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 정 호 재
작성일 | 2022년 8월 24일
0.
말레이시아에 가 보신 분은, 말레이가 동서東西로 양분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쿠알라룸푸르KL는 서쪽 반도의 심장부에 자리하고, 휴가지로 유명한 코타키나발루는 동쪽 보르네오 섬 꼭짓점에 자리한다. 그러니까 동말레이는 보르네오섬의 서북쪽을 차지하고 있고, 사라왁주州와 사바州로 나뉘는 데, 얼마나 면적이 크냐하면 한반도가 쑥, 하고 들어갈 정도다.
보르네오섬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도 불리곤 한다. 정글이 대부분으로 예전엔 가구용 목재와 대규모 플랜테이션 산업이 번성해 경제적 가치가 적잖이 컸지만, 지금은 인구가 적고 섬이라는 한계로 인해 산업적으로 무언가 모색하기는 쉽지 않다.
1. 나집 라작, 부패 정치인
2022년 8월 23일 말레이시아의 전 총리 나집 라작의 부패혐의에 의한 12년형刑이 확정이 되었다. 아세안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듯 싶다. 1심 판결이 2018년에 이뤄졌는데, 4년 만에 2심 판결에서도 만장일치로 1심 확정 판결이 난 것이다. 아버지가 왕족 출신에 국부國父 가운데 1명으로 추앙 받는 총리 출신 정치인이며, 본인도 9년 넘게 총리직을 한 거물이지만, 현재 그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평가가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예전에 필자가 나집 라작을 "MB"와 "GH"를 섞어 놓은 인물로 묘사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평가는 바뀌지 않았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가문의 힘을 얻어 승승장구 했고, 총리에 집권해서는 나라의 기둥뿌리를 털어 먹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인물에 가깝다.
그를 둘러싼 스캔들은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결적인 몰락을 재촉하고 확정 지은 사건이 그의 총리 취임해인 2009년 경에 구상된 국부펀드 1MBD다. "하나의 말레이시아 One Malaysia Development" 펀드라는 건데, 말레이 국고와 여러 자산을 기반으로, 이것을 골드만삭스가 증권화를 시킨 '펀드'를 지칭한다. 약 5조원의 증권을 만들어서 대략 총리와 측근 그리고 펀드관리자들이 대충 운영하면서 이리저리 헤쳐먹은 사건을 말한다. 여기엔 조 로Jho low 라는 1981년생 사기꾼이 등장한다. 결국엔 골드만삭스도 5조원대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렸다.
2. 사라왘 미디어의 반기
널리 알려졌듯이, 동남아의 후진국형 부패는 쉽게 발각되지 않는다. 조로와 라작의 수법은 심지어 골드만삭스까지 동원한 선진국형 투기법이었다. 겉으로 보면 뉴욕 본사에서 첨단 자산을 굴리는 듯 보이기에, 국내 언론이 이를 감시하거나 견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국부펀드라고 하면 "나랏님이 어련히 잘 투자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 실체는 아싸리 난장판에 가깝다. 서로가 눈먼 돈, 눈 먼 부동산 차지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뉴욕 부동산을 나랏돈으로 사서, 헐값에 팔아도 이를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 대표적 사례다. 말레이 국부펀드는, 한국의 공기업 해외자원 투자랑 엇비슷하다. 앞뒤로 뒷돈 받을 구멍이 활짝 열린 것이다.
취약한 말레이 국내 언론도 문제였다. 나라 최강의 기득권인 "나집 라작"에 견제구를 날리기 힘들어, 그의 부정부패가 쉬이 넘어가나 싶었지만, 2014년 용기 있는 보도가 역사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사라왘 리포트 sarawak report라는 작은 영자 독립언론이 1mdb 부정부패 의혹을 연일, 집요하고, 철두철미하게 보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과가 바로 "전임 총리"의 12년 형 확정 판결로 이어진 거다.
3. 사라왘 이라는 "변방"
동말레이시아는 아세안 섬의 특성상, 역사라는 게 빈약하다. 과거엔 해양 문명의 근거지가 있었겠지만 대륙과의 연계성 부족으로 독자 문명을 꽃 피우긴 빈약했을 것이다. 그 빈틈을 파고 든 게 19세기 영국인데, 영국의 군인 출신 제임스 브룩Brook이란 인물이 사라왁주 쿠칭에 무역 근거지를 마련하고 1840년대 독자적인 백인 왕국을 만들어 버리게 된다. 원주민 지역에 백인 왕(라자)라니 신기하긴 하다.
물론 2차대전후 독립의 열풍 속에 이런 왕국이 존속하긴 쉽지 않았고, 1946년 영국령 말레이 연방에 병합되어 원주민에게 되돌아간다. 그럼에도 동말레이시아엔 상당수의 영국계 주민이 살았고, 서말레이시아와 은근히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다. 당연히, 본토 말레이 입장에선 "동쪽"은 거저 굴러들어온 떡이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을 쥔 서쪽이 동쪽을 지배한 꼴이라, 동쪽 주민들은 은근한 박탈감을 안게 된 거다. 정부가 약탈적인 자세로 사라왘의 산림과 자원을 대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사라왘 리포트의 탄생이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이 매체의 창립자는 "클레어 류캐슬 브라운(63) Clare Rewcastle Brown"이라는 블로거 겸 작가다. 그녀는 사라왘 태생의 영국인이다. 그러나 그녀의 고향인 사라왘의 환경이 정부에 의해 약탈 되고 망가지는 걸 가슴 아파해, 직접 미디어를 만들어 끈질기게 탐사보도에 나섰는데, 그 연장선에서 "1mdb"의 부패가 포착이 되었고, 결국 이를 끈질기게 세계 언론에 고발해 2017년 국제적인 스캔들로 이끌어 낸 것이다.
4. 진실 보도 언론
당연히 보도 초기엔 엄청난 반발과 언론 탄압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말레이계나 정부 입장에선 얼마나 고까운 일이었겠는가. 나집 라작은 말레이 국부의 아들로 9년동안 장수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그런데, 그 부패를 고발하는 언론은 사라왘이란 변방에 자리한, 심지어 말레이인도 아닌 영국인이 보도한 내용이었다. 그녀의 선조는 아마도 사라왘에서 귀족으로 살며 말레이계를 착취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압제자의 딸이 국부의 아들을 공격한 것이다.
자연스레 말레이 언론과 시민사회도 "사라왘 리포트"를 쉬이 믿지 못하고 언론 탄압에 동조할 수도 있었지만, 진실이 그 모든 편견을 극복시키게 된다. 결국엔 검찰과 경찰은 물론이고, 법원까지 설득해 낸 것이다. 심지어 2018년 말레이시아 첫 정권교체의 결정적인 배경이 되기도 했다. 사라왘 리포트와 그 1인 발행인 류캐슬 브라운은 역사적 아이러니, 즉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 셈이 된다. 나아가, 자유언론은 중요하고, 과거의 압제만큼이나 현실의 압제도 큰 문제, 라는 소중한 교훈을 아시아 민중에게 전달하였다.
PS.
1. 사라왘 리포트는, 애당초 고향의 환경 보호를 주요한 주제로 설립이 되었음. 하지만 정부가 약탈적 개발에 매진 하자, 이에 당당히 반기를 든 것임.
2. 나집 라작, 구속 및 확정 판결은 1986년 필리핀 피플파워에 이은 거의 두 번째 민주적 혁명이라고 부를만 함. 하지만 보다 더 민주적이기에, 말레이시아 미래에 커다란 분기점이 될 전망.
3. 사기꾼 "조로"는 돈이 넘쳐나 아예 많은 한류 스타들과 직접 교류하기도. yg에 소속했을 당시의 싸이psy가 그 주인공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