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짧은 임기 예고된 "이스마일" 말련 총리
O 말레이시아 정치판은 혼란의 연속이다. 2022년 10월 10일 이스마일 총리는 국왕의 재가를 얻어 의회 해산과 60일 이내 총선거를 결정했다. 어느정도 예상된 결과다. 이스마일 총리가 장수할만한 총리라고 예상한 사람이 거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3년 가까이 미뤄진 정치개혁이 다시금 본격화 될 수 있을까. 국민들은 다시금 반 암노UMNO를 선택해 말레이 기득권에 경고장을 날릴 수 있을 것인가?
작성일 | 2021년 8월 21일
글 | 정 호 재
아시아 정치는 이해하기가 비교적 어렵지 않다. 2차대전과 냉전시기 정권을 잡고 놓지 않는 (군부와 가까운) 쪽이 "보수"의 위치에 서 있고, 이 보수라는 가치와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민족적, 계급적 뭉침"에 대항하는 소수파가 야당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일본도 한국도 말레이 태국 대부분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
알고보니 이데올로기가 별로 중요한 가늠자는 아니더라. 아시아의 보수세력에는, 공산주의도 있고, 민족적 사회주의도 있고, 자본주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반대하는 야당은 당연하게도 "기득권 타파"와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세력이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2. 실패한 정치개혁
말레이시아는 언제나 2% 아쉬운 나라다. 천혜의 자연조건과 지정학적으로 아시아 최고의 입지, 기름도 나고 땅도 넓고, 심지어 오랜 해양무역에 대한 전통까지 갖춘 나라이지만, 그 잠재성이 현실화가 못되는 나라다.
장점이라면 무엇보다 사회적인 개방성이 엄청나게 특출나다는 것. 널리 영어를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말레이시아도 싱가폴처럼 영어를 모국어 레벨로 쓰는 나라다. 물론 자국어인 말레이어가 있지만, (조금은 알아듣기 어렵지만) 영어를 굉장히 쉽게 재밌게 받아들인 문화권 가운데 하나다. 좋게 보면 거대한 싱가폴이 될 잠재력이 있다.
이슬람이 국교인데, 동남아 이슬람 특유의 개방성으로 인해서, 중동의 부자들이 돈을 싸들고 오는 나라다. 당장 싱가폴과 태국도 중동의 중산층들이 선호하긴 하지만, 말레이시아만큼 선호하지는 않는다. 종교나 문화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인 화교들도 적지 않다. 인구의 23~27%는 화교출신일 정도로 중국문화와도 친연성이 높다.
3. 혼란스러운 정치 / 日本 1993년
2021년 8월 초 말레이의 총리가 바뀌었다. 이스마일 사브리 야쿱(62)라는 낯선 정치인이다. 솔직히 이분의 이름을 장기간 외울 자신도 없고, 그다지 길게 가지 못할 거라는 확신도 갖고 있다. 전임 무히딘 야신 총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근래 말레이 정치판이 "이합집산"의 와중에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튈 지 예측이 어렵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말레이 정치판을 요약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데 (사실은 잘 모르기 때문임), 우리가 익숙한 동아시아와 비교를 하자면, 1993년 일본의 정치판과 교차해 보는 게 타당할 듯 싶다. 당시 냉전이 해체되고 있었고, 일본 정치판도 드디어 정권교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이 트던 시점이었다. 그렇게 등장한 세력이 "호소카와 모리히토"의 "일본신당" 이고, 자민당 탈당파까지 합세해 만든 연립내각이었다.
실제로 2018년 선거 직후의 말레이 정치는 1994년의 일본을 빼다 닮았다. 암노(UMNO)라고 불리우는 60년 집권 세력이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패한게 2018년이었고, 그 뒤로는 전열을 정비한 보수세력이 서서히 권력을 되찾아오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총리로 선출된 "이스마일" 총리가 바로 보수당 UMNO 소속의 정치인이다. 분명히 2018년도에 정권이 바뀌었는데, 어떻게 야당이 된 보수당 출신 총리가 선출이 되었을까? 이게 이번 인선의 핵심 질문이 된다.
4. 기득권 "선거가 싫어"
2018년 총선이 있었고, 다음 총선은 2023년 무렵이다. 아세안 국가들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다. 과거 기득권 세력이 "선거"의 횟수를 극한으로 줄여 놓은 것이다.
아마도, 동남아 공직자 가운데 가장 할 일이 없는 조직은 "선거관리 위원회" 공무원이 될 듯 싶다. 선거가 4~5년에 1번 뿐이다. 이게 말레이만 그런게 아니라, 미얀마나 태국이나 싱가포르나 어디나 마찬가지다. 선거를 하긴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거를 안하면,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기 때문이다. (여러 제약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최대한 선거의 횟수를 줄이는 꼼수를 쓰는 식이다. 대통령 선거도 없고, 지자체장 선거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4~5년에 딱 한번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는 식이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대서 총리를 세워서 무려 4~5년간 아무런 견제 없이 임기를 채워버린다. 그런데 2018년 사상 처음으로 노정객 "마하티르"가 이끄는 야당연합(Bersatu)이 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일본의 자민당에 견주는 압도적 집권세력 암노(UMNO)로서는 뼈아픈 패배였다.
5. 보수파의 반란
94살의 노정객 "마하티르"와 30년 야당생활을 한 "안와르"의 조합이 바로 국민들이 선택한 5년의 연립정권이었다. 마하티르가 총리를 하든지, 아니면 안와르가 총리를 하는게 국미들의 "민의 民意"에 맞다는 얘기다.
그런데, 1995년 일본의 호소가와 내각이 무너지고, 다시금 혼란을 거쳐 자민당이 권력을 쟁취한 것 처럼, 말레이시아도 엇비슷한 장면들이 연출이 되었다. 일본의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어쩔 수 없이 "자민당"을 출세의 배경으로 삼듯, 말레이시아도 태생적으로 "UMNO"가 정치생활의 배경이 될 수 밖에 없다. 60년 이상 정권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마하티르-안와르도 바로 "암노 탈당" 정치인들인 것이다. 2018년 선거를 통해 연립내각을 꾸릴 때 당연히 상당수가 "UMNO" 출신 정치인들이었고, 이들이 2년을 잠복해 있다가, 결국은 늙은 마하티르에 반기를 들고 연립내각을 붕괴시킨 것이다. 한마디로 "안와르가 총리하는 꼴은 못보겠다"라는 정서에 가깝다.
6. 안와르 Anwar 비토
결국 선거는 치르기 싫고, 정권 교체의 명분이 없으니, 보수세력 최후의 보루인 "국왕"에게 달려가 현실정치 개입을 이끌어 내고 만 것이다. 말레이의 국왕은 헌법상 현실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2020년 2021년 무려 두번이나 기괴한 방식으로 국왕이 정치에 개입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국왕이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총리 후보 추천"을 받아서, 본인이 "의회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 예를들어, 영국의 여왕이나 일본의 천황이 모든 국회의원들과 접촉해서, "팩스/ 이메일 /카톡 등"으로 , 국왕 본인이 집계를 해서 총리를 임명해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아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비상상황을 이유로 해서 말이다. 아니 의회는 왜 존재하는데? 지난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묘한 정국이 되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안와르"의 집권을 막기 위한 보수세력의 정치쑈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야~, 국왕님이 결정했는데, 이걸 승복 안할거야?"
7. 말레이 정치의 미래는?
사실, 정치라는 게 정답이 있는 행위는 아니다. 헌법이나 법률에 의거해서 정치를 하라는 법은 있을 수 없는거다. 오히려, 정치는 법률을 초월해 있는 영역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러한 행태는 "보수세력"이 권력을 갖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만약 마하티르나 안와르 세력이 국왕과 사전에 모종의 접촉을 했다면 "위헌논란"에 휩싸였겠지만, 수많은 귀족 정치인들의 연합인 UMNO가 하니 아무런 문제가 안되는거다. 어차피 국왕도 기득권에 속하니.
보수세력의 입장은 뚜렷하다. 말레이의 국체(國體)가 흔들리면 안된다는 것. 안와르와 그의 연립세력인 화교계 정당에는 정권을 줄 수가 없다는 얘기다. 즉, 이슬람(종교)-말레이(민족)이야 말로 말레이시아의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순수성의 정치다.
현재 보수세력 UMNO는 1년 반째 코로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나라를 수렁에 빠뜨려 놓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마하티르-안와르가 훨씬 더 잘했을 가능성이 높다.
PS.
- 안와르에게 총리 권한을 주면 간단한데, 절대 주고싶지 않은 저 끈질김. 정권교체 단 한번이 어려운게 아시아 정치판임.
- 그러고보니,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일본 정치인이 1993년 "호소가와 모리히토" 일본신당 총리였음. 무언가, 새로워서 그냥 좋아한 케이스.
- 신임 말레이 총리는 단명할 가능성이 높음. 일본의 "스가" 총리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면 쉬움.
- 말레이 보수파는 속으론 "후회하고" 있을지도. 그러니까 코로나 사태 바로 직후에 "쿠데타"를 벌인 것임. 만약 코로나가 이렇게 심각할 줄 알았더라면 쿠데타 안했을 듯. 마하티르-안와르가 독박 쓰게 놔두었을 것임. 결국 이번 코로나 사태로 UMNO는 크게 망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