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태국 민주주의의 새 기수, 찻찻 & 피타

O 새로운 방콕 주지사, 찻찯에 대한 뜨거운 관심
O 8년째 진행 중인 태국의 군부 정권, 교체 여론 드높아
O 미래당과 전진당의 40대 당수에 대한 기대, "부자 집안이지만 자유주의 개혁파"

글 | 정 호 재


0.

2022년 6월 태국 방콕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은 '찻찻 시띠판(Chadchart Sittipunt, 56)'이라는 행정가이자 정치인이었다. 지난 5월 22일 선거에서 그는 20여 명의 후보 가운데 가히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이 되면서 태국 정치권의 '돌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그것도 그냥 적당히 이긴 것이 아닌, 2-3-4등이 각각 9%대 득표를 보였는데, 혼자서만 52%라는 말그대로 "압도적 승리landslide victory"를 기록한 것이다. 자연스레 첫 임기에서 적당한 성과만 보여줘도, 차기 총리는 "찻찻"에게 갈 수 있다는 관전평이 쏟아졌다. 태국의 방콕 주지사의 중요성은 실로 엄청나다. 나아가 그의 인성, 실력, 정치적 성향 등등 어느쪽에서도 비판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간만에 大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우선, 이름 표기가 조금은 고민스럽다. 교민지는 "찻찯(ชัชชาติ สิทธิพันธุ์)"이라고 쓰기도 하던데, 태국 발음이 귀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귀동냥을 해보니 대개 '찻찻'으로 짧게 발음하더라. 그래서 여기서도 "찻찻"이라고 표기한다.

방콕 주지사(시장) 선거 유세 중인 찻찯 시띠판 후보 (2022년 5월)
전진당의 40대 당수인 피타(Pita Limjaloenrat)

1. 포퓰리즘

현대 태국 정치가 본격적으로 "꼬인" 계기는 2006년 탁신 친나왓을 무너뜨린 군부 쿠데타 때문이다. 태국 정치의 중심에는 '군부'가 자리하고 군부 출신들이 왕실를 호위하고 재벌을 지원하면서 오랜 기득권-주류세력을 형성해 왔었는데, 경찰 출신 재벌인 탁신이 이 서열을 완전하게 깨뜨리며 "대중주의" 즉, 선거승리로 정권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룰'을 바꿔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과거엔 선거가 치러지면 30~40여개의 잡다한 보수정당이 난립해서 상호간에 치고박고 싸우며 "혼탁함"을 앞세워 정치의 불신을 초래했고, 그 과정에서 군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여당 2~3개가 연립정권을 세워 기득권 중심의 정치를 펼치는 무한반복적인 아수라가 펼져졌던 것이다. 그런데 2000년을 기점으로 "탁신"이라는 걸출한 사업가형 정치인이 등장해 50%의 서민들의 지지를 싹쓸이한 것이다. 이른바 기득권 정치에 균열을 내어 버린 셈이다. 그래서 군부는 '선거'로는 탁신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2006년과 2014년 두 번의 쿠데타를 통해 '탁신계'를 정치권에서 아예 축출하게 된다.

태국의 정치가 2000년대 이후 레드셔츠와 옐로셔츠로 싸운 계기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선거로 이기는 '탁신'과 나라의 기득권을 가진 '보수당'의 갈등과 경쟁이 바로 그것이다.

2. 왕실 교체

2014년 탁신의 여동생을 무너뜨린 '쁘라윳'의 쿠데타는 목적이 조금 더 뚜렷했는데,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왕권 교체" 때문이었다. 태국 정치의 중심에는 "국왕"이 자리하고 있고, 전임 국왕인 '푸미폰'은 1946년에 즉위 해 2016년까지 무려 70년을 재임해온, 살아있는 왕실 그 자체였다.

문제는 푸미폰 국왕이 2010년대 이후엔 건강이 너무 악화되어 정확히 어떠한 건강 상황인지 모를 정도로 베일에 가려졌다는 것. 즉, 2014년 쿠데타는 왕권의 교체를 위한 친위(?), 아니 일종의 국체 보존을 위한 쿠데타였다는 얘기다. 당시 보수파에게 쿠데타가 절박했던 까닭은, 태국의 기득권층이 야당에 정권을 내준 상태에서 왕권의 대물림을 추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을 정도로 그 지분 관계가 무척이나 복잡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즉, 왕실이 존재한다는 것은, 왕실의 "재산"이라는 게 상당히 많다는 것이고, 그 왕실의 재산이라는 것은 "국가의 재산"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뒤엉켜 있다는 얘기와 다를바 없었다. 더구나 왕실엔 거기에 기대어 사는 '환관'이 다수 있을 것이며, 왕실의 오랜 '친척' 역시도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며, 왕실을 지키는 '군대'와 왕실의 연금을 받는 수많은 전현직 측근들도 있을 텐데, 왕권 교체를 하려면 반드시 재산 정리와 평가 그리고 관리 주체 변경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 장부까기 과정을 "야당" 앞에서 차마 할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3. 미래당, 타나톤

2014년 쿠데타 이후 2017년 왕권 대물림과 개선 때문에 총선은 2019년 3월에 치러졌다. 이 선거는 역대급 "깜깜이 선거"라고 불리는데, 사실상 "부정개표"라고도 불린다. 치여했던 선거가 끝나고 순식간에 우당탕탕 개표가 이뤄졌는데 그 결과가 수일간 제대로 공표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갑자기 무능한 군인이라던 쁘라윳 찬오차가 의회 투표를 통해 총리가 확정이 되었다.

정말 예측이 어려운 기묘한 선거 쿠데타였다. 앞서도 설명했듯이, 투표로 싸우게 된다면 탁신계 정당인 '푸어타이당'이 승리할 게 너무 뻔하니, 복잡한 선거법 개정과, 여론조사 조작, 언론 탄압, 심지어 개표 부정까지 총 집결해서 푸어타이의 1당을 막아내고, 군부와 보수당이 연립해 "쁘라윳"을 다시금 총리로 옹립한 것이다.

그럼에도 2019년 선거의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당시 선거의 최대 스타는, 미래전진당(Furtur Forward)의 40대 초반 정치인 타나톤Thanathorn 이라는 재벌집 아드님이었다. 영국과 미국 유학파인 그는, 놀랍게도 "중도좌파" 공약으로 방콕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81석을 획득 제 3당으로 부각이 된 것이다. 그냥 아드님은 아니고, 언변도 좋고 철학도 뚜렷했다. 당연히 방콕의 젊은이들이 선호할만한 후보였다.

탁신계정당의 목표는 "군부정당" 반대에 있었기에, 푸어타이당과 미래당의 연합을 통해, 한바터면 '타나톤'이 40세 총리까지 될 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군부의 암중모색으로 타나톤은 총리 등극에 실패하고, 2020년에 타나톤은 왕실 모독죄로 정치권에서 사실상 강제 은퇴까지 당한다 (특정 백신정책을 비난했는데, 하필 그 백신을 생산하는 기업이 태국 왕실의 지분이 컸다는 얘기다. 어이 상실)

4. 하버드 출신 "피타 Pita"

미래당의 "타나톤"이 불미스러운 왕실모독법으로 물러나고 새로 만들어진 정당이 전진당Move forward party이고, 전진당의 현 총재가 "피타Pita"라는 42세의 젊은이다. 타나톤은 1978년생이고, 피타는 1980년생이니, 태국 정치의 주요 흐름은 이제 40대 초반의 정치인들이 잡은 셈이다.

타나톤과 피타는 흥미롭게도 잘사는 상류층 자제들이고,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을 다녀온 해외파라는 점이다. 피타는 심지어 하바드를 나온 우수한 인재인가 보다. 집안은 관료와 재벌이 뒤섞인 상류층인데, 해외에서 보고 배운 바가 있었는지, 상당히 자유주의적이고 개혁적인 스탠스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당연히 군부정치에 반대하고, 언론의 자유와 개방의 확대를 주장한다.

당연히 중산층이 밀집한 방콕에선 탁신계 정당보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개혁파에 관심이 뜨겁다. 농촌 서민층들은 "탁신"을 방콕의 개혁적 젊은이들은 40대 미래/전진당에 투표하는 식이다. 이번 찻찯의 방콕시장의 등장은 바로 이 같은 태국 정치의 지형 변화와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겠다.

5. 군부집권 8년차

현재 태국의 군부 정치에 대한 반감은 상당하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대응에서도 지나치게 "군부식 대응"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정치인도 아닌 군인이 8년이나 총리실에 앉아있었던 것 자체가 무리였다. 정치적 기반도 없이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보인 것이다. 당연히 경제성적이나 사회개혁 실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왕실 교체기에 보수파의 이익을 대변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무려 9년만에 방콕 주지사 선거가 펼쳐진 것이다. 무소속 후보로 나온 찻찻 후보가 압승을 거두었고, 이 결과는 태국 시민들의 뜨거운 정권 교체 열망을 반영한다. 민주주의 국가인 태국에서 "군부"가, 이 정도로 아무런 정통성 없이 8년이나 정권을 유지한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찻찻 방콕 시장 역시도 미국 유학파다. 태국 최고의 명문 쭐라롱콘에서 도시공학을, MIT에서 석사를, 일리노이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모교에서 오랜기간 도시 공학과 교수로 일했다. 잉락 정권에서는 교통부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동남아 메가시티들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교통"과 "물관리" 등 사회 기반시설 등의 인프라 문제다. 실용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실력과 경험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과거 방콕 주지사는 군인이나 왕실 친인척이 주로 해왔다는 점에서 "찻찻" 주지사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그는 탁신계 푸어타이당 출신인데, 이번엔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당연히 정치 개혁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PS.

1. 쁘라윳도 8년 총리 임기 막바지라 조만간 총선을 치룰 수 밖에 없을 듯. 군부의 무능은 아시아 공히 엇비슷.

2. 태국에선 1970-80년대생들의 정치가 본격화 되었음. 유학파 재벌집 도련님들이 "진보" 가치 내세운 건 신기함.

3. 방콕의 여론이 과거엔 "반탁신 친왕실"이었는데, 이제는 중도급진개혁으로 뒤바뀌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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