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라마단은 이슬람력의 아홉 번째 달로, 이 기간 동안 전 세계 무슬림은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금식을 준수합니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에서 가장 성스러운 달로 여겨지며 영적 성찰과 기도, 선행을 실천하는 시기입니다.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은 영혼을 정화하고 마음을 집중하며 불우한 이웃에 대한 감사와 공감의 마음을 키우기 위해 낮 시간 동안 음식, 음료 및 기타 신체적 욕구를 절제합니다. 라마단의 마지막은 기도, 자선, 잔치로 축하하는 이드 알 피트르(Eid al-Fitr)라는 축제로 기념됩니다.]
글 | 김 정 호 (재인니 칼럼니스트)
작성일 | 2023.03.23
1.라마단 (불타오르는)
세계 인구의 4분의 1(약 16억 명)을 차지하는 이슬람권에서 오늘(3월 23일)부터 라마단(Ramadan)이 시작된다. 라마단은 무려 한 달간 일출부터 일몰까지 단식하는 단식월을 뜻한다. 식사만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물 한 방울도 입에 안대는 고행에 가깝다. 보통 사람이 한 나절은 굶을 수 있지만 물을 전혀 마시지 않는 것은 꽤나 힘든 미션이다.
라마단이 이슬람 단식월인 것은 이제 상식인데 그렇다고 라마단이 '단식하는 달'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의 9번째 달의 이름. 라마단 자체는'불타오르는', '빛나는'이라는 뜻. 우리도 옛날에는 음력 달의 이름을 썼다. 음력 1월인 정월만 아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2월은 여월, 3월은 가월, 4월은 초월, 이런 식으로 달마다 별도의 명칭이 있다.
라마단 달에 신이 무함마드에게 성경을 계시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특별하고 신성한 달인 데다가 아예 꾸란에 라마단에는 단식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2:185) (*ps에 해당 구절 전체) 이슬람력은 윤달이 없는 태음력이라 일반적인 양력과 차이가 있다. 태양력과 계속 같은 오차(약 10일)가 발생하는데, 양력 기준으로 하면 매년 날짜가 조금씩 빨라지게 된다.
2. 수후르 (아침)
이슬람 교리는 인간이 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신에게 무관심해지는 것을 만악의 근원으로 본다. 1년 내내 '먹고사니즘'에 매몰된 인간에게 1달간 신앙을 리셋하고 신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라는 것이 라마단의 취지로 이슬람교도 5대 의무 중 하나이다.
라마단에는 단지 식사만 안 하는 것이 아니고 기호식품이나 성관계 등 평소에 일상적으로 누리던 것도 금한다. 자신의 의지이지만 종일 굶고 있으면 당연하게 여기던 음식의 중요함과 식사의 감사함을 되새기게 되고, 또한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의 처지도 돌아보게 된다. 평소 자신이 신을 제대로 섬기고 있는지, 주변의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지 반성하라는 의미다.
라마단 기간의 하루는 대략 이렇게 진행됨. 우선 원래 해야하는 새벽 첫 기도(오전 5시경)에 맞춰 일어나 식구들과 함께 수후르(Suhur)라는 아침 식사부터 한다. 이후 함께 기도하고 각자 출근, 등교한다. 여느 때라면 오전 7시쯤 먹던 아침을 갑자기 새벽 4시 반 정도에 먹는 것이다. 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인 상태로 아침 식사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다른 식구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가정주부의 고생이 가장 크다.
3. 이프타르 (음식)
낮에는 일상적인 활동을 하다가 일몰 시각에 맞춰 귀가함. 그래야 식구들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다.약 11~12시간 동안 음식과 물을 전혀 안 먹었기 때문에 다들 허기짐이 심하다. 이슬람 국가들이 주로 더운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 지역에 집중되어 있기에 몸이 더 쳐지기 마련. 그래서 일부 국가에서는 정책적으로 평소보다 빠른 오후 3시 경에 퇴근시키도록 하기도 한다. 하지만 권고 사항이고 회사 입장에서는 라마단 기간에 생산성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라 정시에 퇴근하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퇴근길 대중교통 안에서 그날의 단식이 끝난다. 해가 뉘엿뉘엿 진다고 대충 알아서 단식을 끝내는 것이 아니다. 시계가 없어도 사방팔방에서 스피커로 쩌렁쩌렁하게 "오늘의 단식이 끝났소들, 다들 욕봤소들" 이라고 방송하기 때문에 단식이 끝나는 시간을 알 수 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마셨기 때문에 목이 마르다. 라마단 기간에 이슬람 국가에서 퇴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승객들이 다들 가방에서 주섬주섬 음료수를 꺼내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먹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하루의 단식을 마치고 먹는 음식/음료를 '이프타르'(Iftar)라고 하는데 '단식을 깬다'는 의미다. 하루 종일 쫄쫄 굶었으니 일단 먹고보자가 아니다. 간단히 목만 축이고 하루 5번 드려야 하는 기도 중 4번째 기도인 마그립을 먼저 해야한다. 그 후에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정찬을 거하게 먹는 절차다.
보통의 경우 평소보다 음식을 더 해서 주변의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기도 한다. 이슬람 5대 의무 중 하나인 '자선 Zakat'를 실천하는 것. 라마단 기간의 자선 행위는 연중 다른 어느 달에 한 것보다 몇 배의 축복을 받는다는 믿음이 있다. 그렇다 보니 좀 있는 집에서는 아예 마을잔치 비스름하게 판을 벌이기도 한다. 이슬람 성전인 모스크는 당연히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의 저녁 식사를 준비해서 누구든 원하는 사람에게 제공한다.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에서 가장 큰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의 경우 라마단 기간에 매일 3만 명분의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4. 타라위 (음료)
잔뜩 먹었으니 다음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에 대비해서 바로 쓰러져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타라위 Tarawih'라는 라마단 기간에 하는 추가 야간 기도. 강제 사항은 아니나 신실한 이슬람 신자들은 대부분 수행한다.기도 자체는 10~15분이면 끝나는데 꾸란 통독도 권장된다. 총 114장으로 구성된 꾸란을 30개의 섹션인 '주즈 juz'로 나누어 매일 1개 섹션씩 읽는데, 라마단이 종료될 무렵에는 완독하게 된다.
저녁 과식으로 슬슬 퍼지는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기도와 꾸란 낭송을 하다보면 어느새 밤 10~11시가 된다. 그때 잠자리에 들었다가 4~5시간 자고 다음 날 새벽 기도를 하는 루틴을 한달 내내 반복하는 거다. 대충 요령을 부리면서 시늉만 하면 단식월을 보내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지만 FM으로 하면 꽤 빡셈. 왜 신에 대한 믿음을 테스트받는 기간이라고 하는지 충분히 이해된다.
5. 사순절 (카톨릭)
이슬람교처럼 1년의 특정 기간을 정해서 종교적 리셋을 하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톨릭교회의 사순절(四旬節 Lent). 사순(四旬)은 10x4=40일. 교회의 전통에서는 40일이 매우 상징적인 기간이다. 신앙적 체험을 위해 준비하는데 40일이 소요된다는 뜻으로, 모세도 40일간 광야에서 기도했고, 예수가 광야에서 시험받은 기간도 40일, 부활 후 승천하기 전까지 예수가 제자들과 보낸 기간도 40일이다. 초대교회는 새 신자에게 보통 부활절에 세례를 주었는데 40일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도록 준비시켰다.
그 패턴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사순절이다. 40일 카운트다운의 시작은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부터. 초대교회에서는 1년 전 종려주일에 썼던 종려나뭇잎을 보관했다가 그것을 태운 재를 사제가 새 신자의 이마에 바르면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임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명칭이 재(ash)의 수요일, 또는 참회의 수요일이다.
2023년의 경우 2월 22일.다 타버리고 남은 재를 발라주면서 부활을 준비시키는 것은 어떤 의도를 가진 종교적 제의인지 쉽게 짐작 가능하다.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남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재의 수요일부터 40일을 카운트해서 마지막 주 일요일이 부활절이다. 2023년의 경우 4월 9일이다.
부활주일이 되는 4월 9일 일요일 전의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기간을 가톨릭에서는 '파스카 성삼일'이라고 한다.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눈 목요일 저녁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금요일, 토요일을 거쳐 일요일 저녁까지 만 3일을 의미.특히 부활주일 직전의 금요일은 예수가 십자가 못 박혀 죽은 날이기 때문에 '성금요일 Good Friday'라고 하며 이날만큼은 육류를 금하고 하루 종일 단식하기도 한다.
정리하면 이슬람교는 라마단 1달간 약 12시간의 (물도 안 마시는) 단식을 매일 하는 반면, 가톨릭은 종교적 리셋을 위해 40일간의 (강제성이 없는) 사순절 기간을 경건하게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신앙을 가진 개신교는 어떻게 할까? 가톨릭의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사순절을 지키지는 않는다. 다만 부활주일이 있는 주간을 고난주간으로 기념하고 성금요일 만큼은 가톨릭과 똑같이 특별하게 보낸다. 신심이 깊은 신자들은 만 하루 금식을 하기도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