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죽은자들의 정치, 필리핀 2022 대선

O 필리핀 한인 교민 출신이 바라본, 2022년 필리핀 대선 감상문
O 독재자의 아들 봉봉 마르코스, 압도적 승리 코앞으로
O 왜, 필리핀은 독재자의 아들을 대통령으로 뽑는가? "우땅나룹" 때문에!

글 | 알렉스 킴 Alex Kim

작성일 | 2022년 4월 25일


1989년 하와이 호놀룰루의 한 병원에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Sr. 전 필리핀 대통령(1965-1986)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1986년 2월 피플 파워People Power 시민혁명으로 21년간의 철권 독재정치에서 쫒겨난지 3년 만이었다.

필리핀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질듯했던 그에 대한 관심은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그의 장례와 가족의 귀국 문제로 옮겨지면서 또 한 번 정치적 논란거리가 되었다. 그가 유언으로 남겼다는 '고향에 묻어달라'는 내용이 공개되면서 마르코스 시신의 필리핀 국내 운구에 필리피노들의 관심이 모아진 것이다.

영웅묘지에 잠들기까지

피플 파워로 정권을 잡았던 코라손 아퀴노Corazon Aquino 대통령은 마르코스의 운구 본국송환 요청을 거절했다. 마르코스의 귀국이 가져올 정치적 혼란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남편, 니노이 아퀴노 전 상원의원의 사망과 피플 파워에 대한 국민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입장에서 죽은 정적政敵의 귀환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운구는 그다음  피델 라모스Fidel V. Ramos 대통령 임기 중인 1993년 이뤄지게 되는데, 수도인 마닐라가 아니라 그의 고향인 일로코스 놀테Ilocos Norte 로 한다는 조건을 유가족 측에서 수용한 결과였다. 사망 후 4년 만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코스의 시신은 안장될 묘지를 찾기까지 우선 냉장 지하실에 임시 안치된다. 임시 안치 중 마르코스의 시신은 방부 처리된 상태로 투명한 유리관에 담겨 고향 주민들과 일반에 공개되었다. 결과적으로 마르코스의 영구 안장은 2016년에 이루어졌는데 사망으로부터 27년, 본인이 권좌에 앉아있던 기간 21년보다 6년이나 더 긴 시간이었다.

사망 후 9년이 지나고 라모스 대통령에 이어 조셉 에스트라다Joseph Estrada가 당선되자 마르코스의 아내 이멜다Imeda Marcos는 전직 대통령이었던 남편이 필리핀 국립 영웅묘지 Libingan na mga Bayani 에 묻힐 수 있도록 요청했다. 대통령 재임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 했을 뿐 아니라, 전직 군인으로써도 남편의 국립 영웅묘지 안장 자격은 충분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당시 마르코스의 참전 기록 진위 여부, 추출된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에 대한 반감 등의 이유로 그 요청은 수용되지 못했다. 그리고 2010년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퀴노 Benigno 'Noynoy" Aquino 상원의원이 어머니 코라손 아퀴노 대통령에 이어 모자母子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마르코스의 안장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2016년, 대통령 후보였던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국민 통합을 위해 마르코스의 업적을 평가하며 그의 국립 영웅묘지 안장을 공약했다. 결국 두테르테의 취임 후인 2016년 11월 18일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시신 안장이 이뤄졌다. 27년간 계속된 장례 절차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당시 필리핀 여론조사국 SWS 가 발표한 국립 영웅묘지 안장에 대한 국민 여론은 찬성 50, 반대 50으로 나타났다.

마르코스 취임식에 참석한 아들 봉봉마르코스. 오른쪽은 최근 모습 (출처:위키)

우땅나룹 Utang na loob '마음의 빚'?

필리핀 문화의 특징 중 “우땅나룹”을 빼놓을 수 없다. 우땅나룹은 Debt of heart 또는 Debt of inside 정도로 번역되는데,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마음의 빚'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외국인 가운데 이를 '히야' Hiya 와 혼동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의 '체면' 에 비유되는 '히야' 에서 '자존심'을 좀 빼고, 거기에 '채무감' 을 더할 수 있다면 필리피노의 우땅나룹을 어느 정도 이해한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사실 이 우땅나룹의 정서는 외부인들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을 만큼 필리피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필리핀의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이 우땅나룹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우땅나룹 을 갖게 되고, 친척들과 마을 공동체 또한 그 우땅나룹의 대상이 된다.

이런 우땅나룹 에는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많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거래 관계'가 물질적인 보상으로 정리될 수 있는 반면, 우땅나룹의 관계는 다르다. 편의를 봐준 공무원과 추수를 마친 소작농은 그 소작의 대가를 지주에게 치른 후에도 여전히  그 마음의 빚은 아직 다 정리되지 않는다.

채무의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은 탓에 우땅나룹은 개인적인 거래를 넘어서 정치와 선거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역시나 필리핀의 정치인들은 이런 필리핀 유권자들의 우땅나룹을 잘 이해하고 적절히 활용한다. 대부분은 어렵고 힘든 삶에서 우리 지역의 '그 분'이 건네는 작은 호의와 친절은 쉽게 외면할 수 없는 필리피노의 '마음의 빚' 이 되는 셈이다. 필리핀의 지역 영주領主는 이렇게 탄생이 되고, 정치 왕조 Political Dynasty는 우땅나룹을 바탕으로 뿌리를 내린다. 필리핀 정치가 '거의 완벽한' 미국식 민주주의 시스템을 도입하고도 가장 봉건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이유다.

대통령 후보인 파퀴아오가 자신의 집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현금을 전달하고 있다. 이날 파퀴아오는 2천여명의 유권자에게 각 1,000페소의 현금과 5kg 쌀, 식량팩, 티셔츠 등을 제공했다.

아퀴노스 The Aquinos

사망 후 4년 만에 귀국해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코스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반대로 마르코스의 가족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해 주기를 바랐을까. 유리관에 담겨 예전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는 마르코스의 모습은 우땅나룹을 일깨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모습이다. 외국인들 눈에는 괴이하게 보일 수 있다.

롤로Lolo/할아버지와 롤라 Lola/할머니를 통해 전해 들었던 필리핀의 빛나는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80년대 이후의 젊은 세대에게 자신들이 갚아야 할 우땅나룹의 대상을 시각화하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필리핀의 경제 상황은 1960년대를 절정으로 마르코스의 집권기에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 상태였다. 그러나 많은 필리피노들은 '과거의 영광'을 마르코스 시절에서 찾곤 한다.

우땅나룹, 마음의 빚을 갚는데 '죽음'은 가장 극적인 상황이 된다. 채무 대상의 죽음은 이제 다시는 그 빚을 갚을 방법이 없다는 뜻이 되고,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채무를 청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그 마음의 빚은 유리관 속 마르코스에게만 적용되었을까?

마르코스의 정적이었던 니노이 아퀴노 Benigno 'Ninoy' Aquino Jr. 상원의원은 3년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던 귀국길에 마닐라 공항에서 저격범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마르코스 시절 큰 고초를 겪었던 유력한 정치인의 피격 사건은 국민들로 하여금 '마음의 빚'을 되새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유력 야당 정치인을 대체할 새로운 리더가 필요한 상황에서 나타난 '포스트 아퀴노'는 결국 아퀴노의 부인, 코라손 아퀴노 Corazon Aquino였다.  필리피노들의 우땅나룹 이었다.

남편의 서거 이전까지 정치인의 부인으로만 살아온 코라손 아퀴노 개인에게 1983년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1972년 계엄령 선포 후 투옥된 남편의 옥바라지, 그리고 이어진 망명 생활의 어려움 등이 부인으로써 '내조의 영역'이었다면, 남편 니노이의 서거 이후 코라손에게는 필리핀 민주 정치의 상징이 되어야 하는 역할이 부여되었다.

1986, 코라손 아퀴노

결국 "피플 파워" 이후  코라손 아퀴노는 필리핀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정을 수행했다. 만약 남편 니노이 아퀴노의 '죽음' 이 없었다면 필리핀 현대사에 코라손 아퀴노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

2010년 대통령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2009년 8월. 당시 필리핀 여당은 글로리아 마가파갈 아로요 대통령 Gloria Magapagal Arroyo, GMA 와 그 가족들의 부패 혐의 등으로 정권 연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코라손 아퀴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이후 필리핀 대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어머니 코라손 아퀴노의 장례식이 TV를 통해 생중계 된 이후 여론은 그의 아들 노이노이 아퀴노 Benigno "Noynoy" Aquino III 상원 의원을 다음 대선의 후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9월 이후 나타난 이런 '노이노이 현상'은 독재 정권과 싸우다 서거한 아버지와 시민혁명을 이끌어 필리핀 민주주의 구심점 역할을 해 낸 어머니를 모두 잃은 아퀴노 The Aquinos에 대한 또 한번의 우땅나룹의 지지였다. 남편 아퀴노에게서 아내 아퀴노로, 그리고 다시 그들의 아들 아퀴노까지 이어지는 필리핀 유권자들의 마음의 빚은 제15대 필리핀 대통령 선거까지 이어졌다.

오리무중 민주-진보

2021년 민주-진보 야권은 선거 1년을 남긴 시점까지 마땅한 대선 후보를 찾지 못했다. 다만 지난 5년 동안 두테르테 대통령에 맞서 왔던 부통령 레니 로브레도Leni Robredo 를 염두에 두었을 뿐이다. 그런데 필리핀의 역사에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2021년 6월 24일 니노이와 코라손의 아들 노이노이 아퀴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졌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10년 전, 2010년 코라손 아퀴노 전대통령의 추모와 그의 아들의 당선, 그것을 다시 한번 떠 올리기에 충분한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민주-진보 진영의 야권은 자신의 정당 출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를 충분히 받아내지 못했다. 유권자들의 우땅나룹을 '타파해야 할 봉건적 구습' 이라서 외면한 것인지, 아니면 '안타깝게도' 필리핀의 야권 진영에서는 그것을 승계할 더 이상의 인물을 찾아내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추모의 분위기가 더 크게 확산되지 못했다는 점도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당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야권 진영의 선두에 있던 레니 로브레도에게도 우땅나룹의 새로운 수혜자의 출현은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반면, 2016년 부통령 낙선 후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봉봉 마르코스는 어땠을까? 먼 이국 땅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고향으로 모셔 온 뒤로도 자그마치 27년 동안이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던 아들 마르코스는 대통령의 배려로 아버지를 국립 영웅묘지에 모실 수 있게 된다. 고초를 견뎌 낸 마르코스뿐만 아니라, 지지자들을 대신해 '마음의 빚' 을 갚아준 두테르테 대통령 에게도 득이 되는 정치 행위였다. 두 가문의 결속은 그렇게 견고해졌다.

필리핀 온라인 저널 래플러가 보도한 주요 대통령 후보 얼굴. 5월 9일 선거가 치뤄진다.

봉봉의 ‘우땅나룹’ 전략

봉봉 마르코스는 2022년 대선을 준비하며 “우땅나룹”의 지평을 넓혀 왔다. SNS를 통해 젊은 유권자들과의 접촉을 넓히고, '독재자의 아들' 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세탁했다. 독재는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 시절의 일이었을 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결국 자신이 우땅나룹 대상자가 될만한 정치인이라는 걸 인식시켰다. 자신의 고향 필리핀 북부 일로코스 놀테 뿐 아니라, 사라 두테르테 Sara Duterte, 두테르테 대통령의 장녀이자 현 다바오 시장, 와의 연합으로 남부 다바오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1986년 필리핀의 민주화는 2022년 현재까지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의 유권자들은 그들의 후보가 내세우는 공약과 정책 따위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다음에 누가 당선이 되고 집권을 하든 '갑' 과 '을' 의 순서의 변화일 뿐이다.

이번 필리핀의 선거는 예측건대, 1위 당선자와 2위 낙선자 간의 표 차이가 역대 가장 큰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의 후보자 등록 전부터 이미 주요 후보를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들이 발표되었는데, 최근까지도 여론 조사 1위와 2위의 격차는 선거 결과를 궁금해 할 필요가 없을 만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PS.

1. 2022년 3월 조사된 Pulse Asia 의 여론 조사 결과 봉봉 마르코스 56%, 레니 로브레도 24% 로 나타남

2. 한국은 ‘박근혜’를 뽑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봉봉 마르코스”의 부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음.

3. 필자는 필리핀에서 10년 가까이 산 경험이 있음.

4. Main photo: Philippine President Ferdinand E. Marcos and the First Family ascending the main Palace staircase on the day of his 1969 inaugural. — MALACANANG.GOV.PH

봉봉 마르코스의 최신 홍보영상. 현재 본인에게 압도적인 선거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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