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싱가폴 창고업과 힌렁 부도

○싱가포르 실용주의와 창고업 그리고 '힌렁' 그룹
○뒤늦은 이민자 출신에서 세계적 자산가로
○석유 트레이딩 산업 위에 우뚝 선 싱가포르의 본질

필자 | 정호재 2021년 1월 4일

독자 분들 가운데 앞으로 해외에 장기 거주할 분들도 있을 텐데, 이분들께 필자도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삿짐을 최소화하시라”는 내용이다. 과격히 말하면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1인당 가방 2개’면 된다.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물건은 최소 수백 가지다. 한국서 쓰던 모든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것처럼 미련한 짓도 없더라. 설령 조직에서 이사비와 주거비를 지원받는다해도 마찬가지다. 지구촌 어디나 공산품의 품질은 똑같다. 필요에 따라 현지서 사거나 잠시 빌리면 그만이다. 특히 과도한 옷가지나 가구를 들고가는 일은 꼭 말리고 싶다.

그것을 몰랐던 필자는 2017년 싱가폴로 향할 때 과한 욕심을 부렸다. 그런데 2년 뒤 미얀마나 태국으로 재차삼차 움직이게 되자 그 많은 짐의 처리가 문제가 된 것이다. 한국으로 고스란히 돌려보내기가 생각보다 어렵더라. 국경을 두 번이나 건너기엔 생각보다 하찮았던 것이다. 결국 꽤 많은 짐을 버리거나 헐값에 판매하는 등의 부산을 떨어야 했고, 그러고도 싱가폴에 조그만 창고 하나를 빌려 1년 반 가까이 유지비를 부담해야 했다.

창고업자의 압박

애당초 창고는 1년만 빌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유행’이라는 돌발악재가 터졌다. 싱가폴은 2020년 3월부터 7월까지 국가 전체가 강도 높은 서킷브레이커lock down 정책을 펼쳤고, 당연히 모든 학교수업은 온라인화 되었고, 불필요한 국경이동 역시 강력하게 통제됐다. 그 덕에 필자는 싱가폴이 아닌 한국으로 피신해야 했는데 그 와중에 창고 1년 계약이 끝나 버린 것이다. 그런데 전화가 아닌 이메일로 연락을 받다보니 본의 아니게 답신이 늦어졌고, 심지어 현지 휴대전화까지 정지되어 은행온라인 송금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다.


“왜 이리 연락이 안 되세요? 1년 계약이 끝났는데, 어쩌실 건가요?” - 싱가폴 짐 보관소-

“지금은 도저히 갈 수가 없잖아요. 연장해야죠.” - 나 -

“우선 이번 달 연체료부터 매기겠습니다. 전화가 안 되면 메일이라도 확인했어야죠. 그럼 언제까지 연장할 건가요?”

“아이쿠,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 그런데 혹시 제가 돌아간 뒤 한 번에 결제하면 안 될까요? 지금은 은행송금이 어려운데…”

“절대 안 됩니다. 매달 OOO싱달러를 보내지 않는다면 연체료는 계속 늘어날 거고 그러면 우리는 당신의 짐을 책임질 수 없게 되요.”


이 같은 짜증나는 대화를 거의 6개월가량 매달 나눈 것이다. 싱가폴로의 복귀가 기약 없이 늦춰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싱가폴에 있는 지인들께 대납을 부탁해야 했다. 고압적인 싱가폴 창고관리자의 요청은 머리로는 이해되었지만 가슴으론 서운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싱가폴로 복귀해 그곳을 찾아가자 담당자가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그에게 “내가 맡긴 짐이나 포기하고 도망갈 사람으로 보였냐”고 가볍게 항의했는데, 그는 그게 규정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담담하게 답한다. 창고 짐을 포기하는 외국인이 아주 빈번하게 발생하기에 어쩔 수 없이 결제를 압박하는 게 최선이라는 설명이었다.

조금은 뻔한 창고업 얘기로 싱가폴 얘기를 시작한 이유가 있다. 현대적인 국가state는 헤겔식으로 정의하면 “객관적 정신의 최고의 발전단계”라는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윤리성을 지닌 지고지순한 존재에 가깝다. 한마디로 특정 국가를 따로 떼어 정의하기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도시국가 싱가폴의 경우는 실용적으로 정의내리는 게 직관적이고 보다 유용하다고 느끼곤 한다. 3년 넘게 살아보니 그렇다. 그러니까 싱가폴이라는 국가의 본질은 “창고업”에 무척이나 가깝다는 얘기다.

2. 싱가폴 성장신화 ‘OK림’의 몰락

코로나 시국임에도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주가와 부동산 및 비트코인까지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위로만 솟구치고 있지만, 가격이 주춤한 자산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게 원유와 철광석 등 전통적 원자재들이다. 2020년 4월초의 원유가격 급락 사태를 기억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예년 가격을 회복하긴 했지만, 당시는 전 세계를 휘몰아친 코로나 바이러스에 겁이 질려 원유의 선물先物 가격을 무려 “마이너스”로 까지 떨구는 패닉 셀Sell 상황에 몰렸더랬다.

이 같은 폭락장에서 유탄을 맞은 기업이 있으니 바로 싱가폴 최대의 원유파생상품 거래회사인 “힌렁Hin Leong 트레이딩” 그룹이다. 한국에는 4월 19일에 관련 소식이 전해졌는데, 내용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이 회사는 지난 수년간 석유선물거래에서의 손실 약 9000억 원을 감췄던 것인데, 이번 폭락 사태로 인해 누적된 부실채권이 약 4조원에 이르러 파산이 불가피하다는 것과, 이로 인해 수많은 국제 금융기관들로부터 천문학적 소송에 직면했다는 내용이었다.

힌렁 트레이딩은 싱가폴에 자리한 수많은 원자재 회사 가운데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로 손꼽힌다. 그 이유는 여럿인데 유럽계 기업이 시장을 장악한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싱가폴인 Lim Oon Kuin림운퀸이 세워 뚜렷이 활약하는 민족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힌렁그룹은 싱가폴에 대규모 석유 비축창고를 갖춘 것은 물론 30척에 가까운 대형 유조선 그리고 트레이딩 사업까지, 석유거래와 관련된 거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의 싱가폴식 애칭이 “OK 림”이며 중국계 이민자 신화로 더 유명해진 기업이다.

남방중국어閩南語를 영어식으로 표기하면 한국 독자에게 낯설지만 중국이름 그대로 쓰면 손쉽게 이해가 되곤 한다. ‘힌렁’이란 번영繁榮이란 한자의 민난어 발음이며, 림 회장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林恩强임은강이 된다. 그는 1943년 복건성福建省 푸텐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1960년 일가족이 배를 타고 남쪽으로 이주하다가 싱가폴에 정착한 케이스다. 싱가폴에는 아주 다양한 화교집단이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복건성 출신이 60%에 가까운 민난어 중심 사회다. 시기에 차이가 있지만 싱가폴 화교는 대개 19세기 말에 정착했으니, 임 회장은 남들보다 60년 가까이 뒤늦게 싱가폴에 당도한 것이고, 중국인이란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1세대 이민자라고 해야 할 듯싶다. 그런데 불과 60년 만에 싱가폴 최고의 재벌로 성장한 것이다.

3. 석유 트레이딩 ‘싱가폴 번영’의 키워드

전 세계 3대 상품시장은 영국의 런던, 미국의 휴스턴, 그리고 아시아의 싱가포르가 꼽힌다. 세계 3대 상품 트레이딩 회사로는 비톨vitol 글렌코어glencore 트라피규라trafigura가 꼽히기도 한다. 글로벌 상품 시장의 큰손 가운데 최고봉인 글렌코어와 이를 만든 마크 리치Marc Rich 1934-2013라는 인물에 친숙한 한국인은 그리 흔치 않다. 이 회사는 그러니까 IT업계로 따지면 마이크로소프트MS와 빌게이츠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배나 자동차로 실어 나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품을 취급하는 미국 출신의 스위스 기반의 유럽계 회사다.

이 같은 상품거래 기업이 유명하지 않은 이유는 브랜드명이 중요한 소매업이 아니라 도매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성장 역사와 배경이 글로벌 원자재 시장과 연관이 적은 탓도 있고 대부분의 이들 기업이 미국이 아닌 유럽계인 이유도 있다. 게다가 이와 관련된 기업은 SK에너지나 삼성종합화학 GS칼텍스를 비롯해 일부 자원관련 기업과 대기업 종합상사만 관련된 특수시장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경제관련 세미나를 하면서 한 학생이 “유럽이 왜 부자인지 모르겠다”는 질문이 나온 적이 있다. 독일 정도만 제조업이 발달했을 뿐 영국은 물론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인구도 그리 많지 않고 자원도 빈약한데, 1인당 국민소득은 대개 5만 달러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바로 한국과는 무관한 원자재시장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얘기해주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게 20세기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 석유관련 시장을 장악한 이들이 유럽세력인 것이다. 미국이 사우디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유럽은 사우디 이외에 전세계의 석유채굴권과 그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식이다. 한마디로 유럽의 번영은 18세기 ‘광산업’의 세계화에서 시작된 것이고, 제국주의와 함께 아프리카 인도·동남아 남아메리카 등으로 사업을 확대한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물론 자원을 채굴해 정제해서 석유 거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운송수단으로 이동이 가능한 상품시장, 즉 원유와 가스 등은 창고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선물시장 및 파생상품 시장의 거래로 확대된 된다는 것도 이제는 널리 알려졌다. 상품이 채권이 되고 증권화가 되는 식이다. 글로벌 석유관련 현물과 선물 시장의 1년 규모가 $6 트릴리온trillion 달러, 즉 6000조 원에 이른다. 그 이윤의 대부분을 유럽과 미국이 챙겨가는 식이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그 선두에 서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얘기가 잠시 옆으로 샜지만, 그 덕분에 싱가포르에는 한국인이 알만한 기업이 그리 많지도 않고 많을 수도 없다. 대개 원자재를 사고파는 ‘트레이딩’ 기업이기 때문이다. 힌렁 그룹도 수백여 개의 세계 트레이딩 컴퍼니 가운데 하나인 셈이고, 그는 1960년대부터 싱가포르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하는 대표적인 민족 기업이 된 것이다.

지금은 인구 5백만에 1인당 GNP 6만 달러의 선진국 싱가포르가 줄곧 부자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1965년 독립 이전에는 미얀마 경제와 비견될 정도로 가난한 말레이 연방의 국제 항구에 불과했다. 당시 국제항구라고 해도 지금처럼 그리 번듯했던 것도 아니다. 선박의 정박이나 수리, 화물 하역과 적재 정도가 대부분이었고 싱가포르는 1970년대 중계무역으로 본격적인 경제성장의 기틀을 잡고 1980년대부터 국제항과 국제공항을 기반으로 하는 물류업으로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2000년대부터는 선물과 현물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며 국제금융도시로 거듭났던 것이다.

1960낸대 회사 초창기 석유배달 트럭 (출처=힌렁그룹)

4. 석유배달업에서 자원시장의 큰 손으로

임 회장의 출발은 일제시대 아현동에서 자동차 정비업으로 시작한 현대가나 대구에서 쌀장사로 시작한 삼성가 등 한국의 재벌1세대의 성공신화와 무척이나 흡사하다. 임씨 일가는 1960년 중국 복건성에서 배 한척을 몰고 싱가폴에 당도했고, 당시 17세인 임 회장이 그 배를 몰고 싱가포르 앞바다에 정박한 낚싯배들에게 디젤유를 배달해주는 호구지책성 사업을 시작한 게 재벌그룹의 출발이 된다. 이윽고 기름을 배달하기 위해 자동차를 구입했고 1963년 20살의 나이에 자신의 회사 힌렁을 설립, 5년 뒤에는 유조선까지 갖춘 어엿한 석유중개인까지 된다. 1965년의 싱가폴의 독립이 아주 커다란 사업 배경이 된 것도 물론이다.

힌렁과 임운퀸의 성공은 싱가폴의 발전과 맥을 함께 하는 데 크게 3가지의 맥락이 있다. 첫째는 단순히 지정학적인 장점을 살려 물류중심에 그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품자본 시장으로 진화를 거듭한 점, 둘째는 상품시장 가운데 특히 석유산업에 싱가포르 정부와 자본이 막대한 설비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싱가폴은 “석유 위에 뜬 섬”이라고 할 정도로 중동과 동남아산 석유의 중간 기착지가 되었을 정도로 곳곳이 석유저장고로 변신한 것이다.

마지막인 셋째는 주변 정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인데 1970년대엔 베트남 전쟁을 발전의 기회로 삼았다면 1990년대 이후엔 압도적으로 중국경제의 승천에 함께 올라탄 것이다. 힌렁그룹의 빠른 성장은 한마디로 자신의 출신을 활용한 중국과의 압도적인 커넥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힌렁의 물류&해운 자회사 오션탱커스는 3개의 비축기지가 있는데, 말레이시아, 싱가폴, 중국의 닝보宁波 앞바다에 운영하며 중동에서 나는 석유를 빠르게 중국경제에 공급하면서 기업과 싱가폴의 성장에 기여를 했던 것이다.

임 사장의 사업 초기 수 십 년 동안 싱가폴의 석유 산업은 격동의 세월이었다. 중동과 아시아의 정세는 계속 요동쳤고 러시아의 천연가스와 미국의 셰일가스 그리고 이제는 테슬라의 전기자동차가 석유산업을 꾸준하게 위협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림 회장의 지난 60년간의 사업이력에는 선박소유자, 석유저장시설과 항만 소유자, 무역업자, 보험 및 금융업자, 석유구매 및 판매자라는 천연자원의 공급망과 증권시장을 이끌어 왔으며 싱가폴의 발전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 했던 것이다.

림 회장의 성공이 배후에 서있는 중국이란 존재감 덕분인데, 몰락 역시도 1세대 창업주 특유의 독선과 아집, 그리고 아시아식 연고주의에 의한 점도 흥미롭다. 이 회사가 경영난에 빠진 것은 지난 4월의 원유 선물가격 급락 이전에 회계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회계부정에 빠진 여든에 가까운 창업자인 림 회장이 아직도 후계자인 외아들과 손자 회사의 경영에도 개입하는 재벌가문 마인드 때문이라는 게 현지 언론의 분석인데, 실제로 왕 회장의 위치에서 꽤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빈번했고, 결국 이를 감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실을 감추는 최악의 수를 두었다는 얘기다. 한국의 대우그룹이나 아시아나그룹 등 수많은 재벌 그룹의 흥망성쇠를 목격한 한국인 입장에선 무척이나 친숙한 몰락이기도 하다.

5. 싱가폴과 창고비즈니스

힌렁그룹의 사례로 알 수 있듯이 싱가폴의 국가 비즈니스 모델은 한중일의 제조업과는 아주 크게 성질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싱가폴이 자랑하는 가장 최고의 인프라는 공항과 항구와 원자재의 현물과 선물 시장이다. 선물시장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현물시장이 있어야 하고 동남아의 상품이 집결하는 싱가포르는 아주 훌륭한 창고역할이자 상품자본의 증권화가 이루어지기 최적의 장소가 된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확장해 봐도 호텔과 관광 부동산 은행업 역시 마찬가지다. 호텔과 창고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결국 싱가폴 전체가 제3세계 동남아시아 한복판에 자리한 1세계의 대리인 역할을 맡았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싱가폴이라는 공간 자체가 1세계 출신 엘리트와 자본에게 편안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세금 규정 역시 정교하게 설계된 측면이 있다.

상품자본거래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유럽인과 동남아 부호들이 스위스 혹은 싱가포르 국적을 획득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싱가포르의 사례만 살펴보면 대개 영토국가들의 세금이 33%를 넘나들지만 싱가포르는 13% 정도에 그치는 것만 해도 엄청난 메리트가 있다. 또한 싱가포르는 아예 상속세조차 없다. 때문에 싱가폴 시민권이 인기가 있고 싱가폴 은행 역시도 동남아 부호들이 몰려든다. 싱가폴의 주택시장 역시 마찬가지인 셈이다.

싱가폴은 국가 전체가 거대하고 편안한 ‘창고’에 가깝다. 과거에는 동남아의 향신료가 집결을 했다면 20세기엔 석유가 집결을 했고 21세기에는 유무형의 자본과 새로운 산업을 고민하곤 한다. 싱가폴 노동자들은 집요하게 창고를 관리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고, 싱가폴 엘리트들은 새로운 창고 비즈니스를 꿈꾸는 만드는 기획자에 가깝다. 나아가 싱가폴 정치엘리트들은 그 창고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안보정책을 세우는 데 집중한다. 창고 비즈니스는 안보가 압도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이 나라의 모토는 ‘중립中立’과 ‘실용實用’이며 미디어의 자유 역시도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실용주의를 해야 하는데 다양한 목소리는 방해만 되기 때문이다.

2004년 사스Sars 바이러스로 싱가폴의 전통적 창고업이 위기에 직면하자 리센룽 총리와 엘리트들은 카지노 사업이라는 관광산업으로 위기를 돌파해 냈다. 따지고보면 카지노 역시 창고 사업의 일종의 변형일 뿐이다. 21세기 석유산업의 근본적 위기가 찾아온다면 싱가폴은 아마도 다른 창고 사업으로 돌파하려고 할 지 모른다. 코비드-19이라는 위기도 따지고 보면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가 되어가고 있다. 창고의 안전을 고려한 실용주의적인 해법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기에 안전하고 재빠른 싱가폴식 생존 비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PS.

  1. 창고 비즈니스 몰빵 국가 '싱가포르'
  2. 창고형 국가를 상대하는 법 끈질긴 "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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