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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끝] 화교의 고향⑧ 중국에 밀린 화교
O 중국에 투자한 1세대들과 달리 정서적으로 멀어진 2,3 세대 O 바뀐 중국의 산업구조, 화교자본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아 O 중국과 "서먹서먹"한 관계의 시대로...딜레마에 빠진 화교 글 | 박 번 순, 고려대 경상대 교수 -------------------------------------------------------------------------------- 중국이 경제성장을 위해 해외화교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은 하루 이틀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미 1895년 베이징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간 캉유웨이가 베이징에서의 현실을 보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공거상서에는 하나의 방책으로 화교를 국가발전에 이용하자는 주장이 들어가 있다. 또 광서제는 1895년 해외 화교들이 중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기존 중국의 기업들을 인수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청조정은 초기 단계에 있는 중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체계적으로 화교 유치에 나서 해외자본을 대량으로 유치하기 시작했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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