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올리버 왕, 필리피노 아메리칸 DJ
O 필리핀계 소년들, 샌프란시스코 밤무대를 주름잡다
O [책 원제] Oliver Wang, Legions of Boom: Filipino American Mobile DJ Crews in the San Francisco Bay Area (Duke University Press, 2015)
O 필리핀계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갔나?
글 | 황 장 석
디제이 큐버트DJ Qbert, 믹스 마스터 마이크Mix Master Mike, 디제이 숏컷DJ Shortkut, 디제이 아폴로DJ Apollo. 음악계에서 전설적인 디제이로 불리는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샌프란시스코와 그 주변 지역을 통칭, 출신이자 필리핀계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필리핀계 이민자 가정의 소년들이 어떻게 샌프란시스코 디제이 사회를 주름잡게 됐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롱비치 캠퍼스California State University, Long Beach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실제 디제이로 일하기도 했었고, 음악 관련 저널에 꾸준히 글을 써올 만큼 무척이나 음악을 사랑하는 학자다.
출장 파티DJ 추적한 사회학자
저자는 디제이 문화가 현재까지 발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그 동안 별 달리 조명 받지 못했던, 필리핀계 미국인 중심의 ‘모바일 디제이mobile DJ’를 조명한다. 앞서 언급한 전설적인 디제이들이 하루 아침에 난데없이 등장한 게 아니라 그에 앞서 이미 씨앗이 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모바일 디제이는 의역하자면 ‘출장 디제이’쯤 될 듯 하다.
여러 명이 한 팀을 이뤄 파티 등의 행사에서 무대를 꾸미고, 조명을 설치하며, 음악을 틀고, 흥겹게 분위기를 돋우며 공연하는 방식과 그런 공연을 하는 디제이 팀을 일컫는 말이다. 1970년대 후반 등장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한 뒤, 1990년대 중반 개별 디제이 중심의 문화에 자리를 내어주고 사실상 중앙무대에서 사라진 게 모바일 디제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와 필리핀 이민자 사회는 뗄 수 없는 관계다. 필리핀계 미국인이 가장 많이 정착한 주state가 캘리포니아이며, 그 중에서도 필리핀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많은 이민자들이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 샌디에고와 더불어 항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짐을 풀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필리핀계 미국인 거주지역으로 불리는 데일리 시티Daly City는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는 도시다. 샌프란시스코에 온 필리핀 이민자 상당수는 도심 개발로 주거비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1970년대 이후 주거환경이 나은 신도시로 이주했는데, 샌프란시스코와 바로 맞닿은 곳이 데일리 시티였다. 인근의 프리몬트Fremont, 발레이오Vallejo, 산호세San Jose 등에도 필리핀에서 온 이민자 가족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둥지를 틀었다.
어째서 필리피노 DJ?
저자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모바일 디제이 등장과 관련해 1977년 개봉한 존 트라볼타 주연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를 언급한다.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사운드트랙이 인기를 끌면서 미국 곳곳에서 나이트 클럽이 번성하기 시작했는데, 샌프란시스코도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나이트클럽에서 성장한 디제이 문화가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모바일 디제이 등장의 터를 닦았다고 말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엔 온라인 강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비디오테이프로 제작한 디제이 강좌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직접 디제이 공연을 보고 배워야 했다. 저자는 디제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한 샌프란시스코 나이트클럽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형태의 후배 세대 디제이의 교육 거점이 됐다고 말한다.
왜 필리핀계 미국인 디제이였을까.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필리핀계 미국인 사회에서, 파티라고 불리는 행사는 거의 대부분 모바일 디제이가 진행했다. 집 차고에서 여는 파티, 학교 댄스파티, 결혼식 피로연 등 파티란 파티에는 모바일 디제이 군단이 있었고, 이들이 설치한 ‘무대 위, 조명 아래’에서, 이들이 틀어주는 흥겨운 음악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었다. 라틴계, 흑인, 중국계 미국인 사회에서도 모바일 디제이가 없었던 건 아니었고, 필리핀계 미국인이 이끄는팀에 필리핀계가 아닌 다른 미국인 멤버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인원과 활동 등의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필리핀계 미국인 디제이가 대세였다. 모바일 디제이 활동에 대해 필리핀계 이민자 가정의 부모들도 긍정적이었다. 마약이나 술에 취하는 파티도 아니었고, 스스로 즐기면서 쏠쏠한 금전적 수입을 올리는 경제활동을 하는데다, 대부분 한 사람 건너 뛰면 알 만한 이웃사촌으로 엮인 필리핀 이민자 가정의 또래들이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소년이었을까. 저자는 화려한 조명 아래 무대를 장악하는 디제이 소년들은 또래 소녀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이것이 소녀가 아닌 소년들이 대세였던 이유라고 말한다. 여자친구를 사귈 요량으로 디제이 세계에 뛰어든 경우가 실제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여성 모바일 디제이 팀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활동한 여성 디제이들의 관심사는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었다고 말한다. 여성 디제이들은 남자친구와 함께 나이트클럽에 다니다가 디제이에 입문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70년대 후반, 필리피노 소년들
저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모바일 디제이가 등장했는지 그들의 궤적을 좇는다. 1978년 여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공립 발보아Balboa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라파엘과 리키 형제. 이들은 친구, 친척 또래들과 함께 사운드 익스플로젼Sound Exꠓplosion이란 팀을 결성한다. 학교 고적대ROTC drill team를 이끌며 음악에 심취해 있었던 이들 형제가 만든 이 팀은 베이 지역 최초로 기록된 모바일 디제이팀이었다.
이들 형제는 샌프란시스코 인근 도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디제이들의 논스톱 믹싱에 충격을 받고 팀을 결성했다. ‘노래 한 곡이 끝나가면 서서히 볼륨을 줄이고 다음 곡을 다시 틀어주는 디제이’만 봐왔던 그들에게 끊기지 않고 음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드는 논스톱 믹싱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들은 ‘나이트 클럽 충격’ 이후 턴테이블과 장비를 구입해 논스톱 믹싱 연습을 시작했다. 이는 ‘멤버들이 협업해 무대를 꾸미고 조명을 설치하며 댄스 파티를 이끌 준비를 하는 종합예술’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해 가을, 학교 댄스파티에서 첫 공연을 하기에 이른다. 데뷔 이후 학교 공연과 각종 파티에 섭외돼 활동하던 그들은 아예 사업자 등록을 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공연을 하며 적게는 350달러, 많게는 600달러까지 받았다. 1970년대 말 화폐 가치로 봐도 적지 않게 받은 것이었고, 16, 17세 소년들이 대부분인 팀이 받은 걸로 보면 큰 돈이었다.
1979년 12월 1일엔 샌프란시스코의 대형 무대인 캘리포니아 홀에서 댄스파티를 열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들의 성공은 다른 모바일 디제이 팀들의 결성으로 이어졌는데, 사운드 익스플로젼 등장 2년 만에 발보아 고교에서만 4개의 다른 팀이 생겼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충실한 인터뷰라고 할 수 있다. 필리핀계 미국인 소년들의 모바일 디제이 역사를, 실제 활동했던 사람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팀을 결성하게 됐는지, 누구네 집 차고에서 거사를 도모했는지, 당시 필리핀계 미국인 가정의 문화는 어떠했는지, 나중에 왜 팀을 해체하게 됐는지 등 개별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학문적인 연구 성과를 담은 논문이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의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필리핀계 소년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성장기로도 읽힌다. 그리고 그 소년들과 그들이 만든 문화에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끝)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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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photo: The short film Flip the Record, written and directed by Marie Jam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