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0년 캄보디아 물축제 '참사'

O 프놈펜에서도 2010년 11월 한국의 이태원 참사와 비슷한 구조의 참사가 있었다

O 당시 훈센 총리는 사건의 철저한 진상 조사를 약속했으나 결국 아무도 처벌 받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간다

O 훈센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희생자 가족의 넋을 위로하는 게 전부였다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2년 11월 1일


2010년 11월 22일 밤, 사건이 일어난 다리 위 모습 (사진: 캄보디아 인권센터 CCHR)
  1. 압사, 스탬피드

주말 내내 전세계 압사 사고와 관련된 글이 여럿 보였다. 갑자기 몰려든 군중의 패닉panic에 따른 집단 압박에 의한 죽음, 영어로는 "스탬피드stampede"는 그렇게 드문 케이스가 아니다. 19세기 이후 대도시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군중"에 의한 사건 사고가 이곳저곳에서 반복되어 왔다.


처음엔 "정치 행사"와 연관이 깊었지만 갈수록 "축제"와 "스포츠" 관련 행사와 연결된 사건 사고가 커지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지역이나 경제적인 발전 정도와 무관하게 대부분 한두 차례는 겪었던 것 같다. 광활한 미국과 러시아에서도 있었고, 영국이나 홍콩 일본에서도 규모는 달라도 종종 있었다.

물론 후진국에서 벌어진 참사는, 인구와 영토가 훨씬 크기에 보다 빈번하고 규모가 컸는데, 정작 미디어의 조명을 받지는 못한 듯 싶다. 당장 한 달 전에 인도네시아 축구장에서도 130여명이 죽는 참사가 있었지만 쉽게 잊혀졌다. 아무래도 후진국 사건은 "거기는 원래 그렇지?"라는 편견이 강하기 때문인 듯. 여기서 소개하는 사건은 2010년 11월 캄보디아 수도에서 일어난 일이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참고해야 할 대목이 있다.

캄보디아 제2의 축제

2010년 11월 22일은 캄보디아 물축제 3일차 마지막 날이었다. 사고는 강변 톤레삽 강안에 위치한 작은 섬(다이아몬드 아일랜드)과 연결되는 교량 위에서 벌어졌다. 군중들은 3일 동안 이어진 연례적인 행사(본옴뚝)인 물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이 축제는 캄보디아에 비옥한 토양과 어족 자원을 안겨다 주는 강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봄에 열리는 신년 축제와 더불어 양대 축제로, 캄보디아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날이었다. 이날 오후엔 섬에서 축제의 하일라이트인 용선경주가 있었고, 바로 이어 가수들이 참여한 콘서트가 있었다. 마지막은 불꽃놀이로 마무리 되었다.

저녁 9시경 축제를 끝내고 섬을 빠져나오는 중 교량 위에서 사람들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10여명의 사람들이 엉겁결에 넘어지면서 참사로 이어졌다. 뒤에서는 압도적인 군중들이 빠져나오는 데, 좁은 교량 위에서는 사람들이 뒤엉켜 병목 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350여명 압사, 여성과 아이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니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군중들이 패닉에 빠져 교량에 매달리며 전선이 설치된 난간까지 붙잡으며 전선을 건드려 "감전" 당해 의식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감전에 놀란 사람들이 다시 우루루 한쪽으로 쏠리며 서로 발에 밟히기 시작하자 "공포감"이 극대화 된 것이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밟혀서 죽고, 다리 위에서 떨어져 죽으며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게다가 다리 위에서 벌어진 참사이면서, 동시에 앞뒤로 인파로 꽉 들어찼기 때문에 소방대와 경찰의 진입까지 늦어지고 말았다.


뒤늦게 도착한 공안과 의료진이 압사한 사람들을 하나둘씩 끄집어 내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간단하게 될 리가 없었다. 일종의 아비규환이었다. 희생자들을 하나둘씩 빼내어 CPR를 시도했지만, 수시간을 갇혀있던 희생자들은 대부분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 피해자 집계는 수일 뒤에야 이루어 졌는데, 대략 351명 이상(최대 460여명까지) 죽은 것으로 기록 되었다.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훈센 "아무도 기소 안될 것"

캄보디아의 독재자 훈센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나름 엄중하게 대응했다. "캄보디아 내전 이후의 최대의 참사"라는 반응을 내비쳤다. 우리가 상황을 잘못 파악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러나 보상에 대한 얘기는 있었는데 책임자 처벌에 대해서는 으뭉스러운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이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해서 발생한, 복합적인 실수에 의한 것이다. 때문에 아무도 이 사건의 책임으로 처벌 받지 않을 것이다."

앞선 표현대로, 훈센은 일부 반성하는 태도를 일부 내비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다. 국민적인 분노가 하늘을 찔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훈센은 1990년대 이후 거의 종신에 가깝게 일하고 있는 20년차가 넘은 장기집권 독재자였다. 그는 이번 사건을 "킬링필드 이후 최대의 비극"이라고 정의하기는 했다. 그러나 단지 "실수"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고 반박한 것이다.


이후 정부의 대응은 일사분란(?)했다. 사건 다음날부터 25일까지 "국가 추모기간"이라고 나름 규정한 것이다. 특별 조사위원회도 열리긴 했다. 규모 있는 사찰에 추모탑을 세우고 국가적인 장례식도 거행했다. 유명한 승려들도 여럿 불려와서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 국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이 정도가 다였다.

이 밖에도 잡음은 계속 흘러나왔다. 예를 들어 전세계 각국 정부에서 각종 지원과 모금이 쇄도했음에도 캄보디아 정부의 피해자에 대한 지원금은 쥐꼬리에 가까웠다. 중간에 돈이 샜다는 얘기도 나왔다. 부상자에게는 1인당 250달러가 전달되었고, 사망자 1인당 1250$ 달러가 지원되었을 뿐이다. 물론 이 사건으로 누군가 수사를 받고 처벌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은 없다.

희생자 영정을 들고 있는 유가족 모습 (사진: 캄보디아 인권센터 CCHR)
사건이 일어난 다이아몬드 섬과 프놈펜 시내 위치

    PS.

  1. 나름 엄밀한 조사가 이뤄졌다고는 하나 별다른 새로운 팩트가 없었음. "갑작스레 몰려든 인파로 다리가 흔들리는 바람에 군중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벌어졌다", 정도가 끝.
  2. 지금도 매년 민간에 의한 추모제가 거행되고 있음. 물론 지금도 총리는 훈센임. 아시아 역대 최악의 정치가이자, 독재자로 불리고 있음.
  3. 정치 후진국이란 바로 이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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