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비즈니스를 해온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나라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공장 일에 쏟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의 대부분이 하고 있는 사업으로 채워지다 보니 그 틀을 벗어나는 만남과 경험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일천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필자와 같은 이방인의 시각으로
이 거대한 나라에 대해서 무엇을 논한다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한반도의 9배에 달하는 영토를 가진 인구 세계 4위의 대국 인도네시아는
다양성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엮여 있는 곳이다.
이렇게 다양한 컬러를 가진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려면 비즈니스, 여행 또는 음식,
역사나 문화에 대한 주제를 고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외국인들이
가장 관심이 덜한 인도네시아 국내 정치를 토픽으로 선택했다.
글 | 김 정 호, 재인니사업가
작성일 | 2015년 7월 1일
O 인니 제2의 도시 수라바야 최초의 여성시장
O 토족 세력과의 전면전, 철의 여인이란 별명까지
O 위도도 정부의 사회부 장관으로 입각까지, 위도도 이후엔?
남성 정치인들의 독무대인 인도네시아에서 ‘철의 여인’으로 꼽히는 지자체장이 있다. 2010년부터 인도네시아 제 2의 도시인 수라바야 Surabaya 시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뜨리 리스마하리니 Tri Rismaharini는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부 리스마Ibu Risma, 즉 리스마 부인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성품으로 복마전과 같은 도시를 점차 변모시키고 있는 리스마는 수라바야 토박이로 대학도 고향에서 나왔다. 스뿔루 노뺌버 공대 Sepuluh Nopember Institute of Technology 에서 건축학과 도시계획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바로 수라바야 시청 도시계획과 공무원으로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대학시절부터 인턴으로 참여했던 도시 정비 프로젝트에 매력을 느껴 실제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공무원이 되기로 한 것이었다. 도시환경계획과에 근무하는 도중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대학에서 도시계획학 코스를 이수할 기회가 주어졌다. 공부를 하는 동안 유럽 주요 도시들의 항만 정비, 시가지 정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업무에 복귀한 후에는 유럽에서 보고 배운 것을 본격적으로 응용해보고자 했다.
타협 모르는 도시공학자
실력과 열정을 인정받아서 도시환경계획과 과장으로 승진했지만 융통성이 없는 공무원 조직에서 각종 정책들을 추진하는 것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아예 수라바야 시장에 출마하기로 결심한다. 리스마의 잠재력을 보고 접근한 것은 현 대통령이 소속된 투쟁 민주당PDI-P이었다. 지자체장 선거에서도 금품 선거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리스마는 정공법을 택했다. 최대한 유권자들을 발로 찾아다니면서 1대1로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설명해나갔다.
시장 후보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찍어주는 것이 당연시 되는 상황에서 그런 선거운동은 이질적이기까지 했다. 골목 곳곳을 누비며 유권자들에게 설명회를 하던 중 노골적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표를 주면 돈을 얼마나 줄 것이냐고 대놓고 묻는 유권자들에 대한 리스마의 대답은 분명했다. 표를 돈으로 살 생각은 전혀 없으니 자신의 공약에만 근거해서 선택을 해달라고 잘라서 말했다.
리스마가 일으킨 신선한 선거 바람은 마침내 그녀를 수라바야 시장에 당선시켰다. 시장으로서 처음으로 넘어야 하는 산은 공무원과 지역 토호들의 결탁을 끊어내는 것이었다. 수라바야는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주요 길목이 옥외 광고판으로 뒤덮여있다. 옥외 광고판은 엄청난 이권사업으로 인허가 담당 공무원들과 업자들의 결탁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관련 세금을 대폭 올려버렸다. 옥외 광고판이 계속 생겨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이었는데 이 결정을 단독으로 내렸다. 이해당사자들과 옥외광고판 세금 요율 인상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게 되면 결사적인 반대로 공전을 거듭할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결정으로 인해서 리스마는 임기 초기에 큰 정치적인 위기를 맞는다. 수라바야 시의회 의장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시장 해임 결의를 시도했다. 옥외 광고판 세금 요율에 대한 시의 조례를 위반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리스마의 본격적인 개혁 정책이 시작되기 전에 싹을 잘라버리려는 것이 실제 이유였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규합한 시의회에 맞서 리스마는 다시 정공법을 택했다. 자신을 선택한 것은 시민들이니 시민들이 원하면 물러나겠다고 당당히 맞섰다. 시장 직을 걸고 싸우던 리스마에게 강력한 원군이 나타났는데 이런 사안에 대해서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는 내무부 장관이 유권해석을 내려서 시장 직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었다.
정적들의 방해를 헤쳐 나온 리스마는 본격적으로 개혁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지역 건설업자들의 대표적인 이권 사업인 고속도로 건설에 제동을 걸었다. 대규모 토지 소유자들인 지역 토호들은 공무원들을 움직여 기간 도로 건설계획을 수립하게 하고 막대한 토지 보상금 을 챙겨왔다.
이 고속도로 건설의 명분은 항구와 공단 지역을 직통으로 연결해서 시내 중심가의 교통 체증을 줄인다는 것이었는데 리스마는 타당성 조사 결과를 들어 교통 체증 완화 효과가 거의 없다고 계획 자체를 무산시켜버렸다. 교통 문제 해소에 실질적인 도움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시내 순환도로의 추가 건설이라며 전혀 다른 도로 건설계획이 수립되자 지역 토호들의 반발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리스마는 시장 직을 걸고 그들과 정면대결을 했고 결국 패배는 지역토호들의 몫이었다.
매춘 산업과의 전면전
리스마의 또 다른 대범한 싸움은 동남아시아에서 제일 큰 홍등가인 ‘강 돌리’ Gang Dolly를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무려 1천 500여 명의 성매매 여성이 일하는 Gang Dolly는 업주들과 뒤를 봐주는 조직폭력배,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하는 많은 업자들이 얽히고설켜있는 거대한 생태계다.
본격적으로 폐쇄 조치를 취하기 전에 가족들에게 자신이 암살당할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일러둘 정도로 위험한 도박이었다.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500만 루삐아(약 43만 원)의 정착금과 직업교육을 제공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직업을 찾도록 하고 사창가는 완전히 차단하는 정책을 썼지만 매춘업이 워낙 깊이 뿌리내린 곳이라 리스마의 싸움은 힘에 부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손을 댈 수 없다는 ‘강 돌리’를 폐쇄하려는 시도만으로도 리스마의 용기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고향 수라바야를 유럽과 같은 친환경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은 리스마가 대학시절부터 일관되게 품었던 꿈이었다. 그런 꿈은 다양한 테마 공원 건설 프로젝트로 구체화되었다. ‘우정’, ‘표현’, ‘꽃’ 등을 주제로 각 공원들을 이름 짓고 거기에 걸맞게 공원을 조성했다. 공원마다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되고, 도서관과 각종 운동시설이 갖춰졌다.
특히 역점을 둔 따만 붕꿀 Taman Bungkul 공원은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또 1명의 시민이 1그루의 나무심기를 지원하는 ‘One Soul One Tree’ 프로젝트를 통해서 수라바야 해변의 맹그로브 숲을 되살리고 가로수를 정비해서 그린 시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에 옮기고 있다.
도시미관과 청결을 위한 생활 쓰레기 3R(Reduce, Reuse, Recycle) 정책을 추진하면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직접 더러운 하천 속으로 들어가 쓰레기 줍기를 마다하지 않는 리스마의 이런 노력으로 인해 수라바야는 2012년에 동남아시아 지속가능한 환경 도시상 the ASEAN Environmentally Sustainable City Award 2012을 수상했다.
영업 중단 상태인 주유소의 부지를 인수해서 공원을 만들려는 와중에 보상금을 노린 주유소 주인이 끝까지 버티자 한밤중에 공무원들을 동원해서 주유소 땅 전체에 나무를 심어버릴 만큼 강단 있는 리스마 시장. 과감한 실천력과 강한 의지로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있는 그녀는 인도네시아의 차세대 정치인들에게 확실한 롤모델이 되고 있다.
PS.
- 리스마는 2020년부터 위도도 정부의 "사회부 장관 Minister of Social Affairs"으로 활약하고 있음.
2. 리스마를 둘러싼 최대의 논란은 역시 "성매매 금지"에 관한 대목임. 현실적으로 제3세계의 빈민 여성들은 '매춘'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불법으로 몰아갈 경우, 매춘 산업이 더 음성화 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쏟아진 것.
3. 1961년생인 리스마는, 이제 어느새 60살을 넘겨서 차세대 정치인이라고 불리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음. 그녀는 현재 인도네시아 민주당Indonesian Democratic Party에서는 뚜렷하게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어, 차차기 선거에서 다시금 부각될 가능성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