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말레이시아 총선 가늠자 '하나 여 Hannah Yeoh'

글 | 정 호 재

일시 | 2022년 11월 12일

말레이시아 야당 PH의 대표적 여성정치인 '하나 여', 1979년생 연방재선의원을 노린다

말레이 제 15대 총선

코로나에 짓눌렸던 정치 기지개가 아시아에서 한창이다. 아세안 정치 재걔의 서막은 말레이시아가 끊는다. 2022년 10월 10일 의회를 해산한 집권당 암노UMNO와 야당연합인 파카탄하라판(PH)는 11월 19일 제 15대 총선에서 말레이 역사에 오랫도록 기억될 중차대한 승부를 겨룬다.

현재 말레이 정치권은 아주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2018년 여름 분명히 정권교체에 성공했는데, 현 이스마일 총리는 선거에 패배한 암노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결과가 발생했는 지 설명하려면, 지난 4년간 벌어진 지난한 정치갈등을 자세히 설명해야 하겠지만, 시간 관계상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 민주세력을 대표한 정치인 "마하티르 - > 안와르"로의 총리 이전을 기득권 세력이 결단코 거부했기 때문이다.

2018년 암노당의 부정부패에 질려 마하티르와 함께 잠시 야당으로 몸을 옮긴 "버사뚜 Bersatu"라는 중도 세력이, 2020년 반란을 일으켜 왕실의 힘을 빌려 안와르의 총리 취임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그 결과 최고령 총리 기록을 세운 마하티르도 물러나게 됐고, 안와르가 이끄는 PH 역시 여당에서 야당으로 물러서야 했다. 그러니까 이번 선거는 "안와르(PH) 단독 집권"을 놓고 말레이시아 사회가 거대한 승부를 벌이는 셈이다. 아세안에서도 선거에 의한 완벽한 수평적 정권교체가 가능한가, 아니면 절대 불가인가.

'세대교체'라는 숙제

사실 필자는 말레이 정치를 잘 모르고, 예측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선 "안와르"가 이끄는 PH 연합이 단독 과반을 이루는 것이 말레이나 아세안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사실 정권교체는 2000년 무렵, 마하티르가 총리로 은퇴한 2003년에 "안와르"에게 이뤄졌어야 했다. 문제는 유능했던 마하티르가 1997년 외환위기를 핑계로 은퇴를 거부하고 5년 더 집권을 연장한 시점에 "원죄"가 있다. 당시 마하티르는 개혁과 개방을 요구한 안와르에게 삐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국정원을 동원해 안와르를 "동성애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아예 정계에서 축출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는 잠시 외환위기는 벗어났지만, 경제의 체질개선에는 실패하고, 결국 영원한 중진국으로 남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이 세대교체에 완벽히 실패한 것이다. 마하티르가 올해 97세인데 또 한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75세인 안와르와 동갑인 무히딘 야신이 다시금 총리 후보다. 70대 이상이 총리후보로 선거가 열리는 건, 그렇게 좋은 징조는 아니지만, "정권교체"혹은 "교체 저지"가 워낙 중요하다보니, 다들 어쩔 수 없다는 핑계다.

"하나 여Hannah Yeoh"

이번 총선 뉴스를 읽다가, 아주 흥미로운 여성 정치인을 발견했다. 너무너무 훌륭하고 패기도 넘치고 당찬 분이라, 잘 기억해서 오래오래 지켜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9년생, 이번에 KL 지역구에 출마한 "하나 여楊巧雙"라는 여성 정치인이다.

이력이 아주 뚜렷하고 모범적이다.  수방자야, 한국으로 따지면 광명이나 부천 정도 태생이고, 대학 공부는 호주 태즈매니아에서 했다. 중국계 엘리트들은 안타깝게도 말레이 최고 명문인 말라야 KL국립대를 가지 못한다. 못 가는 건 아닌데, 인종 쿼터가 너무 심해서, 일찌감치 호주나 영국으로 탈출 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학을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나오면 당연히 정치하는 데는 불리하다. 국내 인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변호자 자격증을 따고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DAP 정당에 가입한다. 애당초 정치에 뜻이 있었나 보다. DAP는 화인들이 주도하는 말레이 최대의 개혁 정당이다 (동시에 안와르의 주요 연정 파트너다). 2008년에 슬랑고르 주의원이 된 그녀는, 2013년에 재선에 성공하며 사상 최초 주의회 의장직도 수행했다. 당시 34세의 여성 정치인이,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쯤 되는 의회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개혁과 인종통합

단지 젊은 여성이라는 게 무슨 이력이냐, 라고 불평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말레이시아는 무슬림 사회로 엄청나게 남성 중심적, 극 보수적인 사회다. 여성이 정치 전면에 나서는 게 생소한 문화다. 현재도 선거에 등록한 후보자 가운데 여성은 13%에 불과한데, 이것도 최근에야 조금 나아진거다. 보통 "부녀회" "여성대표" 자격으로 정당마다 1~2자리 나눠주는 게 보통이었다. 한국의 1980년대 떠올리면 된다.

게다가 중국계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가 말레이시아이기도 하다. 경제적 차별은 물론이고 정치적 차별이 극심하다. DAP라는 이유로 도청과 미행이 일상적이던게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일이다. 당연히 거기서 중국계 여성 정치인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폭탄"에 가까운데, 하나 여는 여러 제약 속에 지난 15년간 주어진 과업을 잘 수행한 듯 보인다.

그리고 2018년 DAP는 하나여를 수도인 KL로 불러들였고, 그녀는 너무나도 훌륭한 존재감, 개혁과 인종통합을 주제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거진 80% 넘는 득표율로, 정권 교체의 주역이 되었다. 선거에 승리한 PH는 곧바로 그녀를 여성가족부 차관으로 발탁해 여러 양성평등과 가족현대화 법안을 추진하게 된다.  말레이에서 하나여와 DAP는 개혁정치의 상징이 된 것이다.

집중 공격

당연히 이번 선거에서 "하나여"는 집중적인 타겟이 되고 있다. 여성이 정치 전면에 나선다는 게 말레이-무슬림 사회에선 꼴보기가 싫었다는 것이고, 심지어 그녀는 "중국계 화인"이다. 그녀의 포스터는 선거가 시작되자 마자 찢겨지고 빌보드 광고판은 가장 먼저 훼손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젊은 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하나 여"의 당선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그녀를 집중공격하면 당연히 보수적인 말레이계와 남성의 표가 기존 여당으로 뭉칠테니, 그다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다보니 하나여를 향한 정치적 음해와 마타도어는 날로 기승을 부린다.

안와르는 과연 단독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할 것인가? 그리고 하나여는 재선에 성공해 새로운 정치 세력의 중심 인물이 될 수 있을까? 사실 "하나 여"는 여전히 말레이 주류 정치인이 아니다. 그보다 총리감으로 꼽히는 40~50대 정치인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과 세계관은 한결같이 선배 세대와 별 차이도 없고 오히려 보수적이다. 하나여 같은 정치인이 더 필요하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 그렇다.

파카탄 하라판(PH)의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 의장, 사실상 마지막 총리 도전일 수 있다

PS.

  1. "하나 여" 씨는 두 아이의 엄마. 남편은 인도계. 급진적인 주장을 펼치지 않고도 충분히 말레이시아 변화의 중심적인 화두와 의제를 던져 왔음. 인종 통합과 여성 인권 향상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
  2. 안와르에게는 사실상 마지막 총선 도전일 지도. 말레이시아가 미래를 택했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