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손흥민 성공, 아시아가 함께 기뻐한 이유
글 | 정 호 재
작성일 | 2022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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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논할 때 여러 특징을 뽑아낼 수 있지만, 한국 바깥에서 보면 역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인종 race"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누가 봐도 "머리가 검고 황톳색 피부색 밋밋한 눈"이 맨 먼저 보이는 게 당연하고, 이러한 외모 특징은 서구나 아프리카, 혹은 중남미 사람과 뚜렷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K-팝이나 K-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는 "동북아시아 인종"이 판을 벌인, 어찌되었건 뚜렷한 '황인종' 현상인 것이다.
"인종"은 참으로 민감하고, 적확하게 언급하기도 분석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 실체가 있는 듯 없는 듯, 무척 애매하다. 한국 안에만 머물면 더 안 보이는 이슈니 '인종' 얘기를 꺼낼 일조차 별로 없다. 하지만 실상은 중요한 얘기다.인종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남녀가 서로를 탐색할 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최우선 "조건"이다. 재력이나 잘생김/예쁨 혹은 신장이나 나이보다, 가장 먼저 눈에 고려되는 조건이 바로 "인종"인데, 문제는 그 인종에 대한 편견과 그것을 만든 역사와 오늘날의 현실이 그 "피부색"에 집약적으로 농축되어 있기 때문일 듯싶다.
1. 공론화 힘든 "인종론"
인종 이슈가 골치 아픈 차별적 담론에 해당하는 건, 대단히 강고한 "편견"으로 이뤄진 생물학적인 ‘서구중심’ 담론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태어날 때 "인종"을 선택할 권리가 전혀 없지만, 지난 천년 가까이 켜켜이 쌓아온 꽤나 복잡한 지구적 정치경제의 굴레를 '인종'이라는 멍에에 덧씌워서 함께 인식한다.
그런데 단지 그게 왜곡된 인식인지 혹은 문화적 이질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분명 황인종 안에서도 나아가 아시아 아프리카 안에서도 뚜렷한 계층과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한국인은 중국인, 일본인, 대만인 등과는 비교적 쉽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다. 그런데 인도인 중동인 동남아 인종과 결혼을 위해서는 상당히 큰 결심이 필요하다. 현실 속 인종주의는 "카스트 제도" 작동 원리와 닮았는데, 대부분은 자신이 속한 인종보다 "더 못난 인종"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최하층 계층인 '수드라'일 지라도 자신보다 못한 "불가촉천민"이 있다고 믿는 거와 닮아있다.
이는 또 국적과는 또 다른 문제다. 해결 주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국적'이나 '민족'이라는 건, 거기에 속한 집단이 최대한의 노력과 자긍심을 담아 상대에게 존경을 표하도록 강제할 수가 있다. 필요하면 전쟁을 벌여도 된다. 하지만 "인종" 문제만큼은 모두가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냥 생물학적인, 계급적인, 지정학적인 거의 모든 것의 오랜 역사적 총체가 인종문제이고 그것을 해결할 ‘주체’는 사실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2. 영국축구와 버마
“축구는 운동장에서 11명이 총 없이 싸우는 건데 영국에 진다는 게 이상하지 않는가?” (19세기 버마언론)
동남아에서 체격이 가장 좋은 민족이 버마족이다. 인도와 중국 그리고 티벳 문명의 교차점에 있어서 그런지 키도 크고 훤칠한 인물들이 많다. 1950~60년대 동남아 최고의 실력을 갖춘 나라가 버마이기도 했다. 박스컵, 메르데카컵, 아시안 대회에서 버마는 대개 한국과 이스라엘과 함께 1~3위를 차지했던 나라다. 물론 그 배경에는 영국 식민지 시절에 축구를 배웠기 때문이고, 버마 전통 놀이에 족구 비슷한 스포츠도 있었기 때문이다.
버마인들 입장에서 영국 축구를 처음 접했을 때, 자신들이 축구에 진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전쟁’은 기관총과 대포 때문에 질 수 밖에 없었지만, 축구는 맨몸으로 싸우는 거잖아. 그것도 수 천만 명 가운데 엄선된 11명을 뽑아서 싸우는 거다. 이렇게 가장 원초적 몸싸움이 축구일 터인데, 버마인들은 축구조차도 영국에게 지는 것에 당황한 것이다. 즉, 스포츠에서마저 패배하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서구에 굴복했다는 얘기다. 도저히 백인에게 못이기겠구나. 이건 인종적 한계다. 어찌 됐건 아시아는 서구에 대항했고, 실패하자 아시아 안에서만 서로 티격태격 싸우게 된다. 버마족과 한국은 아시아 내에서 나름 체격으로 승부한 나라들이다. 나름 운이 좋은 것이었을까?
3. 체력에 진심인 서구사회
미국이나 유럽 사회를 이미 경험하신 분들이 많아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스포츠에 진심인 사회가 바로 서구 사회다. 과학과 지력智力이나 총칼을 앞세운 무력武力으로 세계를 지배한 것 같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체력體力으로 세계를 지배했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일단 게르만-앵글로 색슨족은 키부터 크고 근육량도 상당하다. 거기에 팀 스포츠란 개념을 어릴 적부터 받아들이고 관련 기술을 갈고 닦았으니, 전술적 교육을 받지 못한 아시아나 아프리카 청년들은 ‘축구’에선 판판히 깨져야 했다. 히딩크도 한국에 오자마자 한 얘기가 “체력이 부족하다”라는 혁명적인 테제부터 꺼내들었다.
우선 백인이, 키도 크고 고기를 많이 먹어 근육량이 많고 지구력까지 좋다는 현실은, 19세기 더운 남반부 국가와 민족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인종론이 뿌리를 내린 게 18~19세기 제국주의가 본격화 되었을 때다. 더운 남쪽 사회에선 일부러 “근육”을 키운다는 건 극도의 비효율이었다. 더운 땅에서 1시간을 계속 뛰라고? 미친거야? 불공정해! 반면, 북부의 백인들은, 근육과 전술로 무장하고, 정치경제에서부터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청년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깡그리 박살을 내놓았다.
물론, 이를 둘러싼 해석에도 이견이 있다. 좌파들은 주로 ‘인종’이란 식민지 시대 서구에서 고안해낸 개념이라고 본다. 반면 우파는 인종론이란 냉혹한 '현실'의 반영이라고 보는 편이다. 어떻게 해석을 하든, 황인종이 백인종을 스포츠로 이긴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현실이었고, 그것도 “축구”에서, 영국이 종주국이고 유럽이 패권을 가진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란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4. 손흥민이란 “혁명”
필자는 지난 5년간, 손흥민에게 참으로 감사하면서 살았다. 모두가 그를 언급하고 존경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나라 출신이란 것 만으로 존경의 눈빛을 받았다. 사실 동남아는 지금도 ‘영국’의 정신적인 식민지에 속한다. 중동에서부터 시작해 인도를 거쳐 동남아와 호주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인도양을 낀 모든 지역이 “영국 축구”를 신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5대 리그라는 말이 있긴 한데, 실제로 EPL 빼고 나머지를 다 합쳐도 EPL 영향력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리그에서 손흥민이 지난 5년간 황인종을 대표해 독보적인 실력을 선보였다. 누가 뭐래도 손흥민은 적어도 30~40억 황인종, (동)아시아인을 스포츠 분야에서 대변자 역할을 해왔다는 거다. 거기에 정말이지 너무도 많은 아시아인이 (유치하지만) 꿈과 희망을 얻었다. 이건 동남아시아를 경험해 보신 분들만 아실 텐데, 그들에게 EPL의 가진 커다란 의미는 우리가 쉽게 상상이 어렵다. 엄청나다. EPL을 넘어서는 무대가 절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냥 최고봉이다.
우리가 ‘인종론’을 쉽게 비판하거나 비교하거나 분석을 할 수는 있는데, 그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사실은 제대로 논의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손흥민 선수가 그 방법을 보여준 것이다. 우월한 체력과 기술과 인성으로 극복하는 거다. 하나의 팀에 녹아들어 거기서 그냥 잘하는 거다. 우파적 혹은 좌파적 해법이냐,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 한 마디로 "실력"으로 400년 가까이 쌓인 지배적 ‘인종 담론’을 관통해 박살내는 거다.
스포츠가 위대한 이유인 듯싶다.
PS.
1. 예전에 데이팅 앱(틴더)을 켜본 한 한국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음. “같은 동아시아 사람 빼고는 도저히 ‘좋아요’ 표시를 못하겠어.” 슬쩍 엿보고 강하게 동감했더랬음. 필자도 사실은 다른 인종과 연애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음. 한국인도 적도 부근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 어마무시하게 강함.
2. 영국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는 점도 입증 했는데, 어찌되었건 ‘실력’이 있는 손흥민을 알아보고 최고의 스타로 키웠다는 점. 그렇기에 EPL이 최고의 무대가 될 수 있었음. 실력에 "공정"한 사회가 아름답다.
3. 손흥민은 아시아 최고의 ‘혁명가’로 불릴 것임. 아시아라는 말을 가장 널리 쓰이게 만든 사람이 바로 손흥민임. 아무리 생각해 봐도, EPL 득점왕 보다 아시아 젊은이들에게 더 큰 꿈을 주는 상은 없을 듯 싶음. 노벨상을 20~30대에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정말 어떻게 표현을 못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