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미얀마 88세대 핵심지도자 '꼬꼬지'..."군부를 먼저 변화시켜야...연방주의 실천이 나의 정치 이유"
작성일 | 2023년 6월 23일
● 88세대 학생운동 지도자, 군부와 극한 투쟁보다는 '협상'을 얘기하다
● 17년간 감옥에 갇힌, 아웅산 수찌 노선에 반대했던, 중도주의자
● "군부를 없애긴 불가능, 변화시키는 노력 필요... 이땅에서 문제 해결이 최우선"
[편집자주] 꼬꼬지 인민당(People’s Party) 대표는 88세대 지도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1961년생인 그는 양곤대학교 재학시절인 1980년대 초중반부터 반군부 투쟁의 중심에서 활약했습니다. 그 결과 1989년부터 2012년 사이 여러차례 모두 17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국제 앰네스티의해 양심수로 간주되어 그의 안전은 국제적인 관심과 감시의 대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정치 상황이 개선된 2015년,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NLD로 출마가 유력시 되었으나, 결국 그는 NLD 총선 후보로 선택되지 못하고 2018년 인민당을 창당해 독자적인 행보를 걷고 있습니다. <루트아시아>는 2022년과 2023년 두 차례 인터뷰를 통해 그를 통해 미얀마의 해법을 찾아보려 시도했습니다. 그는 미얀마 군부롸의 협상과 평화를 추구하는 “중도” 노선으로 분류됩니다. 꼬꼬지의 태도는 우리가 익숙한 "민주주의" 혹은 "반 군부" 입장이 아닌, 문제를 풀기위한 현실주의 노선을 보여줍니다. 이번 인터뷰는 2022년 5월 만남에서 나온 발언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 선생님 얘기를 '신문'과 '책'으로 읽었는데, 직접 만날 수 있어 영광이다.
"반갑습니다. 저는 꼬꼬지(Ko Ko Gyi)입니다. 1988년 버마 민주화운동인 8.8.88 항쟁을 온몸으로 겪었다. 이후 중간중간 석방되기도 했는데, 총 17년 가까이 감옥생활을 했고 2012년에야 정치활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주로 '국제 관계학'을 공부하면서 민주화로의 이행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 했습니다. 현실정치와 이론을 접목하려고 했는데, 그러는 와중에 역사적 관점에서 미얀마 군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화를 추구해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 현재 대부분의 NLD 소속 정치인들은 감옥에 있거나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어 정치활동이 불가능하다. 선생님이 이렇게 양곤의 정치 현장에 계신 것에도 미얀마 시민은 불만을 품고 있기도 하다. 군부에 협력한 사람이라는 비난이 바로 그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저도 반평생을 감옥에 있었고, 지금도 제 동지들 다수가 감옥에 있다. 그런데 모두가 감옥에 있다면 과연 누가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모두가 총을 들고 싸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대립적 현실을 탈출하게 만드는 지혜도 필요하다. 누군가는 나를 '배신자' 혹은 "군부의 졸개"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나를 변론하면 이렇다. 2021년 쿠데타가 발생하고, 나는 군부로부터 양곤 시장직을 제안받았다. 물론 거부했다. 왜냐하면 쿠데타를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미얀마는 앞으로 가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협상을 바라는 협상파이다. 총선이 끝나고 군부가 선거 부정을 이야기하자, 나는 NLD 여당 측에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공동 조사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NLD가 응답하지 않았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쿠데타로 이어졌다.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 NLD의 '고지식(순진)함'에 화가 난 건가?
"그렇다. 이번 선거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양측의 문제를 봉합하고 싶었다. 타협 말이다. 그런데 분노한 시민들과 정치단체들은 고민하거나 협상하려는 시도를 안하고 바로 싸움에 돌입한 것이다. 저는 쿠데타 직후에 여러 저명한 카톨릭, 불교계, 종교인 등 지도자를 모아 협상테이블을 꾸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처절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너무 실망스럽고 슬펐다. 분명히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괴로움을 안고 있습니다."
- 당신은 오랜 기간 '연방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왔다. 어떻게 실현할 수 있었을까?
"공개적으로 NLD를 자주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NLD가 진즉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를 꾸렸어야 했다. 이번 쿠데타 직후에 해외에 만들어진 NUG 정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에 어떤 정당이 승리하든,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합 정부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소수민족 인사와 과거(떼인세인 정부 시절) 주요 전직 관료들을 포함하는 정부 말다. 제가 말하는 건 의원내각제의 '연립 내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미얀마의 문제는 대통령제나, 연립 내각 정도로 풀릴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통합을 위해 더 좋은 인재를 NLD 당 바깥에서 찾았어야 했다. 선거라는 제도가 유일한 마술적 해결책은 아니었던 것이 현재 미얀마 상황이 보여주고 있다."
- 쉽게 말해, 군부와 협치를 해야 했다는 말인가?
"그보다는 군부 이전에 먼저, 소수민족을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소수민족 인사를 정부에 품어 '연방주의'의 비전을 먼저 세웠어야 했다. 연방주의와 관련해 NLD의 실책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지방정부의 수상을 누가 하는지가 무척 중요했다. 2008년 헌법에 따르면, 지방정부의 총리는 주 의회에서 정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지명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헌법 제 261조 얘기다. 떼인세인 정부시절에 NLD는 261조 개정에 원칙적으로 찬성했다. 왜냐하면, 연방주의라면, 대통령이 아니라 각 주에서 선택하는 게 합당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개정하려고 하자 NLD가 동의하지 않았다."
"왜냐? 상·하원 의회는 물론 각 주 의회에도 25%는 군부가 지명직 의원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렇다. 만약 각 지역 의회에서 총리를 뽑는다고 하면 군부의 의견이 과하게 작용할 것 같아서 NLD가 개정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NLD의 생각은 261조 조항을 군부의 25% 지배력을 줄이는 것과 함께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 듯 싶다. 실제 2015년 선거에서 라카인(Rakhine)주와 샨(Shan)주에서 문제가 되었다. 라카인 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했는데, 2016년 NLD 대통령은 라카인당 출신을 총리로 뽑지 않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군부는 주 의회 의장을 USDP로 선출한다. 라카인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러면 안됐다. 소수민족 정당과 중앙 정당의 갈등만 커진 셈이다. NLD는 연방주의를 실천할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게된 것이다."
- 연방주의 관련해 NLD의 실패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군부가 2008년 헌법을 통해서 상당히 변화된 모습을 보이긴 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가?
"미얀마 군부는 1962년부터 권력을 장악해왔고 2011년까지, 아니 지금까지 60년 넘게 이어져왔다. 군부가 변화한 것을 느낀 것은 2012년 선거무렵이었다. 당시 처음으로 2008년 헌법을 사용해서 경쟁 체제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정치 상황이 확실히 개선되었기에 역사적 전환이라고 볼만한 사건이었다. 떼인세인 대통령이 정치와 전략을 현명하게 바꾼 것으로 생각한다. 당시 330석에 달하는 압도적인 의석을 바탕으로 군부의 방식대로 개혁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평화 로드맵이 특히 주목할만했다. 다만, 군부와 NLD가 헌법에 대해 갖는 다른 비전과 갈등이 너무 컸다."
- 미얀마 '2008년 헌법'은 왜 그렇게 논란과 갈등의 중심에 섰는가?
"이 헌법의 개정작업 때부터 갈등이 컸다. 1992년부터 개헌을 위한 국민회의(National Convention) 이 작동을 했다. 문제는 1995년에 NLD가 이 회의에서 전격적으로 퇴장하면서 확대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NLD가 빠진 상태로 헌법이 확정되었고, 이에 반발한 NLD는 2010년 총선에 불참한다는 쉐곤다잉 선언(2009)을 하기에 이른다. 원천적으로 군부와 NLD는 헌법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가졌던 셈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2008년 헌법은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이다. 탈중앙화된, 연방주의에 충실한 헌법이 필요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예산을 적극적으로 지방(주)에 배정하고, 주 총리도 연방에서 자체적으로 뽑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갈등이 줄어든다. 소수민족 갈등이 줄어야 정부와 시민이 군부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 아웅산 수찌의 NLD도 2019~2020년 개헌을 시도했다. 수찌는 직접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우선, 개헌에 관해선 NLD도 여러 제안을 던졌다가 대부분 실패했다. 2019년 개정안의 핵심은 군부의 영향력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이었다. 국회 의석수 가운데 군부에 자동 배정된 25% 규정을 차츰 줄이자는 제안을 던진 것이다. 개헌이 되어야 대통령 관련 조항도 고칠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수찌의 대통령직과 직접적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소수민족의 자치권에 대한 개정을 먼저 제안했더라면 나를 포함해 더 큰 환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NLD와 수찌는 연방주의에 관한 관심은 크게 부족했다고 판단한다."
- 외국인 입장에서 '연방주의(federalism)'는 무척 어렵다. 연방주의를 해야 군부 중심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나?
"나는 서방의 외교관을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한다. 미얀마의 군부 정권을 바꾸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이다. 첫 번째는 이라크나 과거 여러 3세계 군부처럼 서방 세력이 그 나라 정치에 개입해 나라를 장악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1986년 필리핀처럼, 라모스가 코라손의 손을 잡고 군부를 두 개로 쪼개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얀마에선 무슨 방법이 가능할까? 지정학적으로 미얀마는 유고슬라이비아와 엇비슷해 민족 갈등이 극심하다. 내부 갈등이 심해서 진즉부터 군부가 힘이 커졌다. 현재의 거대한 군부를 두 개로 쪼갤 수 있을까? 현재로써는 무척 어려운 숙제다. 그렇다면 일단 군부에 변화를 이끌어 와야 한다. 부패하고 포악한 군인들이 정권을 잡지 않게 해야 한다. 미얀마 시민도 군부를 무너뜨리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런데 현실적인 방법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하루 이틀 군부와 싸워온 게 아니다. 미얀마 소수민족 군대(시민군)가 아주 좋은 사례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군부와 싸워왔고, 정말 오래전부터 연합전선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계속 실패해왔다. 연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연대가 문제가 아니라 샨 주에 가면 군대가 두세개로 쪼개져 있다. 내부 갈등이 극심하다는 얘기다. 자신들만의 아픈 역사와 고민이 있는 것이다. 현실은 정말 잔혹하고 어렵다."
- 그렇다면 해법은 민주주의와 연방제 강화일까?
"그렇다.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고, 두 번째는 연방적인 문제다. 민주주의의 문제는 군부의 정치참여를 앞으로 단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점이고, 또 중앙집권적인 대통령제 대신에 우리나라는 연방제로 권력을 서서히 쪼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웅산 수찌의 실패는 민주주의만 고민했고, 연방제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본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든, 우리는 미얀마의 군대와 군부를 일거에 없애거나 해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조직과 기관이 무기와 군인을 통제하는 군대 조직을 대신할 수 있을까. 때문에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주된 목적은 '군부(military junta)'의 성격을 바꾸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 때 민주주의와 연방주의가 가능하고, 이러한 모든 과정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 내년(2023년도)에 과연 선거가 열릴까?
"쉽지 않다. 지금도 미얀마 전역에서 폭격과 학살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상호간에 미움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군부 내부에는 나라를 대표할만한 지도자, 대통령이 없는 상황이다. 2023년 8월 이후에는 선거를 치를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바람과 무관하게 2008년 헌법이 자동으로 해산되어버릴 것 같다."
"우선 의회가 없다. 헌법에 따르면 비상사태를 선언(6개월)하고 추가로 6개월 연장이 고작이다. 그 이후에 관해서는 조항이 없는 거지요. 자연스레 그러한 기한을 다 지나고 보면 2008년 헌법으로 권력을 형성하고 만들 주체가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내년에 선거가 열리지 않는다면 사실상 2008년 헌법은 효력을 다해버리고 존재가치를 잃게 되어버립니다. 현재 권력을 가진 SAC, 즉 국가행정위원회(State Administration Council) 자체가 헌법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 아웅산 수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왜 그는 '선거의 결과'에 그리 집착했을까?
"그의 미래는 군부의 손에 달렸다고 본다. 확실한 것은 그가 나라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여성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감성적으로 어필하는 부분이 컷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분이 군부에 의해 오래 고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만 감옥이 아닌 가택연금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녀에게 정치는 일종의 흑백 게임이 되어버렸다. 미얀마 시민도 군부를 싫어하니 자연스레 아웅산 수찌의 '영웅주의'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었다. 지나치게 양극화 된 것이다."
- 민야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그 어떤 나라 정부도 인정을 할 수가 없다. 너무 많은 국민을 죽였다. 누가 과도기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그는 현재 군부 지도자이자 SAC 의장일 뿐이다. 현재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비상시국이다. 부통령 우민쉐가 대통령 대행이지만 아무런 실권도 없어 보인다. 결국 정상화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선거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 기대하기 어렵다."
- 언론 통제가 심하다. 미디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는 소셜미디어(SNS)의 역할이 크다. 문제는 유튜브나 트위터 페북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들이 문제를 풀기보다는 키우는 방식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군부가 민주인사를 탄압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진영의 논리에 사로잡혀 서로의 잘잘못을 드러내는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군부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인권을 유린하고. 이런 방식은 적절치 않다. 서구화된 미디어가 미얀마의 문제를 더 확대 재생산 한다고 생각한다."
- 어떻게 문제를 풀 수가 있을까?
"내 친구나 동료들도 내가 과거 운동권 리더였던 것을 아니 반군부 전선, 예를 들어 PDF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경험은 다른 결론으로 향하고 있다. 나는 민주민족 진영의 민중정치와 무장투장 혁명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나의 신념은 미얀마의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것이다.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 압력을 높여가면 결국 파국에 이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1990년 선거를 군부가 인정하지 않고 해외에 망명 정부가 꾸려졌다. 수찌 여사의 친척이기도 한 세인 윈(DR. Sein Win) 박사가 당시 민주 진영 지도자였는데, 서방세계를 포함한 세계 곳곳에 미얀마에 외교압력을 넣어달라고 청원하고 다녔더랬다. 그래서 결국 미얀마 군부정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경제제재(Economic Sanction)가 시작되었다. 결국 신군부 정권은 나라 경제를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파국에 이르렀다. 이런 것이 바로 상호 간에 '압력'이 증가하면서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사례다. 사람들은 나를 "배신자"라고 비판하는데,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럴 수 있는데, 국내에 살아야 하고, 무기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땅에서 가능한 정치적 해법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믿는다."
- 실제로 과거나 현재나 미얀마 망명 정부는 실질적인 힘이 부족했다.
"문제는 여기, 이 땅에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장의 문제는 더 복잡하고 현실적이다. 내 가족만 해도 그렇다. 내 첫째 딸이 7살인데 쿠데타 이후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내 아내는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미국에 7년 정도를 살았던 적이 있다. 내가 석방이 되고 나서, 미국에 가족을 찾으러 갔다. 미국의 삶과 미얀마의 삶을 놓고 저울질 한 적이 있는데, 결국 다 포기하고 미얀마로 돌아와야 했다. 살아도 여기서 살고, 죽어도 여기서 죽자고 결심한 것이다. 시민들과 함께 이 고통을 함께 겪겠다, 협상은 추구하지만 군부로부터 어떤 특혜도 받고 싶지 않다."
- 앞서 군부의 참여 제안을 거부했다고 답했는데..
"당연히 나는 군부에 동의하지 않는다. 쿠데타에 반대한다. 최악의 상황이다. 민심이 거부하고 있다. 다만 군부의 현실적인 힘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다. 덧붙여 나는 미얀마에 정치적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NLD에만 의존하고 귀기울이는 것은 문제다. 작은 정당들이 더 많이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 즉, 연방주의, 연방제의 발전을 위해서 정치하겠다는 건가?
"그렇다. 미얀마의 역사는 다른 민주국가들하고 전혀 다르다. 우리에게 선거라는 것은, 일종의 버스 정류소같은 거다. 하나의 과정이지 최종 종착역일 수 없다. 선거만이 연방의 갈등을 푸는 데 유일한 해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그 이행 과정에서 앞서 얘기한 소수민족, 민주세력, 그리고 군부를 아우르는 국민통합정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