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 호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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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혹했던 군부의 '사가잉 공습', 말로만 규탄하는 국제사회
● 지정학적 가치가 높다는 미얀마? 실상은 "아웃 오브 마인드"
●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지리의 힘, 그리고 그것을 넘어설 힘은?
2021년 쿠데타 이후 3번째 4월 '띤잔(미얀마의 새해)' 휴가 기간이 지나갔다. 띤잔 기간엔 물축제가 당연해 보이지만 코로나 이후 미얀마에서는 기쁨의 축제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이 끝난 올해 역시도 시민들은 '축제'를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고, 반면 양곤의 부유층은 2주간의 휴가를 활용해 인근 방콕으로 건너가 물축제를 즐겼다.
축제가 열리지 못한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 '자제' 덕분이다. 원치 않는 군부의 지배하에 놓인 상황에서 밝고 즐거운 모습을 외부에 보이는 것이 옳지 않다는 판단 때문. 그러나 동시에 NUG 망명 정부가 '축제'를 금지해 불만이라는 볼멘 소리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도시와 시골의 '체제'에 대한 온도차는 클 수 밖에 없다. 도시민들은 안정된 환경에서 "영업"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가잉 참사
최근 사가잉에서의 참사는 겉으로 평온하게 보이지만 여전히 이 나라는 '내전(civil war)' 중이라는 증거가 된다. 사가잉은 카친 족 등 소수민족과 기독교인이 많고, 또 역사적으로 미얀마 '전통성'을 대표하고 있어, 군부 대신 아웅산 수찌 지지도가 높은 지역이다.
사가잉 바로 이웃한 만달레이는 중부 지역의 최대 도시로, 만일 만달레이를 반군에 빼앗기면 미얀마 군부가 입을 타격은 상상 그 이상이다. 중국과 연결이 끊기고 군부가 되레 냇피도에 고립된다. 그래서 더 잔혹하게 시범케이스로 사가잉 민간 집회를 처벌하는 것이다. 군부의 잔혹성을 입증하는 사례이자, 띤잔 축제를 압두고 군부 역시 초조함을 드러낸 사건이 되었다.
현재 미얀마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왕정시대의 수도 ‘만달레이’와 그 남쪽에 자리잡은 군인들의 도시 ‘넷피도’, 그리고 남쪽 해안에 자리한 경제도시 ‘양곤’이다. 세 개의 도시만 강고하게 장악하면 군부가 권력을 잃은 가능성은 없다. 이 세 도시가 차지하는 경제 비중은 80% 이상이지만 면적과 인구 비율은 1/4에 불과하다. 즉, 당분간 군부 중심으로 안정은 취하겠지만 전국 단위의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변화없는 양곤
양곤의 풍경은 1년 전과 큰 변화가 없었다. 전력 사정이 조금 더 나빠진 것 빼고는 시민들의 표정은 안정을 되찾은 느낌이다. 예전 짓다가 코로나 등으로 멈춘 건물도 공사가 재개 되었고, 에어컨이 나오는 쇼핑몰마다 중산층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날씨가 덥고 제한 송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후엔 쇼핑몰로 나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경제적) 양극화 이지요."
오랜 미얀마 친구 A씨는 간단하게 상황을 요약했다. 가진 게 많은 사람에게 이정도의 위기는 위기도 아니라는 얘기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가진 자산이 많아 미얀마에서 살기에 더 좋아진 것이다. 가격이 싸진 부동산도 더 사고, 이 기회에 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 숍을 오픈했다는 거다. 이날 간 카페는 "서울"과 "방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렌디한 공간으로, 값비싼 브런치와 햄버거 파스타 등의 서구요리를 제공했다.
그녀는 한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데, 다행스럽게 미국 달러로 월급을 받기에 이번 위기에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대신 침몰해 가는 양곤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보는 게 무척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양곤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상상 그 이상이다. 전력은 부족하고, 인터넷은 불편해졌고, 직장은 줄어들었는데 월급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일부 외국계 기업을 빼고 대개 내수용 기업이 주는 월급은 110달러(14만원) 정도다. 그 돈으로 여러 가족이 셍계를 이어야 한다.
지정학적 고립
2021년 쿠데타 직후 거리로 쏟아져 나온 대학생들은 "미국의 항공모함"이 양곤 앞바다에 등장해주길 바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NLD 편이라고 알려진 미국에 요청하고, 군부 편으로 알려진 중국 대사관을 찾아 항의하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왜 그랬는 지는 2007년 승려들이 경제적 위기를 이유로 거리로 나선 '샤프론 혁명'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1988년, 민주화 항쟁 당시 미국은 인도양 한구석에 치우친 버마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한창 러시아와 냉전시기인데다가 동유럽, 아프칸, 이란, 북한 등 신경쓸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국 역시 최악의 경기 침체로 허덕이던 시절이었다. 양곤의 백만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국제적 상황을 간파한 군부는 1988년 9월 이후 총으로 거리를 진압해 대략 5천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며 시민 혁명을 무력화 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2007년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미국 중심의 1극 체제가 완성이 된 시점이었고, 러시아는 오래 전에 몰락했고, 중국은 아직은 힘을 웅크린 상태였다.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미국은 미얀마의 정세가 다시 혼란해 지자, 과감히 "항공모함"을 미얀마 쪽으로 이동시킨다는 군사행동 계획을 밝혔다. 인권을 유린한 군부에 대한 국제적인 경제적 제재는 이미 2002년 이후 지속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국제 질서의 변화를 감지한 미얀마 군부는 이번엔 야당과의 타협안을 선택, 2010년에는 다당제 선거를 재개하며 군부통치를 종식했고, 2012년 아웅산 수찌의 NLD를 의회로 받아들였고, 2015년 말 선거를 공정하게 진행해 정권교체를 승인하는 온건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미국의 방치 이유
2021년 쿠데타의 발발과 미국의 무관심은 미얀마 지식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미국과 서방세계가 이 정도로 미얀마를 방치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 10년 넘게 민주주의 확대를 외쳐온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몸을 낮추고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미국은 어째서 그토록 애지중지 아꼈던 미얀마 민주주의와 아웅산 수찌를 보호하지 못했던 것일까?
여러가지 음모설과 정치적인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교훈 탓에, 아시아 국가의 자주권(sovereignty)을 존중하고, 특히 "내정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있지만, 현대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헛소리"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얀마의 '인권 위기'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사실상 미국이 거부하는 형태를 띄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미얀마 국민들도 동의하는 내용인데, "뚜렷한 이익이 없다"는 설명이다. 미국이 주로 개입하는 지역은 "중동"이라는 유라시아 대륙의 허리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이런 장소는 주로 중동의 석유와 관련이 깊고, 러시아의 남하, 그리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 방지와도 관계가 깊다. 그런데, 미얀마의 경우는 미국에 큰 이권이 걸린 국가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미얀마는 중국과 인도 사이에 낀 "무역 국가" 기능을 했지만, 그것은 오래전 얘기고 현재엔 아무런 상품성 있는 자원과 산업적 메리트가 없는 지역이 되었다.
두 번째는, 2021년 당시 이미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상했다는 음모론도 있다. 만약 미국이 미얀마 사태에 개입을 하였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충분한 힘을 쏟지 못하기 때문에 사태를 수수 방관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해석이다. 이 역시도 따지고 보면 "미얀마의 지정학적 가치"가 낮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와 대만과 한반도는 중요하지만, 고작 미얀마 따위에 전력(戰力)을 낭비할 수 없다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군부, 러시아에 바짝
미얀마에 별다른 가치가 없다는 얘기는 앞으로 상당기간, 군부가 다시금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된다. 선거가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즉, 내전 상황에서 인권을 유린하는 군부의 무차별적인 공세가 이어져도, 딱히 그 어떤 세력도 쉽게 개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 띤잔 기간에 벌어진 '사가잉 참사' 역시도 그러한 군부의 실험적인 공세일 가능성도 있다. 국제사회가 개입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얘기다.
당연히 미얀마 군부는 현재 러시아에 강력하게 기댄 상황이다. 그 이유는 "무기"와 "석유" 때문이다.
국제적인 금수조처가 2021년 쿠데타를 기점으로 다시금 재개되었고, 결국 생산능력이 없는 군부는 러시아에 전략 물자를 기대야 하고, 중국의 국경 무역을 통해서 생활 필수품을 공급받아야 한다. 특히 전력이 부족한 미얀마 처지에선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위해서라도 "석유"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자원이다. 현재 서방세계의 SWIFT 망에서 퇴출이 된 러시아는, 중국이 주도하는 결제시스템에 합류했고, 당연히 미얀마에 석유를 팔고 있다.
"딱 한가지, 미얀마의 미래가 바뀔 가능성은, 러시아가 아주 크게 폭망하는 길이 유일합니다."
양곤에서 장기 거주한 연구자 한 분은 이렇게 '국제적 시각'에서 미얀마 위기의 해법을 공개했다. 듣고보니 이것이 맞는 말이었다. 미얀마는 서방과의 경제 관계가 거의 단절되었다. 전통적으로 중립노선을 지켜온 군부는 러시아산 "석유"가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진즉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 "러시아" 편에 서는 모험수를 감행했다. 러시아에 바짝 줄을 댔기 때문에, 러시아가 중국의 결제망을 통해 기름을 준다면, 미얀마 군부도 절대 망할 일이 없다. 문제는 그 반대의 상황이 과연 단시일 내에 가능하냐는 것이다.
지정학적 가치?
돌이켜보면,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란, 북한, 미얀마 등 서방 체제에 적대적인 나라들을 "깡패 국가(Rogue State)"로 묘사하며 정치 경제적 제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의 손은 "시리아"로 향했을 뿐 전통적인 아시아 국가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미얀마의 지리적 위치를 설명할 때면, 딴 민유(Thant Mint-U) 박사가 쓴 "중국과 인도가 만나는 땅(Where China meets India)"라는 표현이 가장 유명하고 널리 쓰인다. 인도양에 접한 미얀마는 한반도의 3.5배나 되는 광활한 땅을 갖고 있으며, 아시아의 밥그릇(bowl)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비옥한 농경지도 갖고 있다. 아시아의 두 거대 문명인 중국과 인도에 바짝 붙어 있기 때문에 일찌감치 오랜 시간 문명을 꽃피웠다. 주변에 바다와 강이 많고, 태국-라오스-방글라데시 등과오 국경을 맞닿고 있다. 왜, 지정학적인 가치가 덜하는 것일까.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하면, 한마디로 미얀마는 "중국"과 "인도"에 너무 가깝기 때문에 문제라는 설명이 필자의 귀를 끌어 당긴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중동(中東) 지역은 정반대로 뚜렷한 지역 패권이 미약한 지역이다. 미국이 반드시 중동을 잡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미얀마는 역사적으로 중국과 인도에 강력한 영향을 받아왔다. 그렇다고 막대한 석유가 나오지도 않는 것이다. 미국이 구지, 이 비좁은(?) 지역으로 가서, 인도와 중국의 신경을 건드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따져보니, 미얀마라는 나라의 운명이 무척이나 안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30년 넘게 산 아웅산 수찌의 "민주주의 이상"을 폄훼하려는 게 아니다. 어찌보면,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외교, 더 구체적을 말하면, 지리적 위치 그리고 패권국가와의 관계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영국이 패권을 갖던 시절엔 "아웅산" 집안의 역할이 분명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압도적인 미국이 등장했고, 2010년 경 잠시 해방의 기운을 만끽했지만, 다시금 중국이 치고 올라오자, 수찌의 자리는 사라진 것이다.
도대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개인과 사회가 풀어낼 수 있는 것일까? 국제 사회의 연결된 힘으로는 불가능한 문제일까? 궁금해지면서도, 동시에 무력해 진다. (계속)
[연재]
2023년 양곤 1일차 : 링크
2023년 양곤 2일차 :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