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브랜드로서의 '걸 그룹', 르세라핌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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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걸그룹 흥망사에서 "네이밍" 요소는 그리 중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그룹의 이름이 중요한 요소라는 건 누구나 알았지만, 결국 프로젝을 성공시키는 결정적 요소는 "좋은 노래" 팀워크" "화제성" 등이 우선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이 크게 작용한 것도 있다. 걸그룹이라는 건, 노래하는 예쁘장한 여성 아이돌의 집합이라는 고정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음악"이 첫번째고, "여성성"이 두번째 고려 요소였기 때문에, 노래하는 뮤즈를 표현하기 위한 갖가지 작명 아이디어가 총동원되었다. 고전적 접근이었다.

1. 편협했던 작명

한국 연예기획사들이 "브랜드화" 세칭 "작명"에 둔감하고 무지했다는 건 비교적 널리 알려진 얘기다. 케이팝 최고의 퍼포먼스인 보이그룹 이름이 "방탄소년단" "빅뱅" "HOT" "동방신기"라는 점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헛웃음을 쏟아낸 것이 대표적이다.

대중성이 무기인 걸그룹이라고 해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여자친구>와 <G-아이들> 사례를 보자. <미스에이><트와이스>는 또 어떤가? <소녀시대>라는 참사 역시 두고두고 회자될만하다. <오마이걸> <소나무>나 <드림캐처> 같은 이름은 아예 논란도 안된다. 하두 성의가 없어서 말이다. 이런 작명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유치한 이유도 있지만 상업적으로 독점권을 인정받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트와이스> 같은 경우는 영단어 twice에서 왔는데, 이런 평범한 영단어를 독점하긴 애당초 불가능했다. 소녀시대나 여자친구도 마찬가지. 작명의 태생적 한계로 브랜드화에 실패한 것이다. <블랙핑크> 정도가 가장 독창적인 성공한 작명의 사례로 남았다.

2. 하이브, 손절

필자는 한때 걸그룹 <여자친구>의 신실한 팬으로서, 그룹의 갑작스러운 해체, 즉 하이브의 손절은 아주 큰 충격이었다. 업계도의상 과연 이래도 되는가, 하는 미워하는 마음이 대기업 하이브를 향했더랬다.

과연 왜 그런결정을?다양한 이유 가운데 그룹명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룹명은 한 번 정해지면, 그 이름이 곧 정체성으로 무한 확장되기 때문에 교체가 지극히 어렵다. 그룹 수명이 15년 정도라면, 이미 7년 가까이를 쓴 이름을 중간에 교체한다는 건 어불설성이다.

<여.친>이란 친근한 이름이 걸그룹 이름으론 나쁘진 않지만, 브랜드 관점에선 미래가 전혀 없었다는 의미다. 여친이들의 사랑스러움과 노래실력, 그리고 그간쌓아올린 성취에 대해 하이브가 과소평가했을 리 없다. 여전히 강력한 케이팝 브랜드였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게, 중소기업 시절 만든 성의 없는 브랜드였던 게 아닐까. 영어로 번역도 안되고, 줄여 쓰기도 힘든, 독점권 없는 이름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손절의 이유로 추정된다.

3. 프듀48 적자嫡子?

한국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오디션이 <프로듀스> 101과 48이다. 전작에선 <아이오아이>가, 후작에서 <아이즈원>이 나왔다. <I.O.I>는 실패가 예정된 프로젝트였다. 순위에 든 10명의 소속사가 제각각이었기 때문. 48에선 당시 일본의 최정상 아이돌 <AKB 48>이 참여해 화제성은 높았지만, 마찬가지 비극적 파국이 예상됐다.

그런데, 이 무렵 "하이브"라는 괴물이 탄생한 거다.48의 인재들 역시 뿔뿔이 흩어졌지만 <아이브>와 <르세라핌>이 적절하게 계승자가 된 것이다. 스타쉽은 장원영과 안유진을 더 크게 확장시키고, 하이브는 사쿠라, 김채원, 허윤진을 품었다. 허윤진은 원래 순위권 멤버가 아니었음에도 발탁됨으로서, 오디션엔 무조건 참여하는 게 옳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시켰다.

당연히 하이브-쏘스뮤직 입장에선 자사의 10대 신예를 2~3명 정도 포함시켜 프듀 이미지를 상쇄하고 싶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한 멤버의 학폭 논란으로 실패한다. 그럼에도 김채원과 사꾸라 두 명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어찌되었건 <프듀 48> 이미지를 벗긴 쉽지 않았을 듯. 여기에 일본 멤버 카즈하의 추가 합류로, 한-일 합작 느낌까지 이어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프듀 48> 이미지를 단기간에 탈색해낸다.

4. 작명, 작명, 작명

<르세라핌>은 앞서 말한 악조건 속에 탄생한 신생 브랜드다. <여.친>을 손절하고 <아이즈원> 출신들을 대거 영입해 만든, 복잡한 계보의 사연 많은 팀이 되어버리는 거다. 이런 경우는 보통은 약점이 되어 발목을 잡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걸그룹은, s.e.s나 Newjeans 처럼 멤버들이 "재데뷔"없이 한번에 빵 떠서, 여신의 이미지로 등극하는 게 이상적이었다.

이같은 한계를 하이브는 "작명"과 "브랜드"로 커버하고, "미디어 노출 빈도"로 극복하는 정면 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르세라핌은, 노래가 그다지 화제성이 없음에도, 아주 자연스러운 미디어 노출량으로 무척이나 성공적으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다.

Lesserafim 이란 작명은, 이제까지 케이팝 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아주 야심찬 접근법이다. 여기엔, 오너ceo 방시혁의 야심과 미학적 접근이 모두 집약된 모양새다. 중세 유럽에 유행하던 단어를 돌려쓰는 '애너그램' 방식과, 신화에서 차용한 상위 천사의 개념, 한국인들이 고급스럽게 느끼는 프랑스 어감, 게다가 "핌" 이라는 한국어 느낌의 명사형 종결어미도 붙었다.

5. 대중성의 "가치"

케이팝에서 걸그룹은 대중성을 바탕으로 "광고모델"을, 보이그룹은 팬덤을 바탕으로 "콘서트"와 "음반"으로 수익을 올리던 시대가 오래 지속되었다. bts라는 괴물이 나타나 예외를 만들긴 했지만, 확실히 걸그룹은 대중성에서 높은 강점을 지닌다. 밝고 귀엽고 노래까지 잘하는 꽃다운 아가씨를 싫어할 세대와 성별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하이브는 브랜드 확장의 관점에서 <르세라핌>을 경영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용감하고 도전적인 20대 여성에 걸맞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이 브랜드에 투사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 브랜드를 활용하는 명품 상업용품 라인들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유통할 것이다.

이미 패션 굿즈제품이 나왔는 데, 화장품 브랜드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뽑힌 이름이다.<bts> 향수, 머 이러면 웃겨 보이지만 <르세라핌> 향수는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 식이다. 단순한 가수를 넘어, 패션 종합 뷰티 브랜드로 키워낼 수도 있다고. 과연, 그게 생각대로 이루어질 것인가.

피어리스와 르세라핌은 "애너그램" 관계다
출처: 르세라핌 트위터

PS.

1. 그러기 위해선 일단 노래부터 좋아야 할텐데. 아직은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솔직히, 아직은 좋지 않음.

2. 순전히 이것은 "하이브"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냐의 문제일 수도. sm의 <에스파>가 메타 세계에 힘을 뺀 결과 지금은 조금 잠잠한데, hybe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관심이 더 커 보임. 루이비똥과 샤넬을 경쟁자로?

3. <아이즈원> 시절 뒷줄에 주로 배치된, 김채원, 이란 거물을 알아 본 하이브의 안목이 대단함. 심지어 리더 역할까지. 르세라핌이 기대되는 이유는 리더의 잠재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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