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화교의 고향④ 산두출신 기업인들
O 화교 경제계 최고의 파벌 "조주인" 홍콩과 태국 경제의 주축
O 차오산-산터우의 가난이 수많은 조주계 화교 만들어
O 이후 중국 경제 부흥에 마중물 된 "조주계" 기업인
글 | 박 번 순
동남아의 조주인들 대부분은 조주항, 현재 산두항을 통해서 동남아로 나갔다. 그래서 멀어지는 산두항을 돌아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 중에는 탄솽우(Tan Suang U)가 있다. 태국의 작가 보탄(Botan)이 1969년에 발표한 “태국으로 부터의 편지(letters from Thailand)”의 주인공 탄솽우가 인상적이다.
그는 1945년 8월 어느 날 밤 모친에게 편지를 남기고 친구 두 명과 방콕행 배를 탄다. 친구 한 명의 삼촌이 방콕에 거주하고 있어 그를 믿고 나머지 두 친구가 따라 나선 것이다. 다른 친구 중 한 명은 결혼한 지 1년 밖에 안됐으니 아마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탄솽우는 방콕으로 가는 배안에서 성실하게 행동하여 선장의 마음에 들고 선장은 탄솽우를 방콕에 있는 동생의 가게에 경리로 취직을 시켜준다. 이후 몇 십년간 탄솽우는 조주의 모친에게 계속 자신의 삶에 대해서 편지를 보낸다. 태국에서 결혼하고 사업에 성공하며 자식들을 기르는 과정 그리고 자식을 결혼시키는 과정을 답 한번 없는 모친에게 써 보내는 효성 깊은 이들이 탄솽우이다.
왜 탄솽우가 조주의 시골마을을 떠나게 되었는가? 그는 모친에게 써 보낸 첫 편지에서 지금은 뱃삯과 비자비용을 지불하느라 좋은 선실에서 지낼 수가 없어 1천명이나 탄 배의 밑창 가축우리 같은 곳에 돼지처럼 자리잡고 긴 여정을 보내고 있지만 언제인가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매일 돼지고기를 잡숫게 하겠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돼지고기를 매일 먹게 하겠다는 것이 그의 꿈의 하나였다.
태국 CP그룹 창업자
탄솽우가 1945년 8월에 산두항을 떠나기 훨씬 이전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산두항을 떠났고 그들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공했다. 지금 태국 CP그룹을 창업했던 시역초, 그리고 태국과 싱가포르 등 동남아 주요지역의 주류시장을 장악하고 싱가포르 및 아시아 전역에 부동산 사업을 하는 Charoen蘇旭明의 부친, 그리고 방콕은행을 창설한 진필신陳弼臣, Chin sophonphanich, 1910~1988도 모두 산두를 떠났다.
태국의 CP 그룹은, 짜런 포카판CP의 약어다. 중국어로는 正大로 표기한다. 방콕에서 1921년 동생과 함께 작은 종자가게, 정대공사正大公司를 열었던 20대의 젊은이 謝易初1896~1983는 지금은 산두시 용호구지만 당시는 징해현의 외사진外砂鎭에서 태어났다. 정대공사의 사업이 성공하면서 사료 등으로 사업 분야를 다각화했다.
현재 CP 그룹은 농가공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이며 정보통신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태국 최대의 민간기업 집단이 되었다. CP그룹은 지금 태국 최대의 기업집단이 되었고 CP 그룹의 중심회사인 CPF는 2014년 동남아 10개국 전체기업 중 매출 11위, 그리고 다른 계열사 CP All은 15위에 이르는 기업이다. 포브스Forbes는 2014년 그의 재산이 세계의 81위라고 했는데 이는 동남아 2위일 뿐 아니라 한국의 이건희씨 110위 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CP는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농가공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활발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 중국이 개방을 하자 최초로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으로서 처음에는 오토바이 및 사료생산을 했으나 이후 금융업과 유통업에도 진출했다. 그래서 CP는 다국적기업들의 중국 투자가 본격화 하기 이전인 1990년대 후반까지는 중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외국인투자기업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CP는 치아 타이正大, Chia Tai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중국에만 거의 60억 달러를 투자했고 연간 매출은 500억 위안, 종업원은 8만 명에 이르고 있다. CP는 청해성과 티벳을 제외한 전 성에 거점을 두고 있다. 중국에서는 의약, 오토바이, 부동산, 금융 등에도 진출했다.
타이거맥주의 소유주
태국과 동남아의 양조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짜런Charoen, 1944~, 蘇旭明은 자수성가한 산두인이다. 그의 부친은 산두를 떠나 방콕에 정착하여 노점상을 했는데 11명의 아이 중의 6번째가 짜런이었다. 그는 너무 가난하여 9살에 학교를 그만두었고 일을 시작했다. 지금 그는 태국의 주류시장-맥주와 위스키-을 장악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의 타이거맥주를 제조하는 아시아 맥주Asia Pacific Breweries의 모회사 페레이 저 앤 니브Fraser and Neave를 소유하고 있다. 포브스지는 2014년 그의 재산이 태국에서는 CP그룹의 타닌 회장에 이은 2위로 87위로 발표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조주어를 쓰고 있다고 한다.
1950-60년대 동남아 전체의 화교들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방콕은행의 창업주 진필신(陳弼臣, Chin sophonꠓphanich, 1910~1988)은 조주를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기업인이다. 그는 제재소에서 일하던 부친과 화교 모친사이에서 방콕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조주의 조양현 협산(潮陽 峽山), 현재의 산두시 조남구(潮南區)사람이다. 그의 부친은 그가 5살 때 그를 중국으로 보내 공부를 하도록 했고 17살에야 방콕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비록 조주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조주인이었다. 방콕으로 돌아온 그는 처음에는 단순 노동에 종사했지만 곧 20대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무역회사를 설립했고 1944년에는 방콕은행을 설립했다.
은행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1950년대에 들어 그는 당시 태국의 군부와 불화했다. 그는 1957년 홍콩으로 자발적인 망명을 떠났고 그가 지명한 대리인들이 방콕은행을 훌륭하게 운영했다. 홍콩에 체류하면서 그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화교기업인과 인연을 맺었고 그들에게 자금을 공급했다. 인도네시아 살림그룹, 말레이시아 로버트 콱 그룹등도 방콕은행의 자금을 이용한 기업들이었다.
방콕은행 창업주
비록 그가 장기간 홍콩에 있었지만 방콕은행을 동남아 최대의 은행으로 키웠으며 1980년까지만 해도 방콕은행의 이사 중에서 나중에 부수상이 된 사람이 3명, 그리고 태국하원의장이 된 사람이 2명이나 되었다. 친은 태국 중화총사회 영구명예회장, 태국조주회관 영구명예회장 등을 지냈고 1988년 사망했다. 1997년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15개의 은행 중 14개를 화교가 소유하고 있었으나 살아남은 은행은 몇 개에 불과했고 방콕은행은 가장 건강하게 살아남은 은행이었다.
사실 산두는 화교의 고향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대표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산두항을 눈물로 출발한 빈농층 자제들은 성공을 했을 때 그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과 애향심이 어우러져 그리고 더 나아가 애국심으로 고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CP그룹의 창업주 사역초는 태국에서 사업에 성공한 이후 중국이 건국되자 고국을 위해 자신의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이 시기의 많은 화교들이 귀국했는데 이들은 모두 새로운 국가건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픈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변방출신의 20대에 고향을 떠난 산역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950년에 부인과 함께 귀국하여 국영징해농장기술원 부농장장, 현인민위원회위원장, 현화교연맹주석, 광둥성정부 위원, 전국화교연맹위워 등을 역임했다. 그는 징해에 중학교 건립을 주도하여 1957년 징해화교중학교를 설립하여 1958년 9월 중학교 1학년 신입생 200명을 뽑았다. 사역초는 1965년 다시 태국으로 돌아갔다. 대약진운동의 실패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약진 시대인 1968년 이 학교는 연안중학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교사는 공장이 점유했다. 1979년 다시 화교들의 투자가 필요해진 때 징해화교중학교로 복원되었다. 사역초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83년 이었다. 그의 아들이 운영하는 CP 그룹은 아버지의 고향인 외사진에 중학교를 설립했다. 사역초중학교이다. 또한 고향인 징해에는 대규모의 사료공장이 건설되어 있다.
참고자료
Joe Studwell, Asian Godfathers:Money and power in Hong Kong and Southeast Asia, Grove Press, 2007. p. 95
Botan, translated by Susan Fulop, Letꠓters from Thailand, DK Book House, 1982. pp.8-9.
Main Photo: Singapore Teochew Building 新加坡潮州八邑会馆 Teochew Poit Ip Huay Kuan
PS.
[루뜨아시아] 태국 CP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