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큐피드'는 과연 케이팝일까?

작성일: 2023.04.28

글 | 정 호 재


0.

미얀마 양곤의 한 펍에 왔다. 서울 이태원 뺨칠만한 실내 디자인과 재즈밴드의 음악이 펼쳐진다. 이곳은 양곤이라기보다는 태국의 어느 고급 레스토랑 같다. 밴드 연주가 없을 때면 화면을 통해 뮤비와 인기 음악이 흘러나오는 데 한국에서도 최근에 공개된 지수의 <꽃>과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가 흘러나와 신기했다. 대중음악은 가장 빠르게 국경을 넘어 전파되는 상품인 것이다.

'피프티'의 <큐피드> 얘기를 해보고 싶은데, 최근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국내 차트 대신 빌보드에 먼저 입성했다는 뉴스로 화제를 모았는데, 보통 이렇게 작은 기획사가 내놓은 걸/보이 그룹이 예상 밖으로 성공할 경우, 중소기획사의 '반란' '기적'이라는 수식어로 축하해주곤 한다.

과거엔 공중파 3사나 멜론 차트에서의 '반란'을 주로 다루었는데, 피프티의 경우 스케일이 더 커졌다. 먼저 빌보드에 데뷔하고, 반대로 한국 차트로 역수입이 되었기 때문이다. 음원 유통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가 맡아서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1.케이팝의 범주

케이팝은 특정 음악 장르가 아니라, 일종의 제3세계 음악에 가까워 그 출발을 "지역명"을 따서 부르게 된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제3세계 음악에 머물 경우는 별 상관이 없는데, 스케일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호칭과 장르에 대한 혼란이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아주 많은 전문가가 "이제 '코리아(K)' 딱지를 떼어야 하지 않냐?"라고 볼멘소리를 종종 하신다. 십 대 후반 소년·소녀 이미지가 짙은 '아이돌 음악'에서부터 이미 음악적 성숙기가 훨씬 지난 윤도현이나 아이유에게까지 '케이팝'이라는 범주로 묶을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딱히 "케이팝"이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공인된 생각의 틀거리가 없는 게 문제가 되기는 한다. 일단 주류적 의견은 "한국 기획사"에서 출시하고 "국내 공중파 음악프로"에 자주 나와야 한다는 것은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즉, 생산과 유통방식에 따른 분류인데, 한국 PD가 주도하는 '기획사' 시스템에서 훈련받고, 공짜로 유튜브에서 유통이 될 수 있는 '공중파 순위프로그램'에 자주 나와야 한다는 것이 핵심 같다. 아무래도, 초기 케이팝은 공짜로 유튜브에서 주로 접할 수 있었기에 그랬던 것일 수도.

2.복잡한 음악의 구성요소

그런데 케이팝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국적", 즉 기획사와 방송사의 국적만으로는 구분하기 힘든 상황이 왕왕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논란이 강화된 계기는 급증하는 외국인 구성원들인데, 1~2세대는 주로 미국 교포들이 참여했지만, 이후 일본인과 아시아 멤버들의 비중이 3세대 이후부터 크게 늘어난 것이다.

외국에서의 케이팝 따라하기도 일정 정도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케이팝의 외향을 고대로 따라해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제작한 '케이팝 따라쟁이' 그룹은 케이팝인가, 아닌가. 혹은 일본에서 한국인 멤버로 활동했던 <초신성>류의 그룹은 케이팝인가, 아닌가.

최근엔 한국 연예기획사들의 강화된 자본력에 의한 해외 진출도 혼란을 가중했다. 예를 들어 JYP가 대표적인데, 2020년 <니쥬>라는 100% 일본인 멤버 그룹을 출시했던 거다. 한국의 기획사가 키우고 일한 방송에 나왔는데, 이런 경우엔 케이팝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가, 없는가. 또 한국 기획사가 서양 소녀들로 만든 걸그룹은 케이팝인가, 아닌가?

논의를 정리하면, 대중음악이라는 상품은 전통적인 상품제조와 달리 국경을 빠르게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 관건이 되는 듯싶다. 공산품이나 농산물의 경우 "Made in Korea"라는 라벨을 붙이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부가가치 창출과 일정 비율 이상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노래라는 상품은 가사와 아이디어를 외국에서 빠르게 건네받을 수 있고, 동시에 멤버나 자본의 이동도 빨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3.어라? 외국 음악인가?

케이팝의 정체성 논의가 지속하는 와중에 최근 빌보드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큐피드(Cupid)"라는 노래는 케이팝의 범주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흥미롭다.

필자는 최근, 이 노래에 대한 상찬賞讚을 자주 접했다. 그런데 유튜브를 통해 찾아본 노래는 상당히 쌩뚱맞았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화려하고 빠른, 또 강렬한 비트의 케이팝 음률과 댄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거부감이 든 이유는 라이브로 노래를 한 게 아니라, 음악방송에선 이미 녹음된 립싱크 엇비슷한 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인기를 얻은 이후엔 라이브로 하긴 했다).

가장 큰 이질감은 이 노래가 아주 예전 팝에서 들었을 법한 이국적인 리듬감 때문이기도 했다. 역시나 작곡가는 최근 한국에서 자주 쓰이는 스웨덴 사람의 작품이었다. 스웨덴은 유럽이기도 하지만 그룹 <아바Abba>의 헤리티지로 알 수 있듯, 쉽고 기분좋은 리듬감으로 일찌감치 미국을 포함한 세계시장에서 통했던 이력을 가진 나라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필자가 순식간에 <큐피드>라는 노래의 가사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는 데 있다. 물론 요즘 팝은 속도가 빨라서, 잘 알아듣기 힘들다. 그런데 라임 정도만 알아듣기더라. 스튜피드-덤브, 에브리데이-플루어웨이, 타이틀리-트룰리. 그제야 뭔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아, 이 곡은 사실상 팝송이구나!"

4. 큐피드, 영어노래

그제야 가사를 찾아보니, 내가 느낀 이질감이 '아바'의 전통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외국어 '가사'에서 오는 것인지 그 느낌이 확연해 졌다. 이 노래는 대략만 따져봐도 70% 이상의 가사가 영어로 쓰인 곡이다. 대략 이런 식이다.

I'm feeling lonely (lonely) / ‌그만 힐끗대고 말해줘요‌‌Hold me (hold me) / ‌‌다시 crying in my room‌‌숨기고 싶어 (say what you say, but I want it more)‌‌ / But still I want it more, more, more

가사의 후렴 부분은 100% 영어로 쓰여 있으며, 제목도 우리가 익숙해서 그렇지 '큐피드' 자체가 영어 이름이다. 당연히 70%의 가사가 영어로 부르는 노래의 맥락을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 당연하고, 한국에서 인기를 끌기보다는 스포티파이 플랫폼의 영어 리스너로부터 반응을 먼저 얻은 것이 납득이 되었다. 동시에, 우리가 케이팝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구분해야 하는지를 뚜렷하게 각인해 주는 사례가 되는 것을 보인다.

5. 한국어 가사 = Kpop

케이팝은, 앞서 말했듯, 먼가 음악 장르가 아니기에 다른 음악과 구분할 기준이 없다. 자본이나, 멤버의 국적, 혹은 한국의 전통리듬으로 가늠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남은 "K(한국)"적인 요소는 "한국어"가 유일해 진다. 현재는 멤버의 인종과 국적이 ‘케이팝’의 지배적 근거임이 현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케이팝의 기준은 '한국어 가사'가 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당연히 외국인이 한국어를 잘 배워서 한국어로 노래해서 인기를 얻는다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당연히 케이팝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갈수록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은, 케이팝이 아닌 "글로벌 팝"을 지향해 나갈 것이고, 케이팝의 정체성은 시간이 갈수록 옅어질 것이다. 결국 '가사(언어)'가 케이팝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큐피드>라는 노래의 히트는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 싶다.

PS.

1. 샹송을 샹송답게 하는 게 바로 “프랑스어” “글로벌팝”을 가르는 기준 역시 “영어”. 언어를 기준으로 케이팝을 구분하는 게 복잡해진 음악의 생산 및 유통 과정을 볼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의미임.

2. ‘케이팝’이라는 명칭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임. 대체할 다른 말이 전혀 없음. 아시아팝으로 성질은 확장하더라도, 그 이름은 바뀔 수가 없는 것임.

3. 케이팝이라는 이름이 사라질 가능성은, 한국의 대중음악이 전부 영어로 쓰여질 때가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음. 때문에, 나는 이번 <큐피드>의 가사에는 상당한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음. 솔직히 따라 부르기도 힘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