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세안 최초의 글로벌스타 '바네사 메이'

○영국, 동남아 귀족 사회의 최종 끝판왕
○싱가폴 엘리트 영재의,
○싱가폴의 중국식 이름 陈美Chén Měi 생일은 27 October 1978

글 | 정 호 재


1997년 영국이 홍콩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은 세계사의 중차대한 사건이 된다. 19세기말 전 세계를 휘돌아 일본을 거쳐 조선 반도의 거문도1885에까지 이르며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했던 대영제국이 거의 150년 만에 동북아시아에서 완전히 발을 빼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20세기 내내 홍콩은 영국의 일부였고 동북아 재화의 주요 블랙홀이 되었다. 영국의 식민 도시는 주로 국제도시라고 부르지, 그냥 식민지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이 시기 영국의 퇴조는 동남아시아에서도 뚜렷했다. 1995년 전통의 영국 베어링 은행이, 싱가포르에서 파생상품 관리를 제대로 못해 파산에 이르고 만다. 27살의 신출내기 금융인의 윤리적 태만을 런던 본사의 꼰대 임원들이 감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의 일이지만, 영국의 실력이 드러난 사건이기도 하다. 일본 고베 지진이 당시 잘나가던 일본의 닛케이 주가를 폭락시켰고, 영국인 닉 리슨이라는 "꼬마"는 자신이 둘 수 있는 최악의 수를 남발하고 본사까지 말아먹는다. 결국 영국자본은 싱가포르에서도 크게 퇴각하고, 홍콩도 반납으로 중국에서도 퇴각하고, 결국엔 1997년 금융 위기를 거치며 영국의 시대는 아시아에서 파산을 선고하게 된다.

영국의 유산?

동남아에 가보면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서구인은 압도적으로 영국인이다. 비단 싱가포르뿐만이 아니다. 태국에 가 봐도 중심가는 온통 영국 제국의 흔적이다. 말레이나 버마야 원래 영국 식민지 경력이 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 반면, 프랑스 영향을 진하게 받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서는 생각보다 프랑스인을 찾기 힘들다. 그런데 영국인은 홍콩, 상하이에서 시작해 중국 남부를 타고 태국에서 다시 말레이 반도를 거쳐 버마와 방글라데시, 인디아, 스리랑카까지 없는 데가 없다. 제국은 사라졌지만 영국인은 남았다.

또 오늘날까지도 동남아는 영국의 축구 식민지이다. 이건 아시는 분들이 너무 많으니 1절만 한다. 6억 아세안 인민 전체가 대개 좋아하는 EPL팀이 하나쯤은 있다. 영국에서 만들어 전파한 테니스도 동남아 전역에서 대인기다. 특히 싱가포르에서 테니스는 거의 국민 스포츠 대접을 받는다. 축구, 럭비에 이어서 이 모두가 영국식 스포츠다. 영국은 동남아시아의 200년 종주국이었던 셈이다. 영연방이란 이름으로서의 영국은 이른바 표준과 제도의 상징이었다. 결정적으로 아시아는 "영어"로 소통을 하게 됐다. 영국과 미국 2대에 걸친 앵글로색슨 제국 탓, 덕분이다.

최강의 빌런, 악당?

근래 한국 젊은 네티즌 사이에 급속히 퍼진 지식 가운데 "영국이야말로 진정한 19세기, 20세기 빌런"이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엔 중동과 아프리카의 다양한 비극들이 등장한다. 영국이 당연히 제국의 권리를 행사해 제멋대로 국경을 긋자, 기존의 민족과 국가들 사이에 대혼란이 벌어져 20세기 분쟁의 주요한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1937년의 중일전쟁 정도는 애교로 보일 정도의 끔찍한 참사에는, 대부분 영국이 관여 되어 있다. 게다가 문제가 터지면 "자유방임주의".  극동지방 한국의 입장에선, 사실 21세기에 들어서 알려진 새로운 지식인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살피면, 우리가 사랑하는 007같은 첩보원은 그야말로 "악의 축"일 수 있다. 멋진 슈트와 첨단무기로 무장한 영국의 살인면허는, 다시 보니 뚜렷한 보편가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악당과 싸우는 것은 분명한데, 악당의 수준 자체가 그리 악당이라고 하기 애매한 존재들만 나열된다. 냉전 해체를 반영했기 때문인지, 혹은 영국의 비전 상실 탓인지, 고작 항공기 폭파로 파생상품 이득을 노리거나, 조직을 배신한 전직 MI6요원 정도가 등장할 뿐이다. 다니엘 크래그는 늘상 고뇌하기만 한다. 별거 한 일도 없으면서 말이다. 007의 시대가  이미 한참 전에 끝났다는 의미다.

런던, 동남아의 압구정

1990년대 영국이 가고 미국의 시대가 왔지만, 한번 세워진 200년 전통이 어디 금방 사라질까? 동남아의 귀족 사회가 존재하는 한 "부의 표준"은 당연히 영국 런던이다. 현재 런던은 동남아 귀족들에게는, 일종의 한국의 강남, 정확히는 압구정이나 대치동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2018년 화제작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라는 영화에서도 살짝 소개가 된다. 1990년대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아시아의 귀족들이 "플렉스flex"하기 위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바로 런던이었다. 2000년대 런던 부동산의 상승을 주도한 게, 바로 아시아 신흥 부자들이다.

당연히 이들 신흥 부자들은 대개 영국에서 공부한 이들이다. 1900년대 이후 아시아의 귀족, 엘리트는 영국에서 교육 받는 게 정통코스였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UCL/University College London 등의 명문대학을 거쳐 본국으로 복귀해 부를 쌓았고, 다시금 런던에 돌아가 부동산을 사들이는 코스다. 사실 서울 강남의 신화도 그렇게 쌓여진 거다. 교육과 문화적 상징, 부의 대물림과 부동산의 연결고리는,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보다 더 강력한 셈이다.

아세안인, 바네사 메이

필자가 사상 처음 알게 된 싱가포르인은 놀랍게도 "바네사 메이Vanessa Mae"라는 1978년생의 전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1995-1996년 그녀는 런던을 넘어 전 세계를 거진 폭격하다시피 했다. 지금도 "Storm"이란 곡을 들으면, 참 좋다. 이게 바로 미래주의futurism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 있다. 그녀의 동남아 스타일의 갈색 피부와 아담한 체구, 그리고 싱가포르 국적 이란 설명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싱가포르 사람은 다 그녀처럼 생겼을 것이란 편견도 생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고, 다시 중국계 엄마가 영국인과 재혼하면서 4살 때 런던으로 이사가 그곳에서 음악엘리트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태국계+중국계+싱가포르 국적=종합적으론 영국인이 된다. 그야말로 20세기 동남아 역사의 한 모델적인 신세대 여성이 되는 셈이다.

그녀는 무려 17살 때 들고 나온 팝스타일의 전자바이올린 퍼포먼스로 글로벌 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물론 그녀는 정통 클래식 연주자 출신이지만, 먼가 끼가 출중했든지, 아니면 당시 유행하던 세기말적인 비전에 눈을 뜬 건지, 클래식 엘리트의 길을 포기하고 팝스타로 전향한 것이다. 단 1장의 앨범을 전 세계에 수천만장 팔아치우며, 싱가포르와 태국이 낳은 최고의 팝스타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당연히 돈방석에도 앉았다. 2006년 영국의 30세 이하 부자 순위권에 올랐을 정도니. 물론 이후에도 꾸준하게 활동을 하며 명성은 유지했지만 17살 시절의 충격 데뷔만큼은 아니었고, 2010년대에는 스키 선수로 활약, 태국 국가대표 자리를 노리면서 여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의 작품 활동은 살짝은 실망스럽다. 여하튼,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아세안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바네사 메이 라는 영국인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무려, 25년을 활동했는데, 여전히 나이가 45살에 불과한 게 개인적으론 충격이기도.

1990년대 초반,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를 매혹시킨 바네사 메이

쇠락한 영국의 의미

바네사 메이의 인생은, 아세안 엘리트의 한 가지 전형을 보여준다. 우선은 뚜렷한 영국 지향성이다. 어찌됐건, 재능이 있거나 돈이 많은 아세안 아이는 영국으로 보내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영국에게 부여받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영국제국의 바운더리 안에서, 명성과 돈을 쌓게 된다. 그리고 그 부는 고스란히 영국 안에 다시 저장이 된다. 금고든 부동산이든. 하지만 활동을 할수록, 무언가 인종적이든 문화적이든 차이와 갈등을 겪는다. 그리곤 다시 모국으로 돌아와 재기에 나서는 스토리 말이다.

19세기 영국은 세계 경영에 나섰고 20세기 전반 영국은 아시아를 지배했다. 영국의 언어와 학교제도 학술과 예술 체제는 사실상 유라시아의 표준이 되어왔다. 그리고 1940년대와 90년대 이후, 영국은 군사권과 화폐권력을 모조리 미국에 빼앗겼지만, 여전히 문화적 상징과 귀족주의와의 강고한 연결고리로 아시아에 강고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실 영국이 무언가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이유는 그것 딱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귀족을 우대합니다." 바네사 메이가 런던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잠시나마 제국 문화의 혁신자가 될 것 같았지만, 지금은 평범한 부동산 재벌이자, 열대국가 태국의 동계아시아 게임의 대표자리를 노렸던 셀러브리티로 남게 되었지만, 그녀가 여전히 과거의 영향력을 갖고 기억되는 것처럼 말이다.

PS.

1.바네사 메이는 아세안이 배출한 최초의 "글로벌 스타"

2.영국의 런던은 여전히 제3세계의 수도로 작동하고 있기는 함. 이제는 뉴욕이 그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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