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년 6월
● 인도네시아의 막후 보스정치, 메가와티와 수르야
● 정당 설립에 제한 없는 섬나라 정치, 재벌당, 미디어당, 종교정당이 득세
● 막대한 전국 선거 비용, 결국 합종연횡으로 승부 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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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정치는 크게 대중정치와 군부정치로 나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이분법은 조금 게으른 측면이 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살펴보기 위해서는 "미디어-정당"의 관계를 살펴보는 게 바람직하다. 미얀마 캄보디아 같은 나라는 100% 순수한 군부 정치다. 2021년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는 민간 언론을 대부분 발행취소하고, 국영언론과 극소수의 중립지대 미디어만 살려놓았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이 정치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중국이나 싱가폴도 따지고 보면 이쪽에 속한다.
한국의 사례는 정반대의 케이스다. 언론과 미디어가 사실상 하나의 "정치집단"처럼 움직인다. 언론의 승인이 없인 대통령 혹은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는 게 힘이 부칠 정도다. 민간 미디어의 힘은 "막후 정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미얀마와 한국 사이의 어디 쯤에 위치하는데, 특히 인도네시아가 일본 한국과 엇비슷한 구조를 갖기 시작한 점에 주목할만하다.
1. 막후 실세
2012년 이전 중앙정계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조코위를 일약 자카르타 주지사와 대통령 후보로 키워낸 건, 투쟁민주당의 실질적 오너인 메가와티(76)였다. 독립운동가이자 초대대통령 수카르노의 딸인 그녀는 2001~2004년 대통령을 역임했는데, 2004년과 2009년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연이어 패배하며, 재선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했다. 그런 그녀가 절치부심 택한 인물이 "조코위"다.메가와티의 민주당은 정통성을 가진 제1 정당인데, 지금도 여러 정당의 난립 속에서도 약 20%의 의석수를 가진 최대정당이자, 여당으로 활약 중이다.
이러한 메가와티의 꿈은 자신의 딸 "마하라니(50)"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인데, 현 하원의장인 따님의 정치력이 기대만큼 신통치는 않은 느낌이다. 결국 메가와티는 정권 연장을 위해, 현 지지도 1위인 간자르(55)를 지원한다는 결정을 내넣았다. 내년 대선과 총선이 코 앞인 상황에서, 간자르를 택한 건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메가와티 본인 집안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과연 조코위-간자르, 라는 연속 킹메이커가 될 수 있을 것인지.
2. 미디어 모굴mogul
인니 정치판에는 아주 독특한 킹메이커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수르야 팔로(Surya paloh, 72)라는 언론 재벌이 그 주인공이다. 아시아 정치에서 언론 재벌이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 거의 유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니에도 그런 현상이 발견되는 거다. 경찰 집안에서 태어난 수르야는, 아주 예외적으로 수마트라 반다아체 출신이다. 메단에서 대학을 나오고 고향인 북수마트라에서 잡다하게 사업을 벌인, 일종의 변방 출신이다.
1980년대 무역업과 더불어 당시 유행하던 신문사업을 벌였는데, 칼러인쇄 시대의 개막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승승장구했고, 결국 1998년 갑작스레 찾아온 민주화 바람에 편승하며 수마트라를 너머 전국적인 미디어 재벌로 성장하게 된다.2000년 그가 대주주로 참여한 "메트로 tv"가 정치거물로의 성공의 결정적 배경인데, cnn을 따라한 24시간 속보체제를 갖춤으로서, 단박에 인니 최고의 방송사가 되었고 기존의 신문을 기반으로, 이어 라디오, 케이블, 인터넷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오늘날 아시아 최대의 미디어 재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인니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가 된 셈인데, 그의 중도개혁적 정치 욕심은 현실 세계로도 확대돼, 현재 그는 나스뎀nasdem 이란 4번째 거대 정당의 당수로 활약하고 있다.
3. 은퇴 없는 "섬정치"
나스뎀은 미디어 재벌이 운영하는 정당답게 "중도" 주의가 특징이다. 나스뎀이 극적으로 성장한 배경엔, 2019년 대선에서 조코위를 적극 지원하면서 부터다. 사실상 조코위의 최대 후원자로 등극한 셈인데, 메가와티보다 돈도 많고 전국적인 미디어를 갖춘 수르야의 지원은, 조코위의 안정적인 집권후반기의 반석이 되어 버린다.
인니 정치의 특징은, 앞서 언급대로, 섬나라 특유의 세력 정치인 셈인데, 전진 고위 관료, 지방 호족, 군벌, 경찰, 재벌 등등 한번 세력을 엎은 이들은 크게 탄핵받지 않고 상당히 장기간 지위와 권력을 누린다는 점이다. 일가 친척 모두가 혜택을 받는 건 물론이고. 또 한가지는, 1998년 나라가 급속도로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의회주의로 변화하면서, 이들 세력들이 자신의 지역구를 근거로 지방호족화되어가고 있다는 것. 뚜렷한 은퇴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라는 무지하게 넓어 중앙집권화도 어려우니, 각자가 자신의 정당을 만들고 "막후 보스"로 등극해, 젊은 정치인들을 영입해 선수로 뛰게 만든다는 얘기다. 메가와티와 수르야, 유도요노 등이 막후정치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4. 간자르 vs. 아니스
인니가 거대 섬나라로 잘게 쪼개진 지리학적 특성은 확실히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건 사실이다. 우선, 선거 비용이 어마무시하게 많이 든다. 사람 사는 유인섬이 대충 수천여개인데, 이를 중앙에서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선거운동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당연히 돈과 조직을 갖고 있는 "선배"에 충성해야 전국구 정치인의 길이 열린다. 자연스레 인니도 미디어와 금권정치의 수렁에 빠져가는 식이다.
아니스 바스웨단은 현재, 인니의 중도보수 세력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다. 일단 집안이 엘리트 출신인데다가, 무슬림 특유의 종교적 보수성을 갖춰 기득권들이 가장 선호하는 품성을 모두 갖췄다. 대중의 금욕과 절제, 엘리트의 우위 인정, 보수가 특히 선호하는 가치다.반면 간자르 쁘라노워(55) 중부 자바 주지사는, 대중들이 선호할만한 품성을 두루두루 갖춘 차세대 선두주자다. 일단 중부 자바 출신이라는 게 강점이고, 훤칠한 키에 아이같은 웃음이 매력포인트다. 소탈하고 세속적 가치를 중시하는 중도진보측 후보다.
문제는 sns를 바탕으로 대중적 인기가 워낙 높다보니, 기존 엘리트와 재벌이 그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 결국 메가와티와 조코위의 후원이 결정적일텐데, 아직도 100% 확실치는 않다는 거다.
5. 막후정치
1998년 수하르토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며 인니도 본격적인 대중정치 시대로 접어들었다. 물론 그 과정이 금새 이뤄진 것은 아니고, 2014년 조코위의 당선이 이뤄지기까지, 대통령 직선제와 후보 지명 절차 등의 복잡하지만 안정적 제도 발전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2017년 "아혹 사건"으로 알려진 일종의 인니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정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기ㅡ시작했고, 결국 조코위 마저도 언론재벌에 의존해야하는 막후 파벌정치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아니스가 내년 선거에 승리한다면, 인니의 "막후정치"는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인니의 미디어들은 간자르 후보를 "포퓰리즘"으로 강하게 공격할 것이다. 과연, 간자르는 그러한 공세를 극복하고 대중정치의 희망을 연장할 수 있을까?
PS.
1. 막후보스 수르야 회장과, 나스뎀당에 대한 비판 의견을 기존 언론에서 찾아보기 어려움. 역시 언론과 미디어를 장악하면 얻을 수 있는 최대 장점.
2. 내년 대선은 사실상 "수르야"와 "메가와티"의 대결이 될 지도.
3. 미디어사 회장님이 정당 총재라는 게 인니정치의 핵심 포인트인 듯. 하지만 이제 와서 규제하긴 힘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