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 호 재 (루뜨아시앙 에디터)
작성일 | 2023년. 5월 21일
● 대세 걸그룹 <아이브>의 본질적인 계보에 관해
● 시부야에서 탄생한 제이팝의 '블링블링' 계보와 연결
● 프로듀스 48과 아이즈원의 사실상 '적자' 한일 합작 느낌
0.
케이팝의 걸그룹 계보는 아직 뚜렷하게 정립이 되지 못한 영역이다. 인간세 기준으로 고작 1세대(30년)의 짧은 시간 세례만 겪었기 때문이다. 또 한국 사람이라면 워낙 직관적으로 이해가능한 영역이라, 남사스럽게 계보까지 따져가며 즐길 필요가 없었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1세대 s.e.s와 핑클이 "미국을 베낀, 일본을 다시 베낀" 정황이 너무 뚜렷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1997년 데뷔한 s.e.s는 일본의 speed라는 걸그룹(1995 데뷔)과 흡사하다. 또 ses나 speed 모두 미국 TLC의 영향을 받았다. 초기 케이팝은 '제이팝'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탓에, 감히 스스로 원형(prototype)임을 내세울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계보나 족보를 따질 자신감이 부족했었던 것이다.
1. 기획사가 계보
그보다 더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에선 주로 기획사 자체가 '계보'였던 탓이 컸다. 뚜렷하게 SM과 YG, 그리고 걸그룹 명가인 JYP, DSP, 큐브의 색깔이 구분되었던 것. sm은 주로 고급스러운 "(귀족)분위기"에 공을 들였고, YG는 곧죽어도 "힙합" 느낌, jyp는 "고혹적 여성미"에 dsp는 "밝은 귀여움"에 특히 강점을 가졌다.
그런데 2020년 이후 "하이브"라는 절대 강자가 튀어나오고 신생 기획사의 도전까지 거세지면서, 기존 회사중심의 계보가 통째로 뒤흔들리는 지각변동을 겪는 중이다. 즉, 이제는 케이팝 계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거다.
예를들어 4세대 키맨인 <뉴진스>의 등장이 그러한 사례인데, 이 경우는 하이브 혈통인가, SM 후배인가? 그러니까, 하이브라는 괴물이 기존 레이블의 장점을 조목조목 흡수하면터 계보를 꼬아 버린 후폭풍이다. <뉴진스>를 보면 <s.e.s>와 <핑클>을 동시에 계승한 느낌이 진하다. 1990년대 케이팝 1세대의 진정한 계승자를 자임하는 것이며, sm의 정통성을 하이브가 잇는다는 선언같은 것이다.
2. 한일합작?
요즘 대세인 <아이브>는 계보가 비교적 뚜렷한 그룹이다. cj의 최대히트작인 <프로듀스 101, 48>의 적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이즈원>의 유산을 계승한 것이다. 한일 혼성 멤버라는 측면도 그리고 노래와 패션, 퍼포먼스 측면에서 그렇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더 위로 거슬러 갈 수 있을까. <101>이 모방하려는 타겟은 거대 멤버 관점으론 <소녀시대>가 있고, 오디션 중심의 서사는 <트와이스>를 낳은 <식스틴>을 닮았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위로 거슬러 가면, 조금은 엉뚱하게 여성미를 강조하는 <베이비복스>와 가장 가까운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까 장원영이 전면에 나선, 스타십의 간판인 <아이브>라는 소녀그룹의 계보는 한눈에도 복잡한, 흐름을 알 수 없는 복잡한 형태라는 얘기다. 핑클/베복->소시/트와이스->프듀/아이즈원->아이브 이라는 건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3. '블링블링' 신계보
느낌의 차이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걸그룹 1세대는 <분위기>대 <귀여움>의 대결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세대는 <개성>대 <팀워크>의 프레임이랄까. 3세대는 대결 지점이 여러개로 늘었는데 <완성도><다국적><멤버 숫자> <애교 유무> 등의 여러 구별 포인트가 있었다. 그룹이 내뿜는 색깔이 그렇다는 얘기다.
이를 종합해 케이팝 걸그룹을 세대 구분 없이 두 갈래로 나누면 "개성"을 앞세운 서구식 <투애니원>류와 멤버간 케미를 앞세운 동양식 <소녀시대>류로 대별된다. 그런데 "귀여움" "6인조 이상" "한일합작" 특징의 <아이브>는 이러한 전통적인 대립항과는 다른 마이너 분야의 계승자로 보이는 것이다.
특히 아이브는 "장원영"과 "안유진"이라는 걸출한 프듀 출신 2인방의 존재감이 키포인트. 다른 멤버 이름이 쉽게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두 멤버의 '화려함'으로 무대를 주무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이브의 특징은 "블링블링"으로 요약할 수밖에 없게 된다.
4. 시부야 느낌 청담동
한국에서 청담동이 차지하는 위상은 독보적이다. 화려한 부가 집중된 명품, 연예인 특구이기 때문이다. SM의 영향 탓도 있고, 워낙 패션 뷰티 성형 드레스 산업의 중심인 탓에 "꿈"을 먹고 사는 산업과 뗄 수 없는 관계가 특징이다. 결혼시장의 "스-드-메"라는 단어를 접한 분들은 청담동의 위상을 잘 아실 것이다.
판타지 산업의 중심지인 도쿄시 서부 시부야渋谷는 청담동과 엇비슷한 느낌을 전한다. 2000년대 초반 '블링블링'함의 대명사로 아시아의 여러 관광객들을 흡수했던 곳이다. 일본 핫트렌드를 주도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케이팝 홍보도 주로 시부야 교차로를 중심으로 집중되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이 거리가 반짝반짝 과하게 빛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이팝의 전성기는 1980년대이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 아시아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발휘했다. 제이팝 가수들의 TV와 콘서트 무대는 당연히 한국과 홍콩을 비롯한 아이아 엔터 산업의 교과서이자 따라야 할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제이팝이 1990년대 몰락을 하던 시점에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쓸데없을 정도로 '화려함'을 추구했던 것이다. 무대의상과 조명효과 그리고 특수장치의 '과함'이 지금봐도 눈에 거슬릴 정도. 블링블링함이 지나가자, 제이팝은 형체와 그 내면의 힘을 잃고 말았다.
5. 블링블링 '스타쉽'
아이브를 만든 <스타쉽>은 청담동 SM엔터의 우파 전략인 '블링블링' 전통을 고스란히 계승한 회사다. 그래서 화사 위치도 청담동이다. 부부 ceo가 아내는 sm, 남편은 가수 cool 매니저 출신이라서 더 유명하다. 스타쉽은 그 이름답게 "스타" 마케팅에 집중하고, 뮤직비디오와 음악 자체도 블링블링함에 포커싱한다.
<아이브>는 유난히 한국의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걸그룹이다. 장원영의 압도적 미모와 안유진의 시원시원함에 감탄하고,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화려하고 역동적인 뮤직비디오를 "케이팝"의 특징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는 제이팝의 오랜 전통인 "블링블링" 계보에 근접하다. 과거 이 노선은 케이팝의.비주류로, 별다른 히트작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케이팝에도 "블링블링함"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일까. 아니면 스타 자체가 블링블링해서일까. 독특한 현상이라 기록해 본다.
PS.
1. "블링블링" 노선은 누구나 쉽게 따라하기 힘든 전략임. 케이팝 내부에서도 계보를 따지기 힘들 정도. 예전 1세대 <천상지희> 2세대 <라니아> 정도를 떠올릴 수 있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음.
2. <아이브>의 성공은 케이팝이 어느정도 높은 위상을 거두었음을 임증하면서 동시에 위기일 수도 있다는 징후가 될수도. 화려함이 지나쳐 곤혹스러움.
3. 블링블링, 이란 팬택의 "lg폰"이 있었음. 모델도 일본인. 블링블링의 약점은, 경륜을 통한 성장이 어렵다는 데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