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화교의 고향② 손중산과 팍슨 백화점

○ 중국 근대화의 사상적 물질적 뒷배는 바로 "광둥 출신 화교"
○ 중국과 대만의 국부 "손중산" 쑨원을 배출한 광둥, 오랜 상거래 역사
○ 동남아 휩쓴 "팍슨 백화점"은 광둥 출신 말레이 화교 작품

글 | 박 번 순, 고려대 경상대 교수


주강삼각주 서북부에 있는 도시가 자오칭肇庆이다. 청나라는 광둥과 광서를 ‘양광’이라 했고 초기에는 자오칭에 양 지역을 총괄하는 양광총독부를 두었다. 18세기 중엽 건륭제가 총독부를 광주로 옮길 때까지 자오칭은 이 지역의 중심도시였다. 따라서 16세기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 중국에 왔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마카오에서 이 자오칭으로 와서 거의 6년을 살면서 점차 중국의 내륙지방, 궁극적으로는 베이징으로 올라갔다.

베트남의 호이안과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 등 동남아의 작은 도시에서는 광조회관廣肇會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광주부와 자오칭부 출신들이 만든 것이다.

화교 사회엔 “화교대하”

기차가 도착한 자오칭역은 시내 중심가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 자오칭의 중심가에 있는 관광지인 성호의 부근에는 화교대하가 있다. 화교대하는 호텔로 이용되고 있고, 주차장에서 자오칭-홍콩 버스가 하루에 몇 대 출발한다. 광둥이나 푸젠 어느 도시에나 있는 화교대하라는 빌딩 이름은 대부분 화교자본이 투자를 하여 호텔을 세운 것이다. 개혁개방의 시대에 들어 화교들은 초기에 부동산 등에 투자를 했는데 호텔은 중요한 수단이었다. 자오칭의 화교대하는 대하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3~4층의 낡은 건물이다.

자오칭에서 마카오까지 가는 길은 포산, 강문, 중산을 모두 거치게 된다. 중국의 근대에 3명의 걸출한 사람들이 이 지역에서 출생했다. 포산 출신의 강유위1858-1927, 중산의 손문1866-1925, 그리고 강문 출신의 양계초1873-1929이다. 이들은 모두 중국의 근대화에 사상적 혹은 실천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지만 강유위와 양계초가 개혁을 통해 중국을 근대화 시킬 생각을 했으나 손문은 혁명을 통한 청나라 군주제의 붕괴를 목표로 했다. 따라서 유학에 기반한 유신을 강조한 강유위와 양계초는 이견은 있었으나 동지적 입장에서 손문과 타협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이들이 국내외에서 활동할 때 모두 화교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 미국, 동남아, 유럽을 계속 떠돌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화교들은 돈을 거두어 이들에게 생활비를 제공했고 거처를 마련해 주었으며 군자금을 공급했다. 이들은 또한 화교들의 지원을 얻기 위해 그들이 상상하는 새로운 중국에 대해서 화교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했고 그들의 애국심을 고취해야 했다. 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주강삼각주 출신의 화교들이 세계에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주강이 배출한 큰 인물, 손문

이들 중에서도 중국과 대만 양측에서 모두 국부國父로 기리고 있는 손중산은 향산현 취형촌의 빈가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중산中山으로 이름이 바뀐 향산은 오래 전에는 주강 삼각주의 지류들에 의해 산재한 섬들 같았지만 점차 개간을 한다거나 간척을 하여 강상이나 해면은 점차 육지로 변했다.

중산은 19세기와 20세기 중국이 겪은 고통을 지켜봤다. 제 1차 아편전쟁의 많은 전투가 중산이나 주변에서 일어났다. 아편전쟁 이후 외국의 영향력은 이 지역에 더 높아졌고 중산 사람들은 외국에서 유학을 해 근대중국을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1937년 7월 제 2차 중일전쟁 기간에 일본군이 중산현의 여러 섬들을 장악했고, 1940년 3월에는 중산현 대부분을 장악했다. 이후 일본이 무조건 항복과 함께 물러났으나 중산은 국공 싸움의 중요한 대치점이 되었다. 그리고 1949년 10월 30일 공산군이 마침내 국민당을 패퇴시켰다.

중산 취형촌에는 손중산 고거가 국가가 보호하는 문물로 지정되어 있다. 손문전기를 쓴 시프린에 따르면 손문은 실패만 하는 혁명가였지만 중국과 대만 양쪽에서 모두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손중산은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중화민국을 세운 신해혁명을 이끈 지도자였다. 그는 삼민주의를 주장했다.

그가 1925년 죽지 않고 더 오래 살아남았다면 실제 중국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도 그는 일찍 죽어서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가 된 것이고 오늘날 중국과 대만이 공통으로 갖는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중산시내는 서강의 한 지류인 석기하石岐河가 50미터 정도의 너비로 천천히 흐르고 있는 가운데 강변 양쪽에 강변로를 만들어 두었다. 강변에는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저녁에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그럴 듯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강변에는 말레이시아의 화교 기업인 라이온獅子그룹의 팍슨백화점이 있는데 석조건물은 고전적 스타일에 고급석재로 지어 단아하고도 품위가 있어 보인다. 팍슨백화점은 2014년 말 현재 중국에만 60개가 설립되어 있다.

동남아 휩쓴 '팍슨' 백화점

라이온그룹, 獅子그룹은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 집단 중의 하나이다. 2022년 현재 회장은 탄스리 윌리암 종Tan Sri William Cheng, 鐘廷森이며 화교 3세로서 1943년 싱가포르에서 태어났다.

라이온 그룹을 창업한 윌리암의 조부는 광둥성 조주부의 조양 출신으로 1920년대에 싱가포르로 이민을 와서 작은 가게를 차려 사업을 시작했다. 라이온 그룹의 주요 진출분야는 철강분야인데 1978년 정부의 허가를 받아 철강공장을 건설했다. 또한 일본의 스즈키 오토바이의 말레이시아 내 조립을 하고 있다. 윌리암 종은 1987년 백화점 분야에 진출해 팍슨百盛을 시작했다.

기존에 철강이 주요업종이었던 라이온 그룹은 이제 대외적으로 팍슨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팍슨은 1994년 베이징에 최초의 백화점을 개점했다. 중국의 유통시장에서 중급 및 중고급 시장을 목표로 한 것이다. 팍슨은 외국 백화점 중에서는 중국에 가장 이른 시간에 진출한 브랜드로서 2014년 말 현재 33개 도시에 60개의 매장을 소유하고 있다.

강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행가로 들어서면 19세기 후반부터 외국에 개방된 이후 들어선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 중의 한 건물에는 향산상회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손문은 1912년 4월 중화민국 임시총통을 사임하고 1912년 5월 전국철도총독이 된다. 철도건설이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그는 곧 고향을 방문하여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당시 이 자리에는 혜원의원이 있었는데 여기서 그는 중산의 상공인들을 만났고 1920년에 중산현 당국은 이 사실을 기념하여 이 자리에 향산상회 건물을 지었다.

동남아 최고급 소매 브랜드 "팍슨", 광저우 화교들이 말레이시아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위키)

중산에서 홍콩으로

주강삼각주의 중심은 홍콩이다. 아편 전쟁 이후 중국은 난징조약에 의해 홍콩을 영국에 할양했다. 1840년대 이후 주강 삼각주 지역에서 외부세계로 나가는 관문은 홍콩이었다. 현재도 중강 삼각주의 대부분의 도시에서 홍콩으로 선편을 이용할 수 있다. 중산에서 홍콩행 배는 하루에 7편이 운행되고 있다. 홍콩 침사추이에 있는 차이나페리터미널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70분에 불과하다.

중산부두는 서강의 한 지류라고 할 수 잇는 횡문수도橫門水道에 있다. 배는 수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100년 전에도 중산 사람들은 이 강을 따라 대양을 나갔을 것이다. 심지어 손문의 큰형 손미孫眉도 이 수도를 따라 내려가 하와이로 노동을 하러 갔을 것이다. 그리고 손문이 형이 있는 하와이로 갈 때도 이 강을 따라 홍콩으로 그리고 다시 요코하마로 갔음에 틀림없다.

중산의 인구는 200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해외 중산 출신이나 그 자손의 수는 8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중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이 강을 따라 불안과 초조 그리고 희망과 기대를 안고 떠나고 돌아왔을까?

중산부두는 무역항의 기능을 하고 있다. 여기저기 소형 컨테이너 선박이 정박 중이고 화물을 싣는 크레인도 많이 보인다. 국제해운 회사들의 컨테이너도 많다. 강물은 탁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강폭은 넓어졌다. 20분이 지났을 때는 저 멀리 주하이항으로 생각되는 항구가 보인다. 다시 30분이 지나면 배는 완전한 바다 위를 달린다. 그래서 물빛은 푸르러졌고 이윽고 여기 저기 섬이 많아졌다. 곧 왼쪽으로 홍콩의 고층 건물들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작가 쥘 베른이 “80일 간의 세계일주”를 펴낸 때가 1873년 이었다. 주인공 포그씨는 80일 동안에 세계 일주를 끝낼 수 있다고 런던의 신사들과 내기를 했다. 그의 세계일주 루트는 런던-프랑스 몽스니-이탈리아의 브린디시-스웨즈운하-인도봄베이-캘터타-홍콩-요코하마-샌프란시스코-뉴욕-런던이었다.

80일간에 세계 일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를 이루는 알프스산맥에 몽스니 터널이 생기면서 기차가 놓였고 스웨즈운하가 개통되면서 아시아로 가는 길이 더 이상 아프리카를 돌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도 인도대륙 철로가 놓였다. 캘커타-싱가포르-홍콩은 모두 영국의 식민지였다.

PS

  1. 메인 사진은 왼쪽부터 "캉웨이" "손중산(쑨원)" "량계초(량치차오)" 청나라 말기에 나라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인 인물들이 광둥에 집중된 것은 우연이 아님.
  2. 라이온스 그룹과 팍슨 백화점은 1990년대와 2000년을 전후해 중국 대륙에 막대한 투자를 벌이기도. 즉, 중국의 산업화와 경제적 번영엔 동남아 화교들의 힘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음.
광둥성의 위치. 중국의 해안 도시는 대개 화교네트워크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PARKSON] 팍슨, 빠이승? 백성?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백화점 브랜드가 바로 팍손Parkson 이라는 브랜드다. 면세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어,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지명도가 높은 유통 브랜드다. 다만, 발음과 뜻을 유추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소하게 느껴지기 십상이다. 百盛 일백 백과 번성할 성,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는 ‘백성’이 된다. 한자어를 쓰기 때문에 중국 기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확히는 말레이계 화교 소유의 유통 브랜드다. 백성을 중국 본토 발음이라면 “빠이승” 정도일텐데, 이를 칸토니즈, 즉 광둥식으로 발음하면 “빠악승” 정도가 된다. 이를 영어알파벳으로 표기한 것이 PARSON이고, 다시 이를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팍슨”이 된다.

라이온스그룹은 1970년대 말레이시아에서 최대 철강 제조사로 자본을 축적한다. 이어 일본의 스즈키 오토바이 부분을 제조하면서 사업을 확장하고 1980년대 후반에 바로 이 “팍슨” 이란 이름으로 유통업 부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라이온스 그룹의 대표 브랜드이자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전세계로 뻗어간 것이다. 말레이시아에만 40여개의 대형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고, 중국와 아세안에 130여개 이상의 고급 매장과 그 이상의 소매점 및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여러 지분을 갖고 있을 정도다. 전세계 화교가 사업을 하는 곳엔 팍슨이 있다는 말도 있다. 한국에서 롯데와 신세계가 아마존과 쿠팡에 고전하듯, 고전적 유통사업이라 미래 성장 잠재력이 어두워 지고 있다는 전망도 있다. 팍슨과 라이온스 그룹은 홍콩 시장에 상장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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