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인니의 높아진 존재감, 복잡해진 미래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2.12.15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호스트 역할을 한 조코위 대통령

최근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경영경제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아세안의 두 국가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다. 중국을 대신할만한 양질의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다수 갖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따른 여행 금지가 풀리자마자 수많은 기업인이 앞다퉈 가장 먼저 찾은 나라가 바로 이들 남쪽 국가가 되었다.

아세안의 맹주 인도네시아의 호성적도 베트남에 뒤지지 않는다. 원자재 가격 상승 덕분인지 코로나 시국인 2021년에도 약 4%, 올해도 거지는 6%에 가까운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이다. 고영경 고려대 연구교수는 “인도네시아는 비록 첨단산업은 미약해도 제조업과 일차 산업의 균형이 좋고 인구가 2억 8천만 명에 가까울 정도로 내수까지 튼튼해 세계 경기 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미·중갈등의 파고 속에서도 특유의 중립적 입장인 “포용과 협력”을 외치며 자연스레 정치적 위상도 크게 키웠다. 올해 인도네시아는 유독 바빴는데, 2023년 아세안 의장국 등극을 앞두고 미얀마 사태를 비롯한 여러 갈등 해결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지난달에는 발리에서 G20 정상회의 호스트를 맡아 코로나 이후 세계질서 속의 주도권까지 확인한 것이다.

여전히 강력한 조코위

이같은 급성장의 배경엔 조코 위도도(애칭 조코위) 대통령의 안정된 지도력이 바탕이 되었다는 게 중론이다. 2014년에 임기를 시작한 조코위는 어느새 집권 9년차를 맞이하며 2024년 권력승계를 해야 할 말년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조코위의 열풍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좌우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고른 지지를 기록 중이다. 최근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수라카르타에서 열린 조코위 차남의 결혼식에는 수만 명의 하객과 여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해 말년 대통령의 범상치 않은 영향력과 인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직도 지지율이 60%를 넘어 70%까지 이르자 일각에선 대통령 3선 허용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1961년생인 조코위는 정치적 이력이나 배경이 대단한 인물은 아니다. 평범한 사업가이던 그는 43세라는 늦은 나이에, 한국으로 따지면 전주나 충주쯤 되는 인구 50만의 수라카르타의 시장직에 도전해 이후 성공적으로 낡은 도시를 현대적으로 개혁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메가와티가 이끄는 제1 야당의 자카르타 주지사 후보로 발탁돼 당선되면서 전국적인 돌풍을 일으켰고, 3년 뒤 곧바로 대권에 도전해 오늘날엔 인도네시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재선 대통령으로 거듭났다. 이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인으로 활약 중이니, 어찌 보면 만화 주인공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봐도 좋을 듯싶다.

여전한 군부, 무슬림 급성장

천연가스와 오일 등 원자재가 풍부한 인도네시아 경제에 간만에 활력이 돋는 것은 부패를 견제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노력하는 조코위를 비롯한 집권세력의 건전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코위도 현실적 한계를 지닌 보통의 정치인에 가깝고, 인도네시아 안팎의 상황이 언제나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만도 아니다.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바로 과거 오랜 집권세력인 군부軍部와 최근 급속하게 세를 불리고 있는 무슬림 원리주의 세력이다.

최근 한국인들이 인도네시아에 갖는 가장 큰 불만 가운데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 -21 사업에 참여한 인도네시아(지분 20%)가 분담금을 제때 내지 않았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첨단기술만 요구하고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유럽이나 러시아제 전투기에 관심을 흘리는 것에 대한 분노인 것이다. 이런 갈등은 과거 잠수함 협력 사업에서도 벌어진 적이 있기에 논란이 더 크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같은 동아시아 소속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워낙 멀기 때문(5300km)에 이해가 겹치지 않아 특히 안보 문제는 상호협력하는 게 절대적 이익이다. 조코위를 비롯한 집권세력이 이를 모를 리 없지만, 여러 사업에서 삐걱대는 것은 이른바 군부의 존재감 때문이다. 현 국방부 장관인 프라보워는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지난 10년간 조코위의 경쟁자일 정도로 정치적 위상이 높은 군부의 총책임자다. 전투기나 잠수함 등 군사 분야 정책 결정은 군부를 중심으로 한 복잡한 세계전략과 이해관계 속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어, 한국인이 원하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빠르게 나오기 어렵다.

급진적 이슬람 세력의 정치화 문제는 더욱더 심각하다. 최근 이란에서 벌어지는 신정神政주의와 시민세력 간의 갈등이 이곳에서도 조만간 재연될 우려도 있다는 얘기다. 일부 극우 무슬림 세력은 국가 위에 종교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세속주의와 갈등을 빚는 것인데, 근래 인도네시아에서도 이들 세력이 부쩍 힘을 키우며 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다. 선거에서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이 종교인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극보수주의 형법 문제

이같은 우려는 12월 6일 개정된 인도네시아 신형법에서도 다시금 확인되었다. 형법은 주권국 안에 거주는 모든 이의 죄를 결정하는 일반법이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이다. 인도네시아는 과거 제국주의 시절에 만들어진 악법을 고치기 위해 여러 모색을 해왔는데 그 결과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종교색이 짙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혼전 성관계 금지’ ‘낙태 금지’는 물론이고, 대통령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난까지도 강력한 처벌 규정을 신설한 것이다. 이밖에도 신성모독제 강화를 포함해 이슬람 특유의 종교적 색채가 짙어진 것이다.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제국주의를 극복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막상 고치려고 보니 국가 제1의 종교인 이슬람주의 입장을 강하게 집어넣은 것이다. 이렇게 법이 시행된다면 앞으로 인도네시아에 투자하고 공장을 신설하려고 하는 외국인으로서는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개인의 권리를 포함한 보편성이 무시되고 특정 종교색채가 형법에 드러나면 인도네시아에서 장기거주가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가와 종교세력은 커지지만, 개인과 민주주의 세력의 약화는 필연적이다.

일단 이번 형법 개정안은 3년 유예를 두고 통과가 되었지만, 정치인들이 쉽사리 재개정에 동의해줄지는 미지수다. 무슬림 세력이 이를 간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온건 합리파 조코위 이후의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전세계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간자르 vs. 바스웨단 vs. 프라보워

선거는 1년도 넘게 남았지만 벌써부터 인도네시아 정국은 차기 대선후보를 향한 정당들의 구애와 이합집산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5년에 단 한 번 대통령과 의회 선거가 함께 열리기 때문에 이같은 호들갑은 필연적이다.

메가와티와 조코위라는 두 인물을 보유한 여당 PDI-P의 후보로는 간자르 프라노워(Ganjar Pranowo 54) 중부 자바 주지사가 유력하다. 젊은 도시거주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간자르 주지사는 조코위의 후계자를 자처하지만, 당내 최대 세력인 메가와티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 한계로 지적된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조코위에 패배한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71) 국방부 장관도 다시금 출마가 예상된다.

최근 중도층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인물이 전임 자카르타 시장인 아니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 53)이다. 독실한 무슬림 성직자 집안 출신으로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를 따고 대학교수와 교육부 장관까지 거친 엘리트라는 점이 포인트다. 현재는 소속 정당이 없지만, 좌우로부터 뜨거운 구애를 받고 있어 진보나 보수 쪽 약체 후보를 대체할 최적의 후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네시아 정치권은 이합집산이 워낙 빨라 흐름을 파악하기 곤란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세안 내에서 가장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한국이 이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가 된다.

내년 아세안 의장국으로 역할이 기대되는 인니의 지도자 조코위

PS.

1. 바스웨단은 아직 검증이 덜 되었음. 특히 문제로 거론되는 건, 인니판 사상 검증 사태인 2017년 "아혹 주지사 신성 모독 사건" 당시, 철처하게 아혹의 반대편에 서서 "극우파"의 지원을 받아 자카르타 주지사로 당선이 된 것. 이는 민주당과는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세력이라는 의미도 된다. 과연 바스웨단의 진짜 색깔은 무엇일까? 극우로 계속 직행을 하려나?

2. 조코위가 아무리 잘 했어도 "정권의 연속성"을 담보하긴 어려울 수도.

3. 어디나 정치인 비판이 제일 쉽고, 재미있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