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인니 대학 수 아시아 1위, 왜?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3년 5월

● 인니 인구는 3억, 대학 숫자는 거의 5천여개
● 건물 1개 쓰는 작은 대학도 허가 남발, 대중교통 시스템과 비슷
● 돈 많이 드는 공대에 부족한 투자, 아세안 발전 걸림돌


0.

얼마 전 인니 족자카르타의 모 대학 교수단이 고려대를 찾았던 적이 있다. '족자카르타(족자)'는 인니를 대표하는 역사도시이자 교육도시다. 한반도에 비견하면 "평양" 정도로 볼 수 있다.인니에도 유명한 대학이 여럿 있지만, 족자의 "가자마다" 대학은 세계적 명성을 자랑한다. 자카르타의 인니대학(UI), 반둥의 반둥공대도 세계적이다.

그런데 그날 방문한 대학은 처음들어보는 낯선 이름. 한 교수에게 슬쩍 족자에 가본 얘기도 꺼내며, 인니 대학 얘기를 물었다. "족자는 완전 대학 도시더라고요. 한 50여개 될까요?" 참고로 족자 시내 인구는 40만 정도, 경기도 면적의 광역으로 크게 넓히면 4백만 정도다. "허헛. 그 숫자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 족자에만 대학이 200개를 넘어 300개에 이를거란 정도만 알고 있어요." "200개요?"

1. "약 5천개"

1990년 이후 대학은 아시아에서 완전히 흥하는 산업이되었다. 국민소득 향상으로 모든 중산층 가정이 아이들의 고등 교육을 원했기 때문. 따지고보면 냉전의 해체와 대학교육의 붐이 함께 온 셈이다. 그리하여 1990년대 이전엔 한국엔 100여개 미만의 대학 숫자가 2000년대초까지 300여개를 훌쩍 넘기는 양적 성장을 거뒀고, 오늘날 대학 정원이 연간 40만 명에 이르렀다.

그런데 인니의 상황은 아주 특수하다. 대학의 범주가 지나치게 넓은가 보다. 대략 건물 한개 정도의 소규모 단과대학도 대학이라는 명칭을 쓰는거다. 인니 전국적으로 대학이라는 기관의 숫자는 약 4천5백여개로, 아시아 넘버 원. 인니 인구가 한국인구의 5.5배(2.8억)라고 하면 대략 1.5천개 정도 있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현실은 엄청난 것이다. 아시아에서 대학이 많은 나라엔 "필리핀"도 있다. 대략 2천개가 넘는단다. 인구 1억 정도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참고로 인구 13억의 중국은 몇 개의 대학을 갖고 있을까? 2900개 정도다. 확실히 적은 숫자다. 인구 비례로 그다지 많은 수는 아니다. 일본은 780개 정도다. 한국과 흡사한 비례다. 한중일에선 대학이란 이름값에 걸맞은 캠퍼스 크기와 뽀대가 필요하다. 인니와 필리핀이 아주아주 특수한거다.


  • 인니 대학 : 4500여개 (인구 3억)
  • 중국 대학 : 2900여개 (인구 14억)
  • 필리핀대학 : 2000여개 (인구 1.1억)
  • 일본 대학 : 780개 (인구 1.2억)
  • 한국 대학 : 300여개 (인구 0.52억)**

2. 섬나라 특징?

인니에 대학이 많은 건 여러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는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섬이 수 천개에 달하기 때문에, 복지 차원에서 섬마다 고등교육 기관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교육기회를 준다는 취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필리핀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섬이 많은 "아치펠라고" 지형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방정부의 자율권이 쎈 거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대학에는 중앙정부가 관리하고 투자하는 대학도 있지만, 지방정부에서 허가권을 내주고 관리하는 시립/주립 대학도 있다. 여기에 사립 대학이 추가된다.

인니의 대학이 5천개라는 얘기는, 중앙정부의 관리를 받는 대학보다는, 소규모 단과대, 전문대, 개방대 등 작은 규모의 대학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얘기다. 앞서, 필자가 인니의 공용버스 시스템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와 흡사하다고 봐도 될 것 같다. 필요와 니즈에 따라서 전국적으로 대학 허가를 남발하게 되었고, 마치 관광버스 회사처럼 작은 대학들이 난립하고 있는 것이다. 인니의 교통시스템, 항공-철도-버스 시스템과 교육기관의 난립형태가 은근히 오버랩 된다.

3. 대학 경쟁력?

아세안이 가진 고민 가운데,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대학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포함 된다. 특히 공대 경쟁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중국은 잘 되는데, 아세안이 잘 안되는 이유도 바로 "공대"의 부족 때문이 크다. 현재 아세안에서 공대로 유명한 대학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학이 전부고, 사립대학 가운데는 공대로 유명한 대학은 손에 꼽을만큼 적다. 아세안의 미래가 어두운 이유다.이런 현상은 중앙정부가 종합대학, 특히 공대에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한다.

아세안 정부들은 중앙정부의 역사가 짧고, 교육 부분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쏟지 못했다. 군부 정부는 보통 "우민화 정책"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과도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아세안에서도 재벌이나 토지자본을 가진 호족계급이 "교육" 사업을 벌이는 경우는 많았지만, 교육 사업을 철저히 사업 마인드로 접근한게 특징이다. 돈이 많이드는 공학분야에는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와 정반대의 사례는 싱가폴 정도가 유일하다. 4개의 종합대학에 국가 역량을 집결해, 엘리트 중심으로 고루 인재를 육성한 것이다.

4. 공무원, 의대 인기

아세안의 공통된 현상은 "(경찰) 공무원"의 인기와, 의대 등 주로 면허 중심의 직업의 인기다. 사실 이는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판검사와 의사의 인기는 어디나 매한가지다. 권력과 돈을 가장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니의 경우도 보통 중산층이라고 하면, 경찰공무원 집안이 꼽힌다. 어디가서 꿀리지 않고, 소득도 평균 이상은 되기 때문에 원래 가진집 출신이 아닌경우엔 경찰 공무원 집안에 기회가 쏠리곤 한다. 경찰은 눈에 쉽게 띄는 직업이라 그렇지만, 중앙 및 지방정부 공무원은 사실 모두가 경찰 그 이상의 권리와 혜택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대학 교육의 질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보통 인맥과 혼맥으로 결정되는 네트워크 비즈니스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아시아엔 대학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렇게 대학을 나온 친구들이 "공무원"과 "면허 획득"에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중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공학 인재"를 뚜렷하게 키우는 나라가 보이지도 않는다. 먼가 조금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아시아를 대표했던 양곤 대학.
태국의 한 소규모 대학 입구. 아세안의 대학은 평균적으로 작다

PS.

1. 인니의 수천개 대학에서 쏟아내는 논문의 수가 상당하지만, 일부 대학을 제외하곤 그다지.

2.  자카르타-반둥-족자카르타-수라바야 등 자바섬에 대학이 특히 몰려있음.

3.  공대 발전이 더딘 게 아세안 발전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음. 이 문제를 중앙정부가 간파하고 투자의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여전히 국가발전 전략으로 "공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음. 한마디로 대학 숫자만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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