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노래와 반전反戰, 베트남 찐꽁손
O 2022년 베트남 최대 화제 영화 <엠과 찐>
O 1970년대 남베트남의 대중음악인, 찐꽁손의 일대기
O 자신감 회복한 베트남 대중문화계, 비엣팝으로 급상승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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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엣남 대중문화 역시 적잖은 이력과 내공을 자랑한다. 우선 1억 명에 달하는 비엣남 인구 가운데 청년 인구 비중이 아시아에서 손꼽을 정도로 많다. 전쟁 이후(1975년) 태어난 전후세대가 사회의 중심을 차지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 풍부한 내수시장, 그리고 최근 급성장하는 경제가 맞물리면 자연스럽게 자국산 영화와 드라마 음악의 내용이 충실해 지게 된다. 실제로 비엣남의 대중가요를 브이팝(V-pop), 혹은 빗팝(Viet-Pop)이라고 부르는데, 최근 유튜브에 공개된 최신 빗팝 뮤비들은 가볍게 조회수 1~2억 회를 기록할 정도로 활황이다.
영화와 드라마 자체 제작도 이미 수년 전부터 불이 붙은 상황이다. 빠른 미디어 산업 개방으로 인해 수십여개의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채널과 극장 체인망을 가진 비엣남은 빠른 속도로 기존의 컨텐츠 강국인 동북아 3국, 즉 한중일을 견제할 차세대 컨텐츠 거인으로 부상했다. 문화시장의 발전 속도가 현제 비엣남의 경제 순위(1인당 GDP 3천 달러 내외)를 빠르게 넘어서고 있어, 조만간 태국(7천 달러)과 인니(3.8천 달러)의 수준을 넘어서는 아세안 최대의 컨텐츠 제작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 한국 극장체인
비엣남에 한국의 극장체인인 CGV와 롯데씨네마가 일찌감치 진출해 시장을 상당히 장악했다. 실제로 사이공의 아에온Aeon 쇼핑몰 CGV에 가보니 한국과 거의 똑같은 시설에 품질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말 영화관 관람료는 12만 5천동(한국돈 6천 5백원) 한국의 1/2의 물가로 상당히 비쌌음에도, 꽤나 많은 관람객이 주말 여유를 즐기러 찾아올 정도로 영화 산업의
영화관은 대규모 공간을 필요로 하므로 기존 땅을 크게 가진 비즈니스 업자나 "대형 쇼핑몰"이 설계될 때 참여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사이공만해도 단독 극장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다. 영화 산업이 그리 크진 않다는 얘기다. 사이공이 경제수도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사회주의 아래서 50년 가까이 지난 탓이다. 아시아 영화의 황금기인 1960년대엔 남비엣에도 한동안 전쟁영화와 코미디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고는 하나, 1975년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영향 탓에 주로 다큐 영화와 선전 선동 영화만 만들어졌다고.
2. 베트남의 박춘석
한국에는 모더니즘 계열을 대표하는 대중음악는 적지 않다. 여러 음악 전문가들의 평을 종합하면 1930년생 박춘석 선생이 가장 근접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는 현대음악으로 데뷔했지만 1960년대 이미자 선생을 자신의 뮤즈로 쓰면서 '트로트'로 노선을 갈아탔. 1960년대 이후 직접 1천여 곡을 만들면서 한국의 고유 정서와 현대 정서를 아우른 "가요"라는 기틀을 만드는 1세대가 되었다.
비엣남에도 그와 엇비슷한 인생을 산 인물이, 찐꽁손(Trinh Cong Son 1939-2001)이라는 음악인이다. 평생 600여곡을 만든 전설적인 작곡가, 연주가인데, 특히 1950~70년대 전쟁시기 "평화"를 기원하는 민중들로부터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반전 메시지는, 한때 미국의 바에즈-밥 딜런 콤비와 비교될 정도였다.
찐꽁손은 비엣남을 대표하는 음악가인데, 한국의 옛 기사나 글에서 그 이름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 가운데 표기법도 한 몫 한다. 그의 이름이 찐콩손, 찐꽁션, 뜨린콩손 등 무척이나 다양한 방법으로 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엣남의 문화적 거리가 적지 않음을 증명하는 사례에 속한다. 오래닉간 “꽁과 콩”이 “손과 션”이 혼용되었는데, 이를 쉽게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찐공손 부른 반전과 사랑의 노래는 자국인 비엣트남 아니라 인접 아시아 국가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일본의 진보적 대학생과 시민운동가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찐콩손은 당대 비엣남이 겪었던 전쟁을 소재로 그 참화 속에서 인간이 겪는고통과 아픔을 표현했고, 그러한 전쟁은 당시 아시아 젊은이들에게 무척이나 익숙하고 현실적인 소재였기 때문이다.
3. 화제 영화 "M과 찐"
2022는 봄 비엣남에서 가장 화제인 영화는 찐꽁손의 인생을 다룬 영화 “엠과 찐Em Va Trinh"이라는 제목의 영화다. 코로나로 인한 격리와 이동제한이 풀린 현재 비엣트남 전국 어디서나 쉽게 이 영화 광고판을 찾아볼 수 있다. 당초 훨신 이전에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1~2년 가까이 늦춰졌다. 그리고 현재 흥행몰이를 기록 중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1979년생 판자낫뜨린Phan Gia Nhat Linh. 그는 한국에서 심은경 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 <수상한 그녀>를 베트남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데뷔한, 가장 지명도 높은 영화감독이다. 외국인이 현지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언어의 제약 탓에 쉽지 않지만, 이 영화는 세계시장을 겨냥했기 때문인지 비엣남+영어 자막이 동시에 제공이 되었다.
영화는 대중음악가 찐콩손의 일대기를 다큐 형식으로 잔잔히 과거를 훑는다. 여기서 M은 미치코라는 일본인 대학생이자 연구자다. 1990년을 전후해 아시아의 대표적인 평화음악가인 찐꽁손을 인터뷰하며 교류했던 그녀는, 한때 그와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안타깝게 헤어진 가장 최후의 연인이자 영화의 나레이터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 찐콩손이 과거에 "사랑"했던 가수, 혹은 여인과의 아름다운 얘기를 복잡한 사이공의 현대사와 맞물려 진행된다. 비엣남 역사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꽤나 즐겁고 감상적으로 볼만한 작품이다. 일단,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굉장히 예쁘고, 잘생겼다. 워낙 아름다운 배우들이 화면에 나오고, 정서 역시 음악영화 특유의 "낭만"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2시간 20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4. 정권과의 갈등
이 작품은 비엣남 최대의 자유도시 "사이공", 그리고 그 도시를 채웠던 "음악" 그리고 비엣남의 복잡하지만 아픈 현대사를 소재로 삼았다. 전설적이자 최근까지 생존했던 음악인을 다루니만큼 고증도 고증일 뿐만 아니라, 폭압적 국가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정치적 해석의 영역이 남아있다.
찐꽁손은 “반전”을 노래한 작곡가이니만큼, 체제와 불편한 관계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남베트남의 정권은 찐꽁션의 곡들을 방송하거나 부르는 것을 금지시킬 정도로 강력한 탄압을 가했다. 당시 비엣남인의 관점에 전쟁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싸움이었다. 전쟁을 이끄는 것은 남쪽의 군부지도자, 북부는 공산당 지도자였으니, “반전”이란 키워드 자체가 반反체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이같은 고민을 "남비엣 군부 정권에 대한 비판" 정도로 살포시 비껴나갔다. 그러니까 북비엣남이 찐콩손을 어떻게 대했는 지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고, 1990년대 사이공에서 평화롭게 음악활동을 했다는 점을 비쳐주기에, 일종의 체제 옹호적인 내용으로 비치기도 한다.
물론 당대에 북베트남의 정권도 찐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의 노래는 베트남전 자체를 내전이라고 보고 전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반명 북베트남 입장에선, 외세를 극복하고 완전한 통일을 위해서는 전쟁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숙명과도 같았다. “반전” 음악이란 민족의 과업에 해가 되는 불온한 사상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통일이 된 이후에도 정부는 오랜시간 찐공손 노래가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게 금지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1986년 도이모이 이후 찐콩손의 진심이 세간에 알려졌고, 또 개혁개방을 실시한 정부가 대중들이 좋아하는 노래까지 막아 설 수는 없었다.
물론, 오늘날 한국인의 귀에, 찐콩손의 음악은 자극적이지 않아 살짝은 심심하고, 때론 동요와 가곡의 중간 단계로 느껴지기도 하고, 반전(反戰) 가사라기보다는 살짝은 로맨틱한 낭만주의 노래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잔혹한 전쟁 시기에 찐콩손의 노래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었을런지를 상상하면, 충분히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5. 자신감 넘치는 비엣팝
필자의 올해 숙제 가운데 하나가 "비엣팝은 케이팝을 넘어설 수 있나"에 대한 리포트 하나도 포함되어 있다. 비엣남 대중문화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람이 급하게 배우려고 하니, 소화도 안되고 과연 글의 서문이라도 가능할지 걱정된다.
결국은 "영화"와 "음악"을 최대한 많이 듣는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비엣남 특유의 현대 대중문화의 역사를 모르고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대목이 많다. 일단 비엣남에도 자국의 '전통'이 있고, 그 전통의 거대한 밑바탕을 이루는 '중국적' 문화가 있으며, 19세기 이후엔 프랑스의 오케스트라와, 샹송과, 재즈가 수입되었으며, 전쟁기간에는 일본과 미국 그리고 홍콩과 러시아와의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모든 영향을 압도적으로 눌러 버린게 바로 "사회주의" 철학과 "검열censorship"이었다.
찐콩손의 음악은 그러한 국가의 간섭을 "평화"와 "반전" 사상으로 넘어서려고 했고, 그런한 음악을 만들게 한 전통과 자유주의 배경인 "후에Hue"와 "사이공Saigon" 그리고 "달랏Dalat"의 과거를 살포시 드러내 주는 영화라서 흥미로웠고, 추천드릴만 하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 비엣남 현 정부와 문화계의 자신감 회복도 느낄 수 있다. 과거 대중음악 인물이자 문화계 선배의 일대기를 다룬다는 것은, 오늘날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과거를 너무 미화했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될 듯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