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수도이전 대역사, 누산타라의 고민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3년 5월

● 2024년 8월 독립기념일, 본격적인 신수도 기능 작동할까?
● 자카르타에서 신수도까지 거리 1200km, 배로 가면 2박 3일
● 내년 대선에서 향후 속도와 방향 결정될 듯, 장기계획으로 갈 수도


0.

아시아 어디나 그렇듯 자카르타 구도심에도 거대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한자로 쓰인 간판이 즐비하고, 중국인들이 주로 거래하던 약재, 보석, 의류 등을 취급하는 낡은 대형상가들이 줄지어 서 있는 식이다. 그런데 자카르타 구도심은 다른 도시와 비교하기 민망하게 낡고 때론 흉측하기도 하다.

식민 역사가 워낙 오래되었기 때문에 건물들이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바스라 든 지역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네덜란드가 애당초 도시계획을 잘못한 측면도 있다. 여튼, 동남아 구도심 가운데 가장 낡고 재건축이 덜 된 곳이 바로 자카르타 구도심이다.물론 이는 자카르타가 "섬"나라 수도인 탓도 있다.

섬이라는 지역은 육지와 달리 건축-재건축-재재건축이 대단히 느리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섬이라는 동네가 원래가 그렇다. 한 번 건물이 지어지면, 왠만해선 허물고 새로 짓지 못한다. 도로를 확장한다는 생각도 하기 쉽지 않다. 공간이 "섬"으로 제한 되었기 때문이다. 광역 인구 3천만의 자카르타가 여전히 누추한 이유다.

1. 수도이전

조코위 2기 정부(2019~2024)의 최대 공약사업이 바로 "수도 이전"이었다. 2019년, 70%가 넘는 대중지지도를 바탕으로 드디어 5백년 넘은 낡은 수도를 옮기겠다는 "대역사"를 선언한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고, 오랜 숙원 사업이 이루어지겠다며 기대감을 품었다.

서구 사회가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에 관심을 품는 이유는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공감대 때문이다. 자카르타는 자바섬 서북쪽의 오ㄹ랜 도시인데, 자바섬은 환태평양 "불의 고리"를 관통하는 지역. 게다가 최근 1백년간 해수면이 수십cm는 상승했기 때문에, 실제로 자카르타 해안거주 지대는 높아진 해수면의 영향을 받는다.

물론 수도 이전의 큰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해수면 상승"과 "교통난, 인구밀집" 등의 이유도 있긴하다.자카르타는 바타비아의 영광을 이은 위대한 도시지만, 워낙 오랜 문제가 켜켜히 쌓였기 때문에, 수도이전은 다른나라와 달리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정말 많은 지역이 수도 후보지로 거론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알력과 땅투기, 정치적 이합집산의 원인이 되어왔다.

2. 보르네오, 깔리만딴

2019년 9월 동깔리만탄의 "누산타라"가 차기 수도 후보지로 선정이 되자, 정말 많은 이들이 놀라움과 우려를 동시에 표명했다. 너무도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당연히 앞서 거론된 후보지와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장 널리 공인된 후보지는 자카르타에서 스마랑에 이르는 자바섬 북쪽 해안가였다. 이런 예상은 무척이나 상식적이었는데, 자카르타의 장점을 살리면서 신도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자카르타 동쪽으로, 항구가 가능한 해안가에 자리잡는 게 안정적이었다.

두 번째 후보지는, 수마트라 빨렘방 인근의 드넓은 평야였다. 자카르타와 순다 해협으로 떨어져 있긴해도,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남수마트라는 차기 수도 후보지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수마트라나 자바섬은 약점 또한 명확했는데, 이미 땅값이 지나치게 높고, 지진 위협으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거였다. 또 빨렘방은 싱가폴과 지나치게 가까운 것도, 정치권력을 쥔 중부자바와 정서가 먼 게 약점이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각광받은 지역이 보르네오(깔리만딴) 남쪽, 자카르타와 마주보는 지역이었다. 보르네오섬은 활성단층과 살짝 거리가 있어 지진에 덜 위험하고, 인니 3대의 영토(섬)인 깔리만딴 개발이란 명분도 있었다. 자카르타와 그리 멀지도 않고. 그런데, 2019년 9월, 난데 없이 가장 외진 동깔리만딴이 최종 후보지가 된 것이다.

3. "너무 멀다"

누산타라, 라고 이름붙은 이번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2024년 8월에 공식적인 (행정)수도 프로젝트가 들어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지난 수년간 땅을 다지고, 길을 내는 수준의 아주 기초적인 공사만을 시작했을 뿐이다. 건물이 들어선 것도 아니고, 아직 공무원들이 본격 이주해 업무를 시작한 게 아니다. 내년 독립기념일을 기점으로 본격 시작을 한다는 건데, 널리 알려졌듯, 내년 초엔 총선과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동깔리만딴 지역은, 한눈에 봐도 지나치게 외진 것이 최대 문제다. 보르네오섬 자체가 산업기반이 취약한 지역이다. 원래 인니의 모든 생산시설은 인구 1.5억 명이 몰린 자바섬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섬들은 플랜테이션 농업 정도가 대부분이다. 신도시를 건설하려면, 대부분의 물자가 자바 섬에서 공수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략 거리가 1200km 정도인데, 자바해가 갈라 놓았기 때문에 배와 항공교통만이 가능한데, 배는 지나치게 느리고 항공은 지나치게 비싼 게 문제다. 일반적인 국가의 수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고민이 수반된다는 얘기다. 이미 자카르타 중심으로 촘촘히 짜인 공급망 사슬을 극복해가며 "신수도"를 저 멀리에 안착을 시킬 수 있는 지 여부에 미심쩍은 시선이 생기는 건 당연한 현실이다.

4. "중국과 일본은?"

누산타라를 고른 이유 또한 충분하다. 그쪽 지역이 인니의 아픈 손가락, 즉 지리적으로 극도로 소외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대략 인도네시아 영토의 정중앙 정도에 "신수도"를 건설하면, 국토를 효율적으로 쓰고, 적어도 100년 뒤엔 낡고 불안전한 자바섬의 대안으로 보르네오를 키울 수가 있다는 복안인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전세계적인 관심은 덜한 편이다. 보통 인니급 규모의 큰 나라가 신수도를 건설한다면, 세계적 자본, 혹은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는 일본이나 중국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텐데, 이번엔 뚜렷하게 투자나 협력 계획이 나오지 않고 있다. 아직은 실현 가능성을 그다지 높게 보지 않는다는, 반증도 되는 듯 싶다.

결국 2024년 5월 대선에서 그 속도와 성격이 결정이 될 듯 싶은데, 조코위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이가 당선이 된다면, 누산타라 계획은 그나마 중단되지 않고 꾸준한 투자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 당연히 정반대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수마트라와 중부자바에선 "신수도" 계획 자체를 거부할 공산도 크다. 진행이 된다해도, 신수도가 아닌, 행정기능을 갖춘 신도시 정도로 격하될 가능성도 크다.

5. 수도이전 대역사

동남아시아 각국의 최대 문제는 역시 "수도" 몰빵 현상으로, 정치와 경제가 특정 계급에 고착화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태국과 필리핀 인니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였다.말레이시아는 수도 콸라룸푸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푸트라자야를 개척해 나름의 성공모델을 만들었다. 미얀마는 군부가 주도해, 아예 군인들의 수도 넷피도라는 희대의 나쁜 사례를 만들고 말았다.

드디어 인니에게 변화의 가능성이 주어졌는데, 조코위는 도대체 어떤 비전을 보았는지, 너무도 원대하게, 너무도 멀리에 새로운 꿈을 심고 조용히 물러나려는 눈치다. 과연 인니는, 누산타라 꿈을 흔들리지 않고 수십년간 견지하며 완수해 낼 수 있을까. 관전자 입장에서,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싶다.

누산타라의 위치는 깔리만탄 동쪽 해안가로, 빨리빡판 도시인근이다
신수도 예정 부지에서 행사중인 조코 위도도 대통령

PS.

1. 한국이 가장 인니 신수도에 관심이 많은 편.

2. 인간적으로 너무 멈. 남깔리만딴 정도만 되었어도.

3. 신수도 관련 땅투기 문제도 심각한 이슈. 인니 언론이 그런것까지 탐사보도는 안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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