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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 대표하는 각국 기업들, 대개 화교가문이 창업자
● 끈질긴 부동산 투자로 거대한 자본 축적, 로컬 민족과 충돌 겪기도
● 1998년 외환위기로 절체절명의 위기, 아시아 대표기업에서 중국에 밀리기도
(1편에 이어)
둘째는 동남아에 거주하는 중국인 및 그 후예가 설립하여 운영 하는 화교기업이다. 동남아에서 화교기업의 힘은 현지인 기업을 압도하면서 동남아경제의 한 기둥이 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홍륭그룹, 라이온그룹, 로버트 콱 그룹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교기업들이 있다. 태국의 경우 시암시멘트 그룹을 제외한 전 그룹이 사실상 화교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림 시오 리응, 시나르마스, 바리토, 립뽀 등 이름을 들면 알 만한 기업 은 모두 화교기업이다. 필리핀의 경우도 소리아노, 로페즈 아얄라 등 일부 스페인계 후손의 기업이 있지만 루시오 탄, 탄유, 고콩웨 이, 유쳉코 등 화교기업들이 많다.
물론 화교기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현지와 유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태국의 경우, 화교가 현지와 상대적으로 잘 융합되어 있기 때문에 화교기업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이 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경우, 오랜 기간 현지에서 거주한 화교는 바바(말레이시아) 및 뻐르나간(인도네시아)이라 하여 이미 현지인화되었고 이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유 특별히 현지기업과 분리할 필요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교기업들 중 이민 1세대로 현지에서 최고경 영자로 현직에 있는 인사는 별로 없다. 말레이시아의 로버트 콱, 태국방콕은행의 소폰파닉가문, CP그룹의 다닌 회장 등은 화교 이 민 2세들이다. 화교이민 1세로서 창업을 한 사람들은 이미 노년에 이르렀거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싱가포르 홍륭그룹을 창업한 곽(Kwek. 郭)씨가 형제 중 막내가 1997년 세상을 떠남으로써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최대 기업 중의 하나인 홍륭그룹의 창업 세대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지난 1990년에는 태국 사하그룹을 창업한 티암 초크와타나(Thiam Chokwatana)가 세상을 떴다. 이민 1세로 창업주가 되어 아직 남아 있는 인사들은 인도네시아 살림그룹의 림 시오 리응 (1916년생), 시나르 마스의 에카집타 위자야(1923년생), 립뽀 그룹의 목타르 리야디(1929년생), 필리핀의 루시오 탄(1934년생)이 대표적인 인사일 뿐이다. 이들 또한 대체로 2세들에게 경영권을 상속중인 단계에 있다.
화교기업의 특성
동남아에 중국인이 정착한 역사는 이미 19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동남아에서 화교기업이라고 할 때 화교는 대부분 19세기 후반에 동남아로 이주해온 중국인들과 그들의 후예이다. 화교기업의 성장유형은 대개 비슷하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중국의 광동, 복건, 해남도 등지에서 이주한 화교 1세가 고무농장, 주석광산, 부두, 철물점, 싸전 등에서 일을 하다 돈을 모아 자신의 가게를 차린 것이 시초가 된다. 이들은 소액의 전당포류 와 소매업(미곡, 철물 등)으로 사업을 확대한다. 재수가 좋은 경우 2차 대전 이전에 일본군에게 군수물자를 납품하는 것도 자본을 축적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19%년대 들어 일본이 동 남아로 다시 진출할 때는 많은 화교기업인들이 일본의 종합상사나 제조업체의 에이전트가 되기도 하였다.
또 화교기업들은 같은 중국 상인에게 신용사업을 하면서 성장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의 사업은 아직도 금융업이 많다. 싱가포르의 4대 금융전업그룹,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큰 타격을 입은 태국의 금융기업은 대개가 화교들이 소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도 화교기업은 금융부문을 많이 장악하고 있으나 금융 전업은 아니고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는 형태이다 이 경우 위기가 닥치자 금융이 부실화되면서 역으로 산업자본이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부동산은 화교기업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화교기업인들의 특성 중의 하나는 부동산에 대한 투자였다. 국토가 좁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토지는 높은 수익을 낳았으며, 근대적 공업화를 도입하기 이전의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에서도 부동산 부문은 부를 축적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싱가포르 홍륭그룹의 모 태는 싱가포르 중심지인 센톤웨이 지역의 거대한 부동산이었다. 필리핀의 탄유씨는 2만 헥타르 토지를 소유하여 필리핀정부 다음 의 대토지소유가로 인정되고 있다.
근면과 꽌시로 자본형성
동남아 화교기업인들의 성공요인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근면성이다. 가난을 탈출해 빈몸으로 온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 산은 유교적인 전통 속에서 배운 근면함과 절약정신이었다. 이들 은 대체로 10대 때부터 사업전선에 뛰어들어 24시간이 부족하다고 일하여 자본을 축적했던 것이다.
근면과 아울러 신용은 중요한 성공요인이다. 신용은 소위 관시(關係)의 기초를 구성했다. 화교는 동향, 같은 성씨 그리고 같은 업종이라는 3가지 인연을 중히여기고, 상호부조를 한다. 일단 관 시를 갖게 되면 창업할 때 자금을 빌리기도 하고, 이후에도 정보를 교류하면서 끊임없이 상호격려를 한다.
화교기업인들이 3개의 인연을 중히 여기는 것은 방언이 일차적 인 이유인 것 같다. 주로 동남아에 이주한 중국인들은 광동(깐똔), 복건(호키엔), 해남(하이난)출신이 많으나 한 성에서 왔다고 하여 언어가 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재 쓰이는 방언은 호키엔, 칸또니 테츄, 하까, 하이난어 등이 있는데, 같은 호키엔 안에서도 서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곳이 있다. 특히 태국 화교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테츄(潮州)어의 경우는 광동성 북단의 산뚜에서 온 사람들의 말이지만 칸또니즈보다는 오히려 복건성의 호키엔과 통하고 있다.
방언이 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는 소위 연줄 이민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 자리를 잡은 후에는 고향으로 장가를 든다든지 혹은 형제자매를 데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이렇게 되면 성공한 이민자를 따라서 같은 고향사람들이 줄줄이 건너오게 된다. 또 이들은 대개 같은 업종에 종사하게 되는데 선발자가 가진 정보와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업을 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페 낭섬의 화교는 대개 복건성 시아멘(厦門)출신의 화교들이다.
외환위기와 동남아 기업
1990년대 들어 고도성장에 익숙해 있던 동남아시아의 기업들은 1997년 들어서는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태국에서는 기 업들이 이미 1996년 하반기부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태국 중앙은행이 바트화를 완전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한 1997년 7월 2일 이후 바트화 폭락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추락했다.
바트화 폴락과 함께 태국에서 출발한 동남아 외환위기는 인도 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으로 확산되면서 각국 외환시장에서 통화가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외환유동성의 부족으로 IMF의 지원을 요청했고 비록 IMF의 직접적인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았지만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도 동일한 어려움을 겪었다.
태국기업을 중심으로 동남아경제를 이끌던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전부터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외환위기와 함께 급속도로 몰 락했다. 이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수년간의 고도성장의 결과로 발생한 자산버블과 요소비용 상승이 경쟁력을 저하시키기 시작했 고 이는 바로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기업들은 두 개의 문제에 직 면했다. 하나는 환율상승으로 채무부담이 급속히 증가한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기업의 외화 차입을 엄격히 규제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으나 태국과 인도네시아 기업들은 사정이 달랐다. 환율이 안정된 속에서 국내의 고금리 때문에 태국과 인도네시 아 기업들은 수년 동안 해외에서 저리에 자금을 차입해 왔다. 이들중 일부는 단순히 외화를 차입하여 이를 자국화폐로 환전, 예치하여 금리차를 수익원으로 하기도 했다.
특히 환율이 한 때 6배 이상 폭등한 인도네시아에서는 기업들 이 외채를 상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1997년 말부터 기업 들은 비공식적인 모라토리엄 상태로 들어갔다. 1圄년 들어 정치 사정까지 불안해지면서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태국에서도 자본 집약적인 산업에 투자하던 기업들은 외채를 상환하지 못하게 되 었다.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위기로 인한 수요의 대우인 감소였다. 환율 상승으로 일부 품목의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 같았으나 무역금융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기업들은 이런 기회를 쉽게 활용할 수 없었다. 국내에서는 실업의 증가로 구매력이 급격히 악화되어 나선형의 악순환구조가 나타났다. 기업들은 쌓이는 재고를 처리하지 못해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한편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동남아 기업에게 중요한 문제가 있 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업의 성장과정에서 경쟁을 통하지 않은 사례가 많다는 것은 별도로 하고라도 기업의 지배구조에서 내재 되어 있는 아시아식 시스템은 중대한 문제였다. 국민경제의 대표적인 기업들조차 재무상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특히 인도네시아 기업들은 그룹내의 금융기관으로부터 정부의 대출규정을 지키지 않고 마치 사금고를 이용하듯이 자금을 사용했 다. 더구나 사정이 나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서도 기업인들은 주주의 권익 보호, 채권에 대한 우선권 등 기업이 가져야 할 기본 적인 책임의식을 망각하고 있었다.
1998년 하반기 들어 국제경제 환경이 개선되면서 동남아 경제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기업들은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을 시작하고 채권단과 채무조정 협상을 시작했다. 일부기 업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산을 매각하는가 하면 일부기업은 소극적으로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채무협상에서도 일부 기업은 채권자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 노력하는가 하면 일부 기업은 오만한 자세를 갖고 있기도 했다.
분명한 사실은 동남아 기업이 위기를 벗어난다고 해도 중장기 적인 새로운 과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보다 투명하게 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과거의 가족경영적 의사결정이나, 비투명적 지배구조를 가지고는 개방화된 세계경제 속에서 생존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술개발 등을 통해 자신만의 경쟁우위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동남아 기업이 독자적인 우위요소 없이 성장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룰 내용
기업과 기업인은 경제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인도네시 아나 태국의 먼 농촌에서 위장실업 상태로 있는 농민들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도 기업의 발전은 필요하고 기업가는 성장해야 한 다. 기업의 도산은 신흥공업국으로 부상하던 동남아경제에 큰 타 격이자 기업인들에게는 아픈 상처이다. 이 책은 외환위기와 함께 동남아 기업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 그리고 어떤 요인에 의 해 그러한 문제가 발생했는가, 그리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를 기록한 책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무너졌고 재생과정에 있지만 경제, 사회적으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업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각종 보도나 발표 등을 통해 자료 이용이 가능한 기업들을 선정하여 위 기의 시발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기업인들을 직접 인터뷰해야 하지만 1차적으로 문헌조사 중심으로 작업했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 동남아 기업과 기업인들을 개략적으로 소개할 것이다. 나아가 1998년 금융위기 과정에서 동남아 기업들이 어떻게 대처했는 지를 집중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 경제계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종합적으로는 동남아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한계, 특히 위기에 취약했던 구조와 그 근본에 깔린 '연고 자본주의' 등의 문제점을 다룰 것이다. 동남아 경제 및 기업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끝)
[총론으로서의 해설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