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베트남에서 '그랩' 성공 비결

O 후발 주자 그랩은 어떻게 세계1위 우버를 꺾었나?
O 수 많은 경쟁자들의 도전에도 여전히 1위를 유지하는 비결
O 동남아서 '그랩'과 '우버'의 전략은 어떻게 변화할까

글 | 유 영 준

작성일 |    2019년 1월


2018년 5월, 세계1위 승차공유서비스 우버Uber는 베트남에서 전격 철수를 발표했다. 베트남 지분을 그랩Grab에 넘기면서 동남아 시장에서 철수한 것이다. 현지에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필자를 포함한 외국인들은 그랩보다 우버를 더 즐겨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그랩이 우버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왜 외국인들은 우버를 더 좋아하고 베트남 사람들은 그랩을 더 좋아할까?      

필자가 우버를 더 즐겨 사용했던 것은 카드 자동결제의 편리함 덕분이었다. 카드를 미리 연동시켜놓으면 자동으로 카드 결제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가격도 미리 표시되었고, 결제가 더 필요 없이 미리 표시된 가격 그대로 결제가 되었다. 앱을 이용하는 편의성도 그랩보다 좋다고 생각했다. 그랩을 처음 만났을 때 복잡하고 깔끔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버튼 때문에 어떤 버튼을 눌러서 사용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설상가상 카드 등록도 새로 해야만 했다.      

우버가 철수한 이후 강제적으로 그랩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만난 그랩은 영 미덥지 못해 보였다. 하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그랩의 편리함과 고민이 보이기 시작했다. 3년쯤 지나자 이제 그랩 없이는 생활이 힘들 정도로 생태계에 깊게 들어가 있었다. 모든 건 그랩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랩은 수많은 경쟁자의 견제와 도전을 계속 받으면서도 점유율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그랩이 우버를 이긴 이유와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2021년 나스닥에 상장한 그랩Grab, 오른쪽이 창업자 "앤서니 탄Anthony Tan" (출처: Grab 공식홈피)

현지의 문제점에 '집중'  

그랩은 2011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다니던 말레이시아 사람 앤소니 탄Anthony Tan에 의해 처음 탄생한다. 그의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대형 자동차 유통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였다. 자연스럽게 앤소니는 말레이시아의 교통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친구의 교통체증 불만에 아이디어를 얻어 그랩의 전신인 “마이택시”를 2012년 창업한다.      

그랩이 출발점부터 우버와 다른 출발을 보였다. 그랩은 시작부터 동남아 교통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만들어진 서비스였다. 미국에서 출발한 우버는 동남아 현지화 전략보다 미국 서비스를 그대로 동남아 가져온다. 그랩은 출시 후에도 동남아 현지 사정에 맞는 서비스들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현지의 큰 환영을 받는다.

그랩의 가장 주요했던 서비스는 현금 결제 서비스였다. 베트남은 현재까지도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있는 인구가 전체 40% 정도 수준으로 대부분 현금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 인터넷 전자상거래 결제 형태도 온라인 결제가 아닌 택배 직원에게 직접 물건을 받고 현금을 지불하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그랩은 런칭 후 현금 결제를 우버보다 먼저 서비스 시작한다.      

그랩은 오토바이 택시도 잇달아 출시한다.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기존의 오토바이 택시는 개인 프리랜서 형식으로 주먹구구식이었고 이용할 때마다 정확한 가격 정책이 없어 기사와 흥정을 해야 했다. 그랩은 정확한 거리와 시간을 기준으로 요금을 책정해주었고 오토바이 택시를 보다 편리하고 싸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우버는 이번에도 그랩보다 늦게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를 시작하며 주도권을 계속 뺏기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베트남 사람들이 그랩을 이용하던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필자가 현지 지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그랩 장점이 '우버보다 싸다.' 는 것이다. 실제 측정 결과 우버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고 오히려 비싼 구간도 존재했지만 이미 현지에서는 그랩이 더 싸다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었다.    

그랩은 우버와 치열한 경쟁 속에 항상 싼 가격과 우버보다 더 싼 할인 쿠폰을 1년 내내 제공하면서 고객들의 머릿속에 우버보다 싼 그랩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그랩과 우버가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에는 1년 내내 할인받은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우버가 철수한 이후는 아쉽게도 더 이상의 할인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랩이 글로벌 공룡 기업인 우버와 치열하게 치킨 게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세계의 기업들의 투자 덕분이었다. 소프트뱅크가 2014년 2억 5000만 달러를 시작으로 2016년 7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하며 가장 큰 투자자가 된다. 디디추싱滴滴出行도 2017년 25억 달러를 투자하고, 2018년에는 도요타가 10억 달러를 투자, 한국에서도 삼성과 현대도 투자 기업에 합류한다. 투자자만 38여 개 회사가 그랩 투자에 합류하며 우버와 경쟁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었다. 그랩이 수년간 할인과 이벤트를 하며 최종 우승자가 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강력한 대항마 등장

2018년 그랩이 절대강자로 등극하며 베트남 시장의 독점적 위치를 누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우버가 물러간 베트남 시장에 수많은 새로운 기업들이 그랩의 아성에 도전한다. 그중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한 기업은 '고비엣'Goviet이다. 이미 인도네시아의 절대강자로 올라선 고젝Gojek의 베트남 브랜드이다.    

인도네시아를 정복한 고젝은 2018년 동남아 5개국으로 진출을 선언한다. 그랩과 동남아를 사이좋게 양분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동남아 시장을 두고 경쟁을 선언한 것이다. 2018년 진출한 고비엣Goviet은 2019년 필자가 살던 호찌민 시내 곳곳에 많이 보이게 된다. 그랩 못지않게 고비엣 로고가 달린 빨간 점퍼를 입은 기사들이 거리에 자주 보였다. 진출한 지 1년 만에 수많은 경쟁 기업을 제치고 그랩을 긴장하게 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고비엣은 처음부터 오토바이 위주의 전략을 구사했다. 우버가 미국 서비스만 생각하고 승용차로 시작한 것과 달리 베트남 현지에는 오토바이가 훨씬 대중적인 교통수단이라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런칭 당시 카드 결제가 없고 현금 결제만 있었다. 여러 서비스를 전부 하는 게 아닌 오토바이 한 가지 수단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이다. 게다가 고젝의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할인 정책으로 오토바이는 고비엣, 택시는 그랩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고비엣이 큰 사랑을 받게 된다.      

고비엣은 오토바이로 가능한 모든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출시한다. 마치 오토바이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오토바이 생태계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음식 배달, 택배까지 서비스를 확대한다. 또한, 오토바이만 집중하니 그랩보다 오토바이 기사들의 서비스 만족도도 일정하게 유지하고 가격도 그랩보다 무조건 저렴하게 정책을 유지하여 고객들에게 오토바이는 고비엣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줄 수 있었다. 2020년에는 다시 고젝 베트남으로 명칭을 변경한다. 2021년 고젝이 토코피디아와 합병을 하며 고투GoTo로 새롭게 출범한다. 주식 상장을 앞둔 와중에 다시 베트남 시장 판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대항하는 택시회사    

그랩과 우버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가장 위협을 받은 곳은 택시회사들이다. 호찌민은 마이린과 비나선 두 회사가 시장을 나누고 있고, 하노이는 절대강자가 없고 수십개 택시회사가 서로 연합하여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랩의 성장은 택시회사들의 시장 점유율을 급격히 낮추게 되었고 끊임없이 서로 충돌한다. 2018년에는 택시회사들이 그랩을 고소를 한다. IT회사면서 택시운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요지였다. 그랩에게 벌금을 부과하였지만, 그랩의 성장을 멈출 수는 없었다. 택시회사들은 그랩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들을 내놓게 된다.      

첫 번째로 택시회사들도 그랩과 비슷한 호출앱을 만든다. 필자는 호치민에서 비나선 택시앱을 사용해본 적이 있다. 생각보다 잘 만들었지만, 호출해도 연결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앱이 불안정한 모습도 보였다. 그랩보다 모든 면에서 불편했다. 하지만 그랩이 지속적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비가 오거나 교통정체시 가격이 급상승하는 정책으로 변경하면서 택시회사 앱을 종종 사용하는 경우가 생겼다. 택시는 단순히 거리에 따른 요금만 계산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는 수십개 택시 회사들이 연합하여 호출앱을 출시했다.      

두 번째로 고급 서비스를 출시한다. 호치민의 경우 비나선 마이린 택시들이 주요 호텔 앞에 항시 대기하고 있다. 호텔 앞 택시들은 기사들이 깔끔한 정복과 흰 장갑을 끼고 에스코트까지 해주는 고급 서비스를 만날 수 있다. 호텔 뿐만 아니라 주요 쇼핑몰, 사무빌딩, 관광지 앞에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랩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 바로 탈 수 있고 더욱 고급화 된 고객서비스로 어필하는 것이다. 모든 서비스 질이 높아지고, 모든 택시에 택시 기사 정보와 실시간 위치 정보가 제공되었다.      

마지막으로 가격 정책이 대폭 수정되었다. 마이린의 경우 기본 가격을 5000동 (약 250원) 부터 시작한다는 파격 정책을 발표한다. 물론 가까운 거리를 이동한다면 저렴한 가격이지만 조금만 멀리 가도 그랩보다 비싸서 조삼모사 같은 정책이지만, 고객들이 느끼는 심리적 인식 개선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고질적인 택시 기사들의 질적 문제와 외국인 관광객 상대로 길을 돌아간다던가 요금 정산을 제대로 해주지 않다던가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랩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 여러가지 대안을 시도해보는 모습은 현재 한국의 택시 회사들에게 좋은 참고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고젝의 베트남 브랜드 고비엣GoViet의 성장세도 눈부시다

생활 필수품 그랩    

그랩은 단순 차량 호출앱으로 멈추지 않았다. 생활 전반에 걸쳐 그랩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가장 유용한 서비스는 바로 세금 납부이다. 베트남에서 세금 납부는 명세서를 가지고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랩 앱에서 세금을 바로 낼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고, 번거롭게 이동하지 않아도 그랩으로 세금 납부가 가능했다. 또한, 핸드폰 요금 납부 등 주기적으로 내야 하는 서비스를 그랩에서 가능하게 했다.      

음식 배달과 마트 장보기, 택배까지 그랩에서 가능하다. 배달의 민족처럼 음식 배달도 해주고, 그랩을 이용해 마트에서 쇼핑하면 배달도 해준다. 간단한 퀵 서비스 배달 서비스까지 그랩에서 할 수 있다. 교통수단을 이용한 모든 서비스는 그랩에서 다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사업을 빠르게 다각화하면서도 그랩은 베트남에서 차랑 호출 분야에서 독점적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음식 배달 분야에서도 나우와 함께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랩 페이 Grabpay를 도입하여 선불 충전 결제 시스템을 빠르게 도입했다. 현재 모모와 함께 베트남 온라인 결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모든 시스템은 그랩 페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 금융업뿐만 아니라 보험 분야, 카카오 선물하기와 같은 온라인 기프트 분야까지 진출했다. 이제는 생활 전반에 걸쳐 깊숙이 자리 잡은 그랩은 독점적인 점유율을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유지하며 동남아 그랩 제국을 건설했다.      

그랩은 단순 운이 좋거나 돈으로 우버를 이긴 것이 아니다. 우버보다 먼저 현지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항상 한발 빠르게 앞서 나갔다. 또한, 초반 인식이 끝까지 가기 때문에 우버보다 항상 싸다는 인식을 수년 간 일정하게 유지하며 고객들에게 강하게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었다. 차량 호출 앱으로 시작했지만 교통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다른 분야로 빠르게 진입했다. 이미 우버를 이기면서 독점적인 고객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슷한 분야로 진출할 때도 쉽고 빠르게 시장 진입을 할 수 있었다.      

고비엣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그랩에 도전했지만, 그랩은 폭넓은 사업 확장을 통해 생활 필수적 존재로 점유율을 더욱 단단히 만들었다. 동남아를 간다고 하면 구글 맵스와 함께 필수로 깔아야 하는 앱이 되었다. 고비엣의 경우에도 절대강자가 군림하는 시장에 어떻게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지 좋은 참고 사례가 되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 가지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특정 분야의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가져오는 방식은 앞으로 베트남에 진출할 한국 기업들이 기존 기업들과 경쟁할 때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PS.

1. 고비엣 뿐만 아니라 베BE, 타다TADA등 수많은 차량호출앱이 우버 이후 등장. 그들의 도전에도 그랩은 오히려 음식배달 서비스에 더 많은 할인 전략을 택함.

2. 코로나 기간 동안 배달앱 시장이 급성장. 현재 베트남 배달앱 시장은 나우Now 와 그랩Grab 이 양대 산맥을 그리고 한국의 '배달의민족'이 뒤를 바짝 추격 중.

3. 올해 전쟁터는 '온라인 결제 시장'으로 이동했음.