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2022년 5월 9일, 필리핀 대선, 봉봉 마르코스 1위 확실시
O 다수 대중이, 죽은 독재자를 용서하고 포용하는, 아주 신박한 방법
O 과거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향수, 그리고 "서프라이즈"급 루머들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2년 5월 10일
동남아 정치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인 입장에서 이해 못 할 수준도 아니다. 필리핀 정치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여럿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5월 9일은 필리핀의 17대 대선이 치러지는 날이다. 필리핀의 정치는 한국에서 나이를 많이 먹은 순으로 더 친숙하고 이해하기 쉽다. 2000년대 이전의 필리핀 정치는 실시간으로 한국으로 생중계가 될 정도였다. 이후 한국이 고도성장을 시작하자 필리핀 정치는 한국의 담론중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후진적”이라고 해서 말이다.
이번 17대 필리핀 대선의 결과는 이미 반 년 전부터 예고가 되었다. 1957년생인 봉봉 마르코스의 당선이 99% 확실시된다는 얘기였다. 한국인 중년층에게 “마르코스”라는 이름은 잊기 힘든 이름이다. 1986년 필리핀의 ‘민중 혁명’으로 쫓겨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1986년 한국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연일 끊이지 않았던 시기, 위성방송을 통해서 전해지던 필리핀 시민 혁명은 한국의 시민들에게도 커다란 용기를 주었고, 특히 마르코스 부인 이멜다 여사의 수장고에서 나온 수천 켤레의 호화 구두는 당대 한국 정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군부 정치를 반대하는 동력이 된 것이다.
그런 마르코스와 이멜다의 아들 ‘봉봉 마르코스’가 압도적인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사실은 당혹스스러우면서 동시에 한국인이라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한국 역시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봉봉 역시 정치 이력으로 따지면 한국의 그분과 큰 차이도 없다. 상원의원 등을 지내며 충분한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도 “지나간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단순히 “독재자의 영애, 장손”이라는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작동 방식도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마시타 골드?
한국도 일제의 식민지를 거쳤기 때문에 제국의 패망에 관련한 상당히 많은 ‘도시전설’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목이 바로 “숨겨진 보물”에 관한 것이다. 제국이 멸망한 지도 7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그때 어딘가에 감춰진 ‘보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창작의 소재로 쓰이곤 한다. 지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르 공격했던 소재로 일제가 남겼다는 ‘남현동 금괴’가 언급되기도 했다.
이 방면에서 가장 유명한 게 필리핀의 ‘야마시타 골드’다. 토모유키 야마시타1885-1946 장군은 태평양 전쟁 시기, 말레이 반도에서 영국군을 몰아낸 장군으로 유명하다. 그는 동남아 전선을 휘젓고 종전 직전에 필리핀 사령관을 맡고 있었는데, 그가 동남아에서 수집한 금은보화를 본국인 일본으로 수송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양 제해권을 미군에 빼앗겨 그 방법을 잃자, 야마시타는 동남아 금은보화를 필리핀 마닐라 인근 30여 곳에 비밀 공간을 마련해서 철저하게 숨겼다는 것이 그 유명한 “야마시타 골드”의 대략적인 줄러리다.
이 얘기는 "돈에 쪼들린" "어른들의 우화" 이기 때문에 당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실제로 후대에 덧붙여진 얘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야마시타 장군이 보물을 은닉한 뒤 공사 관계자들을 죄다 모아놓고 폭탄을 터뜨려 다 죽였다는 얘기도 사실처럼 떠돈다. 이는 마치 진시황제가 자신의 무덤을 조성한 얘기와 흡사해 흥미롭다. 숨겨진 금괴의 매장량도 시간이 갈수록 규모가 커져왔다. 이제는 그 가치가 1경에 이른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인터넷을 떠돌 정도다.
보통 이러한 이야기는 한국에서 “서프라이즈 소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음모론과 도시전설을 적당히 섞은 TV 예능용 소재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미 많은 전문가는 ‘야마시타 골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일부 부호들이 전쟁 중 숨기는 일은 있었겠지만, 군대가 조직적으로 필리핀 땅에 숨겼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설령 그랬다해도 일본으로 수송 도중에 바닷속에 수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서프라이즈’ 필리핀
갑자기 필리핀 대선 날, 왜 서프라이즈급 이야기냐고 의아해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실제로 ‘야마시타 골드’가 현실의 필리핀 정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독재자 마르코스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배경에 ‘일제가 숨겨놓은 금괴’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페르난디드 마르코스는 1963년부터 1986년까지 집권한 필리핀의 독재자이다. 집권 시기로만 따지면 한국의 박정희와 전두환 시기1961~1987까지 비교가 가능한 23년의 장기집권 기록을 갖고 있다. 실제로도 박정희와 전두환의 모습을 전부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특히 1972년부터 1981년까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마치 한국의 유신시대와 같은 폭압적인 정치를 펼친 장본인이다.
명문가 집안에서 1917년도에 태어났다. 부친인 마리아노 마르코스 역시 국회의원과 주지사를 지낸 고위 관료로 미군정과 일본군정에서 줄타기를 한 인물이다. 필리핀 법대를 졸업한 마르코스는 이후 장교로 태평양 전쟁에 미군 쪽에 참전해 포로가 됨으로써 일약 스타군인이 되었고, 이후 변호사로 변신해 정치계에 일찌감치 그리고 화려하게 데뷔한다. 이후 스토리는 널리 알려져 있다. 국회의원과 상원의원을 거쳐 1963년, 46세의 나이에 대통령에 오른 것이다. 명문가 잘생긴 정치인의 동화같은 비상飛上이었고 동남아 제3대 부국 필리핀 최고 스타의 탄생이었다. 이미 상원의원 시절 1954년 미스 필리핀 이멜다와의 결혼 역시도 마르코스 정치 브랜드에 상당한 기여를 했었다.
그 이후 장기독재의 결과는 필리핀 국제적 위상의 추락과 1986년 시민혁명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다. 아시아의 대표 선진국 필리핀은 마르코스 집권을 거치며 제3세계 후진국으로 몰락했고, 훗날 드러난 마르코스 일가의 부정축재 규모는 이미 30년전인 1990년대에 5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약 6조에서 12조)로 추산될 정도였다. 아시아 최악의 부정부패와 독재자의 추문이라고 할만했다.
그렇게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 1989년에 비극적으로 사망한 아시아의 나쁜 정치인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그의 사후 평가는 1990년대 지지부진한 필리핀의 정치경제 환경과 맞물려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그 배경엔 “야마시타 골드”도 한몫했다는 것이 적잖은 필리핀 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그게 실제로 연관이 있다는 얘기일까?
가십이 주무르는 정치?
2013년 이멜다 마르코스 전 영부인은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야마시타 골드'를 수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 이 보물은 자신의 가족이 필리핀 뿐만 아니라 다른 인류까지 "구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은둔 재산에 대한 법정 다툼 문서가 가득한 방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2013년 10월 사회경제기획비서관을 지낸 위니 몬소드에게 자신의 집 지하에 "6,000-7,000t"의 금을 숨겨 놓았다고도 말했다. 이멜다는 괴담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던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야마시타 골드는 해외의 가십성 언론의 은근한 화제가 되었다. 기자들은 봉봉에게 이 보물에 대한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 그때마다 봉봉은 능수능란한 정치인처럼 응답했다. 자신은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설적인 보물을 본 적이 없다고 답한 것. 하지만 이미 기자들이 이렇게 질문했을 정도면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는 공인된 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그의 지지자들은 보물에 대한 배당금을 은근히 기대할 정도다. 일종의 로또를 기대하는 심리와도 같다고 볼 수 있을까? 자연스레 이러한 기대감이 커질수록 해외 언론이 “야마시타 골드”를 단순히 가십성 소재라기보다는 진지한 정치 주제로 다루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과연 마르코스 일가가 어느 정도까지 이 전설과 관계가 되었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는 식이다.
1988년의 법정 다툼
야마시타 골드가 법정 다툼이 된 배경엔 마르코스가 권력을 잃고 하와이로 망명을 떠난 직후에 시작되었다. 로겔리오 로하스Rogelio Roxas가 제기한 소송이라고 해서 쉽게 “로하스 소송”이라고 부르겠다.
이 이야기는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범한 보물탐사꾼인 로하스가 일제시대 군부과 관계가 있는 분의 아들인 반귀오Banguio를 만나면서부터다. 그는 이 사람으로부터 야마시카 골드와 관련된 지도와 위치 설명을 듣게 된다. 그리고 10년 동안 노력한 끝에 1971년 실제로 바귀오 시티 인근에서 숨겨진 비밀의 방과, 그 안에 감춰진 황금불상과 금괴 등의 보물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물건을 비밀리에 팔기 위해 여러 장물업자들을 접촉하는 데 하필이면, 그 가운데 마르코스의 측근도 끼어 있었나 보다. 결국 로하스는 자신이 발굴한 황금보물의 대부분을 마르코스가 이끄는 군대에게 빼앗겼다는 것이 소송 내용의 핵심이다.
물론 독재시기였기 때문에 꼼짝 못하고 있던 로하스는 1988년 마르코스가 하와로 망명을 떠나자 직접 하와이로 날아가 보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소송전은 다양한 억측과 뜬소문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후 마르코스가 야마시카 골드을 전부 회수하여, 이 돈을 활용하여 미국을 매수했다는 설로도 발전하고, 아예 미국이 직접 개입하며 미국이 빼앗아갔다, 마르코스의 미국 망명엔 금은보화를 미국에 주면서 가능했다는 등의 밑도 끝도 없는 음모설로도 발전한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 진실인 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로하스가 일부를 회수한 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불상 정도를 땅에서 발굴하는 것이 아시아 사회에서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너무도 확실한 사실은 이 소송이 마르코스의 부활에 엄청나게 긍정적인 효과를 끼쳤다는 것이다.
이멜다의 '합법적 사치'?
이쯤 되면 눈치를 채셨겠지만, ‘야마시타 골드’가 2022년에 회자되는 이유는 이멜다와 봉봉 모자의 위상이 2000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오늘부터는 봉봉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일국의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마르코스-이멜다 가족은 이미 1986년 천문학적인 부패로 역사의 단죄를 받은 인물들이다. 그렇다, 이 지점에서 대중들은 “야마시타 골드”를 이 가족에 대한 심리적인 면죄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멜다의 천문학적인 사치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럼 그렇지! 1970년대에 필리핀에서 그게 가능했다면, 그건 바로 마르코스가 '야마시타 골드'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야. 그 횡재를 했기 때문에 이멜다의 사치도 가능했던 것이고. 이멜다와 마르코스는 사실 죄가 없어. 그렇다면 봉봉도 죄가 없는 거고. 또 그렇다면 그 많은 돈을 다 썼을 리는 없잖아. 아직도 이멜다와 봉봉 가족은 부자이고, 그 부를 홀로 독식하지 않을 거야. 아마도 필리핀을 위해 쓰지 않을까?”
필리핀의 대중에게는 자신들이 직접 선거로 뽑는 최고의 정치인인 대통령에게 이 같은 허황된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겉으로 표출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봉봉에게 “야마시타 골드”를 나눠 달라고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심리적으로 “야마시타 골드”는 마르코스 시대, 즉 필리핀의 황금기에 대한 향수와 추억과 그리고 퇴행이 뒤엉킨 복잡한 정치적인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동시에 아직도 필리핀은 미국과 일본에 지배를 당하던 식민지 시절의 트라우마와 그 유산을 극복하지 못한 증거도 된다. 어딘가 묻혀 있을지 모른다는 “도시전설”에 기대는 정치라니. 놀라우면서도 필리핀 정치의 불행한 현 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도시전설은 실제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동시에 최대의 수혜자를 낳았으니 바로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이다. 물론 그 피해자는 국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
PS
1.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현재 미국은 8,133t, 필리핀은 158.5t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야마시타 골드의 매장 추정량은 7000t에서 2만t, 심지어 20만t이라는 낭설도. 믿거나 말거나.
2. 실제로 필리핀 곳곳에 '숨겨진 보물'에 대한 우화가 적지 않고, 그 수혜자가 주로 독재자 마르코스와 연결되는 것이 흥미로운 포인트.
3. 봉봉의 압승이 곧 발표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