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반기문, 왜 네피도에 왔을까?

미얀마 양곤 | 2023년 4월 모일

● 2023년 4월 23~24일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미얀마 찾아
● <The Elders 디엘더스>, 넬슨 만델라가 창설한 비정부기구
● 가시적 성과는 없어, 서구사회의 협상안 전달했을 가능성


"지난 2년간 군인들의 폭정이 도를 넘었습니다. 무고한 시민들을 구금하고 재산을 갈취한다니까요. 학생들은 또 얼마나 많이 죽였습니까...우리는 정말 군부를 용서할 수 없어요. 계속 싸울겁니다."

미얀마 양곤에서 만난 50대 초반의 한 중산층 사업가는 군부에 대한 적대감을 생생히 증언했다. 이러한 반응을 나타내는 이들은 그 수가 너무나 많아 보편적인 정서라고 요약해도 될 정도다. 군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한결같이 군부의 잔혹성을 질타하고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호응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예상외로 짤막했다.

"공감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안타깝게도 NLD와 NUG에 뚜렷한 지휘부가 안보입니다. 도대체 누가 78세의 아웅산 수찌 다음의 지도자가 될 거라고 보시나요?"

"사실 그점이 아쉽습니다. 수찌 이후 리더가 없어요."

이 대목은 미얀마 시민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현재 반反군부 투쟁은 미얀마 전역에서 산발적이지만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공중 폭격을 주도하는 군장성과 공군 조종사들이 직접적인 타겟이며, 심지어 선거관리위원회 책임자도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양곤에서만 지난 10일간 4건의 심각한 무장공격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저항은 이어지지만, 그 저항을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풀어낼 대표 정치인이 없다는 얘기다.

반기문, 깜짝방문

4월 24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네피도를 방문하고 돌아갔다.

1박 2일 일정이었다. 미얀마 군부가 보낸 전용기가 태국 방콕으로 건너가 반 총장을 모시고(?) 곧장 수도 네피도로 돌아온 것이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비밀스럽게 벌어진 일이나 그나 23일 오후 네피도에 도착하고 수시간이 지난 밤 9시 미얀마 국영TV 뉴스를 통해 소식을 처음 알게 되었다.

23일 밤 사실 확인과 방문 확인을 위해 많은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24일 오전 신문방송뉴스를 통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알게 되었다. 밤사이에 국미통합정부(NUG)의 논평도 나와 있었다. 자신들에게 알리지 않고 군부의 피뭍은 손과 악수하는 반 총장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미얀마의 정세가 워낙 불안정한 와중이기 때문에 과연 반 총장이 어떤 메시지를 들고 왔을지, 또 전세계적인 관심사인 아웅산 수찌와의 만남을 확약받고 온 것인 지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했다.

24일 오후 네피도를 떠나기 전까지  다수의 군부 지도자들을 만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여러 군부 지도자 가운데 가장 눈길을 모은 2명이 현 군사령관인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이며, 2011년부터 16년까지 5년간 대통령을 역임한 떼인세인(78)이 그 주인공이었다.

특히 떼인 세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는 서방에서 가장 신뢰하는 미얀마 군부 출신의 정치인으로 그의 5년 집권기는, 한국의 박정희나 중국의 덩샤오핑과 비견이 되며, 온건하고 합리적인 군부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미얀마 군부가 떼인세인-반기문 회동을 주선한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UN을 가장 신뢰하는 국가        

반기문 총장의 방문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가 이 나라와 맺은 끈끈한 인연 때문이다. 미얀마는 아시아의 최빈국에 속한다. 2007년 태풍 나르기스로 인해 10만명 이상이 죽고 20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당시 임기 초반의 반 유엔사무총장은 지체없이 미얀마를 찾아 구호물자를 전달한 것이다.

유엔 총장의 당시 미얀마 방문은 향후 군부의 개혁에 상당히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다. 당시 유엔의 지원 이후 전세계의 관심과 지원이 폭증해, 결국은 군부의 내치 실패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구체적인 지원방안과 군부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었기 때문이다. 2016년 아웅산 수찌 정부의 출범에도 당시 2기 임기의 막바지인 반 총장이 또다시 미얀마를 방문해 떼인세인-수찌 전현직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가기도 했다.

미얀마는 특히 유엔에 대한 신뢰가 아주 강한 나라다. 그 이유는 유엔 설립 초기인 1960년대에 버마 출신의 우 딴트(U Thant, 1907~1971)가 아시아인 첫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유엔의 세계적 위상에 큰 기여을 했기 때문이다. 이어 고국에서 그를 군부를 대신할 대통령으로 추대했지만, 갑작스럽게 돌연사하며 그의 시신만 돌아오며 정국을 급랭시켰던 적이 있다. 그만큼 미얀마 국민들에게 유엔은 미국을 대신할만한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세계 대표 기구"라는 인식이 켜켜히 쌓여있다.

반 총장은 심지어 우 딴트에 이은 "아시아인 2번째" 유엔 사무총장 출신이다. 넬슨 만델라가 세운 "더 엘더스(The Elders)"의 부회장 자격이라고 해도, 반 총장의 이번 네피도 방문이 교착중인 미얀마 정국에 미칠 영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컸다.

아세안의 '5개항 평화안' 역설        

반 총장은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에게 크게 두 가지 주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는 "폭력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중담이다. 불과 2주 전 미얀마 중부 사가잉에서는 공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170여명이 끔찍하게 폭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간만에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지만, 알고보면 이같은 공군 폭격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꾸준하게 이어져 온 미얀마 군부의 반복된 비인권적 공격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두 번째는, 아세안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이미 2년 전인 2021년 4월 쿠데타로 인한 불복종 시위가 미얀마 전역에서 불붙고, 이에 대해 군부가 발포를 허용하자, 이에 충격을 받은 아세안 정상들이 급히 모여 확인한 원칙이 바로 5개항 평화안이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폭력행위 즉각적 종식 That all violence in Myanmar be halted immediately.
2.모든 정치단체 대화에 참여 That parties concerned engage in constructive dialogue to seek a peaceful solution in the interests of the people.
3.아세안 특사가 회의 조율 That a special envoy of the ASEAN chair facilitate mediation of the dialogue process, with the assistance of the Secretary-General of ASEAN.
4.아세안의 인도적 지원 That ASEAN provide humanitarian assistance.
5.아세안 특사의 미얀마 방문 That the special envoy and delegation visit Myanmar to meet with all parties concerned.

반 총장이 네피도에까지 날아가 아세안이 제시한 "5개항 협약(agreement)"를 언급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얀마 문제는  아세안이라는 지역기구의 틀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아세안 의장국이 인도네시아, 그리고 조코위도도 대통령이기 때문에, 공을 아세안 의장에게 돌리는 효과도 가져온다.

누구 초청인가? , 수찌는 왜?

이미 수많은 기사가 나왔는데, 이번 방문과 회담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억측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군부의 초청을 받아들인 것은 좋은데, 보통은 이런경우 방문자의 "명분"도 중요하기 때문에, 전세계적인 관심사가 된 아웅산 수찌 면담을 초청 조건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10년간 유엔사무총장을 거친 인물이, 최근 3천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수많은 인권침해적인 만행을 저지른 집단의 초청을 받았을 경우, 어느정도의 반성과 협상 가능성을 보고 초청에 응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미얀마 군부가 그 약속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수찌의 안전과 안녕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일종의 외교적인 프로토콜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는 그 어떠한 직접적인 회담 성과나, 수찌와의 만남이 성사가 되지 못했다. 때문에 미얀마 현지에서도 다양한 "실망"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반 총장이, 아무런 성과 없이 결과적으로 미얀마 군부의 현실 지배력을 승인해주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주로 신문의 만평을 통해서도 표출이 되는데, 한 망명 언론(exile media)의 경우, 이런 식으로 가차없는 풍자를 하기도 했다.

반 씨 : "왜 부른거야?"
민 아웅 흘라잉 : "내가 이겼으니까"  
한 미얀마 망명미디어에 비친 이번 협상에 대한 비판 논평

디 엘더스, The Elders

물론, 판을 조금 더 크게 보자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반 총장이 미얀마와의 인연이 깊고, 같은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서구세력의 일종의 대리인 자격으로 온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 것이다. 반 총장을 초대한 것이 아니라, 이번 초청의 대상인 "더 엘더스, 라는 비정부기구의 존재감을 되새겨야 한다는 얘기다.

<디 엘더스>는 넬슨 만델라 재단이 런던에 만든 세계적 지도자급 인사들이 모인 인권중심의 NGO이다. 코피 아난, 넬슨 만델라, 메리 로빈슨(아일랜드), 투투 대주교 등등, 얼굴과 위치로 봐서 알겠지만, 영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가장 가까운 제3세계 인권인사, 유엔출신들이 대거 집결한 국가지도자급 조직이다. 서방세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사들의 모임으로, 당연히 미얀마 사태를 오랜기간 주의깊게 지켜봤고, 해결책을 모색해돈 단체인 것이다.

특히 지난해 2022년 말에 <디 엘더스>가 미얀마 방문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즉, 이번 반 총장의 방문은 개인자격이 아닌, 서방세계의 입장을 군부에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특사'의 자격을 가진다는 얘기다. 머리가 금발인 서구인이 아닌, 기왕이면 미얀마에 인연을 가진 아시아인 반 총장을 대리인으로 택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전달 내용이 중요하지, 수찌 여사와의 만남 자체가 결정적일 수는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수찌 여사와의 만남의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지정적인 미얀마의 위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얀마 군부의 태도 변화가 1차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최근 일련의 사태(예를 들어 사가잉 참사)와는 무관하게, 미얀마 군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최초의, 결정적인 접근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그 시효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급변하는 정세

미얀마 쿠데타 사태가 복잡하게 꼬인 배경으로는 주변국의 정세가 미얀마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권위주의 체제인 중국과 러시아가 심리적인 미얀마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아무리 서방세계가 경제적인 제재를 하더라도, 러시아산 '석유'와 '무기', 그리고 중국과의 국경무역을 통해 수입되는 '생필품'이 비교적 안정적이기 때문에 미얀마 군부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국경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 '태국'과 '인도'의 상황도 민주세력에게는 여의치가 않다. 태국의 군부는 이미 9년 전부터 집권하며 사실상의 권위주의 체제와 유사하게 작동하고 있다. 인도 역시 민주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미얀마에서의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운동에 있어서는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다. 즉, 인도 역시도 소수민족이 군부에 대항하여 승리하는 구도를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지난해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 역시도 군부 출신, 싱가포르 역시도 미얀마 군부와의 오랜 자금 거래로 인해 미얀마의 숨통을 터주는 역학을 해왔다. 아무리, NUG 정부의 PDF 군대가 군부와 대결을 지속한다고 해도, 주변국이 미얀마의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릴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결국, 미얀마의 문제는 "군부의 전격적인 노선 변경"이 거의 유일한 해법으로 거론이 된다.

이 경우, 서방세계가 어떻게든 군부를 양지로 끌러내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 중재자 역할을 <디 엘더스>와 <아세안 국가연합>이 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즉, 아세안의 보증 아래 군부와 NUG의 타협 없이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이 보여준 "반 총장의 방문"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해 진다.

PS.

1.쿠데타 이후 대치 노선이 길어지면서, 또 예정되었던 총선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가 되면서, 군부에 대한 어느정도 퇴로를 열어주자는 국제사회의 "행동"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

2.만일, 반 총장이 개인자격으로 왔다면, 어떤방식으로든 "수찌 여사"와의 만남을 방문의 조건으로 내걸었을 것이라는 게 긍정적인 해석의 근거가 됨.

3.물론 3~4개월 이내에 군부가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다면, 반 총장과 <디 엘더스>의 일종의 협상안은 무시가 된 것으로 볼 수 있음. 때문에 지속되는 '무장 공격'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사태에 대한 어느정도 기대감을 가져볼 필요가 생겼음.  

반기문 총장과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 등 회담 직후 사진
회담 전경
반기문 전 유엔총장. 이번이 미얀마 3번째 방문으로 인연이 깊다 (미얀마 정부 제공)
<The Elders> 회원들 사진. 홈페이지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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