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박번순의 '동남아 경제' 서론①


● 우리는, 동남아 경제와 기업, 어떻게 봐야할까?
● 1990년대, 일본 다음의 아시아 경제 중심지 '동남아'
● 아직은 "화교" 기업이 두드러져, 1998년 외환위기가 갈림길


1. 들어가며

동남아 국가들은 태국을 제외하면 모두 서구의 식민 통치를 경험했고 이 지역을 지배했던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식민지를 건전한 발전의 대상이 아닌 자원공급이나 소비시장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1980년대 이전의 동남아 경제는 농업, 석유, 목재, 고무 주석 등 1차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1, 2차 석유파동으로 국제자원가격이 상승해도 동남아의 이런 모노컬처적 생산구조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이 보였고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만으로도 충분히 성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남아 기업 또한 원료채취 및 가공에 기반을 두었거나 내수를 시장으로 한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자동차, 전자 산업을 일본기업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었던 태국 내 기업은 유통부문과 금융부문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제조업에서는 섬유나 사료, 농가공기업들이 중심기업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거대한 인구를 배경으로 담배, 식품, 목재 등 원료가공형 산업의 기업집단들이 발전했다. 이들은 대부분 수하르토 체제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기업들이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 말레이시아의 기업은 역시 플랜테이션과 부동산을 배경으로 성장했다. 플랜테이션 기업은 대부분 과기 영국식민 지시대에 영국인이 건설했으나 독립과 함께 말레이시아가 회수한 부문이었다. 마하니르 수상이 1981년 정권을 인수한 이후 중화학 공업 정책을 전개하면서 자동차 산업 등 중공업을 시작했으나 아직 취약했다. 필리핀에서는 오랜 전통의 스페인계 후손의 기업들 이 산업계를 대표하고 있었다. 아알라, 소리아노 등이 대표적이었 으며 여기서도 역시 음식료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다.

동남아 경제와 기업

1980년대 중반 국제자원가격이 하락하자 동남아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고유가시대에 막대한 외화를 도입했던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태국까지 심각한 경기침체를 경험했다. 필리핀의 경우는 더 나아가 계엄령으로 철권통치를 하던 마르코스의 문제까지 있었다. 이 시기에 한국이나 대만과 같은 자원이 빈약한 국가는 수출대체형 공업화 전략을 사용하면서 자신들보다 빨리 성장하고 있었다. 동남아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나타난 엔고 현상은 새로운 성장전략을 찾고 있던 동남아 각국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먼저 일본기업들이 동남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일본기업은 이미 동남아가 수입대체 정책을 고수하고 있던 1960년대에도 섬유, 자동차, 가전부문에서 동남아 현지시장을 목표로 진출했으나, 이번의 진출은 목적과 규모가 달랐다. 일본의 전자업체들이 자국내에서 경쟁력이 하락하자 우회수출을 위한 생산기지인 동남아로 몰려온 것이다. 이들의 진출에 따라 동남아는 고도성장을 했고 이와 더불어 기업도 성장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일본기업에 이어 한국이나 대만 홍콩기업들도 진출했다.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면서 경제구조도 변했다. 농업에서 공업 부문으로 자원이 이동했고 생산성은 향상되었다. 노동 인력은 농촌을 떠나 도시지역으로 몰렸고. 각국은 인프라설비를 건설하기위해 투자를 늘려갔다.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면서 동남아시아 국 가들은 자본시장을 개방했고, 고도성장을 보고 외국의 간접투자도 밀려왔다.

수출주도에 의한 경제성장은 동남아기업에게 기회가 되었다. 국민들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소비재부문의 내수가 성장하고 있었다. 공업발전으로 중간재나 원료의 수입이 증가하면서 무역수지 적자 를 우려한 정부에서는 소재 및 중간재 부문의 수입대체 산업에 강 력한 의지를 갖게 되었다. 외국인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통신, 수송, 공업단지 등 사회인프라의 개선이 필요했고 도시화의 진전으로 건설수요도 증가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증권시장의 활황 과 함께 증권, 금융기업에게도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동남아시아의 기업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다국적기업 대리점 형태의 기업들은 새로 진출하는 다국적기업과 연계를 강화했다. 더러는 그들의 기술과 자본을 이용하여 원료부문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수하르토 일가의 기업들이 이 경우에 속했다. 상업, 금융부문의 기업들도 생소한 공업부문으로 투자를 확대했다. 전통적인 플랜테이션 기업들도 새로 운 유망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시장 확대에 따라 내수기업들도 규모를 키워나갔다, 인도네시 아의 살림그룹은 식품, 시멘트, 공업단지 건설 등 전방위로 규모 를 확대했괴 아스트라 인터내셔널도 자동차의 판매증가로 계속 투자를 확대했다. 태국에서도 시암시멘트, CP그룹 등은 내수부문을 확대했다. 내수의 한 부문으로서 원료산업의 진출은 중요 한 경향이었고 금융자유화와 함께 외자를 용이하게 사용하면서 야망있는 기업인이라면 마땅히 도전해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태국의 TPI 그룹과 시암시멘트그룹은 철강과 석유화학에 동시에 투자를 확대해 나갔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석유화학 분야는 가장 유망한 산업이 되어 수하르토 일가와 살림그룹이 진출을 확대했다.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부동산 붐을 초래했다. 태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스카이라인이 변했고 건설회사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다국적기업이 제조업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건설부 문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정부가 인프라 개선을 위해 막대한 건설 프로젝트들을 쏟아냈고 이들을 수주하는 기업들은 급속도로 성장했던 것이다. 바야흐로 동남아기업은 새로운 세계를 맞고 있었다.

싱가포르는 대표적인 '화교' 기업이 지배하는 국가다

동남아 기업인, 그들은 누구인가

이런 상황에서 동남아는 1980년대 말부터 스타 기업인들을 배출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의 경제력이 일본이나 한국기업에 비해 약한 것은 사실이나 각국 경제나 아시아의 질서 형성에 끼치는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시아 위크」지는 매년 아시아의 유력인사 50명(Asia's 50 most powefful people)을 선정하고 있는데 외환위기가 나기 전인 5월에 발표된 1997년의 결과는 동남아 기업인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도네시아 살림그룹의 림 시오 리(Liem Sioe Liong)은 8위, 말레이시아와 홍콩에서 자리잡고 있는 로버트 Kuok Hock Nien)이 13위, 태국 CP그룹의 다닌 체라바논(Dhanin Chearavanont)회장은 15위, 인도네시아의 연고자본가 봅 하산 (Mohamad Bob Hasan)이 Z)위, 그리고 필리핀의 루시오 탄 (Lucio Tan)이35위에 올라 있었다.

중국의 장써민 주석이 1위를 차지한 가운데 2위는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 3위는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이었고 일본의 하시모토 수상은 6위였다. 당시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은 23위였고 기업인으로 일본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Idei Nobuyuki)가 22위, 한국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39위였으므로 동남아시아 기업인들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동남아 기업인은 서구의 기업인 혹은 CEO에 비해서 훨씬 다양 성을 보여주고 있고 성장과정은 흥미를 자아낸다. 중국에서 내전 과 기근의 고통을 피해 혈혈단신으로 이주해온 젊은이들의 성공 담이 그 속에 있고 현지민족의 불평등한 경제력을 제고하기 위해 정부가 육성한 기업인의 이야기가 있다. 창업주 세대가 퇴진하면 서 등장한 2세 그룹이 있고 또 기존의 가족경영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선진화된 차원에서 기술과 혁신으로 무장하기 위해 노력하 는 신흥기업인들도 있다 동남아 기업들은 크게 두 개의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정부가 육성한 기업으로서 일정부분 정부의 사업을 대 행하는 경우이다. 소위 민족기업이다. 동남아국가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크게는 현지인과 화교로 대별될 수 있다. 말레이 시아나 싱가포르에는 상당수의 인도계 인구가 있으나 경제적 측면에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화교는 태국 약 10%, 인도네시아 35% 등 비록 소수민족에 불과하지만 현지의 경제력을 상당부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현지 주류민족의 반발을 사고 사회적 긴장의 원인이 되고 있다.

현지 정부는 민족간의 경제력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 방법 중의 하나가 현지 기업과 기업인을 육성하는 것이다. 동남아에서 정부의 규제완화와 민영화정책은 기업의 발전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으며 특히 특정 독과점산업의 경쟁 도입, 공기업의 민영화시 새로운 기업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경제계 실력판도가 크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규제완화나 민영회를 통해 정부는 특정 기업인을 집중 육성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를 말레이시아에서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 최대 그룹 중의 하나인 사임 다비, 르농, 프로톤 등의 경영인은 마하티르 수상 정부가 발탁한 사람들이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계 기업인을 육성하기 위해 민영화정책을 활용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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