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화교의 고향을 찾아① 주강珠江 삼각주

O 중국 개방의 1등 공신 화교는 어디서 왔을까
O 중국의 광둥-푸젠-상하이 등, 화교의 고향 방문기
O "화인경제" 전문가 박번순 교수의 중국견문록

글 | 박 번 순, 고려대 경상대 교수

15세기 명나라의 정화 선단이 대항해 도중 말라카에 들렸을 때 그들은 말라카에 당인唐人, 즉 중국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중국인은 오래 전부터 동남아에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해외로 나간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였다.중국의 인구는 청나라가 안정되었던 18세기에 급격히 증가해 1850년대에는 4.3억 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인구 팽창으로 가경지가 부족해지나 농민들은 땅을 찾아 이주를 했다. 농민들은 사천, 운남으로 이주를 했고, 요령, 흑룡강 등으로 이주를 했다. 객가인客家, 즉 하카Hakka들은 오랜 기간 푸젠성과 광둥성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 지역은 가뭄과 한발이 잦아 살기가 어려웠고 농토를 갖지 못한 농민들은 저임금을 받고 일을 해야 했다.

이런 농민들의 좌절과 분노는 태평천국의 난에 투영되었지만 태평천국의 난은 외세의 도움을 받은 청 정부에 의해 진압되었다.


화인의 탄생

미국에서 골드러시와 노예해방으로 하와이, 중남미 등에서 노동자 수요가 늘자 중국이 상황과 결합되어 미국과 라틴아메리카로 중국인의 이민은 급증했다. 중국인들은 강제로 혹은 자발적으로 광저우나 마카오를 통해 이민을 갔다. 장래의 부귀에 유혹되거나 우격다짐으로 덫에 걸려든 젊은이들이 쿨리苦力: 중국 출신의 짐꾼 ·광부 ·인력거꾼 등이 되어 ‘돼지 우리’에 갇혀 배로 밀수출 되었다. 1854년에는 중국인을 태운 배 한 척이 샌프란시스코 도착했는데 500명이 중간에 죽고 100여명이 살아남았다. 이들은 경매에 붙여져 루이지아나와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 페루의 섬들 그리고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어느 곳에라도 노예처럼 흩어져 갔다.

동남아로 가는 이민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들었다. 난징조약으로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고, 시아멘, 광저우 등이 개방되면서 동남아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증가했다.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으로 이민이 급증했다. 이들 대부분은 금의환향하여 땅을 사고 가문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광둥성의 주강삼각주와 푸젠성 출신이었다. 동남아로 나간 이민들은 미주지역 이민자들보다 상황이 나았다.

식민지 당국과 협력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던 청나라 정부는 1873년 싱가포르에 영사관을 설치하여 이들을 적절히 감시하고 명예 관직을 팔아 수입도 얻고 그들의 충성심도 유지하려고 했다.

20세기 들어서 동남아 화교의 역할은 변했다. 신해혁명에서 2차 대전 이후 화교들은 중국의 완전한 독립과 중국의 건설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중국에 지원했다. 뜻있는 인사들은 중국에 투자를 했고 학교를 설립했다. 싱가포르에서 중국지원에 앞장섰던 탄까키陳嘉庚, Tan Kah Kee에 의하면 1939년 대일전쟁 비용이 18억 달러였는데 화교의 송금이 11억 달러였다. 송금 중 1/10은 정부에 대한 헌금이었고 나머지는 가족에 보낸 돈이었다. 송금액의 70%는 동남아 화교가, 나머지는 미주 및 기타 지역 화교가 보낸 것이었다.

화교자본의 홈커밍

중국이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을 추진하자 동남아 화교들은 중국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중국 경제는 피폐해졌고 결국 등소평 체제는 개방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죽의 장막 속의 세계에 대해 확신을 가진 서구의 다국적 기업은 없었다. 1979년 7월 광둥성의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 그리고 푸젠성의 시아멘厦門이 경제특구로 지정되었다.

중국당국이 왜 이들을 경제특구로 지정했는가는 분명하다. 중국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과거와 같이 화교자본이었다. 선전은 홍콩과, 주하이는 마카오와 붙어 있다. 시아멘은 대만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었다. 그리고 산터우汕頭는 동남아의 가장 대표적인 화교방인 조주방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동남아의 화교기업들은 중국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투자하기 시작했다. 선전시 외국인직접투자 승인 1호는 태국의 CP그룹이었다. 광둥성과 푸젠성에서 출발했던 화교기업의 투자는 점점 북상했다. 그러나 화교기업의 역량에 비해 중국경제의 성장은 빨랐다. 특히 1990년대 말 화교기업들은 동남아에서 외환위기를 겪으며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의 성장은 중국기업의 역량을 키웠고, 동북아 3국과 서구의 보다 수준 높은 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했다. 화교기업들은 다른 여러 다국적 기업들에 밀려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고 비교우위를 잃어가고 있다. 부동산이나 호텔, 유통업에 진출한 화교기업들은 1970년대 중국이 개방을 할 때는 가장 앞선 투자자로서 중국에 진출했으나 중국의 산업구조가 수출중심의 제조업으로 바뀌면서 그 역할은 점점 감소하고 있다.

중국에서 화교의 현재는 어디에 있는가? 이 글은 2015년 여름, 중국의 광둥-푸젠-상하이 화교의 고향을 찾아본 방문기이다.

주강 삼각주와 화교의 이민

광둥성은 1980년대부터 중국 경제발전을 선도했다. 광둥성의 면적은 한국-남한 면적의 거의 1.8배, 인구는 2014년 현재 1억 700만 명으로 한국의 두 배이다. 1인당 소득은 2012년 8,606달러로서 중국 전체 1인당 소득에 비해서는 아주 높다. 사실 광둥성은 중국의 용광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1979년 지정된 4대 경제특구의 3개가 광둥성에 있었고 외국인 직접투자의 유치로 고도 성장을 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공산당 일부에서 개혁과 개방에 회의적일 때 등소평은 선전 일대를 순행하고 개방의 지속성을 역설했다.

2010년 중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최대인구 도시는 상하이로 인구가 2천만 명 이상이다. 중국에서의 도시 개념은 한국과는 다르다. 상하이시 안에 또 여러 개의 작은 시가 소속되어 있고 면적 또한 크기 때문에 우리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10대 도시 안에서 4위 광저우 1064만, 5위 선전 1036만, 7위 둥관 727만, 10위 포산 677만 명의 4개 도시가 광둥성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9위인 홍콩 706만 명을 포함하면 광둥성 지역에만 중국의 10대 도시 중 5개가 포진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광둥성은 사람 중심의 지역이다.

그런데 사람이 그냥 몰려오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가 사람을 불러 온 것인데, 바로 경제 개방과 함께 광둥성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실제 1978년 이전의 선전은 거의 유명무실한 하나의 현에 불과했지만 30년 만에 인구 천만 명의 도시가 되었고 이러한 인구의 급속한 성장은 인류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광둥성의 중심은 주강삼각주珠江三角洲 지역이다. 자오칭肇慶, 포산佛山, 쟝먼江門, 중산中山, 주하이珠海, 광저우廣州, 둥관東莞, 선전深圳, 후이저우惠州 및 홍콩과 마카오 지역을 포함한 일대를 일반적으로 주강 삼각주 지역이라고 한다. 이 일대를 규정하는 강이 주강인데 길이가 2,000km 이상으로 중국에서 3위의 긴 강이다.

주강 하구, 광저우에서부터 둥관, 포산, 중산, 주하이 시 등이 하구를 둘러싸고 있다 (출처:위키)

중국 경제성장의 요람 "주강"

실제 주강은 다른 3개의 강이 광저우에서 합류하여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먼저 서西강은 자오칭의 시내를 관통하여 북상했다 다시 남하하여 포산의 왼쪽을 따라 흘러 다시 강문의 오른쪽을 돌아 주하이시와 마카오의 왼쪽으로 흘러 바다로 나간다. 그 다음에 북北강은 광둥성 북부의 소관을 관통하여 흘러내려 청원을 지나고 이 강은 포산의 남쪽으로 흐른다. 여기서부터는 서강과 접근하지만 만나지는 않고 중산의 오른쪽으로 흐른다.

서강이나 북강은 중산 쪽으로 흐르면서 수많은 지류들을 만들어 내결국 중산이나 주하이는 강으로 둘러싸인 형태가 된다. 동강은 광둥의 동부 내륙에서 흘러 하원을 지나 혜주를 관통하여 동완시 중심의 북주를 돌아 광주 남쪽의 주강으로 합류한다. 역시 주강으로 합류하기 전에 동강은 많은 지류들을 만들어 낸다.

이와 같이 여러 강이 합류하면서 주강은 광주의 남쪽에서 거대한 강폭을 만들고 이미 바다가 된다. 주강은 홍콩과 마카오 사이의 큰 바다와 연결되고 있다. 주강 삼각주 지역은 곡창지대일 뿐만 아니라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 이후 가장 빨리 성장한 지역이다. 홍콩과 마카오를 바다 어귀에 두고 있기 때문에 주강 삼각주 지역을 중국의 남대문이라 부르기도 한다. 주로 대만, 홍콩 등에서 이주한 노동집약적 경공업체들이 생산을 확대하기 시작하여 점차 산업구조가 고도화된 지역이다.

주강 삼각주 출신의 화교들은 상대적으로 홍콩, 마카오와 미주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형태를 보인다. 이 지역은 광둥성의 동부, 즉 월동지역이나 푸젠성 지역에 비해 일찍부터 개항을 해 있던 광주, 마카오, 그리고 홍콩항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동남아 보다는 상대적으로 미주, 하와이, 일본 등으로 이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Photo: Chinese New Year by Stefano Borghi Cartier


PS.1
[편집자 주] 중국어를 표기하는 방법은 모든 매체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대략 2000년도를 기준으로 그 이전에 알고 있는 지명이나 인명 등의 고유명사는 ‘우리식 한자’로 인식해 발음하고, 최근에 들어온 중국어는 현지 발음으로 익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한쪽으로 통일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습니다. 또한 현재 베이징 표준어 발음을 기준으로 삼다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자어는 물론 동남아에서 화교들이 쓰는 푸젠어와 하카어까지도 건드려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 빚어집니다. 루트아시아 편집진은 당면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통일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섞어 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우리가 중국어를 받아들이되 완전히 한자 발음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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