총리인선 작업이 무산되었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배수진이던 총리사임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이는 국왕을 위시한 말레이계 파벌의 역공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결정을 위해 국왕은 5일간 하원의원 222명을 모두 접촉해 후임 총리에 대한 의견을 듣을 뒤, 마하티르에 대한 재신임이 아닌 마하티르와 같은 당 소속인 내무부장관인 무히딘 야신으로 뜻을 굳히게 된다는 얘기다.

곧이어 3월 1일, 야신 내각이 출범하고 즉각 코로나 사태에 국경폐쇄 등의 공격적인 대응하게 되면서 말레이시아 정국은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사태가 ‘정치위기’로 불리는 이유는, 지난 2년 가까이 마하티르와 안와르를 뒷받침하던 연립여당이 2월 말 해체가 된 것도 있지만, 과연 새로운 총리가 주도하는 새로운 연립여당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지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정상적 절차는, 연립여당이 먼저 수립되고 이를 토대로 총리가 지명되고 국왕의 추인이 있어야 하는데 상황이 완전히 반대로 뒤집힌 것. 아직은 무히딘 야신의 내각이 국회의 정상적인 인준을 받은 것은 아니고 그 결정이 잠시 바이러스 사태 뒤로 미뤄진 것이다. 국왕의 뜻을 뒤집는 결정이 나와도 문제고, 그대로 따라가도 말레이시아 정치사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는 해괴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1. 마하티르의 지난 2년은 어땠나?

수십년간 장기 집권을 한 내각책임제 국가가 정권이 바뀌게 되면 그 여진은 수년간, 길게는 십수년도 지속된다. 가까운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로 1993년 1차 자민당이 붕괴한 이후 다시 자민당이 집권하기까지 십년 가까이 혼란이 지속됐다. 대통령제와 달리 국회의원의 과반수를 확보한 연립내각만 만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의 하원은 222명으로 임기는 5년이다. 113명만 뜻을 모으면 총리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게 현실이다.

2020년 현재 진행중인 말레이시아 정국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가지 역사적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

첫번째는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벌어진 마하티르와 안와르의 이념 대결이고, 두 번째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재임했던 라작 총리의 역대 최악의 부패 스캔들, 마지막으로 1958년 말레이시아 독립과 함께 벌어진 말레이계와 중국계의 인종갈등에 대한 얘기다. 이 세가지 대결구도가 말레이시아 정국을 복잡하게 휘감고 있다.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 장기집권을 하며 현대적 국가의 틀을 이룬 마하티르는 92세의 나이에 자신의 비전을 한번 더 추진할 기회를 얻었다.사진=위키피디아

많은 이들이 기억하듯, 2018년 5월 마하티르 총리는 92세의 나이에 세계최고령 총리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함께 16년 만에 정국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1981년에 제 4대 총리에 취임해 2003년 퇴임할때까지 무려 22년간 장기집권하며 현대 말레이시아 경제의 기틀을 다진 최장수 총리는 다시 한번 자신의 비전을 재가동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당시 마하티르에게 주어진 숙제는 대략 3가지였다. 첫째는 전임 부패정권의 구악을 단죄하고 청소하는 것. 둘째는 무너진 나라경제의 비전을 재정립하는 것. 세째는, 안와르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것 등이었다.

실제 마하티르는 과감했고 집요했다. 우선 자신의 집권 시절 비약하던 말레이시아 경제를 몰락시킨 구정권의 나집 라작 총리를 비롯한 구악들을 재판대에 세우는 일이었다. 역사상 최대의 금융범죄로 일컫는 1MDB 사건이 재판대에 오르고, 구정권의 윤리적 해태의 상징인 2007년의 몽골모델 폭사(爆死) 사건도 재판대에 올랐다. 2019년에는 진보적인 여성판사 텡쿠 마이문(61)을 대법원장으로 세우기도 했다.

무너진 나라 경제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1980~1990년대 자신이 입안했던 말레이 경제정책의 핵심이던 '자동차 제조강국'이라는 비전도 다시 등장했다. 이웃한 라이벌 싱가포르와의 불평등한 경계관계에도 전면적인 재조정이 시작됐다. 싱가포르에 헐값에 퍼주던 식수원에 대한 가격 재조정 논의도 시작됐고 쿠알라룸푸르에서서 싱가포르로 연결되는 초고속 열차 프로젝트도 잠정 연기됐다. 싱가포르로의 지나친 연결성은 물류국가 비전을 가진 말레이시아의 미래가치를 훼손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리고 과거 자신의 진정한 후계자로 알려진 안와르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숙제가 남았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마하티르는 쉽게 결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의욕에 앞서 자신의 시대가 이미 흘러갔다는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일까?

마하티르는 왜 주저했을까?

안와르라는 말레이 정치 혁명

1947년생인 안와르 이브라힘(73).
  1. 말레이시아의 양심...30년 전 약속된 '차기지도자'

현재 포트딕슨 국회의원이자 말레이시아 인민정의당(PKR) 당수이며 지난 2월 말까지 연립내각 희망연대(파카탄 하라판·PH)의 리더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2018년 5월의 선거승리는 정치범으로 감옥에 맞아야 했으며, 승리한 직후에 열린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마하티르 이후 차기 총리를 전세계 미디어 앞에서 약속받은 인물이도 했다.

그의 인생 역경은 전세계 그 어떤 정치인 못지 않게 드라마틱하다.

말레이시아 최고의 정치엘리트로 성장한 그는 1983년 불과 36세 나이에 청소년스포츠부 장관에 오른 뒤 이후 4개 부처 장관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1991년 일찌감치 핵심요직인 재정부 장관에 오르며 사실상 마하티르의 후계자로 내정이 된다.

인물에 대한 평가가 깐깐한 마하티르로부터 다방면에서 검증받고 정치력까지 인정받은 것은 물론 신실한 이슬람 지도자인 그는 말 그대로 말레이시아의 '차세대 총리감'이었던 셈이다. 그런 마하티르와 안와르의 끈끈한 연대에 훼방을 놓은 것은 다름아닌 1997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IMF 구제금융 시절을 경험한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역사적 대회전’이 이 둘 사이에 벌어지게 된다. 당시 금융정책을 총괄한 안와르는 “이참에 IMF의 개혁안을 받아 말레이시아의 경제를 개방하고 글로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적 가치’의 주창자인 마하티르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단칼에 일축했다. 결국 마하티르는 국가정보원까지 동원해 안와르를 동성애 혐의로 고발하게 된다. 1999년 그는 6년형을 선고받고 차기총리에서 일순간에 정치 야인이 되는 고난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마하티르와 안와르의 이때의 갈등은 훗날 역사가가 판가름하겠지만, 지금 관점에서도 이 둘 모두 각자의 논리와 근거는 충분했다. 전후세대인 안와르의 관점에서 아시아의 문제는 부족한 투명성과 국제화로 여겨졌다. 1925년 생으로 영국의 식민지를 경험했던 마하티르 관점에서 서구세력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수탈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20년이라는 세대차이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실제 마하티르의 말레이시아는 2000년 초반까지 강력한 해외자본 통제과 고정 환율정책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금융위기 극복사례로 한국의 경제학 교과서에도 소개가 되기도 했다. 반면 안와르의 주장대로 IMF의 쓴약을 받아든 한국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서 2000년 후반부터 두각을 드러냈고, 그 차이는 현재 명백한 경제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1.타락한 후임자들…분노한 마하티르

2018년 초고령의 정치인 마하티르가 총리로 복귀한 데는 안와르와의 교감이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된 배경은 말레이시아의 복잡한 정치판과 마하티르 이후의 정치의 타락을 살펴야 한다.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에 성공한 말라야연방은 암노(UMNO)라는 말레이계 정치세력이 중심이 되어 정치경제를 이끌었다.

역사적으로 말레이라는 민족과 왕국은 수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주로 작은 왕국들을 지칭할 뿐, 현재와 같은 중앙집권 민족 국가는 뚜렷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때문에 영토의 국경선도 애매했고 영토 크기에 비해 인구가 적어 17세기 이후 몰려든 유럽 제국들은 주로 중국인과 인도인들을 데려와 식민지를 경영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독립 당시 인구 비율이 원주민 말레이계가 위협을 받게 되고, 경제력은 아예 중국 이민자 그룹인 화교들이 장악하는 묘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식민지 후반기인 1940~1950년대 말레이시아의 인구가 1000만 명에 살짝 미치지 못했는데, 말레이계가 500만 몇에 불과하고 화교계가 350만 명을 넘어섰다는 기록이 있다. 인구 구조상 화교 비중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었고, 정확히 표현하면 말레이시아는 원주민 말레이계와 화교의 융합 국가에 가까운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편중된 경제비중이었다. 영국식민지 관료들은 적극적으로 중국계를 상업활동에 참여시키고 인도계 역시 관료와 군인으로 고용했다. 원주민 말레이계는 주로 자신의 터전에서 농업활동에 종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국이 물러나고 보니, 국가전체 경제권을 인구가 적은 화교가 80% 이상 장악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정치권력은 말레이계에 있고, 경제권은 화교가 장악하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펼쳐진 것이다.

이에 말레이계 암노 정권은 1960년 후반기 이후 거의 인권탄압 수준에 가까운 '말레이계 우대 정책'을 펼치게 된다. 고위공무원과 명문학교는 물론이고 관급공사나 정부지원금까지 말레이계에게 싹쓸이로 몰아주는 특혜를 수십년간 지속한 것.

‘부미푸트라(원주민 우대)’로 불리던 이 정책은 여러 논란 속에서도 적어도 2000년까지는 이유와 근거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민족간 경제력 격차를 정부가 보이는 손으로 조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60년 이상 지속되면서 말레이 정치가 부패하고 국가 경쟁력까지 좀먹는 역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2. 금수저 출신 ‘나집 라작’ 총리의 부정부패

그 폐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전직 총리인 라집 나작(67)의 어이없는 행태들이다.

나라의 국부 격인 2대 총리이자 마하티르의 정치적 스승인 압둘 라작의 아들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08년 총리에 오르며 2016년 총선에 패배할 때까지 9년이 넘게 아시아 부정부패의 새로운 상징이 된다.

사실 여기에 마하티르도 책임질 부분이 적지 않다. 그 역시도 70년 집권세력 암노의 주요 원로로서 라작의 총리 발탁에 기꺼이 동의한 인물 가운데 속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만고만한 당내 파벌갈등으로 경제개혁이 지지부진해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통성을 가진 금수저 출신 2세 정치인에게 화끈하게 권력을 집중시켜 본 것이다.

마하티르의 후계자를 자처했으나 결과적으로 마하티르의 꿈을 배신한 부정부패의 상징 '나집 라작' 전 총리 (출처: Wikipedia)‌ ‌

나집 라작의 9년 임기 동안 사실 '부정부패'로 국가경쟁력이 좀먹은 사실보다 더 큰 문제는 ‘부미푸트라 특혜’가 개선되기는커녕 되레 강화가 됐다는 데 있다. 마하티르가 퇴임하던 무렵 2003년 말레이시아의 시대정신은 더 이상 “말레이족만이 아닌 모두의 말레이시아“라는 통합의 국가비전이었다. 민족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이제는 하나의 말레이시아로의 정체성을 갖고 함께 평등하게 손잡고 나아가자는 의미였다. 라집 정권이 흥청망청 무려 5조 원을 빼돌린 국부펀드 '1MDB'의 작명도 ”하나의 말레이시아“란 비전에서 나온 이름이다.

보통 부패한 정권이 저지르는 다음 행보는 뻔하다. 한껏 헤쳐먹은 게 들킬 게 두려우니 무조건 선거에 이겨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국민통합’이란 비전은 엿장수에게 맡기고 선거에 이길 수 있는 정략적 궁리에만 몰두하는 식이다.

속이 뻔히 보이는 게리멘더링으로 선거구를 여당에게 유리하게 뒤바꾸고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야당정치인을 탄압하는 것이 1차원적 행보라면, 라집 정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실 그가 사상 최악으로 불리는 이유는 '부미푸트라 정책의 강화'라는 국가분열책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어차피 산토끼는 잡을 확률이 없으니 인구의 60%를 구성한 집토끼 말레이계에게 다시 한번 각종 혜택과 지원금을 싸그리 몰아주는 방식으로 2010년대의 국가 비전을 팔아먹은 것이다.

당연히 나라는 두 개로 쪼개졌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이런 행태에 격분한 마하티르와 안와르가 2018년 역사적 선거연대를 통해 ”70년 집권 부패세력 암노를 이참에 부숴버리자“는 의기투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두 노회한 정객들의 화해에 감동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마하티르+안와르+화교정당“ 연합에 121석을 몰아주어, 79석에 그친 암노를 역사상 최초로 야당의 자리로 밀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계속)

1990년대 정치적 동지인, 마하티르(우)와 안와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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