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싱가폴 안의 '중국', 중국과 화교국가

O 싱가폴 건국 50주년을 통해 바라본 중국과의 신관계
O 홍콩의 몰락으로 수혜입은 "싱가폴", 중국은 화교국가에게 무엇인가?
O 중국의 부상과 아세안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화교사회의 반응

글, 이승은 | 대외경제연구소, 현 인천대 교수

작성일 | 2015년 10월


50년 전의 8월, 라디오에서는 싱가포르의 독립을 선언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2015년 8월 9일 오전 9시에는 50년 전의 그 날처럼 싱가포르의 독립을 기념하는 선언문이 故 리콴유Lee Kuan Yew의 육성으로 다시금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 전역에 들렸다.

2015년 8월은 싱가포르의 역사에서 매우 의미 깊은 달이다. 이는 ‘싱가포르’가 말레이 연방에서 독립하여 새로운 국가로 거듭난 지 50년이 되는 시기라는 예견된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같은 해 3월 ‘싱가포르의 국부’라고 칭송되던 리콴유가 타계한 지 약 반 년 후에 맞이하는 ‘싱가포르 건국독립 50주년’은 여느 때보다 싱가포르인들이 모국을 새로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이자 앞으로 싱가포르의 귀추에 대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건국 50주년에 즈음하여

서울과 비슷한 크기에 인구 540만 명이 조금 넘는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전대미문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 왔다. 독립 당시인 1965년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16달러였으며, 2014년의 1인당 명목 GDP는 무려 56,700달러로, 공히 아시아에서 최대 1인당 GDP를 자랑하는 국가가 되었다.

흔히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싱가포르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공적인 신화이다. 많은 이들은 싱가포르가 이러한 경제성장과 부의 창출이라는 '성공'을 가능하게 한 열쇠를 대개 싱가포르의 지리적 위치와 중계무역과 수출, 효율적인 정부시스템 등에서 찾는다. 한편, 어떤 이들은 싱가포르의 독재, 벌금, 태형 등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통제된’ 사회 거버넌스가 자리 잡혀 있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기도 하는 등 아시아 성공신화를 이룬 싱가포르의 발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물론 이러한 두 가지 관점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지 않으며,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주장이다.

다만 이 글은 싱가포르 건국 50주년‘역사’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글이거나 싱가포르가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국가를 통치해왔는지, 혹은 싱가포르의 통치방식이 규범적으로 옳고 그른지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구상한 글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앞서 언급된 여러 가지 질문과 더불어 이렇게 현저한 경제번영을 이끈 싱가포르 독립 이후의 역사를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은 분명하나, 본고는 ‘암묵적으로’ 학습되어오던 싱가포르와 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해보고자 한다. ‘싱가포르와 중국’ 혹은 ‘중국과 싱가포르’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겠지만, 본고에서는 싱가포르 안의 ‘중국’과 이 두 나라의 관계를 고찰하기 위해 인구사회학적 요소와 정치경 제적 요소를 중심으로 그 관계의 실마리를 풀어가고자 한다.

싱가폴 주류 중국계, 다양한 방언

중국계가 전체 인구의 약 80%에 육박하는 싱가포르는 어쩌면 국가의 탄생에서부터 중국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4년 발표된 싱가포르 통계국Department of Statistics 자료에 따르면, 같은해 싱가포르의 인구수는 546만 명으로, 이중 387만 명이 싱가포르 거주자이다.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는 전체 인구 가운데 약 71%인 334만 명이 싱가포르 시민이고, 나머지는 영주권Permanent Residentship, PR을 소지하고 있는 인구로 53만 명이다.

이와 같이 다소 ‘특이한’ 인구 구성을 지니고 있는 싱가포르는 민족구성 역시 다양하다. 2014년 중국계 인구는 전체 거주인구 가운데 74.2%를 차지한다. 흔히 소수민족minority라고 불리는 집단은 말레이계 싱가포르인과 인도계 싱가포르인이 주를 이루는데 각각 전체 인구의 13.3%와 9.2%를 차지한다. 때로는 논외의 대상이 되거나 간혹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기도 하는 백인Caucasian과 아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유라시안Eurasian’과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를 제외한 다른 아시아계 인구 등이 전체 싱가포르 거주자의 약 3.3%를 구성한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 이민역사는 일찍이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고, 대량의 복건성, 광동성, 해남성 등지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이 동남아를 포함한 싱가포르에 이주하여 왔다. 이주민들 혹은 선조들이 사용하던 중국어 방언을 구사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인구도 상당 수 되는데, 아래 표에는 방언별 출신인구의 분포가 나타나 있다.

싱가포르 중국인의 방언별 출신인구 분포 자료: 이해우. 2006. “중국어 사용공간의 확대: 싱가포르의 중국어 사용현상.” 중국인문학회 2006년 추계 정기학술대회, p. 128.

싱가포르에는 이러한 싱가포르 국적을 소지한 중국계 싱가포르인 외에도 새로이 중국에서 이주해온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싱가포르인을 제외한 싱가포르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비非싱가포르 출신의 중국계 인구를 어림짐작하여 추산해본다면 현재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계’는 거의 80%에 육박할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통계 데이터는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출신국가별로 싱가포르 영주권자를 살펴본다면, 말레이시아, 중국 출신자들이 1위, 2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1990년

대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는 '신이민' 현상으로 인해 그 본질은 다소 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백 여 년이 넘도록 이민 송출국source country이었던 중국과 유입국receiving country이었던 싱가포르의 전통적인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까지 싱가포르를 구성하는 다수의 인구이자 싱가포르를 '지배'하는 집단은 중국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이민의 흐름이 두 국가가 끊임없이 상호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다.

'관계'와 '모델' 구축하기

현 세대의 싱가포르인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하냐에 대한 논의를 뒤로 한 채 싱가포르를 구성하는 인구를 살펴본다면, ‘중국’은 싱가포르에게 있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경제발전에 따라 정치경제적 역학관계가 다소 바뀐 현 시점에서는 그 영향력은 유지되거나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싱가포르는 중국의 ‘모델’이었다. 실제로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 추진도 싱가포르의 개방에 의한 경제발전과 이에 대한 선망이 원동력을 차지한 요소 중 하나였으며, 그 이후로도 중국의 여러 지도자들은 리콴유가 이끄는, 중국 전체 인구의 0.4%도 채 안 되는 도시국가이자 상하이 푸동浦东지구의 절반 규모인 싱가포르를 중국의 ‘모델’로 삼았다. ‘싱가포르 모델’은 경제뿐만 아니라 중국에게 정치체제에 대한 암묵적인 지지 혹은 심지어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하나의 정당'이 이끄는 정치시스템이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돈독하게 유지하며 장기화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이처럼 싱가포르의 ‘권위주의적인 국가 자본주의authoritarian state-capitalism'의 유효성이 중국 지도부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올해 타계한 싱가포르의 ‘국부’인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통치한 1976년 이후부터 33번이나 중국을 방문했고, 등소평,모택동과 같은 중국 최고 지도자를 접견하는 등 싱가포르와 중국의 관계는 상당히 가까운 편이었으며, 서로에게 우호적이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1992년에 중국과 대만 간 첫 번째 정상회담을 주최하여 중국 공산당 정부와 대만 국민당 정부가 1992년에 맺은 “9.2 컨센서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향후 약20년 동안 중국과 대만이 상호교류를 유지해오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이처럼 중국 지도자들은 리콴유가 중국과 대만 관계의 중재자 역할을 오랜 기간 동안 수행해온 것을 매우 높이평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계 인구가 전체 인구의 3/4 이상을 차지하는 싱가포르 정부가 바라보는 중국은 단순히 그들 선조의 국가나 '다수'라는 수적인 의미에 불과하지 않다. 여러 싱가포르 지도자들이 중국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오고자 했다는 점은 이들의 외교관계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의 모델 전수하기 등에도 구현되어 있다. 이와 동시에, 일찍이 중국은 ‘싱가포르’라는 작은 도시국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제부흥의 꿈을 그려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중국의 꿈'은 직간 접적으로 '싱가포르 모델 삼기'에서 나타난다.

중국의 부상이 가시화되기 이전에도 싱가포르는 일찍이 중국 정부와의 협력, 보다 정확히 말해 중국 정부에 싱가포르의 경험을 '전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중국 내 ‘싱가포르 모델’을 구축하고자 하는 양국 정부의 의지는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된 중국-싱가포르 쑤저우 공업원구中國—新加坡蘇州工業園區에 잘 구현되어 있다. 이 중국-싱가포르 쑤저우 공업원구는 싱가포르식의 경제발전방식의 효과와 유효성을 시험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Shaw & Yeoh 2000: 203). 즉, 싱가포르 모델의 강점인 효과적인 행정관리, 세계적인 수준의 인프라와 안정된 비즈니스 환경을 정부 간 협력을 통해 중국 정부에 ‘이식’하는 것이었다.

많은 싱가포르인들은 싱가포르 정부가 중국에게 자국의 기술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투자한 노력과 자금에 비해 얻은 성과가 없다고 비판을 해왔지만, 인구가 600만 명도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중국과의 비교적 대등한 경제 및 외교관계를 유지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고, 이 프로젝트는 여러 나라들이 중국과 시도해보고자 하는 '모델'로 자리잡았다. 다시 말해 싱가포르 학자 알렉시스 페레리아가 언급한 것처럼 이 프로젝트는 가히 "정부 간 협력은 새로운 발전전략의 하나의 형태Pereira 2004" 라는 것을 증명해준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샤먼厦門대학 동남아시아 전문가인 좡궈투庄國土, Zhuang Guotu는 중국 지도자들이 ‘싱가포르를 배워라’라는 슬로건 하에 싱가포르의 거버넌스, 주택, 헬스케어, 복지 등의 성공적인 사회제도와 경제정책을 배우고, “잘 경영되고 있는 민주주의” 혹은 “선의의 독재체제”라는 시스템을 습득해오고 있다고 밝힌다.

싱가포르-중국의 관계, 그 '특별함’

최근 들어 싱가포르 현 대통령인 토니 탄Tony Tan은 싱가포르와 중국의 관계가 매우 가깝고 특별하며, 이 두 나라는 새로운 협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국가라고 하였다. 이러한 '특별한' 양국 관계는 많은 중국계 인구나 이민자, 리콴유가 이끄는 싱가포르에서만 찾아볼 수 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싱가포르인들이 구상하는 바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쌍방향의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고, 중국도 우리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다. 이는 중국이 우리 싱가포르를 따라잡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에는 그들은 분명 싱가포르를 따라잡고 있으나, 그들의 인재와 자원 때문에 많은 의미에서 중국은 싱가포르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한다.”

토니 탄은 과거 중국이 싱가포르의 모델을 수용하고 이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내포함과 동시에, 그는 중국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예견하였으며, 싱가포르와 중국의 협력에 관한 생각의 지평선을 연장해왔다.

"그러나 이는 싱가포르가 중국에게 전혀 상관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우리 싱가포르가 아무것도 안 한다면 우리는 중국에게 무의미한 존재가 될 수 있다....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잘 살펴보고 계속하여 이를 꾸준히 발전시켜야 한다.“

싱가포르의 이러한 '구상'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작은 국가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는 경제발전모델 공유와 외교관계의 공식적인 루트만이 아니라, 중국 부상에 따라 새롭게 재편되는 양국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물꼬를 '정부 대 정부', '정부/민간 대 정부/민간'의 틀로서 새롭게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어쩌면 싱가포르인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중국을 연결할 수 있는 고리에 지속적인 교류와 상호발전을 활용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서로의 장점과 강점을 배우고자 하는 ‘암묵적인’ 열의는 싱가포르과 중국의 관계를 더욱 더 특별하게 만들어 갈 자양분이며 마중물이 되어주지 않을까.

PS.

  1. 메인포토 : LEE KUAN YEW WELCOMES DENG XIAOPING TO SINGAPORE, 1978. (PHOTO: SINGAPORE MINISTRY OF INFORMATION AND THE ARTS)

2. 이 글은 2015년에 쓰여졌지만, 지금도 함의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특히 "홍콩"의 몰락과 그에 대비되는 "싱가폴"의 상대적 부상이 2020년 이후로 두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즉, 중국은 날이 갈수록 아세안과 아시아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주로 "미국" 중심으로 세계질서를 따라왔던 싱가폴 같은 무역국가에겐 무척이나 중차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3. 싱가폴이 화교국가라는 점은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더 특별하게 만드는 인종적인 배경입니다. 그러나 인종적 민족적 동질성이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의 출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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