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태국 총선 2023…'왕당파'는 이제 그만?
작성일 : 2023년 5월 6일
작성자: 정 호 재
● 5월 14일, 2019년 이후 4년만에 전국 단위 총선
● 9년째 집권 중인 쁘라윳 군부 총리 교체 가능할 지 관심
● 빨간 '탁신당'과 젊은 '주황당'의 연립내각 수립에 관심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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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지역을 막론하고 전국단위 선거는 언제나 흥미롭다. 투표제도는 어찌되었건, 인간이 만든 현대 정치의 총아 같은 건데, "비밀투표"라는 점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잘 모르는 오늘날 "전 국민"의 본심을 가장 진실에 근접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시아 기득권들은 "집요할 정도"로 투표라는 제도를 거부해왔고, 어찌저찌 헌법에 투표라는 요식행위를 넣은 국가들은, 그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일본은 "후보자 이름써넣기" 태국과 필리핀은 "수십여개의 기득, 지역 정당", 말레이는 "종족정당 독주" 등등 말이다.그럼에도 "투표"가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거의 유일한 "사회 변화"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1. 태국정치 50년
돌이켜보면 1975년 월남의 패망이 낳은 정치적 후폭풍이 아시아 정치권에 미친 영향이 상당했다. 한국만해도 그 무렵 선거가 사라지고 유신체제로 돌변했던 것이다. 캄보디아는 순식간에 '킬링필드'가 되었고, 동남아 자유주의 선봉장인 태국만해도 "반공" 국시의 군부 억압정치로 돌변한 것이다. 월남이 살아남았다면, 조금 평화로운 아세아가 되었을까?
아시아의 냉전해체는 1997년 imf 경제위기와 함께왔다. 미국 달러 우위체제에 아무런 대비가 없던 아시아 경제를 다국적 헷지펀드가 공격하면서, 군부가 적당히 이끌던 각국 경제가 순식간에 털리며 국민경제가 망가진 것이다. 깜짝놀란, 특히 태국은 "경제"에 유능한 정치인을 수소문했고, 1999년 벼락스타로 등장한 게 "탁신 친나왓"이라는 당시 태국 제3통신사 오너 겸, 경찰출신 정치인이었다.
탁신은, 이후 2019년까지 20년 가까이 거의 모든 선거를 승리하는 데, 심지어 2005년 이후엔 군부로부터 탄핵을 당한 탓에 태국에 입국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여동생이나 정치적 동지를 대리인으로 삼아 승리하는 기염을 토한다. 옐로셔츠와 레드셔츠의 싸움으로 알려진 이 과정에서, 왕당파는 그를 "대통령병 환자"라고 공격을, 탁신은 "시장경제" 화두로 맞선다.
2. "탁신도 왕당파"
그러니까 (레드셔츠 혁명이 실패한) 2010년부터 (왕권이 이양되는) 2019년까지 태국 진보세력의 고민은 "탁신은 진짜 공화주의자"인가, 라는 질문에 모아진다. 1999년 이후 탁신은 "농민과 빈민"의 희망이 되었다. 태국 정치 사상처음으로, 투표의 효능감을 안겨준 인물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공약을 보고, 표를 주니, 처음으로 대중을 위한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냉전시기 "반공" "왕실만세" 투표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탁신이 군부에 쫓겨나자 오히려 "탁신 신화"는 들불처럼 거세졌다. 왕당파가 그를 싫어한다면, 그는 "공화파"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08~2010년 사이엔 방콕시내에서만 수백명이 죽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정도로 격렬히 대립하며, 탁신을 총리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싸움이 있었다.
물론 망명 중인 탁신은 "자신은 왕실에 절대 충성한다"라고 밝혔음에도, 변화에 목마른 태국 민중의 열기에 묻혀버리고 만다. 그리고 2015~2019년 전임 국왕이 서거하고 왕세자에게 권력이 이양되었다. 당연히 그 와중에 탁신일가는 완벽히 침묵을 유지했고, "혹시나"를 기대했던 공화파는, 탁신의 실체를 무려 15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그도 평범한 기득권에 불과했음을 말이다.
3. 전진당, 까우끌랏
2019년, 2023년 최근 두 번의 선거에서 최대 화두는 "젊은 정당" 미래당(현 전진당)의 선전 여부다. 2019년 미래당의 타나톤은 81석을 획득, 탁신당(136석)과 군부당(116석) 사이에서 캐스팅보트권을 획득, 40대 초반의 타나톤 총리를 탄생시킬 뻔 했다.워낙 선거법이 복잡하고, 개표 혼란과 수살쩍게 연기된 발표까지, 온갖 부정과 흑막이 난무해 명쾌하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미래당과 탁신당은 의석수 우위에도 연립내각을 만들지 못한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숨겨진 이유론 "탁신당 내부의 왕당파"가 걸림돌이었다. 즉, 공화파에 가까운 미래당과 손을 잡을 수 없다는, 배신자 그룹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결국 2019년 내각은 군부당에 돌아갔고, 왕실은 큰 저항없이 왕권을 대물림, 그 와중에 타나톤은 왕실모독혐의로 기소당해 의원자격도 잃고 "미래당" 이름도 빼았기고, 전진당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젠 또 한명의 40대 초반 당수 피타 임짜른낫(42)을 내세워 새롭게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다. 당연히 청년진보 세력은 탁신당을 버리고, 전진당으로 갈아타게 된다.
4. 파란당 vs. 빨강 vs. 주황
이번에 와서 태국 선거 광고판을 살펴보니, 대략 선거 구도가 이해가 된다. 정당이 70여개라지만, 파란색 광고판을 쓰면 군부 정당, 붉은색은 탁신당, 주황색이 전진당인 것이다. 파란 계열 정당은 숫자가 꽤 많은데 이 가운데는 과거 탁신당이었던 인물도 꽤 된다. 즉, 2019년에 "배신"을 때린 그룹이다.
탁신당의 인기는 여전하다. 올해는 탁신의 딸 "패텅탄(37)"이 얼굴 마담으로 나섰다. 정치라는 건 한번 인기를 얻으면 20년은 간다는 얘기가 그냥 나온 얘기는 아닌 듯 싶다. 탁신 집안은 여전히 전국적인 농민세력의 지지와 특히 서북쪽 치앙마이 부근에선 흔들림 없는 지역 맹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탁신 딸"의 등장에 젊은이들은 "정치가 장난이냐"며 냉소를 보낸다. 흔한 기득권 정치인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그렇다면, 피타와 타나톤의 전진당은 믿을만한가?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이 될만한가. 태국의 젊은이들은 이같이 답하더라 "그나마 덜 해롭습니다(less evile)" 전진당의 후보들은 대개 30-40대의 미국과 영국 유학파, 경영자 출신들이다. 즉, 부모님들이 귀족에 가까운 부잣집 자제라는 얘기. 그래도 태국의 근본적 문제에 공감하고, 공화정에 더 가까운 목소리를 내기에, 젊은 표는 대거 전진당을 향하는 것이다.
5. 현실적 대안
의원 내각제 정치는 뉴스 이면의 그들만의 복잡한 수싸움이 흥미 요소이면서도, 대중들에겐 불만의 근본 원인이 된다. 이번 선거 역시, 다수당 없이 1당은 탁신당, 2당은 군부당, 3당은 전진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1차 관건은 2019년과 동일하게 탁신당과 전진당의 연립 가능성이다. 어치파 왕정은 확정이 되었기에, 이 가능성은 지난번보다는 확실히 높다.
그러나 탁신 딸인 "패텅탄"이나 전진당의 "피타"에게 총리 자리가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상징성(탁신 or 공화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탁신당의 2번째 총리 후보인, 세따 따비신에게 흐를 공산이 크다.물론, 피타의 전진당이 2위 정당 그 이상의 결과를 얻으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현재 전세계 많은 언론은 "피타 임짜른낫"이 보수적 태국 정치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PS.
1. 당연히 탁신 딸인 "패텅탄"은 가짜 개혁파. 아시아 정치의 최대 걸림돌은, 정치 대물림.
2. 피타 전진당대표는 동남아판 우버인 grab 경영진 출신. 스타트업 대표의 정치판 진출이기도.
3. 주황당이 5월 14일 이후 뉴스에 많이 보이면, 아시아 정치판에 좋은 일이 생긴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