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3년 6월
● 2021년 개최 예정지 인니, 코로나로 2년 연기 불운
● 2023년 초 이스라엘 유럽 예선 통과, 인니 '입국 불허' 초강수
●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의 중심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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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 대표팀은 이강인을 앞세워 폴란드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대흥분 모드에 돌입한다. 당시 국대 사상 최초의 피파 대회 결승이었기에, 관심과 흥겨움이 폭발한 것이다.그런데 우리보다 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나라도 있었는데, 우승국 우크라이나(전쟁이 나기 전)와 차기 대회 개최국 "인도네시아"였다.
2021대회 개최권을 확보한 인니 정부는, 사상 첫 FIFA 주관 대회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열어야 할지, 이를 기회로 "관광 대국"으로 떠오를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심지어 인니는 "축구"를 배드민턴에 이은 거의 국기 수준으로 좋아한다. 게다가 피파 주관 대회, 대회 이름도 "월드컵" 아닌가? 조코위 정부의 개혁 정책의 또 하나의 업적이 될 것이 눈에 선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목도하듯이, 대회는 2023년 현재 아르헨티나서 열리고 있다. 도대체 어째서?
1. 연속된 "불운"
인니는 세계대회를 위해 착착 계획을 진행시켰다. 6개의 도시도 진즉 선정했다. 인니를 대표하는, 빨렘방, 반둥, 수라바야, 발리 등등. 상상해보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천혜의 자연풍광을 가진 인니의 휴양지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니. 더 없이 좋은 투자 기회이자 홍보 기회가 아닌가.
그런데, 쾅, 예고없는 코로나가 2020년 찾아온다. 대회는 2021년 가을. 당연히 그때까지는 코로나가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2021년 여름까지 전염병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런데 결국 대회 자체가 취소되고, 2023년 봄으로 대회가 연기된 것이다. 그때까지만해도 그냥 단지 개최가 2년 미뤄진 것이라 자위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사건은 올해 초에 불거졌다. 유럽 예선에서 "이스라엘"이, 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올라온 것. 축구로는 약체에 가까운 '이스라엘'이, 강호들이 즐비한 유럽예선을 통과해 2023년 인니 토너먼트 참가가 결정된 것이다. 으아, 이것은 정말 인니 입장에선 예상치 못한,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스라엘과 인니의 관계는 너무 어렵고 복잡했기 때문이다.
2. 팔레스타인
인니는 한국인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동남아 국가다. 우선 머나먼 땅의 "해양문화"가 낯설기 때문이고, 결정적으로는 "무슬림 주류" 사회라는 점이다. 물론 한국도 중동 지역과의 오랜 교류로, 종교 이슬람이 무언지는 대략 알기는 한다. 그런데 그건 "중동"이라는 틀에서 본거지, 동남아 무슬림에 대해서는 깜깜 무지하다.
이러한 무슬림 정체성과 인니의 제3세계 맹주 의식이 접목해 만들어진 게 바로 인니의 대 이스라엘 외교다. 인니는 1980년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이 본격화되었을 때 가장 먼저 발벗고 도와준 나라였다. 1988년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그들의 해방과 독립을 지지한 게 바로, 수하르토 시절의 인니였다. 친미 정권으로 분류된 수하르토 시절인데도 이정도였으니, 인니의 팔레스타인 사랑은 "인니의 본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인니의 기본 입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 "1967년 국경" 합의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동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의 수도(영토)여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 된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반 인권적 팔레스타인 대응과 폭력에 항의하고 줄기차게 비난해왔다. 당연히 인니와 이스라엘은 외교관계조차 수립이 안 됐다. 이스라엘은, 인니 대중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이고 실제 인니 무슬림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거부할 정도다.
3. 이스라엘
축구대표이런 와중에 이스라엘 팀이 인니 FIFA-U20 대회 참가를 알려왔을 때 인니 정부와 사회가 느꼈을 당혹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당장 입국 절차부터 해서, 이스라엘 선수단의 안전이 고민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이스라엘 선수단"이 여러 도시를 돌면서 축구 경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축구에 진심인 현지 관중은 이를 어떻게 대응할 지 눈에 뻔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발리 주" 주지사의 공식 요청이 당도했다. 이스라엘의 16강전이 치러질 발리에선 도저히 대중들의 반감을 감당할 수 없다는 요청이었다. 이스라엘 선수단의 입국과 대회 출전은, 인니 내부에서 다양한 논쟁과 격론을 불러왔다. 조코위는 어떻게든 대회를 치러내고 싶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축구는 스포츠 맨십의 영역이고, 인니는 아세안 의장국을 수차례 역임한 외교 강국 아닌가. 그리고 심지어 이스라엘의 U-20 16강 진출이 아예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그런데, 근래 극우 무슬림의 정치적 목소리가 더 거세진 것이다.
4. 포기, 박탈, 제재
결국 3월 초, 수도 자카르타에선 "이스라엘 참가 금지"를 요구하는 극우 무슬림들의 시위가 연달아 개최되었다. 시위는 축구 대회가 열리는 6개 도시 전체로 빠르게 확산됐다. 코로나로 3년간 집회가 막혔던게 풀리면서 반-이스라엘 입국 반대 시위는 날로 커져갔다.이는 2017~2019년 아혹을 처벌하는 시위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더한 정치무슬림들의 억지에 가까운 도발이었다.
어떤 측면으로 봐도 말도 안되는 상황. 그렇다면, 앞으로 인니는 그 어떤 세계대회나 월드컵은 치를 수 없게 될 지 모른다. 정부는 오도가도 할 수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끝내 조코위 정부는 또 한번 후퇴 결정을 내리게 된다.(물론 형식은 박탈) 포기하는 결정이 절대 쉬웠을 리가 없다. 적어도 5년 넘게 경기장을 수리하고 도로를 내고,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세계대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로 무슬림을 자극할 수는 없다, 라는 판단기준이 더 크게 작용했을 듯 싶다.
결국, 피파는 분노하고, 급작스럽게 U-20 세계대회는 아르헨티나로 바뀌어 치러진다. 이번 대회의 경기장 상태가 조금 별로라고 느꼈다면, 당연히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인니에서 FIFA 주관 대회는 열리기 쉽지 않게 되었다. 피파가 제대로 빡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패한 피파라지만, 딱 하나의 절대 원칙은 지키는 데, 그것은 바로 축구에 정치가 개입하는 거다.
PS.
0. 양국은 왕래도 엄격한 비자가 필요함. 인니 정부는 자국민이 이스라엘에 이유 없이 방문하는 걸 막을 정도.
1. 물론 이스라엘의 엄청난 선전에, 가슴을 쓸어 내리는 사람들은 인니 축구협회 관계자들과 조코위 정부 사람들일 듯. 이스라엘 대표팀이 인니 전국을 휘저으며 4강에 진출하는 모습을, 직접 경호하고 민중을 다독이는 광경은 상상만해도 끔찍했을 듯.
2. 인니의 팔레스타인 의리는 인정해 줄만 함. 은근과 끈기의 인도네시아. 근데, 왜 갑자기 "이스라엘" 축구팀이 잘하는 건지? 인니에게 복수심으로 잘하는 것 일수도.
3. 극우 무슬림 조직이 툭하면 광장과 거리를 점거해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는 현 상황은, 앞으로 인니의 세계화와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될 전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