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21 노벨평화상, 比 "마리아 레싸"

O 제3세계의 새로운 고민 소셜플랫폼 제국주의
O 필리핀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과연 무엇과 싸우는가?
O 결국, 뉴스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민주주의 회복의 키 포인트

글 | 정 호 재

적성일 | 2021년 10월

2021년 노벨상은 독립 언론인에게 돌아갔다. 필리핀의 마리아 레싸(좌), 러시아의 드미트리 무라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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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전투적 저널리즘'은 아시아에서 상당히 유명한 편이다. 아주 많은 필리핀 지식인들은 "아세안에서 그나마 언론다운 언론을 가진 나라는 필리핀 정도 뿐"이라고 자부할 정도니까. 2000년대 초만 해도 필리핀 언론인들은, 태국이나 싱가폴 언론인들을 앞에 대놓고 조롱할 정도로 위풍당당했다. "적어도 우린 마르코스도 물리쳤고, 직접 민주주의도 이뤄냈다."

이런 배경엔 스페인의 뒤를 이은 미국의 식민지배 (1898~ 1946)가 바탕이 되었다. 미국은 자신의 첫 식민지인 필리핀에, 나름 선진적이며 따뜻한benevolent 식민 지배를 한다며, 필리핀 구석구석 영어를 보급하고 학교와 민주적인 기관들을 다수 설립한 것이다. 미국의 근간이 된 "언론의 자유" 역시 사회 작동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덕분에 1970년대 초반까지 필리핀은 아시아 국제화와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위상"을 지니게 된다.

물론 2020년대에 와서 그런 목소리를 내는 언론인은 찾아볼 수 없다. 21세기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로 후퇴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두테르테가 집권한 2016년 이후 마약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민간인이 1만 3000명을 훌쩍 넘는다. 기자들도 수없이 다치고 기소당했으며, 명망있는 언론사들도 대개 정부에 굴복한 것이다.

언론인 노벨상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싸(1963~)"가 202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현직 언론인 가운데 노벨평화상을 탄 분이 없었다는 점에서, 또한 필리핀 최초의 노벨상이란 점에서 아세안 시민사회계에도 큰 우군이 될 것 같긴 한데. 의외로 마리아 레싸에 대한 언급이 적어서 필자도 간만에 레싸의 스토리를 들여다 보았다.

사실 레싸의 스토리는 보도가 많이 되었지만 그다지 울림이 적어 보인다. 독자들이 뚜렷한 포인트를 잡기가 힘든게 문제인 듯 싶다. "고작 두테르테와 싸운게 노벨상이야?" 우선 두테르테에 저항한 언론이 많지만 2012년에 세워진 래플러Rappler 라는 매체가 가장 독보적인데, 이는 그녀가 자신의 후배 동료기자들과 세운 인터넷 독립언론이다. 언론사 규모 측정의 가늠자인 기자 수로 따지면 고작 12명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25년 경력의 방송기자가 한국으로 따지면 "시사인"이나 "뉴스타파" 같은 독립언론을 만들어 독립해 꾸준하게 필리핀의 유사민주주의와 싸운 것이다.

지난 6년간 두테르테에게 10여번 기소를 당했다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레싸의 탄압사례가 되었다. 해외출국도 원래는 정부의 관리를 당했는데, 아마도 12월에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는 출국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사이버 명예훼손cyber libel" 죄목으로 수차례 기소 당했음은 물론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행해지는 직간접적인 협박의 수준은 일일히 열거조차 불가능한 수준이다. 두테르테의 지지율이 압도적인 만큼 두테르테와 각을 세운 언론인에 대한 정치적, 물리적 공격은 그 수준과 정도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 넘는다.

곱지 않은 시선

아시아를 포함한 제3세계의 민주주의 측면 지원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노벨평화상의 수상은 고무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비판의 지점도 없지 않다. 우선 거론되는 것만 짧게 언급하면, 살짝은 1991년 미얀마 아웅산 수찌의 노벨상 선정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우선 "미국 중심 가치"라는 비판이다. 그의 국적 탓인데, 레싸는 이중국적자이다. 가족이 19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터라, 그녀 역시 미국에서 성장하고 프린스턴이라는 명문대를 졸업했다. 이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았고, 심지어 1987년 마닐라의 봄 시절부터 2005년까지 CNN 마닐라 및 자카르타 지부 소속으로 일한 것이다. 넓게 보면 CNN-Time 그룹 소속 기자로 오래 일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후광 덕분에 필리핀 민주주의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는 평가도 나올 수 있다.

두 번째는 조금 지엽적이긴 한데, 특정 언론인에게 준 것이 조금은 과한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도 없을 수 없다. 그러니까 필리핀에도 정말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있고 풀뿌리 언론인들이 권위주의와 독재에 대항해 싸워왔기 때문인데, 그러한 공을 서양의 방식, aka스타 만들기, 대로 딱 한명에게 주는 것의 부작용이 없지 않겠느냐는 우려에서다. 과거 미얀마의 아웅산 수찌가 이런식으로 지나치게 "영웅화 / 우상화" 되는 바람에 도리어 미얀마 정치 이행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반성 때문일 수도 있겠다.

페이스북 식민지?

사실 필자는, 노벨상 위원회가 마리아 레싸를 수상자로 선정한 가장 결정적인 배경에는, 페이스북을 대표로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과도한 영향력에 대한 레싸의 꾸준한, 강력한 비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가짜뉴스disinformation" "SNS의 무기화weaponize"라는 테제를 지난 2012년 자신의 두 번째 저서에서부터 강력하게 주장해 왔고, 그것이 아마도 최근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 공감대를 얻었을 것이란 얘기다.

최근 한국에서도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서비스의 "뉴스 편집권"에 대한 얘기가 종종 나오지만, 어찌되었건 포털회사가 한국 기업이기 때문에 플랫폼 기업의 여론 개입에 대해서 커다란 문제의식이 없을 수도 있다. 적어도 한국 내의 문제이니까.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조작여론fakenews"이 생기더라도 한국 사회는 어떻게든 자정 작용이 가능하다. 플랫폼의 뉴스편집자가 한국인이고, 검찰과 판사 역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한국이 제1세계에 근접해 있고, 뉴스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 제3세계의 뉴스생산자, 독립언론이 갖는 열패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하다. 왜냐하면 전국민들의 대부분이 스마트폰-페이스북-구글-애플 생태계에 빠져 있기 때문에, 뉴스에 대한 통제권을 사실상 상실했기 때문이다.

미얀마 인구가 6000만 정도인데, 페이스북 이용자만 4000만명에 이른다. 필리핀 역시 마찬가지다. 1억인구 대부분이 페이스북 유저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언론사들이 정확한 팩트fact를 발굴해 보도한다고 해도, 절대로 페이스북 상에서 제대로된 뉴스 유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에 의해 친정부적인, 극단적인, 재미있는, 자극적인 뉴스만이 주로 유통이 되기 때문이다. 돈과 지지세력을 가진 정부와 친정부 세력은 미국의 sns를 활용해 오히려 손쉬운 여론 조작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마리아 레싸는,미국이 키워준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타임워너" 배경에 안주한 것 만은 아니다.

뉴스 주권sovereignty

과거 "뉴스의 행간을 읽는다"라는 말이 있었다. 지배적 여론이 바뀌기 위해서는 "팩트"가 언론인에게 노출이 되어서, 그 "팩트"를 다룬 뉴스가 대중에게 유통이 되어야 가능했다. 정부와 재벌이 아무리 그 "팩트"를 거부하려고 몸부림쳐도, 언론과 언론인은 지배적 담론에 독자들의 뉴스소비를 바탕으로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게 바로 언론자유의 의미다.

그런데 "페이스북 시대"에는 그러한 과정 자체가 유통에서 막혀버린 것이다. 저멀리 있는 미국에서 SNS를 통제하고 있는데, 그러한 뉴스 알고리즘 자체를 필리핀이나 미얀마 등 제3세계 시민은 관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 돈과 권력을 가진 정부와 재벌은 "광고비"와 "유저 수"를 바탕으로 미국에까지 어느정도 힘을 쓸 수 있다. 힘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이러한 경우 제3세계의 사회 변화는 그 가능성을 잃게 된다.

필리핀의 레싸는 그러한 뉴스 주권을 잃은 비극을 가장 먼저 인식하고, 이후 가장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해온 제3세계 언론인이라는 얘기다. 물론 그 직접적인 상대는 "두테르테의 인권 침해"가 되겠지만, 사실상 최종 보스는 미국을 포함한 실리콘밸리의 광고비와 유저수에 눈이 먼 "테크기업과 그 모호한 알고리즘"이라는 얘기다.

한국의 "마리아 레싸"는?

한국의 포털뉴스에 대한 비판이 나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클릭수를 유발하는 "황색 제목"에 대한 수요와, 정치를 희화화 하고 편 가르기에 힘쓰는 혐오 중심의 뉴스 생산에 몰두하게 만드는 플랫폼의 은밀한 악행에 대한 인식이 이제야 시나브로 싹트는 듯 싶다.

이제는 지배적 사업자가 된 포털에게 뉴스 편집을 맡기는 한국 사회와 미국에 뉴스편집권을 빼앗겨버린 제3세계의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뉴스의 권리와 미래는 누가 어떻게 쟁취해야 하는가? 레싸의 노벨평화상의 의미는 단순히 "두테르테" 반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PS.

1. 마리아 레싸의 대표저작은 "빈 라덴에서 페이스북까지<2012>". 그녀는 2018년에 한국에도 와서 많은 언론인들을 만났었지만, 크게 주목은 받지 못한 듯.

2. 한국 바깥의 미디어 상황은 여전히 "언론 자유"라는 전통적 프레임에 갇혀 있음.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권력이 독재자에서 페이스북이라는 거대 플랫폼 기업으로 넘어간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음.

3. 너무 작지도 않고 너무 크지도 않은 독립언론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절실함. 우후죽순처럼 많을 필요는 없지만, 사회의 지배세력과 지나치게 가까운 주류언론도 사실상 흉기에 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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